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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훔치는 빗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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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의 장화 끝이 썩은 서책의 모서리를 툭 치는 순간, 소년의 심장은 완전히 멈춘 듯 고요해졌다.


지하 창고의 어둠은 끈적하고 무거웠다. 썩어가는 종이 냄새와 눅눅한 곰팡이 내음 사이로, 조필의 가죽 장화가 바닥 판자를 밟고 서 있는 둔탁한 진동이 혁련풍의 온몸으로 전해졌다. 판자 바로 아래에는 가문의 부러진 청풍검 조각들이 숨겨져 있었다. 조필이 발끝에 조금만 힘을 주어 판자를 걷어찬다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혁련풍은 납작 엎드린 채 지 노인에게 배운 수식 호흡 규칙(數息呼吸)을 극한으로 전개했다.


‘하나…… 둘…… 셋…….’


허파에서 산소가 비명을 질렀다. 단전의 깨진 틈새로 낙일곡 야적지의 차가운 한독(寒毒)이 솟구쳐 올라 목구멍을 후벼 팠다. 당장이라도 피가 섞인 격렬한 기침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혁련풍은 어금니를 악물고 숨을 참았다. 심장 박동은 분당 열 번 이하로 가라앉았다. 체온은 이미 차가운 흙바닥의 한기와 동조되어 있었다. 절정 초입의 고수인 조필이라 할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혁련풍을 그저 굳어가는 시체나 바닥에 뒹구는 먼지 덩어리로 인지할 터였다.


하지만 조필의 의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흠, 기묘하군. 분명 이 근처에서 기이한 쇠붙이 소리가 났다고 들었는데…….”


조필이 단도를 들어 서책 더미를 푹 찔렀다.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썩은 종이 먼지가 사방으로 피어올랐다. 단도의 끝이 바닥 판자를 향해 깊숙이 내려앉는 순간, 혁련풍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가만히 있다가 검날이 청풍검 조각에 닿아 쇳소리를 내는 순간 정체가 탄로 날 터였다.


혁련풍은 소매 속에 숨겨두었던 작은 돌가루 조각을 손가락 끝으로 미세하게 튕겼다. 뼈와 힘줄의 마찰만을 이용한 탄지 기교였다.


팅!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날아간 돌가루가 창고 반대편 구석에 쌓인 낡은 궤짝을 정확히 때렸다.


콰당탕!


갑작스러운 소음에 놀란 거대한 지하 쥐 떼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튀어나왔다. 붉은 횃불의 불빛 아래로 시커먼 쥐들이 무사들의 발밑을 어지럽게 헤집고 지나갔다.


“으악! 쥐새끼들이다!”


“조장님! 저쪽 구석 궤짝 뒤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무사들이 소란을 피우며 횃불과 무기를 그쪽으로 돌렸다. 조필의 시선 역시 발밑의 판자에서 벗어나 쥐 떼가 튀어나온 궤짝 더미로 쏠렸다. 수색의 방향이 완전히 뒤틀어지는 찰나였다.


그러나 조필은 쉽게 물러설 사내가 아니었다. 그는 횃불을 높이 들며 엎드려 있는 혁련풍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미동도 없이 죽은 듯 엎드려 있는 장님 소년의 모습에, 조필은 왠지 모를 불쾌감과 찜찜함을 느꼈다.


“더러운 쥐새끼 소굴 같으니라고.”


조필은 화풀이를 하듯 가죽 장화로 혁련풍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퍽!


“윽……!”


혁련풍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다. 단전 주위의 파열된 경맥들이 요동치며 입안 가득 비린 핏물이 고였다. 하지만 소년은 그 피를 억지로 삼키며 몸을 웅크렸다. 철저히 무력하고 비참한 장님 노예의 모습을 연기해야만 했다.


“쓸모없는 폐인 놈. 쥐새끼들과 함께 여기서 썩어 문드러지거라. 가자!”


조필은 침을 뱉고는 무사들을 이끌고 창고를 빠져나갔다. 무거운 목조 문이 쾅 닫히고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가 들려서야, 혁련풍은 억눌렀던 숨을 토해냈다.


“하아…… 쿨럭! 쿨럭……!”


바닥에 엎드린 채 소년은 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갈비뼈의 통증이 욱신거렸지만, 바닥 판자를 들어 올려 그 아래 안전하게 보관된 부러진 청풍검 조각들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유품은 무사했다. 하지만 조필의 의심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을 터였다. 더 이상 이곳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 * *


다음 날 아침, 낙일곡의 하늘은 납빛 서리 안개로 가득했다.


지하 창고에서의 위기를 넘긴 혁련풍에게 내려진 임무는 뜻밖에도 ‘외문 연무장 청소구역’의 잡역이었다. 평소 가복들이 접근하기를 꺼리는 곳이었다. 그곳은 천검종의 하급 제자들이 검술을 연마하는 장소로, 오만한 무사들이 휘두르는 검풍에 다치거나 모욕을 당하기 일쑤인 위험한 구역이었기 때문이다.


