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부 군대의 포위와 법적 방패
뇌신곡의 진흙 바닥은 차갑고 축축했다. 불법 레이싱 서킷이 박살 나며 사방으로 흩어진 비검 파편들이 진흙 속에 반쯤 박힌 채 쓸쓸한 영력의 잔광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무질서한 잔해들의 한복판, 적청색 경광등이 요란하게 깜빡이는 특수 개조 순찰 마차 앞에 신태호는 서 있었다. 그의 품속에는 성주 독고위의 목줄을 쥘 최종 치명타 물증, ‘성주부 비밀 뇌물 장부’가 묵직한 무게감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승리의 여운을 만끽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궁—!
뇌신곡의 먹구름 낀 하늘을 찢으며 내려앉은 것은 수백 명에 달하는 천도성주부 호위대였다. 그들은 날카로운 어검술을 부리며 삼중으로 포위망을 형성했다. 수백 자루의 차가운 검끝이 일제히 마당 중앙에 선 단속반 일행을 조준했다. 축기기 고수들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사방의 공기를 무겁게 가짓눌렀다. 끈적한 기류가 어깨를 짓누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과, 과장님…… 저놈들 눈빛이 진짜입니다. 이번엔 그냥 딱지 끊고 넘어갈 기세가 아닙니다.”
부하 순경 김철수가 찌러진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허리의 수갑을 꽉 쥐며 이빨을 딱딱 마주쳤다. 연기기 3성의 그로서는 축기기 군단이 뿜어내는 군사적 기세 위압을 버티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거구의 견인 대장 마만수 역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압수한 전돈만의 호화 수송 마차 차축에 연결된 ‘강제 견인 영석 쇠사슬’의 고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호위대 무리를 헤치고 백은색 갑옷을 번쩍이며 나타난 이는 성주부 호위대장 설도현이었다. 그는 축기기 4성의 강자답게 매서운 안광을 흘리며 태호를 내려다보았다.
“치안대 공중교통과 말단 순경 놈들이 겁도 없이 성주님의 사적 자산에 손을 대다니. 반역죄로 즉각 목이 잘리고 싶지 않다면, 당장 전돈만과 그 마차에서 압수한 장부를 넘겨라! 성주부의 권위는 제국의 사소한 교통법 따위보다 위에 있음을 내 오늘 똑똑히 가르쳐주마!”
설도현의 호통과 함께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그의 등 뒤에 떠 있던 거대한 대검이 회전하며 공중교통과 청사 마당 바닥을 향해 무시무시한 백색 강기(剛氣)를 내뿜으며 돌진했다. 단속반의 기세를 꺾고 장부를 회수하기 위한 명백한 무력 시위이자 선제 기습 공격이었다.
휘이이이이잉—!
검기가 대지를 찢으며 태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찰나, 김철수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태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동자가 붉고 푸른 경광등 빛깔로 차갑게 번뜩였다.
태호는 품속에서 가죽 조서철을 꺼내 들고 황금빛 깃털 붓을 쥐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영혼 깊은 곳에 각인된 천도의 인과율이 공명하며 외쳤.
‘공무집행 절대 안전지대, 전개.’
웅—!
태호의 신체를 중심으로 반경 5미터 구형 영역에 미세한 적청색 투명 장막 결계가 순간적으로 형성되었다. 설도현이 날린 무시무시한 백색 강기가 그 결계의 경계선에 닿는 순간이었다.
피식.
마치 뜨거운 달궈진 철판에 물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산을 무너뜨릴 듯하던 강기가 아무런 폭발도 없이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렸다. 기류의 흔들림조차 안전지대 내부로는 단 한 줄기 들어오지 않았다.
“이, 이 무슨 사술이냐!”
설도현이 경악하며 어검의 고삐를 바짝 잡아당겼다. 수백 명의 호위대 병사들 사이에서도 술렁임이 일었다. 축기기 고수의 전력 강기를 범인 순경이 단 한 조각의 영력도 쓰지 않고 무력화시킨 것이었다.
태호는 먼지 묻은 노란색 안전모를 톡톡 두드려 고쳐 쓰고는, 지극히 정중하고 차분한 공무원 톤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등 뒤로 황실 법전의 거대한 가상 글귀들이 황금빛으로 떠올랐다.
