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파 가주의 마지막 도주 계획
“비비빅—! 비비빅—!”
천도성 치안대 공중교통과 사무실의 정적을 깬 것은 허리춤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전음 경보기였다. 밤샘 야근으로 뻑뻑해진 눈을 비비던 신태호는 조용히 수첩을 덮고 경보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천도성 신속 배달원 동맹장인 임철수였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차분함은 온데간데없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가쁘게 떨리고 있었다.
[과, 과장님! 임철수입니다! 지금 소요파 본성 후문 쪽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가주 임진태가 직접 움직이고 있습니다!]
“임진태가?”
태호의 미간이 좁혀졌다. 임진태라면 소요파의 가주이자 천도성 공역을 무법천지로 만들던 폭주족 소가주 임소백의 아버지였다. 최근 밀수선이 압수당하고 지하 도박장의 장부까지 단속반에 통째로 털리면서 가문 전체가 법적 자금 압박으로 파산 직전에 몰린 상태였다.
[예! 온몸에 검은 도포를 둘러쓰고는 마차도 없이 아주 거대한 철제 상자 몇 개를 비검 뒤편에 밧줄로 꽁꽁 묶고 있습니다. 그 상자들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영력 파동을 보니…… 틀림없습니다! 단속반의 압류를 피해 가문의 마지막 남은 미등록 장물 영석 자금을 챙겨 성외로 도주하려는 계획입니다! 지금 막 서쪽 하늘길 방향으로 이륙했습니다!]
“도주 경로와 현재 속도는?”
[서쪽 야산 계곡을 타고 저공비행 중입니다! 속도가 어마어마합니다. 최소 시속 250킬로미터는 가볍게 넘는 것 같습니다! 전령 매들도 따라붙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겠다. 철수 씨는 계속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감시해라. 무리하게 접근하지 말고.”
태호는 전음을 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가 붉고 푸른 경광등 빛깔로 서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옆에서 조서철을 정리하던 부하 순경 김철수가 긴장된 표정으로 태호를 바라보았다.
“과장님, 가주 임진태가 직접 움직인다면 축기기 5성의 도력입니다. 가문의 마지막 비자금을 들고 튀는 것이니 눈에 뵈는 게 없을 텐데, 정말 추격하실 겁니까?”
“철수야.”
태호는 벽에 걸린 노란색 야광 반사 도포를 집어 들며 담담하게 말했다.
“법 앞에서는 가주든 범인이든 똑같은 운전자에 불과하다. 세금을 내지 않은 미등록 장물 영석을 싣고 제한 속도를 초과해 야간 도주를 감행하는 무면허 차량을 방치하는 것은 교통경찰의 수치다. 정비창에 연락해 순찰 마차 이륙 준비시켜라.”
“예, 예!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김철수가 번개같이 밖으로 뛰어 나갔다. 태호는 신동수 아버님이 제련해 준 노란색 안전모를 머리에 쓰고 턱끈을 단단히 조였다. 노란 야광 반사 도포를 가슴팍에 엑스(X)자로 단단히 동여맨 뒤, 허리춤에 붉고 푸른 영력이 교차로 깜빡이는 영력 경광봉을 꽂았다. 품속의 ‘공중 안전 율법 석판’이 그의 신념에 호응하듯 묵직한 진동을 일으켰다.
치안대 청사 마당으로 내려가자, 양아버지 신동수가 대장간에서 군용 마차의 뼈대를 개조해 만들어 준 ‘특수 개조 순찰 마차’가 적색과 청색의 경광등을 요란하게 번쩍이며 대기하고 있었다.
태호는 주저 없이 마차 후면의 연료 주입구를 열었다. 그리고 압수한 불법 개조 비검들의 연료 탱크에서 적출해 둔 최고급 정제 영성 오일, ‘고성능 청정 비선유’ 세 통을 아낌없이 들이부었다. 말통당 100영석을 호가하는 초고가 기동 자원이었지만, 축기기 5성 고수의 초고속 비검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투자는 불가피했다.
쿠우우우웅—!
최고급 비선유가 엔진에 주입되자, 순찰 마차의 영맥 엔진이 마치 굶주린 야수처럼 우렁찬 굉음을 내지르며 깨어났다. 마차의 배기구에서는 빨갛고 파란 특유의 사이렌 연기가 뿜어져 나와 밤하늘을 화려하게 물들였다.
“출발한다. 꽉 잡아라.”
