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역류시키는 검끝
횃불의 붉은 그림자가 석실 입구의 좁은 바위 틈새를 비추는 순간, 혁련풍은 부러진 청풍검을 가로막아 쥐었다.
타닥, 타다닥.
젖은 장작이 타들어 가는 불쾌한 소음과 함께 매캐한 연기가 석실 안으로 밀려들었으나, 방금 전 혁련풍이 벽면에 뚫어놓은 바람 구멍을 통해 세찬 계곡풍이 유입되면서 연기는 맴돌 뿐 더 이상 퍼지지 못했다. 오히려 석실 내부의 기압이 급격히 상승하며 연기가 동굴 입구 쪽으로 미세하게 밀려 나가는 형국이었다.
“콜록! 조장님, 연기가 역류하고 있습니다! 안쪽에 살아있는 놈이 구멍이라도 뚫은 게 분명합니다!”
“시끄럽다! 횃불을 더 높이 치켜들어라! 단전이 깨진 장님 폐인 놈과 노예 새끼들이 이 안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다. 당장 안으로 진입해 사지를 잘라내라!”
동굴 통로 너머에서 들려오는 부조장 황표의 음산한 목소리가 좁은 바위벽에 부딪쳐 기괴하게 공명했다. 가죽 갑옷이 쓸리는 둔탁한 마찰음과 수십 자루의 강철 검날이 바위벽을 긁는 짤랑거림이 기류의 떨림을 타고 혁련풍의 귓가에 나노 단위로 분리되어 꽂혔다.
혁련풍은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팍이 오르내릴 때마다, 가마터에서 뜨거운 청풍검을 품에 안았을 때 입었던 심각한 화상 상처가 삼베옷 안쪽에서 진물과 함께 찢어지며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다. 게다가 왼쪽 어깨의 깊은 자상에서는 여전히 붉은 선혈이 울컥거리며 삼베옷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만검총 심연에서 삼켰던 음산한 한독(寒毒)까지 뼈마디마다 스며들어 검을 쥔 오른손목이 시큰거리고 저려왔다.
육체는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스승의 유품인 반지를 통해 터득한 가문의 구결, ‘청풍청청결’의 푸른 진기가 그의 파괴된 단전 주위에서 가짜 기맥을 그리며 차갑게 요동치고 있었다. 소년의 머릿속 심안통(心眼通) 지도가 사방 20보 안의 지형과 적들의 움직임을 투명한 수묵화처럼 선명하게 그려내기 시작했다.
“풍 형…… 개들이, 사냥개들이 밀려와요……”
바위 틈새 안전지대에 웅크린 아칠이 고열로 신음하는 소삼을 감싸 안은 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속삭였다. 혁련풍은 대답 대신 백색 삼베천으로 가려진 눈을 들어 동굴 입구를 묵묵히 응시했다.
스스슥.
횃불의 불빛이 석실 안을 비추는 것과 동시에, 황표가 이끄는 다섯 명의 정예 무사들이 칼을 뽑아 들고 바위 틈새를 통과해 석실 안으로 들이닥쳤. 황표의 오른손에 쥐인 강철 검이 기류를 찢으며 붉은 불꽃 같은 살기를 뿜어냈다.
“찾았다, 이 눈먼 쥐새끼 놈!”
황표가 외치며 대지를 박찼다. 그의 신형이 안개를 뚫고 혁련풍의 머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낙하했다. 열화검결(烈火劍訣)의 강맹한 종참(縱斬)이었다. 검날이 공기를 가르며 내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귓가를 찢을 듯 밀려왔다.
혁련풍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하는 대신 한 걸음 앞으로 미끄러졌다. 어풍보(馭風步) 보법이었다. 발바닥과 지면의 마찰을 제로로 만들며, 황표가 내뿜는 검풍의 궤적을 소리 없이 빗겨 가며 측면으로 몸을 뉘었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 혁련풍은 오른손에 쥔 부러진 청풍검을 가볍게 내뻗었다.
챙-!
맑고 날카로운 금속음이 석실을 울렸다. 정면 충돌이 아니었다. 황표의 검날 측면, 무게중심이 가장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진동의 중심부를 부러진 검끝으로 가볍게 톡 쳐낸 편격참(偏擊斬)이었다.
“윽……!”
