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각성, 경맥 재건
쩌저적—!
뇌리를 사정없이 긁는 파열음이 혁련풍의 귓전을 때렸다. 그것은 뼈가 어긋나는 소리도, 오막살이의 들보가 무너지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의 단전 깊숙한 곳, 과거 스승 독고백의 손에 처참하게 박살 나 진흙탕처럼 짓밟혀 있던 내력의 근원이 기어이 균열을 일으키며 폭발하는 파열음이었다.
“쿨럭! 커헉……!”
혁련풍의 입에서 검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전신이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슴의 화상 상처는 오막살이를 집어삼킨 화마의 열기에 반응해 살가죽이 녹아내릴 듯한 극통을 선사했고, 최근 살수 귀영의 비수에 스쳤던 오른쪽 뺨의 자상은 안면 마비 통증을 유발하며 뇌수를 찔러왔다. 왼쪽 어깨의 찢어진 자상에서 흘러내린 피가 회색 삼베옷을 무겁게 적셨다. 만검총 심연에서 뼈마디마다 스며들었던 한독(寒毒)조차 소년의 단전 폭주에 밀려 광포하게 요동쳤다.
하지만 그 모든 물리적인 고통은 가슴을 찢는 비장한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스슥.
진흙바닥 위로 붉은 핏물이 고였다. 그리고 그 핏물 속으로 스승 풍노인이 목숨처럼 아끼던 낡은 대나무 피리가 스르륵 굴러 떨어졌다. 진흙과 피에 젖어 검게 물들어가는 피리의 잔상이 소년의 심안통(心眼通) 지도 위에 선명하게 투사되었다.
스승은 죽었다. 자신에게 얽매여 있던 ‘불무고살의 계율(不無故殺)’이라는 마음의 족쇄를 풀고, 참된 검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처형인 독안룡(獨眼龍)의 칼날 위로 스스로의 심장을 밀어 넣었다.
“스승…… 님…….”
혁련풍의 입술 사이로 피 맺힌 울음이 새어 나왔다. 백색 삼베천으로 가려진 소년의 눈가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차가운 빗물과 뒤섞여 뺨을 타고 흘렀다. 슬픔은 이내 억누를 수 없는 분노로 변했고, 그 분노는 단전 내부의 폭주를 임계점 너머로 이끌었다.
쿠우우우웅—!
대기가 요동쳤다. 오막살이를 태우던 불길이 혁련풍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기이한 기류에 밀려 순간적으로 사방으로 흩어졌다. 과거 파괴되었던 단전의 상처 틈새로, 대자연의 거센 폭풍우와 칼바람의 기운이 온몸의 모공을 통해 미친 듯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위적인 기공의 운행이 아니었다. 천지가 울부짖는 폭풍의 기류 자체를 자신의 새로운 경맥으로 삼는 거대한 변화였다.
“저, 저게 대체 무슨 기세냐……?”
한철채찍을 쥔 채 뒷걸음질 치던 사마철(사마철)의 안광이 극도의 경악으로 흔들렸다. 그의 심박 소리가 분당 백오십 번을 넘기며 공포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옆에 서 있던 처형인 독안룡 역시 풍노인의 가슴에서 참수대도를 뽑아내며 본능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혁련풍의 온몸에서 핏빛 안개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파키킹! 파킹!
뼈와 근육이 강제로 정렬되며 전신에서 거친 골격음이 울려 퍼졌다. 끊어지고 비틀렸던 삼십육 개의 대맥과 기경팔맥이 대자연의 거친 풍기와 융합하며 순식간에 다시 이어졌다. 체내에 남아 있던 청풍환(聽風丸)의 잔여 약력이 폭발하며 끊어진 경맥의 틈새를 단단하게 메웠다.
단전이 파괴된 폐인에서, 자연의 바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진정한 무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절대적인 경지.
‘경맥 재건 - 화경 관문(境脈 再建 - 化境 關門).’
마침내 혁련풍이 굳건하게 대지를 디디며 일어섰다. 전신을 짓누르던 통증과 한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오직 투명하고 차가운 청풍의 진기만이 그의 온몸을 감싸 안았다. 소년의 오른손이 품속에서 자루와 반쪽짜리 날만 남은 가문의 신검, 부러진 청풍검(靑風劍)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스우우웅.
