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타로스 크랙, 공간의 비명
새벽호의 선체 외벽에서는 포격과 슬링샷의 여파로 미세한 균열이 발생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준은 세라의 품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방의 암흑을 응시했다.
허공을 메운 것은 비상경보의 선홍색 점멸등과, 타들어 가는 전선에서 피어오른 매캐한 연기뿐이었다. 이준의 왼쪽 안면은 감각이 완전히 죽어 굳어 있었고, 은빛 방사선 피막이 덮인 두 눈에서는 말라붙은 피딱지가 가려움과 통증을 동시에 유발했다. 머리카락 절반이 하얗게 새어버린 백발의 맹인 항해사. 그가 지금 10만 명의 목숨을 짊어진 채 함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준아, 정신 차려라! 아직 완전히 빠져나온 게 아니야!”
세라의 거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녀의 단단한 전술 슈트 장갑이 이준의 어깨를 지탱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함교 바닥으로 쓰러졌을 터였다. 이준은 발음이 새어 나가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 지를. 스승님의 일지…… ‘스텔라 마리나’를 찾아야 합니다.”
“여기 있다. 내 손에 쥐여줄 테니 굳게 잡아.”
세라가 함교 바닥에 떨어져 있던 두껍고 때 묻은 가죽 책을 주워 이준의 품에 안겨주었다. 손끝에 닿는 거친 가죽의 질감과 무수하게 박힌 요철 점자들. 그것은 이 눈먼 항해사가 우주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돕는 유일한 지식의 등불이었다.
쿠구구구궁—!
새벽호가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이번에는 제국군의 포격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가 미세하게 뒤틀리며 발생하는 중력 전단력이 선체를 사정없이 찢어발기려 드는 소리였다. 전면 스크린에는 빛조차 빠져나가지 못해 기괴하게 일그러진 블랙홀 ‘아페이론’의 광륜이 붉은색 나선형의 심연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곽을 따라 형성된 공간의 찢김 지대, ‘타르타로스 크랙’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경고. 기함 아르카디아의 새벽호, 타르타로스 크랙 경계선 진입. 전자기 간섭률 100% 도달. 메인 레이더 및 능동 센서 작동 정지.]
보조 인공지능 아르고의 음성이 심각한 노이즈와 함께 흘러나왔다. 함교의 모든 계기판이 일제히 백색 소음으로 뒤덮이며 먹통이 되었다. 전면 스크린은 그저 짙은 회색빛의 안개와 노이즈가 뒤섞인 죽은 화면으로 변해버렸다.
“레이더가 죽었습니다! 전방 스캔율 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서우진을 제압하고 있던 전술 장교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보이지 않는 우주에서 레이더가 마비된다는 것은 곧 절벽을 향해 눈을 감고 질주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때, 함교 서브 스크린의 예비 유선 채널을 통해 과학 연구부의 리암 교수가 황급히 연결되었다. 그의 돋보기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극도의 공포로 흔들리고 있었다.
- 이준 항해사! 이건 미친 짓이네! 타르타로스 크랙 내부의 중력 붕괴율은 수식상으로 이미 임계값을 초과했어! 공간이 찢어지는 균열에 스치기만 해도 새벽호의 노후화된 격벽은 분자 단위로 찢겨 나갈 걸세! 당장 기수를 돌려 후퇴해야 해!
“후퇴는…… 없습니다.”
이준이 굳어버린 안면 근육을 억지로 움직여 대답했다. 새어 나가는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쇠붙이 같은 단호함이 있었다.
“에델가르트의…… 본대 대함대가 정면 게이트를 봉쇄하고 있습니다. 기수를 돌리는 순간, 우리는 제국의 중력 미사일 사격판이 될 뿐입니다. 오직 이 크랙만이…… 저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유일한 틈새입니다.”
이준은 무릎 위에 올려둔 ‘스텔라 마리나’의 가죽 표지를 열었다. 장갑을 벗은 그의 손가락 끝이 종이 표면의 요철들을 빠르게 더듬기 시작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 이 손끝의 감각은 우주 전체의 지형도와 같았다. 스승 켄트가 평생에 걸쳐 직접 몸으로 겪으며 새겨 넣은 아페이론 외곽의 미세 중력 균열 주기들.
‘이준-켄트 방정식.’