태호가 고삐를 쥐어 잡고 영력 제어 장치를 작동하자, 순찰 마차가 엄청난 가속력과 함께 천도성의 밤하늘로 쏘아 올려졌다. 위이이이이잉—! 삐이이이이이익—! 금아랑이 사회봉사 노역으로 튜닝해 준 우렁차고 뻔뻔한 사이렌 소리가 천도성 서쪽 하늘길 전체를 뒤흔들며 울려 퍼졌다.
***
같은 시각, 천도성 서쪽 외곽의 음침한 야산 계곡 상공.
소요파 가주 임진태는 붉은 검광을 내뿜는 자신의 고성능 비검 위에서 이빨을 부드득 갈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가문의 마지막 생명선이자 황도 종친회와 거래하려던 미등록 장물 영석 상자들이 질긴 와이어 밧줄에 묶인 채 요란하게 덜컹거리고 있었다.
“으으으…… 미천한 딱지 순경 놈 때문에 가문이 이 지경이 되다니! 내 반드시 성외로 빠져나가 황도의 세력가들과 접촉해 그놈의 목을 치고 천도성을 피바다로 만들 것이다!”
임진태의 눈은 분노와 살의로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비검의 속도는 이미 시속 250킬로미터를 돌파하여 계곡의 매서운 칼바람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임진태가 계곡의 좁은 길목을 통과하려던 찰나, 전방의 어둠 속에서 노란색 야광 도포를 입은 단속 대원 한 명이 비검을 탄 채 그의 앞길을 가로막아 섰다. 전직 폭주족 출신의 단속 대원, 황번개였다.
“정지! 소요파 가주 임진태! 귀하는 현재 야간 등화관제 위반 및 과속 주행 중입니다! 즉시 비검을 멈추십시오!”
황번개가 영력 확성기를 대고 소리쳤다. 하지만 임진태는 코웃음을 치며 비검의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전신에서 축기기 5성의 무시무시한 영력 위압을 폭발시켰다.
“미천한 폭주족 쇠붙이 놈이 감히 내 앞을 막아서느냐! 당장 비켜라!”
임진태가 방출한 소요천정결의 광포한 기세 충격파가 허공을 휩쓸었다. 그 압도적인 무림 고수의 위압감 앞에 황번개가 타고 있던 순찰 비검의 최고속도 리미터 제어 장치가 순간적으로 과열되어 불꽃을 튀겼다.
“으악! 과장님! 죄송합니다! 가주의 영력 위압 때문에 제 비검의 엔진이 과열되어 비상 착륙해야 합니다!”
황번개의 비검이 연기를 내뿜으며 계곡 아래 진흙 밭으로 추락했다. 임진태는 비웃음을 날리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하하하! 범인 순경 놈들이 만든 조잡한 기계 장치 따위가 내 바람의 길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러나 임진태의 오만한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삐이이이이이이익—!
계곡의 메아리를 타고 들려오는 기괴하고 우렁찬 소음.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빨갛고 파란 불빛을 번쩍이며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따라붙는 거대한 마차가 시야에 들어왔다. 태호가 모는 특수 개조 순찰 마차였다. 고성능 청정 비선유의 힘으로 순간 출력을 극대화한 마차는 계곡의 험난한 기류를 비웃듯 무서운 기세로 임진태의 비검 배후를 압박해 왔다.
“소요파 가주 임진태!”
마차 전면에 장착된 사자후 확성 장치를 통해 태호의 서늘하고 정중한 목소리가 계곡을 뒤흔들었다.
“제국 도로교통법 제12조 및 제44조 위반. 야간 등화 미점등, 미등록 장물 수송, 그리고 제한 속도 시속 60킬로미터 구역에서의 시속 250킬로미터 초과 주행이 감지되었습니다. 신호 위반 벌점 30점 추가입니다. 즉시 비검의 시동을 끄고 착륙하십시오!”
“이, 이 미친 딱지 순경 놈이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임진태는 소름이 돋았다. 그는 단속반이 검무흔의 번호판 소동 때문에 정신이 팔려 있을 줄 알았는데, 자신의 도주 경로를 귀신같이 알고 길목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임진태는 잡히면 가문이 완전히 끝장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비검의 꼬리 날개를 꺾어 계곡 아래의 좁은 지상 도로 방향으로 급하강하며 우회 도주를 시도했다.
“철수야, 레버 작동해라.”
마차 조종석에서 태호가 나지막하게 명령했다.
