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장막 너머의 덫
“오크헤이븐 포구로 회항한다.”
칼리의 나지막한 선언이 스타라이트 호의 조타실에 떨어졌을 때, 방 안의 공기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듯 침묵에 휩싸였다.
조타 키를 잡고 있던 소년 토비의 어깨가 눈에 띄게 떨렸다. 잭이 가져온 현상 수배지 뒷면, 붉은색 교단 인장과 함께 선명하게 찍힌 양어머니 마리아와 여동생 리나의 이름. 그것은 단순한 수배서가 아니었다. 칼리의 숨통을 쥐고 흔들려는 경비대장 해리스의 잔혹한 올가미였다.
“하지만 선장님……!”
토비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포구는 지금 교단의 심장부나 다름없습니다. 바스카 지부장이 선장님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고, 해리스의 경비대가 온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있어요. 게다가 그레이 고스트 해역의 진입로까지 그들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을 텐데, 지금 돌아가는 건 사지로 기어 들어가는 꼴입니다.”
“토비의 말이 맞아, 칼리.”
선실 구석에서 낡은 태엽 렌치를 만지작거리던 소냐 역시 어두운 표정으로 거들었다.
“우리 배는 방금 전 미궁을 빠져나오느라 좌현 난간이 파손됐고 엔진 냉각 계통도 불안정해. 이런 상태로 교단의 삼엄한 연안 봉쇄망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건 자살 행위야.”
칼리는 대답 대신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검지와 중지, 그리고 약지. 세 개의 손가락은 이제 인간의 살결이 아닌, 차갑고 단단한 황동 결정으로 완전히 변해 있었다. 손가락을 구부릴 때마다 미세한 태엽 기어가 맞물리는 듯한 둔탁한 쇳소리가 나직하게 선실을 울렸다. 물리적인 촉각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 대가로 칼리의 양안에 깃든 중력의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정면으로 돌파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
칼리의 목소리는 기묘할 정도로 차분했다. 심박수 분당 50회. 가족이 인질로 잡혔다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의 뇌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철저하게 생존과 승리의 공식을 연산하고 있었다.
“교단 경비대장 해리스는 내가 현상 수배를 피해 외해로 멀리 도망쳤을 것이라 가정하고 있을 거다. 인간의 뇌는 인과 관계의 타당성에 지배당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그 가정을 깨고 가장 위험한 포구 내부로 직접 기어 들어간다면, 그들의 경계망에는 필연적으로 인지적 공백이 발생한다. 정보의 비대칭성. 그것이 우리의 첫 번째 무기다.”
칼리가 황동 망원경을 쓸어내리며 토비를 바라보았다. 안대로 가려진 그의 푸른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음에도, 토비는 칼리의 압도적인 이성적 위압감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안개의 사각지대를 읽는 눈이 있다. 토비, 키를 잡아라. 오크헤이븐의 수로 밀수 경로를 따라 최단 거리로 진입한다.”
“……예, 선장님!”
토비가 이빨을 악물며 조타 키를 굳게 쥐었다. 소냐 역시 한숨을 쉬며 렌치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어쩔 수 없지. 엔진실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무리한 기동만은 삼가해 줘.”
스타라이트 호가 육중한 몸체를 돌려 자욱한 밤안개가 지배하는 그레이 고스트 해역의 가장자리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수면 위를 흐르는 짙은 독성 밤안개는 시야를 10미터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었지만, 칼리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유령선 무음 기동(幽靈船機動), 가동.”
칼리가 명령하자, 소냐가 엔진실의 출력을 미세하게 조율했다. 칼리는 오른손의 황동 손가락을 기함의 용골 중앙으로 뻗어 마력을 흘려보냈다.
웅-!
스타라이트 호의 선체 하부 주변의 중력 상수가 미세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배의 물리적 질량이 일시적으로 가벼워지며, 수면과 용골 사이의 마찰 저항이 제로에 가깝게 비틀어졌다. 배가 물결을 전혀 일으키지 않고, 파도 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안개 속을 유령처럼 소리 없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무음 항해 주행법’과의 완벽한 연계 기동이었다.
그러나 오크헤이븐 포구의 외곽 진입로에 도달했을 때, 칼리의 뇌내 중력 지도에 기괴한 에너지 스파이크들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질량 밀도 측정 불가 수준의 초고농도 에테르 반응. 전방 1마일 영역 전체에 분포.’
칼리가 안대 아래에서 미간을 찌푸렸다.
“멈춰라, 토비.”
“선장님? 왜 그러십니까? 전방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만……”
“보이지 않는 덫이 깔려 있다. 교단 놈들이 안개 속의 은폐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상에 살포했어.”