혁련풍은 손때 묻고 군데군데 갈라진 ‘단단한 대나무 빗자루’를 쥐고 연무장 가장자리에 섰다. 눈은 백색 삼베천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소년의 귀는 연무장 전체를 메우고 있는 검날의 파열음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스으으윽, 사각.


빗자루가 서리 내린 바닥을 쓸어내릴 때마다 미세한 흙먼지가 일었다. 혁련풍은 청소에 집중하는 척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소리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천검종의 기초 검법, 삼십육로천검법(三十六路天劍法)이군.’


슈우욱! 파앗!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위협적인 검풍 소리에 불과했으나, 혁련풍의 귀에는 달랐다. 검이 공기를 찢을 때 발생하는 마찰음의 높낮이, 검날의 각도, 손목 힘의 분배, 그리고 검이 나아가는 궤적의 기류 변화가 나노 단위로 분리되어 소년의 뇌리로 스며들었다.


이것이 바로 혁련풍이 은밀히 진행하고 있는 ‘천검종 외문 검결 분석’이었다.


‘저 제자의 검은 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검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어 초식의 변화가 일어날 때 손목 경맥에 무리가 가고 있군. 우측 세 번째 초식에서 찰나의 빈틈이 생긴다.’


‘저쪽은 연검을 쓰는군. 검의 휘어짐이 불규칙하지만, 공기를 가를 때 특유의 웅웅거리는 고음이 발생한다. 그 주파수를 읽으면 검끝이 닿을 위치를 반 보 먼저 예측할 수 있다.’


시각을 잃은 대가로 얻은 초감각적인 심안통(心眼通)의 맹아는, 연무장의 화려한 명검들이 뿜어내는 검풍을 소리 없는 텍스트로 치환하여 혁련풍의 머릿속에 역으로 새겨 넣고 있었다. 천검종 제자들은 자신들의 검초가 저 비천한 장님 청소부의 머릿속에서 산산조각 나 분석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 터였다.


“어이, 거기 장님 병신!”


갑작스러운 날카로운 음성이 혁련풍의 귀를 때렸다. 심박수가 분당 여든다섯 번으로 빠르게 뛰고 있는 사내. 오만함과 열등감이 뒤섞인 거친 호흡. 독고천의 충실한 아첨꾼이자 외문 제자인 마위(마위)였다. 그의 곁에는 거구의 체구를 지닌 외문 수석 서태강이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눈빛으로 서 있었다.


혁련풍은 즉시 허리를 굽히고 빗자루를 낮게 쥐었다.


“예, 소인 대답하옵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무슨 하실 말씀? 이 눈먼 새끼가 눈이 멀었으면 귀라도 밝아야지, 우리가 검을 수련하는 연무장 안쪽까지 흙먼지를 날려 보내는 게냐? 네놈의 더러운 먼지 때문에 내 검날에 흠집이라도 나면 네 목숨으로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위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주위 제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최근 독고천 소장주에게 아첨할 기회를 찾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고, 마침 눈앞에 보인 장님 청소부를 짓밟아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려 하고 있었다.


혁련풍은 묵묵히 흙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실제 소년은 바람의 방향을 읽고 먼지가 연무장 반대편으로 흐르도록 빗자루질을 조율하고 있었다. 마위의 말은 그저 억지 트집에 불과했다. 하지만 소년은 인내해야 했다.


“소인이 미처 눈이 멀어 바람의 방향을 보지 못했습니다. 깊이 사죄드리옵니다.”


“사죄? 사죄로 해결될 일이었으면 낙일곡의 가율이 왜 존재하겠느냐!”


마위가 장화 발을 내뻗었다.


콰작!


마위의 가죽 장화가 혁련풍이 쥐고 있던 대나무 빗자루의 머리 부분을 짓밟았다. 단단한 대나무 대가 갈라지며 split된 대나무 섬유들이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혁련풍의 고막을 울렸다. 소중한 청소 도구이자 유일한 신체 지지대가 파손되는 순간이었다.


“어라? 빗자루가 부러졌네? 장님이라 앞을 못 보니 내 무거운 장화도 피하지 못하는구나. 하하하!”


주변의 하급 제자들이 마위의 조롱에 맞춰 비열한 폭소를 터뜨렸다. 서태강 역시 입꼬리를 비틀며 차가운 멸시를 보냈다.


마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혁련풍을 진흙탕 바닥에 완전히 구르게 만들어 더 큰 굴욕을 주고자 했다. 마위는 혁련풍의 등 뒤로 은밀하게 오른발을 내뻗어 소년의 아킬레스건 부근을 걸어 넘어뜨리려 했다.


서벅.


마위의 발끝이 혁련풍의 발목 뒤편으로 파고드는 순간, 소년의 심안통이 적의 궤적을 선명하게 포착했다.


