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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를 떠나는 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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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을 짓누르는 기사들의 발소리가 붉은 보관소의 밤을 피비린내 나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강철 갑옷이 맞부딪치는 육중한 금속음이 폐쇄된 보관소 내부의 대리석 벽면을 타고 기괴하게 공명했다.


“포위망을 좁혀라! 쥐새끼 한 마리도 살려 보내선 안 된다!”


정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위압적인 외침. 탈취한 고농축 인공 에테르 연료 실린더를 품에 안은 소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로이는 이미 공포에 질려 제자리에서 바들바들 떨며 장부를 쥔 손을 바들거렸다.


하지만 은빛 중력 안대를 쓴 칼리의 심박수는 여전히 분당 50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코와 입가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옷소매로 거칠게 닦아낸 칼리는 뇌내에 전개된 ‘중력 투시안(重力透視眼)’의 청색 그리드 지도를 빠르게 재연산했다.


‘중갑을 입은 기사들의 평균 질량은 무장을 포함해 120킬로그램 이상. 좁은 복도에서 이들이 전속력으로 돌격할 때 발생하는 관성 모멘트는 급격한 방향 전환을 허용하지 않는다. 기하학적 맹점은 언제나 과도한 질량의 뒤편에 존재한다.’


“로이, 소냐. 내 뒤를 바짝 따라와라. 보폭은 정확히 70센티미터로 고정해라.”


칼리는 오른손의 황동 결정화된 손가락으로 고대 황동 중력 망원경을 꽉 쥐었다. 뼛속을 태우는 듯한 결정화 통증이 어깨를 타고 뇌를 찔렀지만,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기사들이 정문을 부수고 쏟아져 들어오는 찰나, 칼리는 이들의 돌격 궤적을 3초 전에 읽어냈다. 그는 기사들의 무거운 관성을 역이용해, 그들이 지나치는 사각지대의 벽면에 몸을 밀착한 채 소리 없이 후문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후문 외곽의 어두운 골목길에는 무기 관리 선원 에릭이 대기시킨 마차가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선장님! 이쪽입니다!”


에릭의 나지막한 외침과 함께 칼리 일행은 탈취한 에테르 실린더 상자들을 마차 짐칸에 신속하게 던져 실었다. 마차는 밤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오크헤이븐 포구의 슬럼가 골목을 미친 듯이 질주했다. 지상 순찰대원들의 탐지망이 사방에서 붉은 빛을 뿜어냈지만, 칼리가 마차 하부의 중력을 미세하게 조절해 바퀴의 마찰 소음을 완전히 지워버린 덕분에 단 한 번의 조우도 없이 비밀 정박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박지 구석, 자욱한 안개 속에 숨겨진 스타라이트 호의 검은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칼리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에스더의 밀수선에 피신해 있던 양어머니 마리아와 어린 여동생 리나를 기함의 최하층 선창으로 신속하게 인도했다.


습하고 어두운 선창 내부. 마리아는 눈먼 아들의 거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칼리…… 내 아들아, 정말 무사했구나…….”


“어머니, 걱정하실 시간은 없습니다. 곧 배가 움직일 테니 이곳에서 절대 벗어나지 마십시오.”


그때, 깡마른 몸의 리나가 칼리의 황동 결정화된 오른손목을 꼭 잡았다. 10세 소녀의 가냘픈 손길이 굳어버린 금속성 피부에 닿는 순간, 칼리의 전신을 옥죄던 타는 듯한 결정화 통증이 기적적으로 정화되며 하얗게 씻겨 내려갔다. 리나가 지닌 극히 희귀한 ‘성광 순응 체질’의 마력이 칼리의 폭주하는 중력 회로를 일시적으로 안정시키는 세이프가드 역할을 한 것이다. 칼리는 오른팔의 마비가 완화되는 것을 느끼며 리나의 머리를 가만히 쓰러내렸다.


그러나 평화는 찰나에 불과했다. 갑판 위에서 소년 조타수 토비의 다급한 비명이 들려왔다.


“선장님! 큰일났습니다! 포구 입구가…… 입구가 완전히 막혔습니다!”


칼리는 신속하게 갑판 위로 올라갔다. 안대 너머로 망원경을 들어 포구 전방을 조준했다.


오크헤이븐 포구의 좁은 출구는 이미 겹겹이 봉쇄되어 있었다. 교단과 결탁해 이 구역의 패권을 노리던 해적선장 레이몬드의 붉은 돛 약탈선 2척이 스타라이트 호의 좌우를 포위하듯 밀착해 오고 있었고, 전방에는 교단의 철갑 감시선이 거대한 에테르 그물총의 포신을 번쩍이며 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개릭의 배를 훔친 눈먼 쥐새끼가 어디로 도망치려 하느냐!”


안개 너머에서 레이몬드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포구 전체를 울렸다.


“백병전 닻을 던져라! 배를 통째로 나포한다!”


콰아앙! 쾅!


레이몬드의 해적선들로부터 수십 개의 거대한 강철 갈고리와 쇠사슬 닻들이 쏟아져 내려 스타라이트 호의 갑판과 조타실 난간을 사정없이 찍어 내렸다. 해적들이 쇠사슬을 타고 갑판 위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적襲이다! 갑판을 사수해라!”