이준은 머릿속으로 수십 번의 루프 동안 암기했던 물리학 공식을 대입하기 시작했다. 대뇌 피질이 과열되며 관자놀이가 찌르는 듯이 아파왔지만,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억누르며 실시간으로 중력장의 벡터선을 연산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보이지 않는 우주의 찢겨 나간 틈새들이 푸른빛의 입체 잔상으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레오.”
이준이 조종석을 향해 나직하게 불렀다. 주근깨 가득한 얼굴이 겁에 질려 파랗게 질려 있던 보조 조종사 레오가 깜짝 놀라며 이준을 바라보았다.
“예, 예! 스승님!”
“조종간을…… 수동으로 전환해라. 아르고의 자동 연산은 이 크랙의 왜곡 주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제부터…… 내가 부르는 수치대로만 키를 꺾어라. 계기판은 보지 마라. 오직…… 내 목소리만 믿어라.”
레오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준의 흐릿한 은빛 눈동자와 마주하는 순간, 소년의 눈동자에 깃들어 있던 두려움이 단단한 신뢰로 바뀌었다.
“예, 스승님! 수동 조종간 가동합니다!”
레오가 붉은색 수동 레버를 힘차게 당겼다. 웅웅거리는 유압식 모터 소리와 함께 새벽호의 수동 스러스트 제어망이 활성화되었다.
“침로 0-2-5, 수평 유지. 미세 스러스트…… 3% 분사.”
이준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레오의 손가락이 조종간 위의 미세 조절 다이얼을 기민하게 움직였다. 기함 새벽호가 거대한 고래처럼 비틀거리며 칠흑 같은 크랙의 입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방에서 공간이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레이더가 죽어버린 어둠 속에서, 선체 외벽을 때리는 미세 중력파의 마찰음은 마치 거대한 괴물이 발톱으로 강철판을 긁어내리는 소리 같았다.
쿠구구구구궁—!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새벽호가 우측으로 크게 쏠렸다. 함교 내부의 조명들이 일시에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며 비상등이 거칠게 점멸했다.
“우현 격벽 압력 급증! 외부 티타늄 격벽 판넬 일부가 찢겨 나갔습니다! 기압 강하 경보 발생!”
송유나 소위가 비명을 지르며 보고했다. 우현 외벽이 보이지 않는 미세 중력 칼날에 스쳐 나가며 장갑판이 종잇장처럼 뜯겨 나간 것이다. 함교 내부의 산소가 희박해지는 느낌이 피부로 전해졌다.
“동요하지 마라!” 세라가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쥔 채 함교 중앙에서 소리쳤다. “정비고의 마르쿠스! 하부 격벽에 긴급 차단막 전개해라! 조종사는 이준이다. 모두 자기 위치 사수해!”
이준은 흔들리는 함교 바닥 위에서 나침반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미세 중력 균열 감지’ 능력이 극한으로 폭증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전방의 중력장 파형이 기괴한 나선형으로 꼬이며 공간 자체가 소멸하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감지되었다.
전방 100미터 지점.
그것은 단순한 균열이 아니었다. 공간 전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중력 붕괴 구멍이었다. 진입하는 즉시 새벽호는 흔적도 없이 압착되어 사라질 터였다.
“레오!”
이준이 소리치며 레오의 조종간을 잡은 손위로 자신의 피 묻은 손을 겹쳐 쥐었다. 눈먼 항해사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양자 파동이 레오의 신경으로 직접 전달되는 듯했다.
“우현 전개 45도! 좌측 보조 스러스트 최대 분사! 지금이다!”
“으아아아아!”
레오가 비명을 지르며 조종간을 우측으로 끝까지 꺾고 수동 스러스트 페달을 밟았다.
새벽호의 좌측 보조 추진기들이 단발성 푸른 불꽃을 뿜어내며 기함을 강제로 밀어붙였다. 선체가 찢어질 듯한 중력 전단력의 비명이 함내를 가득 채웠고, 새벽호는 전방의 거대한 공간 붕괴 구멍을 불과 몇 미터 차이로 비껴가며 기적적인 급선회를 그리며 어둠 속을 돌파해 나갔다.
순간적인 무중력 상태가 지나가고, 기함이 안정을 되찾자 함교 내부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러내렸다.
불신과 두려움 어린 눈으로 이준을 바라보던 서우진과 고르돈의 사설 경비병들 전체가, 이제는 경외와 공포가 뒤섞인 눈으로 이 백발의 눈먼 항해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누구도 계산할 수 없었던 죽음의 크랙을, 그는 오직 손끝의 일지와 초감각만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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