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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광장의 폭동, 감춰진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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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료 구역의 공기는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타르타로스 크랙을 돌파하느라 함대의 보조 전력 대부분을 차단한 탓에, 기함 내부의 온도는 영하에 가깝게 떨어져 있었다. 환자들이 뿜어내는 가쁜 숨결이 하얀 성에가 되어 철제 침대 모서리에 서려 있었다.


신이준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손끝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관자놀이 부근은 여전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지만, 목덜미에 주입된 ‘아난 헬릭스 신경 안정제’의 극저온 냉매 덕분에 지독했던 뇌 신경의 발작은 간신히 진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대가는 가혹했다.


왼쪽 안면의 근육은 차갑게 굳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손끝으로 만져지는 머리카락의 절반 이상은 거친 은빛 백발로 변해 있었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왼쪽 눈의 완전한 실명이었다.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왼쪽 시야에는 오직 칠흑 같은 암흑만이 존재했다. 겨우 형체만 희미하게 포착되는 오른쪽 눈마저도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이현아…….’


이준은 마음속으로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뇌세포 괴사의 부작용은 잔인했다. 동생의 이름은 기억나는데, 그 아이의 세례명과 마지막으로 함께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머릿속에서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져 가고 있었다. 기억의 마모. 루프를 돌 때마다 자아의 조각들이 하나씩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때, 기함의 노후화된 경보음이 조용하던 의료 구역의 정적을 깨뜨렸다.


우웅—! 우웅—!


제국의 습격을 알리는 적색 경보가 아니었다. 함내의 치안 마비를 경고하는 주황색 경보등이 천장에서 불안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얇은 철제 격문이 거칠게 열리며, 먼지와 땀범벅이 된 사내가 허겁지겁 병실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새벽호의 제2보급창 주임 관리관, 강진우였다. 그의 낡은 스웨터는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인자하던 얼굴은 극도의 공포와 피로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 이준 항해사! 깨어나셨군요!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강 주임님…… 무슨 일입니까? 함내 전파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준이 입을 열자, 마비된 왼쪽 뺨 때문에 발음이 미세하게 새어 나왔다. 어눌하고 느린 목소리였지만, 그의 굳은 눈빛만큼은 상대방을 꿰뚫어 보는 듯한 무거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폭동입니다! 하부 구역의 노동자 연대, 그 ‘적색 연대’ 놈들이 결국 일을 저질렀어요! 바르가스라는 광산 광부 출신 선동가가 굶주린 난민 수천 명을 이끌고 중앙 배급 광장을 점령했습니다! 자치위원회가 식량과 고농축 산소 블록을 독점하고 우리를 서서히 굶겨 죽이려 한다면서, 호위대의 저지선을 뚫고 무기고로 가겠다고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


강진우는 이준의 제복 소매를 움켜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세라 대장님이 치안대원들을 이끌고 광장을 막아서고 있지만, 상대는 무장하지 않은 우리 난민들입니다. 무력 진압을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유혈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이준 항해사, 자네가 필요하네. 자네의 그 기적 같은 선견지명으로 이 파멸을 막아주게!”


이준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의 ‘심안 [양자 잔상 감지]’ 능력을 가동하자, 기함 내부를 타고 흐르는 미세한 전자기 파동과 난민들의 격앙된 감정 주파수가 뇌리에 입체적인 격자무늬로 그려졌다.


적색 연대의 폭동.


이것은 단순한 굶주림의 폭발이 아니었다. 이전 루프에서 겪었던 기억이 이준의 뇌리에서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이 폭동의 배후에는 수석 전술 장교 한도윤의 은밀한 사주가 있었다. 한도윤은 폭동 대장 바르가스에게 자금을 대고 선동하여 함대 내부를 분열시키고, 치안대의 시선을 광장으로 돌린 뒤 무기고 B구역을 습격하려는 치밀한 사보타주를 기획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동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자치위원장 고르돈의 끝없는 탐욕이었다.


