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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일곡의 눈먼 빗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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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언제나 살아 움직인다.


눈이 먼 소년, 혁련풍에게 세상은 보이지 않는 선과 진동의 흐름으로 가득 찬 거대한 심연이었다. 시각을 잃은 뒤로 소년의 귀는 대기 중의 아주 미세한 변화마저 잡아내는 기민한 감각의 그릇이 되었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밀도, 땅바닥의 흙먼지가 흔들리는 주파수, 그리고 사방을 채운 고철 더미에서 풍겨오는 비린 무쇠의 냄새. 그것이 혁련풍이 인지하는 낙일곡(낙일곡)의 전부였다.


사각, 사각.


낡고 거친 대나무 빗자루가 서리 낀 바닥을 쓸어내릴 때마다, 규칙적인 파열음이 황량한 계곡의 벽을 타고 메아리쳤다. 혁련풍은 낡은 회색 삼베옷을 입은 채, 두 눈을 거친 백색 삼베천으로 질질 동여매고 있었다. 소년이 쥔 대나무 빗자루는 단순한 청소 도구가 아니었다. 단전이 산산조각 나고 온몸의 경맥이 뒤틀려 걷는 것조차 비명에 가까운 고통을 동반하는 폐맥 폐인(廢脈廢人)의 처지에서, 이 묵직한 대나무 대는 그의 무너진 척추와 골반을 지탱하는 유일한 뼈대이자 지지대였다.


‘하나, 둘, 셋…….’


혁련풍은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발걸음을 옮겼다. 빗자루질을 할 때마다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원을 그리는 회전력을 몸에 익혔다. 비록 내력은 한 방울도 싣지 못하는 삼류 초입(소성)의 미미한 근골 수련에 불과했으나, 소년은 이를 통해 뒤틀린 뼈마디를 정렬하고 있었다. 과거 가문의 원수이자 스승이었던 독고백에게 빼앗긴 가문의 복수를 완수하기 위해, 그는 매일 죽음보다 더한 굴욕을 견디며 이 먼지 구덩이에서 몸을 재조립해 나갔다.


낙일곡은 천검종(天劍宗)의 거대한 쓰레기 하적장이었다. 강호의 비무와 전장에서 부러지고 버려진 수만 자루의 고철 검들이 비석처럼 뒹구는 비참한 안개 계곡. 그곳에서 혁련풍은 장서각 지하 창고와 야적장을 쓰는 가장 천비한 청소부 노예였다.


터벅, 터벅.


저 멀리서 불규칙하고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가죽 장화가 얼어붙은 흙바닥을 짓밟는 소리, 그리고 허리춤에서 철제 고리들이 거칠게 짤랑거리는 둔탁한 진동. 혁련풍의 귀가 미세하게 쫑긋거렸다.


‘조필(조필)이다.’


낙일곡의 악질 간수 조필. 도박 빚에 찌들어 노예들의 푼돈까지 갈취하고, 기분이 나쁠 때마다 채찍을 휘두르는 잔인한 사내였다. 그의 심박수는 분당 여든다섯 번. 평소보다 거칠고 빠른 호흡으로 보아, 오늘도 어김없이 도박판에서 돈을 잃고 화풀이 대상을 찾으러 온 것이 분명했다.


“이 눈먼 병신 놈이 아직도 마당구석에서 비실거리고 있구나!”


조필의 거친 목소리가 안개 낀 연무장 외곽을 때렸다. 혁련풍은 즉시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빗자루 대에 의지해 비굴한 자세를 취했다. 얼굴을 가린 백색 천 아래로 침묵을 지키며, 철저히 힘없는 장님 노예의 흉내를 냈다.


“조, 조 간수님 오셨습니까…….”


일부러 목소리를 미세하게 떨며 나약함을 연출했다. 그러나 조필은 이미 화풀이할 구실을 찾고 있었다. 그는 혁련풍이 쓸어 모아 둔 흙먼지 더미를 장화 발로 걷어차 사방으로 흩뿌렸다.


“청소 상태가 이게 무엇이냐! 이 쓸모없는 폐인 놈이 밥만 축내고 있구나. 장문인께서 왜 이런 눈먼 개새끼를 죽이지 않고 낙일곡에 살려두시는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조필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가죽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북해의 한철을 섞어 주조한 조필의 한철채찍(寒鐵鞭)이 허공으로 풀려나왔다. 채찍 끝에 달린 강철 침이 바닥을 긁으며 스산한 금속음을 내뿜었다.


쉭!


찰나의 순간, 조필의 채찍이 매서운 바람 소리를 내며 혁련풍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일반적인 장님이라면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두개골이 깨졌을 터였다. 하지만 혁련풍의 귀는 이미 채찍이 가죽집을 떠나 허공의 대기를 찢는 각도와 속도를 나노 단위로 분리해 듣고 있었다. 채찍이 일으키는 바람의 파열음이 그의 심안(心眼) 속에 붉은 선으로 선명하게 그려졌다.


‘우측 상단, 사선 방향.’


혁련풍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려던 무공의 힘을 억눌렀다. 지금 완벽하게 피해버린다면, 자신이 무공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나 즉시 처형당할 터였다. 그는 철저히 비굴한 움직임 속에 방어를 녹여내야 했다.