검을 뽑는 순간, 사방의 비바람 소리가 일순간 소거된 듯 고요해졌다. 부러진 검끝에서 3치 길이의 아지랑이 같은 투명한 바람 칼날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자연검의(自然劍意)의 씨앗’이 소년의 분노 속에서 기적적으로 싹을 틔운 것이다.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감히 장님 주제에 기만을 부리는구나! 죽어라!”
독안룡이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거친 기합을 내지르며 거대한 참수대도를 치켜들었다. 그의 대도 표면에 서린 피비린내 나는 혈도공의 붉은 기운이 빗줄기를 가르며 뿜어져 나왔다. 독안룡은 대도를 양손으로 쥔 채, 혁련풍의 머리를 향해 일도양단의 종참 강격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앙!
무겁고 파괴적인 참수대도가 공기를 찢으며 내려앉는 순간, 혁련풍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풍령 3성 극성의 초감각은 대도가 내려오는 궤적과, 그 대도의 강철 날 중심부에 존재하는 미세한 주조 결함의 진동 주파수를 완벽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대도가 무거울수록 휘두른 뒤의 빈틈이 크다. 그 쇠의 울림의 중심을 깨뜨리면 스스로 무너지리라.’
과거 팽 노인이 가르쳐 주었던 쇠의 공명 조언이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 혁련풍이 가볍게 몸을 비틀며 황표의 검을 흘리던 편격 기법을 전개했다. 대도의 날카로운 칼날이 그의 뺨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 혁련풍은 오른손의 부러진 청풍검을 내질렀다.
팅—!
맑고 예리한 금속성 파열음이 공동묘지의 밤하늘을 갈랐.
정면 충돌이 아니었다. 부러진 청풍검 끝에 서린 무형풍인(無形風刃)의 바람 칼날이 독안룡의 거대한 참수대도 측면, 진동 중심부를 정확하게 관통하며 쳐낸 일격이었다.
“……!!”
독안룡의 외눈이 경악으로 튀어나올 듯 커졌다.
자신이 자랑하던 거대하고 무거운 참수대도가, 소년의 부러진 고철 검끝에 닿는 순간 마디마디 균열을 일으키더니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나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무기가 가진 고유의 인장력이 깨지며 스스로 박살 난 것이다.
“어, 어떻게 내 참수대도가……!”
독안룡이 미처 경악을 다 지우기도 전에, 혁련풍의 신형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발소리도, 기척도 없는 완벽한 무음의 신속함이었다.
스윽.
부러진 청풍검 끝의 투명한 무형풍인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하여 적의 급소를 꿰뚫는 일격 필살의 초식.
‘절풍격(切風擊).’
푸우욱!
서늘한 파열음과 함께, 독안룡의 목줄기에 투명한 바람 구멍이 관통되었다.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오기도 전에 바람의 기류가 상처를 차갑게 얼려버렸다. 독안룡은 박살 난 대도 자루를 쥔 채, 단 한 음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흙바닥 위로 무겁게 쓰러졌다.
쿵.
처형인의 거구의 시신이 진흙탕 위에 처참하게 널브러졌다.
혁련풍은 검을 거두며 쓰러진 독안룡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먼 안광 너머로 차가운 분노의 진기가 은은하게 식어갔다. 스승의 원수 중 하나를 처단했으나, 그의 복수는 이제 겨우 첫 발걸음을 뗐을 뿐이었다.
“히, 익……! 괴물…… 괴물 같은 놈!”
독안룡의 죽음을 목격한 사마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전신을 쇠처럼 단단하게 만들던 그의 철사기 기공이 공포로 인해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는 한철채찍을 쥔 손을 덜덜 떨며 뒤로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모, 모든 무사들은 들으라! 낙일교 외나무다리로 집결해라! 저 눈먼 괴물 놈을 반드시 활과 쇠뇌로 쏘아 죽여라! 삼중 봉쇄선을 전개해라!”
사마철은 비명을 지르며 공동묘지 언덕 너머, 낙일곡의 유일한 출구인 낙일교 방향을 향해 미친 듯이 도망쳤다. 그의 가쁜 숨소리와 진흙을 밟는 다급한 발소리가 빗소리 속으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혁련풍은 도망치는 사마철의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빗물이 그의 백색 삼베천을 적시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소년은 진흙바닥으로 천천히 다가가, 스승의 피로 물든 낡은 대나무 피리를 가만히 집어 들어 품속 깊은 곳에 소중히 간직했다.
“사마철……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부러진 청풍검을 쥔 소년의 손가락 끝이 분노로 격렬하게 떨렸다. 대자연의 거센 폭풍우가 그의 등 뒤에서 거대한 날개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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