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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속에 도사린 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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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긴 낙일곡의 밤은 얼어붙은 무쇠처럼 차갑고 무거웠다.


한풍애의 깎아지른 절벽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짜 기맥을 개통한 혁련풍은, 허리에 감긴 쇠사슬을 풀고 천천히 절벽 위로 기어올랐다. 이류 경지(二流境界)의 문턱을 넘어섰으나 소년의 육체는 만신창이였다.


주조소에서 달구어진 청풍검을 가슴에 품어 안았을 때 입은 화상 상처는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진물과 함께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삼베옷이 상처에 들러붙어 움직일 때마다 살가죽이 뜯겨 나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게다가 한풍애 절벽에 가득했던 만검총의 음산한 한독(寒毒)이 뼈마디마다 스며들어, 무릎과 어깨 관절이 얼음송곳으로 찔리는 것처럼 시큰거렸다.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 소삼이 목숨을 걸고 팽조의 매질을 견뎌냈다. 내가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혁련풍은 지 노인에게 배운 수식 호흡(數息呼吸)을 전개했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한기를 고요히 가라앉히며, 심장 박동을 분당 서른 번 이하로 떨어뜨렸다. 요동치던 단전의 진기가 서서히 진정되자, 새로 각성한 풍문 1성(風門 一星)의 감각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


눈을 가린 백색 삼베천 뒤의 먼 눈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나, 소년의 귀와 온몸의 모공은 사방 10보 안의 미세한 기류 변화를 투명한 선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숲을 흔드는 바람의 결, 밤안개가 바위 표면에 맺히는 미세한 진동까지 선명했다.


혁련풍은 소삼의 상처를 치료할 약초를 구하기 전, 먼저 아칠이 숨어 있는 장서각 지하 창고 주변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발바닥과 지면의 마찰을 제로로 만드는 무음보(無音步) 신법 덕분에, 그의 걸음걸이는 밤안개처럼 소리 없이 부드러웠다.


그런데 장서각 뒤편, 더 이상 채굴하지 않는 버려진 광산 터널인 ‘낙일곡 폐광 터널’ 부근에 다다랐을 때였다.


스산하게 불어오는 터널의 음풍 속에서, 아주 이질적이고 탁한 기류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아칠의 숨소리가 아니다. 이 호흡은…….’


분당 여든 번이 넘는 거칠고 음험한 호흡 소리. 그리고 그 옆에서 아주 작게 떨리고 있는 어린아이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아칠이었다. 아칠의 심박수는 백 번을 넘어가며 극도의 공포에 질려 있었다.


혁련풍의 안색이 어둠 속에서 싸늘하게 굳어졌다. 소년은 숨결을 완전히 지운 채, 축축한 흙먼지 냄새가 풍기는 폐광 터널 안으로 스며들었다.


* * *


낙일곡 폐광 터널 깊은 곳, 썩어가는 버팀목 아래에서 희미한 횃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광부의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으나, 날카로운 눈빛을 숨기지 못하는 중년 사내가 흙바닥에 주저앉은 아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정체는 감시조장 사마철이 낙일곡 내부에 무공을 숨긴 자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투입한 천검종의 정식 밀정, 고영(고영)이었다.


고영은 뱀처럼 집요한 눈빛으로 아칠의 턱을 거칠게 치켜올렸다.


“꼬맹아,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광산 노역장에서 구걸하던 네놈이 최근 들어 장서각 주변을 기웃거리며 기이한 보법을 흉내 내고 다닌다는 걸 모를 줄 알았더냐?”


아칠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그의 작은 손은 바닥의 흙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 나는 그냥 장서각 마당이 넓어서 뛰어논 것뿐이에요!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에요!”


“거짓말.”


고영이 나직하게 읊조리며 품속에서 독이 발린 검푸른 비수를 꺼냈다. 비수 표면에 칠해진 비소의 씁쓸한 독향이 터널 안의 습한 공기를 타고 퍼졌다. 아칠의 눈동자가 공포로 크게 흔들렸다.


“장서각의 눈먼 폐인 놈, 혁련풍. 그놈이 밤마다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똑바로 불어라. 그 병신 놈이 빗자루질을 할 때마다 흐르는 기류가 예사롭지 않다는 보고가 사마철 조장님께 들어갔다. 네놈이 끝까지 입을 다문다면, 네놈의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 동굴 쥐새끼들의 먹이로 주마.”


고영은 비수 끝을 아칠의 가느다란 목줄기에 지긋이 가져다 댔다. 차가운 쇠붙이와 독기의 매캐함이 피부에 닿자, 아칠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에게 나무 칼을 깎아주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눈먼 형의 얼굴을 떠올렸다. 낙일곡이라는 지옥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준 사람이었다.


“풍이 형은…… 정말로 장님에다가 단전이 깨진 병신이에요! 아무 무공도 모른단 말이에요! 나한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끝까지 가시밭길을 걷겠다는 거군.”


고영의 눈에 잔혹한 살기가 스쳤다. 그는 비수를 쥔 손목에 힘을 주며 아칠의 목가죽을 가볍게 그어 내리려 했다. 붉은 핏방울이 비수 날을 타고 맺히려는 찰나였다.


