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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의 경고, 묵살당한 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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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새벽호의 차가운 금속 복도를 달리는 신이준의 머릿속은 온통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으로 가득했다. 왼쪽 관자놀이 깊은 곳에서 시작된 양자 마찰의 열기는 대뇌 피질을 사정없이 짓눌렀고, 그 여파로 왼쪽 뺨과 입술 주변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영구적인 안면 마비의 전조였다. 왼쪽 귀에서는 고주파의 금속성 이명이 끊임없이 울부짖으며 그의 평정심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준은 멈출 수 없었다. 주머니 속에서 미세하게 푸른 스파크를 튀기며 떨리는 청동 나침반을 꽉 쥔 채, 그는 맹목의 어둠을 뚫고 질주했다. 눈먼 시야를 대신하는 ‘심안’이 복도의 굴곡과 격벽의 잔상을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그려주었기에 가능한 비행이었다.


‘24시간. 아니, 벌써 23시간도 남지 않았어.’


그가 본 파멸은 환각이 아니었다. 제국군 한스 중령의 정찰 편대가 발사한 플라즈마 탄도탄들이 함대를 덮치고, 3천 명의 난민이 타고 있던 알테어호가 단 1초 만에 화염 속에서 증발하던 그 참혹한 광경은 그의 영혼에 낙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마침내 기함의 심장부인 ‘새벽호 함교’의 육중한 압력 해치 앞에 도달했다. 이준이 임시 항해사 보안 카드를 콘솔에 긁자, 거친 기계음과 함께 해치가 좌우로 갈라졌다.


함교 내부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아날로그 계기판들의 부드러운 초록빛 광원들이 함교를 채우고 있었고, 장교들은 나른한 태도로 전산 스크린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23시간 뒤에 닥쳐올 지옥의 징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중앙 전술 홀로그램 테이블 앞에는 바랜 흰색 제복을 입은 로버트 함장이 피로에 찌든 얼굴로 서 있었고, 그 옆에는 화려한 비단 에복을 걸친 자치위원장 고르돈이 거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메인 조종 콘솔에는 이준의 사관학교 동기이자 라이벌인 차석 항해사 서우진이 오만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함장님!"


이준이 함교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며 외쳤다. 안면 마비로 인해 발음이 미세하게 샜지만, 그의 목소리에 담긴 절박함은 함교 전체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로버트 함장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음? 이준 항해사 아닌가. 관측실에 있어야 할 자네가 이 비상 지휘소에는 무슨 일인가?"


"당장 함대의 침로를 변경해야 합니다! 우현 50광년 구역에서 제국군의 전파 차폐막과 중력 굴절이 감지되었습니다. 정확히 23시간 뒤, 신성 제국의 정찰 편대가 우리 함대의 사각지대를 기습 폭격할 것입니다. 첫 타격은 기함 우현 격벽과 호위선 알테어호가 될 겁니다!"


이준의 경고가 함교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긴장이 아닌, 싸늘한 침묵과 이어진 실소였다.


조종 콘솔에 앉아 있던 서우진이 천천히 의자를 돌리며 차갑게 웃었다. "제국의 기습이라고? 이준, 눈이 멀더니 이젠 머리까지 완전히 가버린 모양이군. 뇌 신경망이 방사선에 절여져서 망상이라도 보는 건가?"


서우진은 조종간 옆의 메인 센서 스크린을 툭툭 쳤다. 화면에는 깨끗한 녹색 파형만이 흐르고 있었다.


"보이지? 아르고 시스템의 능동 레이더 감지율은 제로다. 적대 세력의 열원 반응도, 전자기 신호도 없어. 우리 함대는 제국의 국경 스캔망을 완벽히 우회해서 안전 구역에 진입해 있단 말이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적의 기습을 피해 침로를 바꾸라고? 그 무모한 궤도 수정에 소모될 헬륨-3 연료는 네가 채워넣을 건가?"


"이건 공식 계기판의 수치로 잡히는 스캔이 아닙니다! 제국은 클로킹 어뢰와 고도화된 스텔스 차폐막을 쓰고 있습니다. 아르고의 구형 센서로는 타격 1초 전까지 절대 감지할 수 없습니다! 제 심안이 느낀 암흑 물질의 비틀림은 명백한 군사적 포메이션이었습니다!"


