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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야철, 소리 없는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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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 언덕을 내려오는 혁련풍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으나, 그의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은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풍노인의 기이한 피리 소리로 깨어난 ‘풍문(風門) - 청각 인지 1성’의 감각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육체적 과부하를 동반하고 있었다. 귓가에 스치는 미세한 바람의 결 하나하나가 뇌수를 직접 찌르는 듯한 두통을 유발했고, 단전의 파열된 틈새는 마치 불에 달군 송곳으로 헤집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지 노인이 가르쳐 준 수식 호흡을 전개하지 않았다면, 벌써 기혈이 뒤틀려 쓰러졌을 것이다.’


혁련풍은 백색 삼베천으로 가린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호흡의 박자를 늦추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멈추는 찰나의 순간마다 주변 대기의 기류가 그의 온몸의 모공을 통해 스며들며 뒤틀린 진기를 서서히 가라앉혔다.


하지만 평온을 누릴 시간은 없었다. 품속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이질감 때문이었다. 자루만 남은 채 부러진 청풍검. 비록 반쪽짜리 고철에 불과했으나, 가문의 유일한 유산이자 복수의 불씨인 이 검은 지금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멸문지화의 날 가해진 독고백의 무지막지한 검격으로 인해, 검의 몸체 내부 경맥이 미세하게 뒤틀려 무게중심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풍노인에게 배운 어풍보를 완벽히 전개하고, 바람의 미세한 진동을 검끝으로 전도하기 위해서는 이 검의 무게 균형을 반드시 다시 잡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검을 휘두르는 순간 발생하는 반탄력을 내 망가진 단전이 버텨내지 못하고 스스로 파열될 것이다.’


그 비밀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낙일곡 북쪽 구석에 위치한 ‘철기 주조소 외곽’뿐이었다. 낮에는 무서운 간수들과 장인들의 감시 때문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지만, 깊은 밤이라면 벙어리 소년 소삼의 도움을 받아 은밀하게 작업할 기회가 있었다.


혁련풍은 삼베옷 소매 속에 숨겨둔 흑연탄(黑煙炭) 한 덩이를 손가락 끝으로 만져보았다. 광부 철두가 간수들의 감시를 피해 목숨을 걸고 빼돌려 준 희귀한 석탄이었다. 소리와 연기가 전혀 나지 않으면서도 일반 석탄보다 세 배 이상 강력한 고열을 내뿜는 흑연탄이 없다면, 이 야간의 비밀 야철(冶鐵) 작업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스스슥.


혁련풍은 발바닥과 지면의 마찰 소리를 기류 속으로 녹여내는 무음보(無音步) 신법을 전개했다. 그의 발걸음은 귀신과도 같아, 밟히는 마른 흙바닥조차 단 한 톨의 자갈 소리도 내지 않았다. 차가운 밤안개를 뚫고, 소년은 거대한 용광로의 열기가 어스름하게 뿜어져 나오는 주조소 외곽의 음영 지대로 스며들었다.


후끈한 열기와 매캐한 유황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낮 동안 쇠를 녹여내던 거대한 용광로는 잠들어 있었지만, 벽돌 틈새로 새어 나오는 잔열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탁, 탁.


주조소 구석의 작은 보조 가마 터에서 미세한 부채질 소리가 들려왔다. 혁련풍의 귀가 그 소리의 주파수를 정확히 짚어냈다. 분당 예순 번의 일정한 호흡 소리. 벙어리 소년 소삼이었다.


혁련풍이 소리 없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소삼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으나, 눈을 가린 백색 삼베천을 확인하고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삼은 말을 하지 못했기에, 혁련풍의 손바닥 위에 손가락으로 거칠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풍 형, 정말로 왔구나. 팽조 간수의 순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서둘러야 해.]


혁련풍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소매 속에서 흑연탄을 꺼내 소삼에게 건넸다. 소삼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연기와 소리 없이 고열을 내는 흑연탄의 존재를 주조소의 화공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소삼은 신속하게 보조 가마의 재를 긁어내고 흑연탄을 밀어 넣은 뒤,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작은 불씨를 당겼다.


화아악!