칼리의 예측은 정확했다. 포구 진입로를 지키고 있던 태양교단 오크헤이븐 지부의 감시선 선장, 오스왈드는 만만한 적이 아니었다. 그는 이단 수배자가 안개를 이용해 침투할 것을 우려하여, 진입로 전역에 휘발성과 발광성이 극도로 강한 ‘인공 에테르 연료’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해 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순간, 오스왈드의 명령에 따라 교단 감시선들이 허공을 향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슝-! 콰아아앙!
하늘에서 터진 성광의 불꽃이 해수면에 닿는 순간, 바다 전체에 뿌려져 있던 인공 에테르 연료가 격렬하게 반응하며 눈부신 백색의 광막을 사방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안개 속에서 타오르는 인공 광원의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빛의 직진성을 극대화해 주변의 미세한 마력 흐름을 강제로 들춰내는 일종의 광학 탐지망이었다.
치이이이익-!
스타라이트 호 하부를 감싸고 있던 미세한 중력 은폐막이 인공 에테르의 강렬한 광원 파동과 충돌하며 푸른색 정전기 불꽃을 일으켰다. 중력의 인력선들이 급격하게 agitated(동요)되며, 소리 없이 미끄러지던 기함의 실루엣이 안개 속에서 유령처럼 선명하게 드러났다.
“찾았다! 저기 이단자의 배가 있다!”
오스왈드의 감시선 꼭대기에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와 함께 경보가 울려 퍼졌다.
“제길! 은폐가 찢어졌습니다!”
토비가 비명을 지르며 키를 꺾으려 했으나, 이미 늦어 있었다.
더욱 최악인 것은, 안개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교단 함대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붉은색 돛을 단 기괴한 형태의 대형 약탈선이 스타라이트 호의 좌현 안개 장막을 찢으며 기습적으로 튀어나왔다.
칼리의 신항로 독점을 시기하여 교단과 내통한 야비한 경쟁 해적선장, 레이몬드의 기함이었다.
“하하하! 눈먼 애송이 놈! 개릭을 처단했다고 우쭐대더니 제 발로 무덤에 기어 들어왔구나!”
레이몬드의 비열한 고함이 바다를 울렸다. 그의 기함 측면에 배치된 포문들이 일제히 붉은색 에테르 안광을 뿜어냈다.
콰아아앙-!
안개 속에서 예고도 없이 터져 나온 기습 포격.
칼리는 중력 궤적 예측을 통해 포탄의 궤적을 읽어냈으나, 부서진 좌현 난간과 엔진의 일시적 동력 저하로 인해 기함의 물리적 회피 반경이 턱없이 부족했다.
“우현으로 회전해, 토비! 충격에 대비해라!”
쿠구구구궁!
엄청난 질량의 에테르 포탄 한 발이 스타라이트 호의 좌현 돛대 하부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콰드득, 하는 비명 같은 목재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돛대가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갑판 위로 쓰러졌다.
“돛대가…… 부러졌습니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고 있어요!”
토비가 온 힘을 다해 키를 붙잡았지만, 돛대의 무게 중심이 무너지며 기함의 기동 속도가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배는 우현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채 물살에 쓸려가기 시작했다.
“엔진실 과부하 발열! 냉각관이 버티지 못해!”
전열관을 타고 소냐의 비명 섞인 경고가 들려왔다.
최악의 수세. 기동력을 상실한 채 교단 감시선들과 레이몬드 해적단의 완벽한 십자 포화 포위망 한가운데 가로막힌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저 멀리 오스왈드의 감시선과 레이몬드의 기함이 다시 한번 포문을 정렬하는 백색의 에테르 빛이 안개 속에서 번뜩였다. 2차 일제 포격이 격발된다면, 기동력을 잃은 스타라이트 호의 조타실은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 날 것이 뻔했다.
“선장님! 적들의 포탄이 옵니다! 피할 수가 없어요!”
토비가 절망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날아오는 포탄들의 묵직한 공기 찢는 소리가 칼리의 예민한 청각을 자극했다.
칼리는 천천히, 그러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은빛 중력 안대의 태엽 고리를 풀었다.
스르륵.
안대가 갑판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이 먼 소년 칼리의 닫혀 있던 양안이 마침내 열렸다. 초점이 없는 뿌연 눈동자 너머, 그의 안구 깊은 곳에서 찬란하고 신비로운 푸른 중력의 은하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3급 중력 항해사의 경지에 도달한 그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광역 공간 제어 기술.
‘날아오는 투사체의 질량과 속도, 그리고 바람의 마찰력 연산 완료.’
칼리의 뇌 세포가 극한의 속도로 회전하며, 전방 허공에 거대한 기하학적 중력 경사면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탄도 왜곡(彈道歪曲).”
칼리의 푸른 안광이 폭발적으로 뿜어지며, 스타라이트 호 전방의 대기가 기괴한 굴절을 일으키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