소년은 빗자루를 놓치는 척하며 몸을 앞으로 엎드렸다. 그와 동시에 어깨를 미세하게 반 치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퍼억!


매서운 채찍 날이 혁련풍의 등가죽을 비껴갔다. 삼베옷이 찢어지며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뼈와 경맥을 비껴간 가벼운 자상에 불과했다. 혁련풍은 흙바닥에 나동그라지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아악! 살려주십시오, 조 간수님! 잘못했습니다!”


진흙탕에 뒹굴며 온몸에 흙을 묻히는 소년의 모습은 영락없는 무력한 폐인이었다. 그러나 조필은 소년이 자신의 채찍을 교묘하게 피했다는 느낌에 기분이 상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내 매질을 피해?”


조필은 이빨을 드러내며 채찍을 높이 쳐들었다. 이번에는 더욱 강한 기운을 실어 연속으로 난타할 기세였다. 채찍 마디마디에 한철의 푸르스름한 진기가 실리며 대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정면으로 맞으면 파열된 단전 주위의 가짜 기맥마저 완전히 부서질 위기였다.


혁련풍은 바닥에 엎드린 채, 흙바닥에 처박힌 대나무 빗자루의 대를 손가락 끝으로 꽉 움켜쥐었다. 단전의 내력은 쓸 수 없었지만, 빗자루질로 단련된 다리와 허리의 반동은 살아있었다.


‘빗자루 대를 축으로 삼는다.’


조필의 채찍이 허공을 가르고 내려찍히는 찰나, 혁련풍은 엎드린 자세에서 빗자루 대를 땅바닥에 강하게 지지했다. 다리의 반동을 이용해 몸을 회전시키며 바닥의 흙먼지와 자갈들을 사방으로 거칠게 튕겨냈다.


촤아아악!


갑작스럽게 피어오른 dense한 먼지 폭풍이 조필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흙먼지가 바람의 장벽을 형성하며 날아오던 채찍의 궤도를 미세하게 둔화시켰고, 채찍 끝의 날카로운 강철 침이 빗자루 대의 옆면을 때렸다.


쩌억!


단단한 참대나무로 만든 빗자루 대가 채찍의 강맹한 내력을 견디지 못하고 미세하게 갈라졌다. 혁련풍은 그 반탄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일부러 뒤로 서너 걸음 미끄러져 깊은 진흙탕 속으로 보기 좋게 자빠졌다.


“끄아악!”


소년은 진흙 범벅이 된 채 가슴을 쥐어짜며 비참하게 울부짖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쑤시고 뒤틀린 경맥이 타들어 가는 듯한 실제 고통이 밀려왔다. 폐인 연기를 위한 정신적 굴욕과 육체적 고통이 비명 속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조필은 먼지를 털어내며 침을 뱉었다. 진흙탕에 처박혀 덜덜 떨고 있는 장님 노예의 비참한 꼴을 보니, 의심보다는 조소와 만족감이 앞섰다.


“흥, 쥐새끼처럼 비실거리는 꼴이라니. 한 번만 더 청소 상태가 불량하면 그 장님 눈구멍에 채찍 끝을 박아넣어 줄 테다!”


조필은 채찍을 거칠게 거두어 허리에 차고는, 기분이 풀린 듯 껄껄 웃으며 포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무거운 군화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혁련풍은 진흙탕 속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방에 완벽한 침묵이 찾아왔을 때, 혁련풍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찢어진 삼베옷 사이로 스며드는 낙일곡의 한기가 뼈마디를 시리게 만들었다. 그는 더듬거리는 손길로 바닥에 뒹구는 부러진 대나무 빗자루를 수거했다. 갈라진 대나무 틈새를 만지며, 그는 품속 깊은 곳에 숨겨둔 가문의 신검, 부러진 청풍검(靑風劍)의 자루를 가만히 움켜쥐었다. 차가운 무쇠의 감각이 그의 손바닥을 통해 심장으로 복수의 온기를 전해왔다.


‘독고백…… 조금만 더 기다려라.’


소년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장서각 지하 창고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연무장 외곽의 어두운 대나무 그늘 속에서, 얇은 입술을 가진 사내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독고천의 심복이자 아첨꾼 제자인 마위(마위)였다. 그는 조필의 매질이 시작될 때부터 숨죽여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위의 시선은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대던 혁련풍의 비참한 몸짓이 아닌, 소년이 떠난 바닥의 흔적에 머물러 있었다.


세찬 바람과 먼지 폭풍 속에서도, 혁련풍이 빗자루를 지지하고 회전했던 흙바닥에는 기이할 정도로 완벽한 원형의 보법 궤적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일반적인 폐인이나 장님이 넘어지며 만들 수 없는, 극도로 정교하고 기하학적인 힘의 흔적.


마위의 얇은 입술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눈먼 폐인 놈의 발끝이…… 방금 기이하게 움직였단 말이지.”


마위는 혁련풍이 사라진 지하 창고 방향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품속의 은화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눈빛에 탐욕과 의심의 살기가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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