이준이 서우진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며 소리쳤다. 그의 손에서 청동 나침반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푸른 빛을 발했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저 고장 난 나침반을 쥔 눈먼 청년의 광증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때, 뒤에서 무겁고 권위적인 목소리가 함교를 짓눌렀다. 자치위원장 고르돈이었다.


"항해사 신이준."


고르돈이 보석 반지가 번쩍이는 손가락으로 턱을 괴며 차가운 눈빛으로 이준을 내려다보았다.


"현재 우리 함대에는 10만 명의 아르카디아 피난민들이 타고 있네. 식량은 부족하고, 산소 농도는 매일 떨어지고 있지. 난민들은 극도의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 자네 같은 하급 항해사가 물증도 없는 ‘직관’ 따위를 핑계로 군사 경보를 발령하자고 선동하는 것은 난민 자치위원회의 법률에 따르면 심각한 치안 교란 행위이자 반역죄에 준하는 폭동 선동이네."


"위원장님, 이건 선동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제 아버지가 남겨두신 초중력 궤도 역학 방정식에 따르면, 블랙홀 주변의 미세 중력 변화는 인위적인 질량 병기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수치입니다. 제발 침로를 단 10도만이라도 우회하게 해주십시오!"


이준은 자신의 부모인 신태양과 유은하의 연구 이론을 언급하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하지만 ‘신태양’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고르돈의 눈매가 급격히 사나워졌다.


"네 아비의 망상을 감히 이 신성한 함교에서 들먹이는군." 고르돈의 목소리에 노골적인 적개심이 서렸다. "과거 아르카디아 천체과학원을 파멸로 몰고 갔던 그 불온한 고대 유물 연구 이론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모양이구나. 자네가 지금 침로 수정을 요구하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가? 함대를 위험한 블랙홀 내측 궤도로 유인해 자치위원회의 통제권을 무너뜨리려는 권력 도전인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오직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만하게!"


로버트 함장이 엄한 목소리로 둘 사이의 대립을 끊었다. 함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준의 스승인 켄트와의 오랜 인연 때문에 이준을 아끼고 있었지만, 자치위원회의 강력한 정치적 압박과 군사 규정이라는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이준 항해사. 자네의 충정은 이해하네만, 군사적 행동은 오직 객관적인 전산 데이터와 공식 프로토콜에 의해서만 결정되네. 자네는 지금 극심한 방사선 피독과 뇌 신경망 과부하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네. 닥터 발렌타인에게 가보도록 하게."


로버트 함장은 무거운 한숨을 쉬며 서우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차석 항해사 서우진 소위. 임시 항해사 신이준의 조종 권한을 즉각 일시 정지하고, 함교 출입을 제한하게. 그리고 보안 대원들은 이준 항해사를 제1항해 관측실로 안전하게 이송하고 대기시키도록."


"예, 함장님. 현명한 처사이십니다." 서우진이 승리감에 젖은 미소를 지으며 이준을 비웃었다.


"함장님! 제발 제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알테어호가…… 알테어호가 가장 먼저 불타버릴 겁니다! 제발……!"


이준의 처절한 외침은 함교의 차가운 금속 벽에 부딪혀 무력하게 흩어졌다. 좌우에서 다가온 보안 대원들이 이준의 양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이준은 반항하려 했으나, 관자놀이에서 들이친 급격한 뇌 신경 발작으로 인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뇌세포 양자 마찰 법칙의 가혹한 패널티가 그의 전신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털썩.


격리당해 끌려가는 이준의 시야 속에서, 주머니 속 청동 나침반이 옷감을 뚫고 미세하게 차가운 푸른빛을 깜빡였다. 이준은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품속의 나침반을 더듬었다.


나침반의 청동 바늘은 무자비하게 회전하며 새로운 시간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아아, 안 돼…….’


바늘이 가리키는 눈금은 명백했다.


제국의 기습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22시간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함교의 그 누구도 그의 경고를 믿지 않는 고독한 암흑 속에서, 종말의 시계바늘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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