‘고르돈 위원장…… 너는 이번 회차에서도 똑같은 짓을 저질렀군.’


이준은 이전 루프에서 고르돈이 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합성 단백질 식량과 산소 블록 수만 개를 빼돌려, 기함 하부의 비밀 격실에 숨겨두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 부패한 정치가들은 함대가 전멸할 위기에 처해도 자신들의 기득권과 제국과의 거래를 위한 뇌물을 비축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강 주임님.”


이준이 침대 옆에 놓인 청동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몸이 가늘게 흔들렸지만, 그의 손은 품속에 감춰진 진짜 양자 크로논 나침반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저를…… 광장으로 안내하십시오.”


“하지만 이준 씨, 자네 몸 상태가…….”


“식량이…… 없어서 일어난 폭동입니다.” 이준이 마비된 입술을 억지로 움직여 단호하게 말했다. “식량을…… 주면, 폭동은 멈춥니다. 가시지요.”


* * *


중앙 배급 광장은 그야말로 지옥의 초입이었다.


수천 명의 난민이 쇠파이프와 공업용 플라즈마 절단기, 깨진 강철판을 든 채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굶주림과 공포로 인해 짐승처럼 번뜩였고, 광장을 메운 거친 함성은 기함의 강철 천장을 흔들었다.


“배급을 늘려라! 우리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다!”


“위원장 놈들은 배불리 먹으면서 왜 우리에게는 고체 산소조차 제한하는가! 기득권 놈들을 끌어내려라!”


광장 중앙의 단상 앞에는 세라 대장이 이끄는 호위대원 수십 명이 물리 전자기 방패를 전개한 채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대원들의 슈트 센서가 붉은색 경고음을 울려댔고, 그들의 손가락은 소총의 방아쇠 위에서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모두 진정하십시오! 무기를 내려놓고 대화로 해결해야 합니다!”


세라가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비활성화한 채 목소리를 높였지만, 군중의 분노에 찬 함성에 그녀의 외침은 허무하게 묻혀버렸다.


단상 위에서 철제 파이프를 휘두르며 난민들을 선동하고 있는 거구의 사내가 있었다. 폭동 대장 바르가스였다.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거친 흉터가 붉은색 비상등 아래에서 험악하게 빛났다.


“대화라고? 저 호위대 놈들의 말을 믿지 마라! 저들은 우리를 굶겨 죽이려는 자치위원회의 사냥개들일 뿐이다! 위원회 놈들은 비축 식량을 숨겨두고 우리를 고기방패로 쓰려 한다! 당장 저 방어선을 뚫고 무기고를 장악해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바르가스의 선동에 흥분한 적색 연대 노동자들이 호위대의 방패를 향해 쇠파이프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광장에 가득 찼다. 세라는 이빨을 악물었다. 여기서 발포 명령을 내리면 함대는 내부에서부터 스스로 파멸할 터였다. 하지만 방어선이 무너지면 무기고가 털려 진짜 내전이 시작된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길을…… 비켜주십시오.”


그때, 광장 우측의 어두운 보급 통로를 뚫고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둠 속에서 지팡이를 짚은 청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머리카락의 절반이 하얗게 새어버린, 왼쪽 눈이 은빛 피막으로 뒤덮여 초점을 잃은 맹인 항해사. 신이준이었다. 그의 곁에는 보급창 주임 강진우가 그의 팔을 조심스럽게 부축하고 있었다.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시선이 일제히 이준에게 쏠렸다. 타르타로스 크랙을 돌파해 함대를 구한 영웅이라는 소문이 난민들 사이에 퍼져 있었기에, 군중의 거친 함성이 순간적으로 잦아들었다.


바르가스가 이준을 내려다보며 비열한 비웃음을 흘렸다.


“어이, 이게 누구신가? 함대를 구했다던 그 눈먼 애송이 항해사 아닌가! 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몸으로 위원회 놈들의 앞잡이가 되어 우리를 설득하러 오셨나? 자치위원회가 자네에게 합성 단백질이라도 몇 상자 떼어주겠다고 하던가?”


