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소 습격의 설계
기함이 포위당했다는 것은, 그들이 오크헤이븐 포구를 영원히 탈출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선고나 다름없었다.
바르톨로의 지하 식료품 창고는 무겁고 차가운 침묵에 잠겼다. 썩은 감자 더미에서 풍겨 나오는 둔탁한 흙냄새와 소금에 절인 청어의 비린내가 사방의 축축한 석벽 사이에 엉겨 붙어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낡은 에테르 가등은 연료가 다해 가는지 간헐적으로 파르르 떨리며 흐릿한 주황빛을 내뿜었다.
“포위라니…….”
마크가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읊조렸다. 그의 억센 손이 쇠사슬 석궁의 개머리판을 꽉 쥐었다. 지상에서 하수구를 뚫고 이곳까지 가족들을 업고 오느라 그의 전신은 땀과 오물로 젖어 있었고, 거친 호흡이 멈추지 않았다. 그 옆에서 마리아는 리나를 품에 꼭 안은 채 창고 구석의 낡은 오크통 뒤에 몸을 웅크렸다. 리나는 오빠의 안색을 살피며 숨을 죽였다.
칼리는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의 은빛 중력 안대 아래 감긴 양안은 지독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 ‘중력 투시안(重力透視眼)’이 그려내는 파란색 그리드 지도는 창고 내부의 모든 물리적 구조를 완벽하게 재구성하고 있었다. 바르톨로의 거대한 질량 분포, 소냐의 초조하게 떨리는 심장 박동의 진동 주파수, 그리고 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로이의 왜소한 실루엣까지.
“바스카 지부장의 철갑 수색선 2척이라.”
칼리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심박수는 정확히 분당 50회. 성좌 수호자의 계율에 따라 강제 제어되는 평정심이었다.
“예, 선장님.”
창고 구석의 그림자 속에서 소냐가 걸어 나왔다. 그녀의 헝클어진 갈색 머리칼에는 검은 기름때와 하수구의 진흙이 묻어 있었고, 가죽 멜빵바지 주머니에 꽂힌 만능 기계 태엽 렌치 ‘오토매틱’이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짤랑거리는 금속성을 냈다. 소냐의 안색은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게 창백했다.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나빠. 수색선들이 정박지 입구를 봉쇄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스타라이트 호의 자체 내구도야. 지난번 탈출 기동과 하수구 붕괴 여파로 기함의 외장 장갑 부식이 심각해. 게다가…….”
소냐가 이빨을 아랫입술로 지그시 깨물며 말을 흐렸다.
“기함의 고농축 인공 에테르 연료가 이제 10%도 남지 않았어. 이 상태로는 엔진을 가동해 포구 외곽의 에테르 그물망을 들이받는 순간, 마력 역류로 엔진실이 통째로 폭사할 거야. 장기 항해는커녕, 포구를 벗어나는 것조차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자원의 고갈. 그리고 기함의 파손.
이 가혹한 해양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연료가 없는 함선은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목조 무덤에 불과했다.
“방법은 하나뿐이군.”
칼리가 손을 뻗어 코트 안 품속에서 고대 황동 중력 망원경을 꺼냈다. 굳어버린 오른손가락 세 개가 무겁고 차가운 황동 표면에 닿았다. 손가락 끝의 세포들이 단단한 황동 결정으로 변해 감각을 상실한 지 오래였지만, 그 금속성 회로를 통해 흐르는 미세한 중력의 파동만큼은 누구보다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포구를 완전히 떠나기 전, 교단이 독점하고 있는 에테르 연료를 강탈한다.”
“강탈이라니! 미쳤습니까?”
창고 어둠 속에서 쥐 같은 인상을 한 청년이 비명을 지르듯 속삭였다. 전직 개릭의 심복이자, 지금은 칼리의 지략에 굴복해 내부 정보원으로 포섭된 로이였다. 그는 얄상한 체구를 떨며 칼리에게 다가왔다.
“오크헤이븐 에테르 보관소(오크헤이븐 에테르 보관소)는 단순한 창고가 아닙니다! 바스카 지부장의 직속 정예 경비병들이 24시간 삼엄하게 보초를 서고 있고, 외곽은 교단이 자랑하는 고강도 에테르 마법 방어막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요. 개미 한 마리도 마력 탐지망을 피하지 못하고 타 죽는 철옹성이라고요!”
