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총구, 인력의 새총
한도윤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함교의 공기를 얼려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함교 외부 전면 스크린 너머로 제국군 한스 편대의 2차 플라즈마 어뢰 3발이 붉은색 파멸의 궤적을 그리며 새벽호를 향해 쇄도해 오기 시작했다.
5초. 어뢰가 이 낡은 기함의 격벽을 찢고 내부의 10만 목숨을 증발시키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조종간에서 손 떼, 신이준. 네가 아무리 기적을 일으켰어도, 내 총알보다 빠를 수는 없다.”
한도윤의 목소리는 지독하리만치 차가웠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제국제 권총의 포구는 흔들림 없이 이준의 심장을 조준하고 있었다. 도윤은 확신하고 있었다. 시력을 잃고, 뇌 신경이 타들어 가는 고열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이 맹인 애송이가 자신을 상대로 그 어떤 물리적 저항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도윤은 알지 못했다. 이준이 이미 ‘비인가 양자 신경 접속 금지령’이라는 새벽호의 가장 엄격한 금기를 깨부수고 기함의 메인 프레임과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지금 이준에게 새벽호의 강철 격벽은 그의 피부였고, 엔진의 진동은 그의 심장박동이었으며, 함교 내부의 전자기 흐름은 그의 신경망 그 자체였다. 심안(心眼)을 통해 투시되는 세상은 기괴할 정도로 선명했다. 한도윤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압박하는 미세한 근육의 긴장, 세라의 플라즈마 블레이드 ‘발키리’가 뿜어내는 주황색 광륜의 일렁임, 그리고 함외 스크린 너머로 다가오는 플라즈마 어뢰의 붉은 열원까지.
‘방아쇠가 당겨지는 물리적 시간은 0.1초. 어뢰가 도달하기까지는 4초.’
이준은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은빛 눈동자를 찌푸렸다. 대뇌 피질이 통째로 불타는 듯한 고열 속에서, 그의 품속에 숨겨진 양자 크로논 나침반이 그의 절박한 심장박동에 공명하여 폭발적인 푸른 진동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뇌세포가 영구히 괴사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해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준은 자신의 남은 모든 정신력을 나침반의 시간 역행 주파수에 강제로 동기화시켰다.
‘정체 영역 [3초의 찰나], 기동.’
지이이이잉—!
관자놀이를 거대한 송곳으로 뚫는 듯한 극심한 파열통이 이준의 뇌리를 강타했다. 머리카락 끝에서부터 백발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은빛 서리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고통의 대가는 확실했다.
함교의 모든 풍경이 일시에 멈추어 섰다.
붉은색 비상등의 점멸은 끈적한 선홍색 리본처럼 허공에 고정되었고, 천장에서 떨어지던 먼지와 전선 스파크는 마치 정지된 우주의 별무리처럼 공중에 박혀버렸다. 한도윤의 얼굴은 이준의 기적적인 역습에 경악하기 직전의, 오만함과 초조함이 뒤섞인 기괴한 실루엣으로 정지해 있었다. 도윤이 당기던 방아쇠의 기계식 스프링이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서서히 압축되는 것이 심안을 통해 입체 잔상으로 보였다.
시간이 1/10의 속도로 흐르는 멈춰진 3초의 세계.
이준은 신경 접속으로 연결된 외골격 슈트의 인장력을 극한으로 쥐어짜 몸을 비틀었다. 그의 움직임만이 멈춰진 시간 속에서 정상적인 속도로 궤적을 그렸다. 이준은 한 걸음 내딛어 한도윤의 총구를 비틀어 쥐었다. 권총의 차가운 금속 재질이 손끝에 닿았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도윤의 손목을 바깥쪽으로 꺾어 내렸다.
그리고 정체 영역의 마지막 3초가 끝나는 순간.
콰앙—!
시간의 흐름이 정상으로 복구됨과 동시에 제국제 권총이 격발되었다. 하지만 총구는 이미 하늘을 향해 비틀려 있었다. 탄환은 이준의 어깨를 비껴가 함교 천장의 장갑판을 때리며 불꽃을 튀겼다.
“억……!”
도윤이 손목이 꺾이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이 배신자 놈이!”
그 찰나의 틈을 세라가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전술 슈트의 보조 추진기를 순간 가동하며 도윤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주황색 불빛을 내뿜는 플라즈마 블레이드의 묵직한 자루가 도윤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도윤은 함교 바닥으로 사정없이 처박혔다. 세라는 가차 없이 도윤의 등을 무릎으로 짓누르며 그의 양팔을 뒤로 꺾어 포박했다.
“한도윤 소령, 배신 및 사보타주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한다.”
세라의 목소리에는 서릿발 같은 살의가 서려 있었다. 서우진을 비롯한 고르돈의 남은 사설 경비병들은 치안대장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총구를 내렸다.
“이준! 어뢰가 온다!”
로버트 함장이 황동 지휘봉으로 전면 스크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뢰 도달까지 남은 시간은 단 2초. 정면 회피는 불가능했다. 새벽호의 방어막은 이미 이전 포격으로 인해 완파되어 극성 전이를 가동할 배터리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함교의 장교들은 절망 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거대한 고물 피난선이 우주의 먼지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준의 심안은 다가오는 3발의 어뢰 이면, 그들 바로 아래에서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블랙홀 ‘아페이론’의 초중력장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켄트 스승님의 일지…… 스텔라 마리나의 공식.’