행동대장 한스가 거대한 무쇠 도끼를 휘두르며 가장 먼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의 도끼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기어오르던 해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다로 추락했다. 거구의 전사 그림 역시 묵직한 가시 쇠사슬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적들의 돌격 경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덩컨! 포격으로 적들의 추진부를 타격해라!”


갑판장 덩컨이 포수들을 통솔하며 함포를 조준하려 애썼다. 그러나 스타라이트 호는 이미 좌현 돛대가 파손되어 우현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상태였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파도와 선체의 불균형 속에서 덩컨이 발사한 포탄은 적 감시선의 상공을 허무하게 비껴가 안개 속 바다에 물기둥을 일으켰을 뿐이었다.


“제길! 선체가 너무 흔들려서 조준선이 잡히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전방의 교단 감시선 포구에서 눈부신 성광 화염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자랑하는 특제 에테르 그물총이 스타라이트 호의 돛을 통째로 묶어버리기 위해 발사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물이 발사되는 순간, 스타라이트 호는 꼼짝없이 포구에 갇혀 나포당할 운명이었다.


“선장님! 적들이 그물을 쏩니다! 이대로는 끝장이에요!”


토비가 키를 잡은 손을 벌벌 떨며 비명을 질렀다.


칼리는 차갑게 식어가는 오른손을 뻗어 망원경의 다이얼을 한계까지 돌렸다. 리나가 남겨준 마력의 여운 덕분에 그의 연산 회로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소냐, 엔진실로 내려가라.”


“칼리? 하지만 지금은 연료 배합을 조율할 시간이……”


“탈취해 온 고농축 인공 에테르 연료를 엔진에 직접 주입해라. 엔진 출력을 순간적으로 200%까지 과부하시켜라.”


소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미쳤어?! 이 정제되지 않은 연료를 그대로 부었다간 냉각관이 터져서 배가 통째로 폭사할 수도 있어!”


“내 계산은 틀리지 않는다, 소냐. 폭발하기 직전의 임시 에너지가 필요하다. 30초만 버티면 된다. 지금 당장 주입해라!”


칼리의 목소리에 서린 압도적인 수치적 확신과 이성적인 위압감에 소냐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엔진실 해치를 열고 미친 듯이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정확히 12초 뒤, 스타라이트 호의 심장부에서 웅웅거리는 굉음과 함께 폭발적인 푸른 불꽃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농축 에테르 연료가 엔진 내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방출하며 함선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엔진실 내부의 냉각 구리관 일부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가며 뜨거운 증기가 뿜어 나와 소냐의 손등에 가벼운 화상을 입혔지만, 기함의 동력 출력은 칼리의 계산대로 정확히 210%까지 치솟았다.


“출력 최대치 도달! 하지만 오래 못 버텨!”


스피킹 튜브를 통해 소냐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교단 감시선이 마침내 에테르 그물총을 격발했다. 눈부신 백색의 에테르 그물이 공중에서 거대한 거미줄처럼 펼쳐지며 스타라이트 호의 머리 위를 덮쳐왔다.


칼리는 안대를 쓴 채, 굳어버린 오른손가락을 기함의 용골 중앙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었다.


“유령선 무음 기동 (幽靈船機動), 최대 출력 전개.”


웅-!


스타라이트 호 하부 수면 전체에 푸른색 동심원의 중력 파동이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 폭발적인 엔진 에너지를 매개로 삼은 칼리의 중력 마력이 기함 전체의 물리적 질량을 순간적으로 0에 가깝게 비틀어버렸다.


수면과의 마찰 저항이 완전히 소멸했다. 물 위를 누르던 배의 무게가 완전히 사라진 순간, 스타라이트 호는 관성의 법칙을 완전히 초월했다.


피융-!


스타라이트 호는 마치 가벼운 깃털처럼, 하지만 폭발적인 추진력을 타고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솟구쳐 올랐다. 배가 공중으로 수십 미터를 도약하며 비행했다. 머리 위로 떨어지던 교단의 거대한 에테르 그물망은 질량을 잃고 솟구친 스타라이트 호의 선체 하부를 무력하게 스쳐 지나가며 허공에 떨어졌다.


“배…… 배가 날아오른다고?!”


레이몬드와 교단 경비병들이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지만, 칼리는 이미 그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스타라이트 호는 허공을 크게 가르며 봉쇄선 뒤편의 안전한 외해 수면 위로 부드럽게 안착했다. 물보라조차 일지 않는 완벽한 무음 기동이었다. 미끄러지듯 속도를 붙인 기함은 순식간에 오크헤이븐 포구의 봉쇄망을 완전히 따돌리고 자욱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포구를 탈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선원들이 믿을 수 없는 기적에 환호성을 지르며 칼리를 향해 경외감 어린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안개를 뚫고 그레이 고스트 해역의 어두운 외해로 진입한 바로 그 순간, 칼리의 오른손에 쥔 중력 망원경의 렌즈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칼리는 안대 너머로 감지되는 기괴하고 거대한 질량의 마력 파동에 숨을 들이켰다.


그들의 후방 밤안개 너머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거대 철갑 함대 실루엣들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단심문관 빅토르가 이끄는 제4추격 함대의 본진이었다. 스타라이트 호의 선체에 새겨진 붉은 이단 낙인 신호가 안개 속에서 불길하게 명멸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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