스스스스…….


어둡고 축축한 터널 입구 방향에서, 기이할 정도로 고요하고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대나무 가닥들이 거친 흙바닥을 쓸어내리는 소리였다.


스슥. 스슥.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폐광 터널, 그것도 자정이 넘은 깊은 밤에 장서각 마당에서나 들릴 법한 빗자루질 소리가 동굴 벽을 타고 반사되어 울려 퍼졌다.


고영의 손이 멈추었다. 그의 뱀 같은 눈동자가 어둠이 짙게 깔린 터널 입구 쪽을 향해 빠르게 회전했다.


빗자루 소리와 함께, 터널 외부에서 차갑고 맑은 바람 한 줄기가 안개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 바람은 폐광 터널 특유의 퀴퀴한 유황 냄새와 고영의 비수에서 풍기던 독향을 순식간에 밀어내며, 기이한 정적을 몰고 왔다.


“누구냐!”


고영이 횃불을 치켜들며 외쳤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오직 어둠 속에서 일정한 박자로 다가오는 빗자루 소리만이 동굴 내부의 기압을 미세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스슥. 스슥.


어둠 속에서 회색 삼베옷을 입고, 백색 천으로 두 눈을 질질 묶은 마른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오른손에는 군데군데 대나무 가닥이 갈라진 단단한 대나무 빗자루가 쥐여 있었다. 가슴팍의 화상 상처로 인해 걸을 때마다 몸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소년의 발걸음만큼은 대지에 닿지 않는 것처럼 고요했다.


“풍이 형……!”


아칠이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고영은 눈앞의 장님 소년을 보고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혁련풍…… 네놈이 제 발로 독사 굴로 기어들어 왔구나. 사마철 조장님이 네놈을 살려두라 하셨지만, 이 정도로 무공을 숨기고 있었다면 여기서 숨통을 끊어놓는 것이 안전하겠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류 살수로서 단련된 고영의 손목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스냅을 일으켰다. 그의 소매 안에서 독이 발린 비수 세 자루가 소리 없이 사출되었다.


쉬이익!


어둠을 가르고 날아오는 세 자루의 비수는 혁련풍의 이마와 목줄기, 그리고 가슴의 요해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궤적조차 읽지 못하고 즉사할 암습이었다.


하지만 혁련풍의 귀는 이미 비수가 고영의 소매를 떠나 공기를 찢는 미세한 주파수의 파열음을 완벽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한 암기군. 하지만 공기를 가르는 마찰 소리까지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혁련풍은 단전에 흐르는 이류 경지의 바람 진기를 오른손으로 가볍게 흘려보냈다. 전신의 경맥이 비틀리는 통증이 왔지만 정신력으로 억눌렀다. 소년은 들고 있던 대나무 빗자루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탁! 타닥!


경이로운 몸놀림이었다. 혁련풍은 빗자루 대의 단단한 참나무 끝부분을 가볍게 튕겨, 날아오는 비수들의 측면 진동 중심부를 정확하게 때려냈다. 가문 비전의 방어 초식, 편격참(偏擊斬)의 기초 원리였다.


쇠붙이와 대나무가 부딪치는 맑은 파열음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던 비수 세 자루의 궤도가 완전히 꺾이며 터널 바위벽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


고영의 눈이 경악으로 찢어질 듯 커졌다. 장님 폐인이라 믿었던 소년이 대나무 빗자루 하나로 자신의 필살 암기를 완벽하게 비껴 흘려보낸 것이다.


고영이 다시 자세를 잡고 비수를 고쳐 쥐려 하는 찰나, 혁련풍의 신형이 안개처럼 흔들렸다. 발자국 소리도, 바람의 저항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무음보(無音步)의 신속함이었다.


고영이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차가운 바람의 기류가 그의 코앞까지 육박했다.


턱!


부러진 대나무 빗자루 손잡이 끝이 전광석화처럼 뻗어 나와 고영의 오른쪽 손목 관절 혈도를 가볍게 찔렀다.


“아악!”


짧은 비명과 함께 고영의 손가락에서 힘이 풀리며 독이 발린 비수가 흙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손목 경맥이 일순간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혁련풍은 빗자루를 비스듬히 쥔 채, 쓰러진 아칠의 앞을 가로막고 고요히 섰다. 눈을 가린 백색 천 뒤로, 형언할 수 없는 차가운 투지가 고영을 향해 뿜어지고 있었다.


고영은 마비된 오른손을 움켜쥐고 신음하면서도, 비열한 안광을 빛내며 혁련풍을 쏘아보았다. 그는 이 장님 소년이 숨기고 있는 힘이 천검종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위험한 무공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네놈…… 장님이 아니었군. 무공을 숨긴 채 쥐새끼처럼 낙일곡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어. 사마철 조장님께 이 사실이 들어가는 순간, 네놈과 저 꼬맹이는 사지가 찢겨 죽을 것이다!”


고영은 왼손으로 바닥의 흙먼지를 쥐며, 어떻게든 이 터널을 빠져나가 사마철에게 밀고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두운 폐광 터널 내부의 공기가 다시 한번 팽팽한 긴장감으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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