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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보관소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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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장 바스카가 보관소의 경비 병력을 두 배로 늘리고, 결계의 마력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고! 지금 그곳으로 들어가는 건 완벽한 자살 행위야!”


밀수 상인 잭이 숨을 헐떡이며 뱉어낸 경고가 지하 창고의 축축한 공기를 얼려버렸다. 낡은 에테르 가등의 주황빛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벽면에 엉겨 붙은 곰팡이 더미를 비추었다.


로이는 이빨을 딱딱 맞부딪치며 칼리의 코트 자락을 붙잡으려 했다. 그의 왜소한 체구가 공포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선장님, 제발 제 말을 들으십시오! 바스카 지부장의 직속 기사단은 우리가 상대했던 해적 놈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결계의 출력이 최대치라면 침투하는 순간 경보가 울리고 온몸이 에테르 전류에 타서 재가 될 겁니다!”


그러나 칼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은빛 중력 안대 아래 감긴 그의 양안에는 잭이 가져온 경보 소식도, 로이의 절박한 비명도 오직 하나의 차가운 수치적 데이터로 치환되고 있을 뿐이었다.


‘질량 보존의 법칙, 그리고 병력 총량의 법칙.’


칼리는 오른손의 황동 결정화된 손가락 끝으로 고대 황동 중력 망원경의 차가운 경통을 툭툭 두드렸다. 이미 감각을 상실해 굳어버린 세 손가락이 금속 마찰음을 냈다.


“잭, 바스카가 보관소의 경비를 두 배로 늘렸다면, 그 병력은 어디서 조달했겠지?”


“그…… 그야 포구 경비대와 수색선에서 차출했겠지. 갑자기 하늘에서 기사단이 떨어질 리는 없으니까.”


“바로 그겁니다.”


칼리의 입꼬리가 서늘하게 올라갔다.


“포구라는 닫힌 공간 내에서 교단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의 총량은 일정합니다. 보관소의 질량이 가중되었다는 것은, 역으로 우리 기함 스타라이트 호를 포위하고 있던 정박지 주변의 수색 병력 밀도가 그만큼 희석되었다는 뜻입니다. 저들의 방어선에 인지적 불균형이 발생한 겁니다.”


칼리는 바닥에 펼쳐진 양가죽 도면 위로 상체를 숙였다. 보이지 않는 눈 대신, 뇌내에 전개된 ‘중력 투시안(重力透視眼)’의 청색 그리드가 도면의 요철을 3D 입체 홀로그램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우리가 계획했던 4분 12초의 결계 재부팅 틈새는 변하지 않습니다. 결계의 출력이 최대화되었다는 것은 동력원이 전환되는 순간 발생하는 위상차의 진폭이 더 크고 격렬해진다는 뜻입니다. 틈새는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파고들기에 더 명확한 균열로 벌어졌습니다. 작전은 예정대로 강행합니다.”


칼리의 냉혹하리만큼 이성적인 분석에 소냐는 침을 삼켰다. 그녀는 만능 기계 태엽 렌치 ‘오토매틱’을 공구 벨트에 단단히 고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칼리의 계산이 맞다면 가볼 만해. 마비 가스 폭탄의 타이머 기어를 결계의 새로운 주파수 파동에 맞춰 재조율했어. 가자, 붉은 보관소로.”


***


오크헤이븐 포구의 밤은 짙은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레이 고스트 해역에서 밀려온 밤안개는 독성 소금기를 머금고 수면 위를 흐르며 교단의 에테르 서치라이트 불빛을 몽환적인 붉은 광막으로 흩트려 놓았다.


칼리와 소냐, 로이는 소리 없이 오크헤이븐 에테르 보관소의 후문 그늘 속으로 스며들었다.


보관소 외벽을 감싸고 있는 에테르 방어막이 최대 출력으로 가동되며 웅웅거리는 고주파 소음을 내뿜고 있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미세한 먼지들이 방어막에 닿는 순간 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


“로이, 지금이다. 기어가 맞물리는 소리에 집중해라.”