황표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강맹한 내력이 실린 검이 장님의 가벼운 손가락 튕김 한 번에 방향을 잃고 허공으로 빗겨 나간 것이다. 손목 경맥을 타고 역류한 반탄력이 그의 어깨뼈를 뒤흔들었다.
“이놈이 무공을 숨기고 있었구나! 일제히 찔러라!”
황표가 비틀거리며 외치자, 좌우에서 대기하던 네 명의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곧게 세우고 혁련풍의 목과 가슴을 향해 포위 찌르기를 감행했다.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네 줄기의 검풍이 소년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그 순간, 혁련풍은 전신의 진기를 오른발 끝으로 집중시켰다.
콰아아아!
발끝으로 바닥의 고철 가루와 모래를 강하게 걷어참과 동시에, 전신을 360도 빠르게 회전시키며 부러진 청풍검을 크게 휘둘렀다. 회전 신법 초식인 청소풍(掃風)이었다.
부러진 청풍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차가운 진기가 석실 내부에 머물던 세찬 계곡풍과 결합하여 거대한 바람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바닥에 깔려 있던 날카로운 쇳가루와 모래 먼지가 기류를 타고 폭풍처럼 사방으로 비산했다. 풍사술(風沙術)의 응용이었다.
“아악! 내 눈! 눈이……!”
“연기가 역류한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석실 내부를 가득 채우려던 매캐한 독초 연기와 날카로운 쇳가루 먼지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동굴 입구 쪽에서 진입하려던 무사들의 얼굴과 눈을 향해 폭풍처럼 역류했다. 횃불의 불꽃이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쓸려 일순간 꺼져버리며, 석실 안은 완벽한 암흑 속으로 침잠했다.
눈을 뜬 자들에게는 지옥 같은 암흑이었으나, 평생을 어둠 속에서 바람의 소리에 의지해 온 혁련풍에게는 가장 익숙하고 완벽한 전장이었다.
사각, 사사각.
혁련풍은 무음보(無音步)를 전개했다. 쇳가루 폭풍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하는 무사들 사이를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팅-! 팅-!
어둠 속에서 부러진 청풍검이 보이지 않는 궤적을 그리며 무사들의 검날 측면을 차례로 타격했다. 팽 노인의 조언대로, 무기 고유의 공명점을 타격당한 무사들의 강철 검들이 마디마디 부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소리 없는 권가(拳街)의 타격이 그들의 혈도를 정확히 짚었다.
“컥!”
“어디냐! 장님 놈이 어디에…… 윽!”
단 한 마디의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네 명의 정예 무사들이 차례로 혈도가 제압당해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불무고살(不無故殺)의 계율에 따라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무공 경맥은 혁련풍의 정교한 편격에 의해 일시적으로 완전히 봉인되었다.
이제 석실 안에 남은 적은 부조장 황표 한 명뿐이었다.
“이 괴물 같은 놈……! 감히 천검종의 무사들을 상대로 이딴 비열한 수법을 쓰다니!”
황표는 독무 연기와 쇳가루에 눈이 멀어 피눈물을 흘리며, 허공을 향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의 열화검기가 대나무 장포 자락을 스치며 탄내를 풍겼으나, 혁련풍은 이미 그의 사각지대인 등 뒤에 깃털처럼 가볍게 서 있었다.
혁련풍이 부러진 청풍검 끝을 황표의 목덜미 3치 앞에 고요히 멈춰 세운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갑자기 석실 깊은 곳, 천 길 낭떠러지와 연결된 어두운 심연의 아가리 너머에서 기이하고 낮은 소리가 흘러나왔.
바람의 마찰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얼음처럼 차갑고 웅장한 내력이 실린, 고요하면서도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기이한 피리 소리(피리 소리)였다.
피리의 음파가 석실 내부의 뒤틀린 기류를 타고 퍼져나가는 순간,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던 황표의 전신이 얼어붙은 듯 굳어졌다. 그의 가슴속에 타오르던 붉은 살기가 피리 소리의 기이한 진동에 짓눌려 순식간에 소거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혁련풍 역시 반지를 낀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며, 부러진 검을 쥔 채 움직임을 멈췄다. 동굴 깊은 곳에서 다가오는 기이한 진동이 소년의 심안을 강하게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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