“예, 과장님! 신호등 수동 조작술 가동합니다!”
김철수 순경이 마차 대시보드 옆에 장착된 붉은색 제어 레버를 힘차게 당겼다. 그 순간, 태호가 손가락 끝으로 임진태의 예상 도주로 전방 허공을 매섭게 지시했다.
파아아앗—!
임진태가 하강하려던 좁은 계곡 길목의 허공에, 적색과 청색의 영력이 교차하며 거대한 장벽 모양의 ‘적색 정지 신호 결계’가 순식간에 펼쳐졌다. 제국의 도로교통법 인과율이 깃든 절대적인 법적 정지 명령 장막이었다.
“이딴 허접한 장막 결계 따위, 내 소요검법으로 단번에 베어버리겠다!”
임진태는 비검 위에서 자세를 잡고 등에 메고 있던 보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축기기 5성의 모든 영력을 검끝에 모아 거대한 보라색 검기를 전방의 적색 신호 결계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 검수의 파괴적인 무공이 공기를 찢으며 장막을 덮쳤다.
그러나 태호가 노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상대가 무력으로 신호 결계를 찢으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돌진할 때야말로, 가장 완벽한 함정이 가동될 타이밍이었다.
“과속 방지턱 결계 전개. 3중 매설.”
태호가 영력 경광봉을 허공을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그 신호와 함께, 적색 신호 결계 바로 앞 허공에 노란색 격자무늬의 고밀도 기류 장벽 세 개가 촘촘한 간격으로 순간 전개되었다. 보이지 않는 공중의 거대한 과속 방지턱이었다.
“어……? 어어?!”
시속 250킬로미터로 질주하던 임진태의 비검이 첫 번째 노란색 방지턱 결계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덜컹—!
“으헉!”
엄청난 물리적 제동 충격이 비검의 전면부를 강타했다. 임진태의 몸이 앞으로 쏠리며 중심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채 균형을 잡기도 전에 두 번째 방지턱이 들이닥쳤다.
덜커덩—!
“이, 이 무슨……!”
비검의 후면에 묶여 있던 무거운 장물 영석 상자들이 반동으로 공중으로 솟구치며 비검의 날개를 때렸다. 비검의 영맥 엔진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며 비행 궤도가 갈지자로 꺾였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방지턱이 쐐기를 박았다.
쿠콰쾅—!
“아아악!”
지독한 연쇄 충격 속에 비검의 비행 결계가 완전히 산산조각 나며 시동이 꺼져버렸다. 와이어 밧줄이 끊어지며 장물 상자들이 계곡 아래 진흙 바닥으로 추락했고, 임진태 역시 비검의 제어력을 완전히 잃고 허공에서 균형을 잃은 채 나뭇잎처럼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의 백발이 흐트러지고 자줏빛 관복이 칼바람에 찢어발겨졌다. 가문의 모든 재산과 위엄이 땅바닥으로 처박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임진태는 이대로 순순히 무릎을 꿇을 인물이 아니었다. 축기기 5성의 도력을 지닌 가주로서의 자존심, 그리고 단속반에 의해 가문이 파멸했다는 극단적인 원한이 그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신태호오오오! 네놈이 정녕 내 가문을 망치고 나를 파멸시키려 드는구나! 내 죽더라도 네놈의 목줄기는 끊어놓고 지옥으로 가겠다!”
추락하던 임진태가 허공에서 눈을 붉게 희번덕이며 이빨을 깨물었다. 그의 전신에서 보라색 영력이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와 주변 계곡의 바람을 광포한 회오리로 변화시켰다. 그는 가문의 금지된 비전 심법이자 파괴적인 무공인 ‘소요천정결’의 모든 내력을 자신의 보검에 남김없이 주입하기 시작했다.
검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라색 검강은 이미 십 장(丈)이 넘는 거대한 빛의 기둥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계곡 전체를 무너뜨릴 듯한 무시무시한 파괴력의 결정체였다.
“죽어라, 이 미천한 딱지 순경 놈아!”
임진태가 허공에서 최후의 발악으로 검을 내리쳤다.
쿠구구구구—!
그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하고 치명적인 보라색 검기 파동이,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오던 태호의 특수 개조 순찰 마차 전면 유리창을 향해 빛의 속도로 짓쳐 들기 시작했다. 마차 안의 김철수가 비명을 지르며 제어간을 놓칠 정도의 압도적인 파멸의 빛이 태호의 코앞까지 육박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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