소리도 없고, 그 어떤 검은 연기도 피어오르지 않는 투명한 푸른 불꽃이 가마 내부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 열기는 무시무시했다. 혁련풍은 가죽 가슴 가리개를 단단히 조여 매며 가마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품속에서 부러진 청풍검을 꺼냈다. 자루와 거칠게 잘려 나간 반쪽짜리 날붙이. 소년은 검을 가마의 푸른 불꽃 속에 밀어 넣었다. 비록 눈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손끝은 검을 타고 전해지는 열팽창의 진동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쇠가 달구어지며 내부의 억눌려 있던 원한의 검기들이 요동치고 있다. 팽 노인이 말했던 쇠의 울림…… 무게 균형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혁련풍은 검이 붉게 달아오르는 타이밍을 오직 귀와 손끝의 감각으로 짚어냈다. 쇠가 열을 받아 팽창할 때 나는 미세한 ‘쉬이이-’ 하는 소리의 주파수가 변하는 순간, 그는 검을 꺼내 안반 위에 올려놓았다.


망치질 소리가 주조소 밖으로 새어 나가면 즉시 죽음이었다. 혁련풍은 두꺼운 가죽 옷자락을 안반 위에 덧대고, 쇠망치 끝에 자신의 미세한 기력을 실어 가볍게, 그러나 극도로 정밀하게 검날의 옆면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팅. 팅. 팅.


가죽에 가로막힌 망치 소리는 둔탁한 낙엽 떨어지는 소리처럼 변해 주조소 내부의 열기 속에 묻혔다. 혁련풍은 매 타격마다 쇠가 내뿜는 미세한 공명음을 풍문으로 분석했다. 탄소의 함량이 높은 결함 부위를 찾아내고, 그곳의 정렬을 바로잡아 검의 무게중심을 자루와 칼날의 경계선으로 강제로 이동시키는 작업이었다. 이마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려 눈을 가린 삼베천을 적셨고, 뜨겁게 달구어진 불똥이 그의 삼베옷 소매를 태우며 살가죽에 닿았다.


치이익-!


살이 타들어 가는 극심한 화상의 고통이 어깨를 타고 뇌리를 때렸지만, 혁련풍은 단 한 번의 신음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의 심박수는 심박동조(心搏同調) 기술을 통해 분당 서른 번 이하로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기에, 육체적 고통조차 그의 이성을 뒤흔들지 못했다. 그는 묵묵히 검을 물에 담그는 대신, 차가운 물에 적신 자신의 젖은 소매로 뜨거운 검날을 감싸 안았다.


치익…….


날카롭게 터져 나올 뻔한 수증기의 비명 소리가 혁련풍의 소매 속에서 조용히 소거되며, 젖은 흙이 마르는 듯한 미세한 숨소리로 변했다. 마침내 부러진 청풍검의 뒤틀렸던 무게 균형이 완벽하게 제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 순간, 혁련풍의 귀가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저 멀리 주조소 외곽의 어두운 진흙길 너머에서, 쇠사슬이 쓸리는 듯한 기분 나쁜 금속음이 들려왔다.


짤랑. 짤랑. 짤랑.


‘팽조(팽조)다.’


낙일곡 노예들의 손가락을 쇠집게로 부러뜨려 불구로 만드는 것을 즐기는 잔인한 간수 팽조. 그의 발소리는 무겁고 오만했으며, 허리춤에 찬 특제 강철 집게가 부딪치는 소리는 사냥감의 숨통을 조여오는 독사의 혀놀림처럼 음산했다. 그의 심박수는 분당 여든 번, 살의와 가학적인 흥분으로 가득 찬 거친 호흡이 바람을 타고 주조소 입구로 밀려들고 있었다.


소삼의 얼굴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소삼은 혁련풍을 다급하게 밀며 가마 뒤편의 어두운 환풍구 틈새를 가리켰다.


하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팽조의 무거운 가죽 장화 소리가 주조소 문턱 바로 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이대로 혁련풍이 움직인다면, 아무리 무음보를 전개한다 한들 공기의 미세한 기류 변화를 팽조의 일류 무사다운 감각이 놓칠 리 없었다.