칼리가 낮게 속삭였다.


일몰 후의 에테르 배터리 전환 시간. 정확히 자정이 되는 순간, 보관소 벽면에 걸린 에테르 가등이 일시적으로 깜빡였다. 최대 출력으로 흐르던 방어막의 광학 그리드가 기하학적 균열을 일으키며 붕괴하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4분 12초. 카운트다운 시작.”


칼리의 명령과 동시에 로이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의 손에는 블랙 팽 선장실에서 훔쳐낸 구리 열쇠 뭉치가 쥐여 있었다. 로이는 뭉치 속에서 톱니 문양이 가장 복잡한 마스터 키를 찾아내어 보관소 후문의 3중 톱니 기어 자물쇠 구멍에 밀어 넣었다.


달칵, 사각.


로이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자물쇠 내부의 황동 기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밤안개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울렸다.


“첫 번째 기어 해제…… 제길, 두 번째 기어의 마찰 저항이 너무 강해요!”


“당황하지 마라, 로이. 기어의 회전 주기는 12초다. 네 심박수를 그 회전 템포에 일치시켜라. 쇠가 맞물리는 순간의 반동을 손끝의 관성으로 흘려보내.”


칼리가 안대 너머로 자물쇠 내부의 질량 밀도 변화를 투시하며 차분하게 지시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상대의 심리를 강제로 안정시키는 기묘한 수치적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로이는 침을 삼키며 칼리의 지시대로 호흡을 조절했다. 기어가 회전하는 찰나의 순간, 마스터 키를 사선으로 미세하게 비틀었다.


철컥! 철컥!


무거운 쇠문 내부에서 두 번의 둔탁한 파열음이 울리며 굳게 닫혀 있던 후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방어막이 완전히 재부팅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3분 20초.


“소냐.”


칼리의 수신호에 소냐가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가죽 배낭에서 특제 무소음 마비 가스 폭탄을 꺼내어 후문 안쪽으로 연결된 거대한 철제 환기구 틈새로 밀어 넣었다. 태엽 장치가 감기는 미세한 소리와 함께 폭탄의 밸브가 열렸다.


쉬이이이익-.


비릿하면서도 차가운 심해 이끼 향을 머금은 마비 가스가 환기구를 타고 내부 수용실과 경비실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가스의 질량 확산 속도는 초속 1.2미터. 칼리의 계산대로 정확히 18초 뒤, 내부에서 보초를 서던 경비병들이 무거운 판금 갑옷을 부딪치며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려왔다.


“내부 경비 무력화 완료. 진입한다.”


칼리 일행은 빠르게 보관소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보관소 내부의 공기는 고농축 인공 에테르 연료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오존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천장과 벽면을 따라 붉은색 마도 전선들이 혈관처럼 얽혀 있었고, 그 전선들이 모이는 중앙 제단 위에는 눈이 멀 것 같은 붉은 빛을 내뿜는 에테르 실린더 수십 개가 철제 거치대에 보관되어 있었다. 기함 스타라이트 호를 다시 가동하고도 남을 엄청난 양의 에너지 자원이었다.


“소냐, 에릭이 외곽에 대기시킨 마차로 이 실린더들을 신속하게 이송해라. 시간은 2분 남았다.”


“알았어!”


소냐가 렌치를 이용해 실린더 거치대의 잠금장치를 해제하려던 바로 그 순간.


웅-!


중앙 제단 밑바닥, 그들이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극미세 에테르 탐지 마법진이 붉은색 광막을 뿜어내며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바스카 지부장이 경비를 강화하며 바닥 타일 이면에 숨겨놓은 이중 탐지 장치였다.


“경보…… 작동!”