“제국 공무원 특별법 제12조 및 개국 안전 조례 제4항. 단속 및 조서 작성을 집행 중인 공직자의 반경 5미터 이내는 천도(天道)가 보장하는 절대 안전지대입니다. 이 영역 내부에서는 그 어떤 물리적 타격이나 무공, 결계 발동도 원천적으로 금지됩니다. 호위대장님, 공무 집행 중인 교통 치안관에게 살상용 무공을 방출하신 행위는 지극히 무모한 위법 행위입니다.”
“건방진 범인 놈이 감히……! 성주님의 특혜 패가 보이지 않느냐!”
설도현이 품속에서 성주부의 권위를 상징하는 청동 패를 꺼내 들었다.
“이 패는 성내 모든 치안관의 단속을 면제받는 성주부 직속의 특혜 패다! 법이고 뭐고 간에 성주님의 명령이 곧 이 성의 하늘을 다스리는 규칙이다! 군사들은 당장 진입하여 장부를 빼앗아라!”
호위대원들이 어검을 가속하며 안전지대 경계선을 향해 돌진하려 했다. 무력으로 결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려는 수작이었다.
태호는 서두르지 않고, 품속에서 묵직한 ‘공중 안전 율법 석판’을 꺼내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석판에 새겨진 대현제국 개국 초기의 공식 인장이 활성화되며, 뇌신곡의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장엄한 황금빛 줄기를 쏘아 올렸다.
“성주부 호위대장 설도현. 그리고 호위대원 전원에게 고합니다.”
태호의 목소리가 율법 석판의 권능을 타고 뇌신곡 공역 전체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제국 개국 헌법 제1조. 공중 안전 율법 석판의 권위는 지방 성주나 가문의 사설 특혜 패보다 법적으로 상위에 존재합니다. 단속반의 정당한 사법 절차를 무력으로 방해하거나 기물을 훼손하려는 모든 시도는 제국 율법이 규정하는 ‘특수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합니다. 현 시간부로 귀관들의 무단 진입 시도는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간주됩니다.”
태호가 석판을 가볍게 톡 두드리자, 뇌신곡의 먹구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쿠르릉! 쾅!
하늘에 붉은색과 푸른색의 미세한 뇌전 기류가 번쩍이며 거대한 번개 줄기들이 호위대원들의 머리 위 허공에 대기 상태로 정렬했다. 그것은 단순한 번개가 아니었다. 천도가 보장하는 인과율의 천벌, ‘공무집행방해 천벌 유도’ 결계였다. 단 한 걸음이라도 안전지대를 침범하거나 태호에게 위해를 가하려 드는 순간, 저 적청색 번개가 이마를 꿰뚫어 영맥을 태워버릴 터였다.
“천벌 결계……! 제국의 개국 율법이 정말로 작동하고 있단 말인가!”
설도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검을 타고 돌진하려던 호위대원들이 일제히 비검의 제동 장치를 밟으며 뒤로 물러섰다. 천도의 번개를 맞고 영맥이 파괴되어 범인으로 강등당하고 싶은 수도자는 아무도 없었다.
수백 명의 군사와 단 세 명의 단속반원.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 앞에서도, 태호가 쳐놓은 법치주의의 방패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팽팽한 법적 대치 상태가 이어지며 계곡에는 오직 마차의 사이렌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바로 그때였다.
태호의 귓가로 미세한 전음(傳音)이 날아들었다. 성주부 내부의 양심적인 서기, 배정철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신 과장님! 제 전음이 들리십니까? 큰일 났습니다! 성주 독고위가 무력 진압이 막힐 것을 대비해 감사관 위평관을 움직였습니다! 위평관이 지금 성주부 지하 기록실에서 단속반의 권한과 금고를 합법적으로 묶어버릴 ‘활동 정지 명령서’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감사 서류들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무력 대치가 길어지면 행정적으로 손발이 묶이게 됩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태호의 맑은 눈동자가 순간 가늘어졌다.
무력으로 장부를 뺏지 못하자, 이제는 행정적 절차를 조작해 단속반의 목줄을 죄어오겠다는 속셈이었다. 태호는 품속의 비밀 장부를 지그시 누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행정 소송과 서류 전쟁이라면, 현대 한국의 세무 감사와 부패 관료들을 상대해 온 그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위평관 감사관이 서류를 뒤지기 시작했다라……”
태호는 조용히 깃털 붓을 굴리며, 자신을 겨누고 있는 설도현을 향해 맑은 눈의 광인 미소를 깊게 지어 보였다. 아직 이 대치 상황의 패는 단속반의 손에 쥐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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