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검총의 원한을 삼키다
짤랑. 짤랑.
차가운 무쇠 집게가 어둠 속을 헤집는 소리는 기분 나쁜 독사의 혀놀림을 닮아 있었다. 낙일곡의 잔혹한 간수, 팽조의 숨결이 바위 틈새의 미세한 틈을 타고 흘러들었다. 그의 심박수는 분당 여든 번. 가학적인 흥분과 의심으로 가득 찬 거친 호흡이 가마터의 후끈한 열기를 타고 혁련풍의 이마에 닿았다.
혁련풍은 바위 틈새에 몸을 완전히 밀착시킨 채 숨을 멈추었다. 가슴팍에 품은 부러진 청풍검은 여전히 벌겋게 달아올라 삼베옷을 태우고 있었다. 살가죽이 타들어 가며 단백질이 타는 비린내가 진동하려 했으나, 혁련풍은 젖은 소매로 검날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어 수증기와 냄새를 소거했다. 극심한 화상의 고통이 척추를 타고 뇌리를 때렸지만, 그의 심박수는 분당 서른 번 이하로 완전히 동결되어 있었다. 지 노인에게 배운 수식 호흡과 심박동조(心搏同調)의 극의였다.
“이상하군…… 분명 쥐새끼 냄새가 아니었는데.”
팽조가 무쇠 집게 끝으로 혁련풍이 숨은 바위 틈새 바로 앞을 툭툭 건드렸다. 금속과 바위가 부딪치는 둔탁한 파열음이 혁련풍의 귀를 찢을 듯이 울렸다. 틈새의 깊이는 고작 한 자 반. 팽조가 횃불을 조금만 더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면, 눈을 가린 백색 삼베천이 붉은 불빛 아래 고스란히 노출될 판이었다.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벙어리 소년 소삼이 거친 기침을 토해내며 바닥의 석탄 더미를 발로 찼다.
와르르!
석탄 조각들이 용광로 입구로 쏟아지며 매캐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팽조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이 더러운 벙어리 새끼가 끝까지 발악을 하는구나! 아직 매가 부족한 게지?”
팽조는 혁련풍의 코앞에서 무쇠 집게를 거두고 소삼에게 걸어갔다. 가죽 장화가 소삼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둔탁한 타격음이 주조소 내부에 울려 퍼졌다. 소삼은 비명 한 자락 지르지 못한 채 욱, 하는 억눌린 신음만을 흘리며 몸을 웅크렸다.
어둠 속에서 혁련풍의 주먹이 하얗게 굳어졌다. 전신의 경맥이 분노로 요동쳤으나, 소삼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준 찰나의 기회를 버릴 수는 없었다. 혁련풍은 무음보(無音步)를 전개해 팽조가 소삼을 구타하며 문 쪽으로 향하는 틈을 타, 환풍구의 좁은 틈새로 유령처럼 빠져나갔다.
* * *
주조소를 탈출한 혁련풍은 밤안개가 자욱한 낙일곡의 황량한 언덕을 달렸다. 가슴의 화상 상처가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진물과 함께 얼어붙기 시작했다.
“커헉……!”
소년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가슴의 화기(火氣)가 단전의 파괴된 상처로 흘러들어 한독(寒毒)과 충돌하고 있었다. 단전 내부가 마치 뜨거운 기름과 차가운 얼음물이 동시에 끓어오르는 것처럼 뒤틀렸다. 이대로 둔다면 기혈이 역류해 온몸의 혈관이 터져 죽을 것이 분명했다.
‘인위적인 단전이 깨졌다면, 대자연의 바람이 흐르는 길 자체를 내 몸의 경맥으로 삼아야 한다.’
풍노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귀를 때렸다. 혁련풍은 눈먼 머리를 돌려 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낙일곡 가장 깊고 험난한 구역, 수만 자루의 부러진 명검들이 비석처럼 버려진 채 원한을 뿜어내는 곳. ‘만검총 심연(萬劍塚 深淵)’이었다.
그 심연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깎아지른 절벽, ‘한풍애(寒風崖)’가 소년의 목적지였다. 그곳은 낙일곡에서 가장 혹독한 칼바람이 불어오는 사지(死地)이자, 대자연의 거친 풍기를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수련터였다.