로이가 비명을 질렀다. 보관소 내부의 붉은색 가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고, 천장의 석조 들보가 열리며 굳건한 청동 재질의 마도 자동 화포 2문이 스르륵 내려왔다. 화포의 포신 끝에서 고농축 에테르 마력이 붉은색 스파크를 일으키며 격발 충전을 시작했다. 포구는 정확히 제단 중앙에 선 칼리와 소냐를 조준하고 있었다.


“소냐, 피해!”


로이가 뒤로 자빠지며 소리쳤다. 소냐가 수동으로 화포의 동력선을 끊으려 태엽 렌치를 던졌으나, 동력선은 이미 고강도 에테르 방어막으로 감싸여 있어 렌치가 튕겨 나가 버렸다. 화포의 충전율은 이미 80%를 넘어서고 있었다. 격발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초.


칼리는 피하지 않았다. 그의 은빛 중력 안대 표면에 기하학적인 중력 궤적 문양이 푸른색 홀로그램처럼 아른거렸다.


‘마도 화포의 격발 원리는 에테르 마력의 급격한 열팽창에 의존한다. 팽창하려는 에너지를 억누를 수 있는 유일한 물리 법칙은 오직 하나뿐이다.’


칼리는 오른손의 황동 결정화된 손가락을 뻗어 격발을 시작하려는 두 문의 화포 포신을 향해 겨누었다.


“에테르 과부하 저지 (過負荷沮止).”


웅-!


칼리의 손끝에서 방출된 압도적인 중력 파동이 화포 포신 내부의 격발 챔버 공간을 덮쳤다. 화포 내부의 공간 중력 밀도가 순간적으로 수십 배로 폭증했다.


에테르 가스가 폭발하며 부피를 팽창시키려던 찰나, 그 공간을 짓누르는 압도적인 하향 인력이 팽창하려는 에너지를 강제로 짓눌러 압축해 버렸다. 물리적 부피의 확장을 허용하지 않는 초고중력의 장벽이었다.


쿠구구구궁-!


화포 내부에서 격발된 파괴적인 마력이 밖으로 분출되지 못하고 내부에서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마력이 역류하며 화포의 황동 기어들과 내부 톱니 장치들이 엄청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기괴하게 뒤틀리며 으스러졌다.


퍼엉! 펑!


두 문의 자동 화포는 연기를 내뿜으며 스스로의 질량에 짓눌려 천장에서 뜯겨 나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완벽한 무력화였다.


“하아…… 하아……”


칼리의 코와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초고밀도의 에테르 팽창력을 중력으로 강제 억누른 대가는 참혹했다. 그의 오른팔을 타고 흐르는 전신 결정화의 저주 통증이 뼛속을 불태우는 듯한 작열통으로 번져갔다. 칼리는 이빨을 악물고 신음을 삼켰다.


“로이…… 멍하니 있지 마라. 금고를 열어라.”


칼리의 차가운 다그침에 정신을 차린 로이가 제단 뒤편의 이중 벽으로 달려갔다. 그는 마스터 키를 이용해 비밀 벽면의 태엽을 해제하고, 안쪽에 숨겨진 바스카 지부장의 철제 금고를 열어젖혔다.


금고 안쪽 깊은 곳, 은실로 수놓아진 양가죽 장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크헤이븐의 지배자 바스카가 가난한 민중들의 생명줄인 에테르를 밀수업자들에게 빼돌려 부를 축적한 추악한 부패 내역이 고스란히 적힌 비밀 비자금 장부였다.


“찾았습니다! 장부를 확보했습니다!”


로이가 장부를 품에 안고 소리쳤다. 소냐 역시 마지막 에테르 연료 실린더를 마차에 싣고 가동실 문을 닫았다.


모든 전리품을 확보하고 탈출하려던 바로 그 순간.


철컥! 철컥! 콰르릉-!


보관소 정문 너머 밤안개를 뚫고, 수십 명의 교단 기사단이 횃불을 밝히며 몰려오는 묵직한 강철 갑옷의 소음과 군화 소리가 보관소의 대리석 바닥을 뒤흔들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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