이준의 머릿속에서 켄트가 가르쳐 준 중력 편향 수식들이 아르고의 연산 코어와 동조하며 하나의 완벽한 궤도를 그렸다. 그것은 ‘이준-켄트 방정식’의 실전 적용이었다. 정면으로 막을 수 없다면,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괴물의 인력을 방패로 삼아야 했다.
“아르고…… 기함의 메인 추진기를 즉각 차단해라.”
이준이 피눈물을 흘리며 낮게 명령했다. 안면 마비로 인해 발음이 새어나갔지만, 그의 뇌파 신호는 아르고의 코어에 다이렉트로 내리꽂혔다.
[명령 수신. 메인 추진기 오프. 관성 비행 모드 진입.]
새벽호의 거대한 엔진 불꽃이 일시에 꺼졌다. 함교 내부의 중력 제어 장치가 역위상으로 과부하되기 시작하며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울부짖었다.
“미쳤어! 엔진을 끄면 어뢰를 맞기도 전에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서우진이 비명을 지르며 콘솔로 달려들려 했으나, 세라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조용히 해라, 서우진. 항해사는 이준이다.” 세라의 단호한 눈빛이 이준의 뒷모습을 향해 있었다.
이준은 아르고와 정신을 동조한 채, 기함의 인공 중력 발생 장치를 역위상으로 300% 과부하시켰다. 이것이 바로 마르쿠스와 설계했던 ‘인력 기만 기동’이었다. 기함의 가상 질량이 순간적으로 무한대에 가깝게 증폭되자, 블랙홀 아페이론의 압도적인 인력이 새벽호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스스스스스—!
새벽호의 거대한 선체가 뒤로 밀려나는 대신, 아래쪽의 블랙홀 심연을 향해 수직으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행이 아니었다. 우주의 가장 깊은 구렁텅이를 향한 광기 어린 낙하였다.
정확히 0.5초 뒤, 제국군 한스 편대가 발사한 3발의 플라즈마 어뢰가 새벽호가 방금 전까지 머물렀던 공간을 스쳐 지나갔다. 어뢰의 질량 추적 센서들은 새벽호의 갑작스러운 질량 왜곡과 수직 낙하 기동을 쫓아가지 못하고 서로의 열원을 추적하다 허공에서 유폭되어 거대한 은빛 화염을 터뜨렸다.
“피…… 피했다!” 함교의 전술 연산 장교 송유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스크린을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엔진이 꺼진 새벽호는 블랙홀 아페이론의 사건의 지평선 경계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함교의 모든 계기판이 붉은색 경고등으로 폭발하듯 점멸했고, 선체 외벽은 극한의 중력 전단력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삐걱거렸다.
“이준아! 이대로 가면 정말 특이점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르쿠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이준은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조종간을 잡은 손끝의 미세한 진동을 통해 아페이론의 중력 조류를 읽어내고 있었다. 머릿속의 ‘심안’에는 빛조차 굴절되어 붉은 광륜을 그리는 사건의 지평선 궤도가 격자무늬의 수학적 벡터선으로 정밀하게 그려졌다.
‘지금이다.’
이준의 뇌파가 아르고의 마지막 예비 출력을 가동했다.
“역위상 중력 장치, 해제! 메인 엔진, 최대 출력 분사!”
쿠구구구구궁—!
새벽호의 꽁무니에서 푸른색 하이퍼드라이브 불꽃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질량 왜곡이 풀리며 가벼워진 새벽호는, 블랙홀의 강력한 인력을 새총의 고무줄처럼 이용해 원심력을 얻었다.
기함은 사건의 지평선 끝자락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엄청난 반동 속도로 튕겨 나가 가속하기 시작했다. 제국군의 어뢰조차 쫓아올 수 없는 초광속의 영역에 근접한 속도였다.
“중력 슬링샷 가속 성공! 제국군의 추격 사정거리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전산실의 린이 환호성을 질렀다.
함교의 모든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눈먼 항해사가 행한 기적적인 기동 앞에 고르돈 위원장조차 아무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조종간을 잡고 있던 이준의 몸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강제 신경 접속의 피드백과 정체 영역 가동의 대가는 가혹했다. 그의 머리카락 절반은 완전히 백발로 새어 있었고, 눈가와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제복 깃을 검붉게 적시고 있었다.
“이준!”
세라가 급히 달려와 쓰러지는 이준의 몸을 받아 안았다.
이준은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심안을 켜둔 채 전방의 우주 공간을 감각했다. 그들의 바로 앞에, 공간 자체가 칼날처럼 미세하게 찢겨 나간 죽음의 구역이 나타나고 있었다.
타르타로스 크랙.
제국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반드시 돌파해야 하는, 레이더조차 먹통이 되는 죽음의 균열 지대였다. 새벽호의 선체 외벽에서는 포격과 슬링샷의 여파로 미세한 균열이 발생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준은 세라의 품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방의 암흑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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