스스스슥.
혁련풍은 절벽 끝에 서서 바위에 고정되어 있던 무거운 쇠사슬 밧줄을 찾아내어 자신의 허리에 단단히 감았다. 쇠사슬이 살가죽을 파고들며 차가운 감촉을 전했지만,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절벽 아래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콰아아아아-!
절벽 아래 심연에서 치솟아 오르는 칼바람은 가히 파괴적이었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수만 자루의 부러진 명검들이 뿜어내는 원한 서린 검기(劍氣)가 바람에 실려 날카로운 칼날처럼 혁련풍의 온몸을 찢어발겼다. 찢어진 삼베옷 사이로 붉은 핏방울이 비산하자마자 칼바람에 얼어붙어 붉은 서리로 변했다.
“으아아악!”
혁련풍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을 가린 백색 삼베천이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귓가에는 수만 자루의 부러진 칼날들이 울부짖는 환청이 휘몰아쳤다.
- 네놈이 감히 우리를 벨 수 있을 것 같으냐?
- 부러진 고철조각을 쥔 장님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원한 어린 검기들이 소년의 이성을 갉아먹으며 주화입마(走火入魔)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전신의 모세혈관이 터지며 심장 박동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허리에 감긴 무거운 쇠사슬마저 거센 폭풍 속에서 끊어질 듯 팽팽하게 울부짖었다.
의식이 흐려지는 찰나, 혁련풍은 품속에서 풍노인이 전해준 구명단약, ‘청풍환(聽風丸)’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입안에 밀어 넣었다.
꿀컥.
단약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심장 부근에서 폭발적인 뜨거운 약력이 뿜어져 나왔다. 약력은 폭주하던 단전의 진기를 강제로 그러모아 심장으로 이끌었다. 몸 안의 뜨거운 약력과 몸 밖의 차가운 음풍 검기가 혁련풍의 깨진 단전 주위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싸우지 마라. 바람을 거스르지 말고, 내 몸을 바람이 흐르는 통로로 내어주어라.’
혁련풍은 스스로의 아집을 내려놓았다. 파괴된 단전에 억지로 내공을 가두려 하지 않고, 온몸의 모공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절벽 아래에서 불어오던 혹독한 음풍 검기들이 소년의 찢어진 피부와 모공을 통해 스며들며, 끊어지고 파괴되었던 경맥의 빈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인위적인 내공의 그릇이 아닌, 대자연의 바람이 흐르는 거대한 통로가 그의 몸속에 가짜 기맥(가짜 기맥)으로 재배치되는 순간이었다. 뜨거운 약력과 차가운 바람이 하나로 융합되며 뒤틀린 경맥을 단단하게 고정했다.
화아아악!
혁련풍의 삼베옷 자락이 폭풍 속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은은하고 평온하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전신을 짓누르던 두통과 화상의 통증이 맑은 바람에 씻겨 내려가듯 사라졌다. 자연의 풍기를 담아 끊어진 경맥을 완전히 개통하는 ‘이류 경지(二流境界)’의 문이 열린 것이다.
소년의 심안(心眼)이 개안되듯, 사방 10보 안의 공기 흐름이 투명한 선으로 그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바로 그때였다.
이류 경지의 기맥이 완전히 개통되어 대지와 바람의 진동을 빨아들이는 찰나, 혁련풍의 귀와 온몸의 세포가 기이한 진동을 감지했다.
쿵…… 쿵…….
만검총 심연, 저 깊고 어두운 심연의 바닥에서 아주 미세하지만 일정한 주기로 땅을 울리는 거대한 울림이 느껴졌다. 그것은 대자연의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톱니바퀴와 무쇠 장치들이 맞물려 돌아가며 거대한 기운을 본산 쪽으로 송출하는 기학 진식(奇學 陣式)의 맥박이었다.
‘이 진동은…… 단순한 쓰레기장이 아니다. 천검종이 만검총 아래에 무언가 엄청난 비밀을 숨겨두었구나.’
혁련풍은 허리에 감긴 쇠사슬을 움켜쥔 채, 심연 아래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철의 괴물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문의 파멸과 천검종의 위선적인 신화가 시작된 거대한 음모의 단초가 어둠 속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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