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작두, 일어선 검의
낙일곡의 아침은 언제나 납빛 안개와 함께 시작된다. 제1광구 채굴장 입구의 넓은 공터는 이른 새벽부터 가혹한 열기와 유황 냄새, 그리고 수백 명의 광부 노예들이 내뿜는 탁한 숨결로 가득 차 있었다. 채굴장 한복판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비바람을 막아주던 낡은 목조 천장 아래, 붉게 녹슨 거대한 무쇠 작두가 그 흉포한 날을 드러낸 채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간수들의 채찍 소리가 공터를 찢었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종문의 신성한 자산인 현철 광석을 훔친 도둑놈을 처단하기 위함이다!”
잔인한 간수 팽조(팽조)의 목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졌다. 그의 손에는 징이 박힌 가죽 장갑이 끼워져 있었고, 그 장갑 낀 손으로 아칠(아칠)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고 있었다. 아칠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흙바닥에 무릎이 꿇려 있었다. 고작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의 얇은 목덜미에는 이미 붉은 칼자국과 굳어버린 피가 묻어 있었다. 고영이 남겨놓은 상처였다.
“이 꼬맹이 놈이 제1광구 깊은 곳에서 정제된 현철 원석 세 덩이를 훔쳐 숨겨두었다가 적발되었다! 낙일곡의 가규에 따라, 종문의 철기를 훔친 자는 손가락을 모두 잘라 다시는 철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
팽조가 비웃으며 아칠의 가느다란 왼손을 무쇠 작두의 차가운 받침대 위에 강제로 올려놓았다. 아칠은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면서도, 군중 속에 서 있는 한 소년을 향해 필사적으로 시선을 주지 않으려 고개를 비틀었다.
‘풍이 형…… 오지 마요. 제발 오지 마…….’
아칠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고영의 고문 속에서도 끝까지 입을 다물었던 소년이었다. 자신이 여기서 비명을 지르거나 혁련풍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장서각의 눈먼 형이 숨겨온 모든 비밀이 사마철과 간수들에게 발각될 것임을 아칠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칠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
수백 명의 광부 노예들은 머리를 조아린 채 침묵했다. 간수들의 포악함에 맞설 용기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방관과 굴종만이 이 지옥 같은 낙일곡에서 하루를 더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 군중의 맨 뒷자리, 먼지투성이 회색 삼베옷을 입고 백색 천으로 두 눈을 질질 묶은 소년이 서 있었다. 혁련풍이었다.
혁련풍은 손때 묻고 갈라진 단단한 대나무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대지에 짚고 있었다. 그의 전신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가마터에서 뜨거운 청풍검을 가슴에 품어 안았을 때 입었던 심각한 화상 상처가 움직일 때마다 삼베옷 안쪽에서 진물과 함께 찢어지며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다. 게다가 한풍애 절벽에서 삼켰던 만검총의 음산한 한독(寒毒)이 뼈마디마다 스며들어, 빗자루를 쥔 오른손목과 무릎 관절이 시큰거리고 저려왔다.
‘단전의 가짜 기맥이 흔들리고 있다…….’
혁련풍은 지 노인에게 터득한 수식 호흡(數息呼吸)을 전개하며 심장 박동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그러나 귓가로 흘러드는 아칠의 가쁜 숨소리와 공포에 질린 심장 소리가 소년의 이성을 세차게 흔들어 놓았다. 분당 백사십 번이 넘어가는 아칠의 절망적인 심박 소리는 혁련풍의 뇌리로 곧장 꽂혀 들어왔다.
가문의 계율인 불무고살(不無故殺)의 문구가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회전했다.
‘이유 없는 살생은 검사의 의지를 꺾는다. 오직 살기 어린 칼날만을 부러뜨려라…….’
하지만 눈앞의 상황은 살생의 여부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침묵을 지켰던 어린 동생의 신체가 훼손당하려 하고 있었다. 혁련풍의 오른손이 대나무 빗자루 손잡이를 쥔 채 하얗게 굳어졌다. 가슴의 화상 상처가 터져 삼베옷을 붉게 적시기 시작했으나, 소년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투지는 그 고통마저 차갑게 얼려버렸다.
“자, 낙일곡의 노예들이여! 똑똑히 보아라! 종문의 권위에 도전한 자의 최후를!”
팽조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무쇠 작두의 묵직한 지렛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성인 사내의 몸통만 한 무쇠 작두날이 허공으로 치켜 올려졌다. 날 끝에 맺힌 차가운 아침 이슬이 납빛 안개 속에서 번뜩였다.
스으으으…….
작두날이 허공에 멈춰 선 찰나의 순간, 혁련풍의 풍문 1성 감각이 극도로 활성화되었다. 주변의 소음이 일순간 소거되고, 오직 작두날의 무게와 회전축에 걸린 기하학적 응력의 주파수만이 소년의 머릿속에 투명한 수묵화처럼 그려졌다.
‘무쇠 작두의 회전축…… 탄소 함량이 낮고 녹이 슬어 중심부가 비어 있군. 저곳이 약점이다.’
“썰어라!”
팽조가 잔인하게 외치며 작두 지렛대를 아래로 강하게 내리눌렀다.
서서서서걱!