‘마위, 천검기초공의 보법을 전개하는군. 디딤발의 무게중심이 좌측으로 7할 쏠려 있다. 나를 걸어 넘어뜨리려 하지만, 역으로 본인의 우측 정강이 혈도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다.’


혁련풍의 내면에서 차가운 투지가 일었다. 하지만 내력을 직접 방출할 수 없는 단전 파괴의 상태. 게다가 어젯밤 조필에게 맞은 옆구리의 통증과 파열된 오른손 경맥의 미세한 통증이 욱신거리며 소년의 신체를 압박하고 있었다.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소년은 가문의 비전 기교인 ‘빗자루 회전 청소법(빗자루 회전 청소법)’의 원리를 전개하기로 했다. 무공을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적의 힘을 흘리고 제압하는 기학적인 기교였다.


마위의 발걸기가 닿기 직전, 혁련풍은 부러진 대나무 빗자루의 손잡이 대를 바닥에 강하게 내리찍으며 그것을 축으로 삼았다.


스으으윽!


몸을 360도 부드럽게 회전시키는 보법이었다. 겉보기에는 발이 걸려 중심을 잃고 빗자루에 매달려 한 바퀴 휘청하는 비굴한 슬립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회전의 속도와 원심력은 극도로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혁련풍이 회전하는 찰나, 부러진 빗자루 머리의 날카로운 대나무 가시들이 지면의 거친 자갈과 흙먼지를 강하게 쓸어내렸다.


스파앗!


회전력에 의해 튕겨 나간 날카로운 작은 자갈 하나가 흙먼지 장막을 뚫고 날아갔다. 그 궤적은 정확히 마위의 비어 있던 오른쪽 정강이 혈도(조구혈)를 향해 쏘아졌다.


퍽!


“윽?!”


흙먼지 속에서 마위의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혈도가 강하게 타격당하며 전신의 신경이 마비되고 균형 감각이 일순간에 붕괴된 것이다. 마위는 턱을 떨며 꼴사납게 비틀거렸다.


“어, 어어?! 내 다리가……!”


혁련풍은 회전을 마치며, 팽 노인의 조언대로 자신의 몸 역시 뒤늦게 쓰러지는 연기를 취했다. 부러진 빗자루를 손에서 놓치며 바닥의 진흙탕 위로 허둥지둥 슬라이딩하듯 나동그라졌다.


“구, 구해주십시오! 소인이 발이 걸려 넘어졌습니다!”


비참하게 바닥을 구르는 장님 소년의 비명 소리와 동시에, 균형을 완전히 잃은 마위가 사정없이 앞으로 자빠졌다.


콰당탕!


마위는 얼굴을 연무장의 단단한 흙바닥에 그대로 처박았다. 코뼈가 부러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 진흙과 피가 섞여 나왔다.


“푸핫! 하하하!”


“마위 저 자식, 장님 발을 걸려다가 지 혼자 자빠져서 진흙을 처먹네!”


연무장을 지켜보던 하급 제자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마위의 비열한 행동이 오히려 자신에게 인과응보로 돌아간 꼴이었다. 마위는 흙바닥을 긁으며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일어섰으나, 정강이의 마비 통증 때문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비틀거렸다.


“이, 이 장님 새끼가…… 감히 나를……!”


마위가 수치심에 눈이 멀어 허리춤의 철검을 뽑아 들려던 그 순간이었다.


“그만해라, 마위.”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연무장의 소란을 단숨에 잠재웠다.


연무장 입구 쪽에서 묵직한 강철검을 등에 맨 사내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단단한 체구에 날카로운 안광을 지닌 청년. 천검종 외문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실력자이자, 오만한 세도가 천재들과 달리 무공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지닌 외문 천재, 진소백(진소백)이었다.


진소백은 쓰러진 마위나 주위의 비웃는 제자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날카로운 안광은 오직 한 곳, 혁련풍이 빗자루를 축으로 회전하며 바닥 진흙에 남긴 미세한 원형의 보법 흔적과 튕겨 나간 자갈의 기하학적 궤적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며 회전한 흔적…….’


진소백의 발걸음이 천천히 혁련풍을 향해 다가왔다. 먼지투성이 회색 삼베옷을 입고 흙바닥에 엎드려 덜덜 떨고 있는 장님 소년의 앞에 멈춰 선 진소백은, 혁련풍이 부러진 대나무 빗자루 대를 쥐고 있는 특이한 파지법을 날카롭게 내려다보았다.


그 손놀림은 비록 비굴하게 떨리고 있었으나, 검을 잡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극도의 안정감과 쇠의 무게 균형을 완벽히 이해한 자의 손가락 배치였다.


진소백이 혁련풍의 빗자루 끝 궤적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너…… 방금 그 빗자루질, 대체 어디서 배운 거지?”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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