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천지 하늘에 사이렌을 울려라
“이건 미친 짓이다. 아니, 미친 걸 넘어선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신태호는 천도성 동문 초소의 낡은 목조 난간에 기댄 채, 먼지 섞인 영석 배기가스를 깊게 들이마시며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밤하늘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휘이이이잉!’
‘콰아아아앙!’
하늘을 가르는 기괴한 파공음과 함께, 사방에서 오색찬란한 검광(劍光)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날아가고 있었다. 차선? 그딴 건 없었다. 신호등? 존재하지 않았다. 속도 제한? 먼저 달리는 놈이 장땡이라는 듯, 시속 수백 킬로미터는 가볍게 초과해 보이는 비검들이 공중에서 꼬리를 물고 칼치기를 감행하고 있었다.
“어어! 저놈 봐라! 중앙선 침범에 저공비행까지!”
태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저 멀리서 청색 도포를 입은 한 수도자가 비검을 탄 채 민가의 기와지붕을 스치듯 날아가고 있었다. 그가 몰고 온 강력한 풍압에 기와 수십 장이 와르르 흘러내려 지상의 시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사를 하던 평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엎어지는 광경이 태호의 눈에 똑똑히 박혔다.
수선 세계(修仙世界). 힘이 곧 법이요,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것이 하늘의 순리라는 약육강식의 세상. 하지만 현대 한국에서 평생을 도로 위에서 보낸 베테랑 교통경찰 신태호에게 이 광경은 그저 ‘무면허 난폭 운전자들의 집단 폭주’에 불과했다.
그는 음주운전 차량에 가장 소중했던 동료를 잃었다. 그날 이후, 태호에게 교통법규란 단순한 규칙이 아닌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방패였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이 미친 선협 세계의 말단 ‘하급 순경’ 몸에 빙의해 있다니.
“이봐, 신 순경! 거 대충 머리 식히고 내려와서 차나 한잔해! 하늘을 나는 신선들 구경해 봐야 우리 같은 범인 순경들 사정만 딱해지지!”
초소 아래에서 뚱뚱한 체구의 치안대장 방성우가 관복 단추를 대충 풀어헤친 채 기름진 만두를 씹으며 소리쳤다. 전형적인 무사안일주의 부패 관료였다. 소요파나 대가문의 소가주들이 폭주를 일삼아도 그들의 뒷돈을 받으며 눈을 감아주던 자였다.
“대장님.”
태호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날아다니는 예비 살인마들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하루에도 수십 명이 추락하는 파편에 다치고 있습니다. 지상의 보행자 평민들은 목숨을 걸고 길을 건너고 있어요.”
“허허, 이 친구 참 고지식하긴. 저분들은 하늘의 도(道)를 닦는 수도자분들이야! 하늘은 그분들의 영토인데 우리가 무슨 수로 막아? 괜히 밉보였다가 비검 한 방에 목이 날아가고 싶어? 그냥 주는 월급이나 받으면서 훈방 조치나 해!”
방성우는 쯧쯧 혀를 차며 초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태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무력? 그에게는 산을 무너뜨릴 영력도, 하늘을 가를 검기도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현대 경찰로서의 철저한 준법정신과 직업병 수준의 완벽주의 강박증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품속에는 치안대 지하 깊은 고문서 보관소에서 은밀히 발굴해 낸 고대 유물이 들어 있었다.
그는 품속에서 묵직한 돌덩어리를 꺼냈다. 빨갛고 푸른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공중 안전 율법 석판’이었다. 제국 개국 초기의 공신들이 ‘하늘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새겨두었던 절대적인 인과율의 법보. 이 석판을 소지한 자는 하늘 아래 그 어떤 강자에게도 즉각적인 ‘즉결 처분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기다려라. 오늘부터 이 하늘의 지배자는 법이다.”
태호는 양아버지 신동수가 튼튼하게 제련해 준 노란색 안전모를 머리에 쓰고, 야광 가루를 듬뿍 발라 밤에도 번쩍이는 ‘노란색 야광 반사 도포’를 엑스(X)자로 동여맸다. 한 손에는 빨갛고 파란 영력이 교차로 번쩍이는 ‘영력 경광봉’을 쥐었다. 누가 봐도 완벽한 교통경찰의 비주얼이었다.
그가 천도성 동문 초소 앞, 공중 하늘길이 시작되는 공터 한복판으로 걸어 나갔다. 지상의 평민 마부들과 배달 수도자들이 미친 순경을 보듯 쳐다봤지만 태호는 개의치 않았다.
‘쿠우우우웅!’
그때, 하늘을 찢는 듯한 폭발적인 굉음이 동문 상공을 뒤흔들었다. 붉은색 섬광이 구름을 뚫고 번쩍이며 내려앉았다. 소요파의 오만한 소가주, 임소백이었다. 그는 시가 수만 영석을 호가하는 한정판 비검 ‘적광선풍검’을 타고 시속 300km가 넘는 광속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비켜라! 이 벌레 같은 범인 놈들아! 소요파의 소가주께서 행차하신다!”
임소백은 술기운이 가득한 얼굴로 저공비행을 감행하며, 앞서 정속 주행을 하던 하급 전령 수도자의 wooden 비검을 거칠게 밀쳐냈다. 전령 수도자는 비명을 지르며 지상으로 추락했고, 임소백은 그 광경을 보며 광소했다. 명백한 ‘음주 폭주 및 뺑소니’ 현장이었다.
태호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뇌리에서 과거의 아픈 기억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그것은 철저한 법 집행관의 차가운 이성으로 대체되었다.
태호는 동문 광장 한복판에 우뚝 섰다. 그리고 영력 경광봉을 허공을 향해 격렬하게 흔들었다. 적색과 청색의 경고 빛이 밤하늘을 찌르며 번쩍였다. 동시에 입에 문 호각을 불었다.
‘삐이이이이익!’
우렁찬 호각 소리가 임소백의 귀청을 때렸다. 임소백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노란색 야광 옷을 입고 경광봉을 흔들어대는 하찮은 범인 순경이 자신을 향해 정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 저 미친 범인 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임소백은 비웃으며 비검의 출력을 오히려 더 높였다. 붉은색 검기가 폭발하며 적광선풍검이 태호의 머리 위를 짓밟아버릴 듯 돌진해왔다. 속도는 시속 300km를 초과하고 있었다.
태호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품속에서 ‘공중 안전 율법 석판’을 높이 쳐들었다. 석판에 새겨진 고대 황실의 율법 문양이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깨어나며, 천도성 상공 전체에 거대한 인과율의 법적 장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도로교통법 제17조 속도위반! 제한 속도 시속 60km 구역에서 시속 300km 초과 주행! 제12조 난폭운전 및 보행자 위협! 제44조 음주 비행 혐의!”
태호의 정중하면서도 기계적인 목소리가 석판의 영력을 타고 온 하늘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본 집행관은 제국 개국 헌법에 의거, 위반자 임소백에 대한 즉결 처분권을 선언한다! 운전자는 즉시 비검의 동력을 차단하고 지상으로 착륙하십시오! 불응 시 공무집행방해죄가 추가 적용됩니다!”
“하찮은 순경 놈이 감히 누구에게 법을 논하느냐! 내 검 끝에 가루가 되어 사라져라!”
임소백은 격분하여 비검의 속도를 한계까지 올렸다. 붉은 검기가 거대한 송곳처럼 변하며 태호의 이마를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1초 뒤면 태호의 신체는 흔적도 없이 파쇄될 판이었다. 살기 어린 붉은 검광이 태호의 코앞까지 들이닥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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