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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오막살이, 스승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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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이잉—!


낙일곡의 밤을 찢는 비바람은 잔인하리만큼 차가웠다. 제4호 감시초소의 열린 창문 너머로 몸을 날린 혁련풍은 어둠이 짙게 깔린 진흙길을 미친 듯이 질주했다. 소매 안쪽에는 방금 제갈우의 밀실에서 탈취한 양가죽 장부가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사람의 안위만이 가득했다.


‘풍노인…… 스승님!’


타닥, 타드득.


공동묘지가 위치한 낙일곡 끝자락으로 향할수록,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소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비바람의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마른 장작이 기괴하게 갈라지며 타오르는 소리, 그리고 독한 기름이 사방으로 번지며 뿜어내는 불길의 포효였다. 매캐한 연기 냄새가 안개와 뒤섞여 소년의 코끝을 찔렀다.


혁련풍은 달리는 와중에도 이가 갈리는 분노를 억눌렀다. 오른쪽 뺨에 남은 살수 귀영의 비수 자상 상처가 비바람의 습기와 독기 잔상으로 인해 불타는 듯 욱신거렸다. 왼쪽 어깨의 찢어진 자상과 가슴의 화상 상처에서도 뜨거운 선혈이 베어 나와 회색 삼베옷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만검총 심연에서 뼈마디마다 스며들었던 한독(寒毒)이 무릎 관절을 시큰거리게 만들었지만, 소년은 단전의 가짜 기맥을 한계까지 쥐어짜며 어풍보(馭風步)를 전개했다.


스스스슥!


디디는 발걸음마다 진흙이 사방으로 튀었으나, 소리는 철저히 지워져 있었다. 마침내 공동묘지 언덕에 도달했을 때, 혁련풍의 심안통(心眼通) 지도 위에 비친 세상은 온통 붉고 어두운 비극의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풍노인의 초라하고 허름했던 흙벽돌 오막살이가 거대한 화마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평생 동안 낙엽을 쓸며 쓸쓸히 묘지를 지키던 늙은 스승의 유일한 안식처가, 천검종의 더러운 탐욕에 의해 한 줌의 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타는 오막살이 앞마당의 진흙탕 위에, 한 노인이 무릎을 꿇은 채 포박당해 있었다.


흐린 눈을 한 채 낡은 도포를 걸친 풍노인이었다. 그의 목에는 북해의 한철을 녹여 만든 사마철의 한철채찍(寒鐵鞭)이 사납게 감겨 있었고, 채찍 끝에 달린 강철 침들이 노인의 목 가죽을 파고들어 붉은 피를 흘리게 하고 있었다.


“흐하하하! 정말로 이 늙은 개새끼를 태워 죽이려 하니 쥐새끼처럼 기어 나오는구나!”


타오르는 불길을 배경으로 선 사마철이 흉포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그의 심박수는 분당 백이십 번을 넘기며 가학적인 흥분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사마철의 곁에는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한 거구의 사내, 처형인 독안룡(獨眼龍)이 서 있었다. 독안룡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거대한 처형용 참수대도를 어깨에 멘 채,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처럼 흐린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나와라, 혁련풍! 이 눈먼 폐인 새끼야! 네놈이 밤마다 청풍동에서 기이한 무공을 수련하고, 제갈 집사님의 집무실까지 기어들어 가 장부를 훔쳤다는 것을 모를 줄 알았더냐!”


사마철의 음성이 비바람을 뚫고 협곡 전체를 흔들었다. 혁련풍은 공동묘지의 깨진 비석 뒤에 몸을 숨긴 채 숨을 죽였다. 전신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가슴의 화상 상처는 열기에 반응해 찢어지는 듯한 극통을 선사했다.


지 노인에게 배운 수식 호흡(數息呼吸)을 전개하며 심장 박동을 분당 서른 번 이하로 낮추려 애썼지만, 불타는 오막살이의 열풍과 스승의 목을 죄고 있는 한철채찍의 소리가 그의 이성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스승님…….’


혁련풍의 오른손이 소매 속에 숨겨둔 부러진 청풍검(靑風劍)의 자루를 쥔 채 하얗게 굳어졌다. 가문의 비전 심법인 청풍청청결의 진기가 검끝에서 미세하게 요동치며 보이지 않는 바람의 날을 형성하려 했으나, 사마철의 포위망은 너무도 촘촘했다. 마당 주변에는 이십 여 명의 수색 무사들이 철갑을 두른 채 쇠뇌를 조준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정면으로 뛰어드는 것은 스승의 목숨을 즉시 끊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었다.