무거운 작두날이 아칠의 손가락을 향해 찰나의 속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내는 둔탁한 파열음이 소름 끼치게 울려 퍼졌다. 아칠은 눈을 감고 비명을 질렀다.
바로 그 순간, 혁련풍의 신형이 제자리에 머물던 밤안개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일류 초입 - 어풍보(馭風步)!
혁련풍은 땅을 디디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바람의 상승 기류를 타며 처형대를 향해 소리 없이 날아갔다. 가슴의 화상 상처가 찢어지며 피가 솟구쳤으나, 소년은 단전 주위의 가짜 기맥을 한계까지 개통하여 바람의 힘을 다리에 집중시켰.
슈우우우욱!
공기를 찢는 날카롭고 미세한 파열음이 공터를 가득 채웠다. 광부들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혁련풍의 신형은 이미 십 장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고 팽조의 머리 위 허공에 도달해 있었다. 소년의 오른손에 쥔 단단한 대나무 빗자루가 허공에서 원형의 궤적을 그리며 무섭게 회전했다.
‘부러져라!’
혁련풍은 빗자루 대 끝부분에 이류 경지의 바람 진기를 응축시켰다. 그리고 낙하하는 작두날의 정면이 아닌, 작두의 회전축 중심부를 정확하게 내리쳤다. 팽 노인의 조언대로, 쇠 고유의 공명 주파수를 타격해 스스로 파괴되게 만드는 편격 기법의 극의였다.
깡-!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성 파열음이 제1광구 광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충돌음이 아니었다. 거대한 무쇠 작두의 회전축 내부에서 쇠가 스스로 으스러지며 내는 비명이었다. 혁련풍의 빗자루 끝이 닿는 순간, 단단해 보였던 무쇠 작두의 지지대가 마디마디 균열을 일으키며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콰과광-!
폭발과도 같은 파괴음과 함께 거대한 작두날이 공중으로 튕겨 나가 바닥 석판에 깊숙이 박혔고, 부러진 무쇠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아앗!”
비산하는 파편 중 하나가 혁련풍을 감싸고 있던 아칠의 머리 위로 날아들자, 혁련풍은 공중에서 신형을 비틀어 아칠을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안았다. 그 과정에서 날카로운 작두 파편 하나가 혁련풍의 왼쪽 어깨를 깊숙이 스치고 지나갔다.
치익.
회색 삼베옷이 찢어지며 붉은 피가 안개처럼 비산했다. 왼쪽 어깨에 가해진 자상의 극통이 가슴의 화상 상처와 겹치며 소년의 전신을 덮쳤지만, 혁련풍은 신음조차 내지 않고 아칠을 품에 안은 채 가볍게 대지에 착지했다.
“이, 이게 무슨……!”
팽조는 튕겨 나간 작두 손잡이만을 쥔 채 경악으로 가득 찬 눈으로 눈앞의 장님 소년을 바라보았다. 장서각의 눈먼 병신이라 믿었던 놈이 빗자루 하나로 무쇠 작두를 박살 내고 자신들의 처형을 저지한 것이다.
“혁련풍…… 네놈이 감히 종문의 처형을 가로막아?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팽조가 광포하게 포효하며 허리춤에서 뼈를 으스러뜨리는 특제 강철 집게를 뽑아 들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강맹한 철사악력공(鐵砂握力功)의 푸른 진기가 뿜어져 나왔다. 팽조는 강철 집게를 휘두르며 혁련풍의 목줄기를 향해 기습적으로 육박해 왔다.
하지만 혁련풍은 흔들리지 않았다. 불무고살의 계율이 그의 뇌리를 다시 한번 스쳤다. 살생은 하지 않는다. 오직 적의 살기 어린 무기와 경맥만을 폐쇄할 뿐.
스슥.
혁련풍은 가볍게 한 걸음을 뒤로 물러서며 팽조의 강철 집게가 그리는 바람의 궤적을 피했다. 그리고 빗자루 대 끝을 거꾸로 쥐고, 팽조의 철사기 공력이 집중되어 있던 오른쪽 손목 경맥의 연결점을 정확하게 찔러 들어갔.
팍-!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팽조의 손목에서 뼈가 어긋나는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악-!”
팽조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손가락에서 힘이 완전히 풀리며 특제 강철 집게가 흙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혁련풍의 정교한 일격에 의해 그의 오른쪽 손목 경맥이 영구히 파괴되어, 그가 평생 연마해 온 철사악력공의 진기가 역류해 전신 혈도가 마비된 것이다.
팽조는Ruins(폐허)처럼 망가진 손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광장 전체에 기이한 정적이 감돌았다. 수백 명의 노예 광부들은 숨을 죽인 채, 부러진 대나무 빗자루를 손에 쥐고 서 있는 백색 천의 장님 소년을 경외와 공포가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평화는 길지 않았다.
스스스스…….
제1광구 광장 주변의 안개 속에서, 수많은 발소리와 금속성 마찰음이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창-! 서걱!
팽조의 비명 소리와 함께 작두가 산산조각 나자, 낙일곡 광장 주변을 지키던 삼십 여 명의 수색 무사들이 일제히 혁련풍을 향해 칼을 뽑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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