난민들 사이에서 야유와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 이준은 그 모든 소음과 자신을 향한 적대감을 묵묵히 받아내며 단상 위로 한 걸음씩 올라섰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이었지만, 그의 손끝에 닿는 지팡이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준은 중앙 단상의 메인 홀로그램 콘솔 앞에 섰다. 그리고 마비된 왼쪽 뺨을 실룩이며, 광장 전체를 압도하는 무겁고 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바르가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예상치 못한 동조에 광장이 일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바르가스 역시 당황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뭐라고?”


“자치위원회는…… 식량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굶주리는 동안, 그들은…… 신선한 야채와 고농축 산소 블록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있었습니다.”


이준의 폭로에 광장에 모인 난민들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단상 아래에서 대치하고 있던 세라와 치안대원들 역시 경악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이준 항해사! 그게 무슨 소리인가!”


단상 한편에서 무력 진압을 준비하던 고르돈 위원장의 아들, 최민재 소위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준은 최민재를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의 품속에서 푸른 미동이 흐르는 청동 나침반을 꺼내 콘솔의 데이터 포트에 밀어 넣었다.


지이이잉—!


나침반의 양자 주파수가 새벽호의 메인 전산망과 강제로 동조되는 순간, 광장 천장에 매달린 수십 개의 대형 홀로그램 스크린이 일제히 백색 소음을 일으키며 깜빡였다. 이어서 화면에 선명한 수치와 3D 입체 좌표가 출력되기 시작했다.


[기함 하부 데크 12-B 구역, 비공식 격실 수치 확인.]

[합성 단백질 블록: 150,000단위.]

[고농축 산소 발생 블록: 80,000단위.]

[신선 보존 야채 및 수경 재배 고등급 육류 비축 확인.]


스크린 너머로 실시간 CCTV 영상이 전개되었다. 그곳에는 일반 난민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고급 식료품 상자들과 산소 캡슐들이 거대한 창고 내부에 끝없이 쌓여 있는 광경이 생생하게 비쳤다. 그리고 상자 표면에는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아르카디아 난민 자치위원회 위원장 고르돈 사유 자산]


광장을 메운 10만 난민의 눈이 일제히 뒤집혔다. 자신들이 굶어 죽어가며 하루에 한 개의 산소 블록을 두고 다툴 때, 자치위원장은 기함 깊숙한 곳에 수십만 명의 일주일 치 식량을 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저게 무엇인가…….”


“진짜였어! 고르돈 그 돼지 같은 놈이 식량을 숨겨두고 있었어!”


바르가스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비웃음이 완전히 지워졌다. 그는 한도윤의 지시대로 폭동을 무기고로 유인하려 했으나, 이준이 던진 이 압도적인 ‘물질적 진실’ 앞에 군중의 분노는 통제 불능의 방향으로 꺾여버렸다.


“모두 보십시오.”


이준이 지팡이로 화면을 가리키며 웅장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군중을 향해 선언했다.


“저것이…… 여러분의 식량입니다. 자치위원회가…… 제국에 바칠 뇌물로 숨겨둔, 여러분의 생명입니다. 분노의 방향을…… 똑바로 잡으십시오. 여러분을 굶긴 것은…… 저기 서 있는 호위대가 아니라, 여러분의 피를 빠는…… 고르돈 위원장입니다!”


“고르돈을 죽여라!”


“비밀 창고로 간다! 식량을 쟁취하자!”


광장은 순식간에 폭발했다. 수천 명의 난민들이 쇠파이프를 치켜들며 고르돈의 이름을 부르짖었고, 분노의 화살은 이제 호위대가 아닌 자치위원장 고르돈의 개인 사설 경비대를 향해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광장 외곽의 철제 격문이 열리며 고르돈 위원장의 개인 사설 경비대 수십 명이 중무장한 채 광장으로 진입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밀 창고와 고르돈의 이권을 수호하기 위해 난민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무력 충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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