철컥!


주조소의 무거운 목조 문이 열리며, 붉은 횃불의 불빛이 내부의 어둠을 사납게 찢어발겼다. 팽조가 한쪽 손에 횃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피비린내 나는 강철 집게를 짤랑거리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이, 벙어리 새끼. 이 깊은 밤중에 주조소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뭐 하는 짓거리냐?”


팽조의 매서운 안광이 주조소 내부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훑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혁련풍이 방금 전까지 검을 두드렸던 보조 가마 쪽으로 천천히 향했다. 가마 내부의 푸른 불꽃은 소멸했으나, 흑연탄이 남긴 무시무시한 열기가 공기 중에 아지랑이를 만들고 있었다.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정황이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소삼이 결단했다. 소삼은 일부러 발을 헛디디며 옆에 있던 붉게 달아오른 쇳물 그릇을 바닥으로 밀쳐버렸다.


챙강-! 치이이익!


바닥에 쏟아진 뜨거운 쇳물이 차가운 흙바닥과 만나며 엄청난 소음과 함께 자욱한 연기를 뿜어냈다. 팽조의 시선이 순식간에 입구 쪽의 소삼에게로 쏠렸다.


“이 더러운 벙어리 새끼가 미쳤나!”


팽조가 격노하여 횃불을 바닥에 던지고 전광석화처럼 다가가 소삼의 뺨을 후려쳤다.


짝-!


무지막지한 완력이 실린 손바닥이 소삼의 얼굴을 때렸고, 소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닥을 구르며 입가로 핏물을 쏟아냈다.


‘소삼……!’


가마 뒤편의 어둠 속에서 그 소리를 들은 혁련풍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분노가 단전을 뒤흔들었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팽조의 목줄기를 부러뜨리고 싶었으나, 소삼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수는 없었다. 혁련풍은 이를 악물며 전신의 기맥을 완전히 닫아걸었다.


쉬이이익.


혁련풍은 무음보 신법을 극도로 전개하여, 팽조가 소삼을 구타하는 소란을 틈타 용광로 옆의 좁고 어두운 바위 틈새로 몸을 날렸다. 그곳은 펄펄 끓는 뜨거운 쇳물이 담긴 대형 도가니 바로 옆, 전신이 타들어 갈 듯한 고열이 지배하는 극한의 음영 지대였다.


혁련풍은 틈새에 몸을 밀착시킨 채, 자신의 심장 박동을 주변 용광로의 웅웅거리는 진동음과 가마터의 불꽃 크래킹 소리의 주파수에 강제로 일치시키는 심박동조(心搏同調) 기술을 전개했다. 그의 기척과 체온, 심지어 존재 자체의 파동이 주조소의 거대한 열기 속으로 완벽하게 녹아들어 소멸했다.


바닥에 쓰러진 소삼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던 팽조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행동을 멈추었다. 그의 코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상하군…… 벙어리 놈의 피비린내 말고, 다른 타는 냄새가 나는데.”


팽조는 소삼을 거칠게 바닥에 팽개치고, 철제 집게를 짤랑거리며 혁련풍이 숨어 있는 어두운 바위 틈새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가죽 장화가 바닥의 쇳가루를 짓밟는 둔탁한 소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혁련풍의 코앞에 있는 뜨거운 도가니의 열기가 그의 살가죽을 태울 듯이 밀려들었다.


혁련풍은 품속에서 달구어진 채 무게중심이 겨우 잡힌 부러진 청풍검을 가슴 깊이 품어 안았다. 아직 다 식지 않은 검날의 뜨거운 온도가 그의 얇은 삼베옷을 태우고 가슴팍의 살가죽에 닿아 치익- 하는 소리를 내려 했다. 혁련풍은 즉시 자신의 소매 조각을 찢어 검날을 옭아매며 소리를 억누르고, 전신의 기혈을 얼음처럼 동결시켰다.


짤랑, 짤랑.


팽조가 마침내 혁련풍이 숨은 바위 틈새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그의 거대하고 잔인한 쇠집게 끝이 어둠 속에서 차가운 금속성 광택을 발하며 혁련풍의 코앞을 가리켰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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