“무엇을 망설이느냐! 당장 무릎을 꿇고 기어 나와 가문의 부러진 청풍검 조각과 훔친 장부를 바치거라! 그렇지 않으면 이 늙은이의 목을 이 자리에서 다리부터 마디마디 으스러뜨려 불길 속으로 던져버릴 것이다!”


사마철이 채찍을 쥔 손에 힘을 주자, 풍노인의 목에서 쿨럭하는 거친 기침과 함께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혁련풍의 내면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가문의 도덕적 금기인 불무고살의 계율(不無故殺)이 뇌리 속에서 무겁게 울렸다.


‘이유 없는 살생은 검사의 의지를 꺾는다. 오직 살기 어린 칼날만을 부러뜨려라…….’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자들은 인간의 탈을 쓴 악귀들이었다. 스승을 구하기 위해 그들의 목을 베어야 하는가, 아니면 계율을 지키며 무기를 부러뜨리는 데 그쳐야 하는가. 소년의 눈먼 안광 너머로 뜨거운 눈물이 고여 백색 삼베천을 적셨다.


그때, 진흙탕에 무릎을 꿇고 있던 풍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노인의 흐린 눈동자가 혁련풍이 숨어 있는 비석 방향을 정확히 향했다. 눈이 멀었음에도, 일대종사의 심안은 제자의 위치와 그가 느끼고 있는 절망적인 고뇌를 완벽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풍아…….”


풍노인의 나직하고 묵직한 음성이 비바람을 뚫고 혁련풍의 귀에 고스란히 꽂혔.


“이 늙은 고목을 위해 무릎을 꿇지 마라. 네가 쥔 검은 가문의 영혼이자, 이 타락한 무림의 위선을 부러뜨릴 유일한 칼날이다.”


“시끄럽다, 이 늙은이 놈이!”


사마철이 분노하여 한철채찍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채찍에 감긴 철침들이 풍노인의 목덜미 살점을 찢어발겼지만, 노인은 단 한 음의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마른 체구에서 과거 천검종의 장문인이었던 풍무흔의 위엄 서린 푸른 진기가 은은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독고백 그 위선자 놈에게 전하거라. 아무리 가짜 신검 천신검을 벼려낸들, 부러진 고철 조각에 담긴 검사의 참된 의지는 결코 녹여내지 못할 것이라고.”


풍노인의 흐린 눈빛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노인은 혁련풍을 향해 마지막 미소를 지어 보였다.


“풍아. 검을 쥔 무인은 세상의 어떤 위선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 그것이 참된 청풍의 의지다!”


그 외침과 동시에, 풍노인은 전신에 남아 있던 마지막 진기를 폭발시키며 사마철의 채찍 구속을 억지로 뚫고 일어섰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처형인 독안룡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독안룡이 본능적으로 거대한 참수대도를 들어 올려 정면을 방어하려던 찰나였다.


풍노인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 독안룡이 치켜든 참수대도의 서슬 퍼런 칼날을 향해 자신의 가슴을 강하게 밀어 넣었다. 제자의 고뇌를 덜어주고, 그에게 칼을 뽑아 세상을 바로잡을 완벽한 자유와 명분을 주기 위한 위대한 일대종사의 장렬한 자결이었다.


푸우욱—!


둔탁하고 잔인한 마찰음이 공동묘지의 밤하늘을 갈랐.


독안룡의 거대한 대도가 풍노인의 가슴뼈를 관통하여 등 뒤로 붉은 칼날을 내밀었다. 선홍빛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불타오르는 오막살이의 화염 위로 떨어져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증발했다.


“스승님—!!!”


비석 뒤에서 혁련풍의 처절한 비명이 마침내 폭발했다. 소년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찢어져 인간의 소리가 아니었다.


스승의 가슴이 관통당하는 그 잔인한 찰나, 풍노인의 낡은 도포 자락 틈새에서 평생 동안 바람의 주파수를 조율해 주던 유품, 낡은 대나무 피리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피리는 차가운 빗물이 고인 진흙바닥 위로 툭 떨어져, 붉은 핏물 속으로 굴러갔다.


그 순간, 혁련풍의 단전 내부에서 잠자던 거대한 진기 폭풍이 쩌저적— 하는 파열음과 함께 미친 듯이 bộc발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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