로이는 품속에서 마른 침을 삼키며 낡은 서류 뭉치를 꺼냈다. 그가 과거 보관소의 하층 노역수로 부역하던 시절, 은밀히 머릿속에 기록해 두었다가 양가죽 위에 모사해 둔 보관소의 내부 도면과 기어 잠금장치 구조도였다.
“차라리 경비병 몇 명을 매수하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아는 녀석들 중에 돈 몇 푼 쥐여주면 눈감아줄 놈들이…….”
“안 된다.”
칼리가 단호하게 가로막았다.
“그 보관소의 경비대는 경비대장 해리스의 직속 부대다. 우리가 성당 지하에서 해리스의 무릎 뼈를 박살 내고 그의 부하들을 암전 속에서 궤멸시켰다. 지금 그들은 극도의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외지인의 그 어떤 접근도 즉시 이단으로 규정해 사살할 거다. 매수라는 불확실한 변수에 우리의 생존율을 걸 수 없다. 우리는 저들의 인지적 공백을 뚫고, 완벽한 물리적 틈새를 공략한다.”
칼리는 로이가 바닥에 펼쳐놓은 양가죽 도면 앞으로 다가갔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였지만, 오른손의 황동 손가락 끝을 도면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손가락 끝의 금속 비늘들이 양가죽 위에 잉크로 그려진 미세한 요철과 질량 밀도의 차이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뇌내의 중력 투시안이 도면의 선들을 파란색 3D 입체 홀로그램으로 재구성해 내자, 보관소의 내부 기하학적 구조가 칼리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로이, 이 도면 중앙에 표시된 이중 태엽 잠금장치의 기어비는 어떻게 되지?”
칼리의 질문에 로이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장님이 도면을 만지는 것만으로 구조를 파악하는 광경에 소름 끼치는 경외감을 느낀 탓이었다.
“그…… 그게, 중앙 잠금장치는 세 개의 거대 황동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교단 사제들이 매일 일몰 직후 고농축 에테르 연료통을 입고할 때만 특수 열쇠로 기어를 회전시켜 방어막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우회시킵니다. 기어가 한 바퀴 회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12초입니다.”
“기어비가 12초라.”
칼리의 머릿속 연산 회로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구의 천문지도학자 한준우로서 가졌던 정밀한 궤도 역학 공식과 시간 최적화 수학 공식들이 이 세계의 뒤틀린 마도 법칙 위에 대입되었다.
‘방어막의 동력원은 고대 에테르 전지의 흐름을 기반으로 한다. 전자기적 결계와 중력적 결계는 질량의 흐름이라는 물리적 상수를 공유하지. 동력원이 교체되거나 기어가 회전하는 순간에는, 결계의 기하학적 대칭성이 일시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
칼리는 손가락을 미세하게 튕기며 연산 결과를 도출해 냈다.
“보관소의 경비 교대 주기는 매 4시간마다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교대 시간은 일몰 후 에테르 연료가 입고되는 시간과 정확히 겹치지. 로이, 경비병들이 교대할 때 마법 방어막의 동력 배터리가 1차에서 2차 backup으로 물리적으로 전환되는 순간이 있을 거다.”
“예? 아, 맞습니다! 배터리를 교체할 때 보관소 벽면의 에테르 가등이 일시적으로 깜빡거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단 몇 분에 불과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는 건 물리적으로…….”
“단 몇 분이 아니다.”
칼리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
“정확히 252초. 즉, 4분 12초다.”
“4분…… 12초요?”
로이와 소냐의 눈동자가 동시에 크게 흔들렸다. 소냐는 칼리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칼리, 그게 정말이야? 어떻게 그런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는 거지?”
“성궤 작도 기하학(성궤 작도 기하학)의 연산 결과다.”
칼리는 머릿속 그리드 지도를 가리키듯 허공에 손가락으로 가상의 타원 궤도를 그렸다. 그의 안대 너머 감긴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중 태엽 기어가 회전하며 방어막의 마력 흐름을 우회시킬 때 발생하는 마찰 저항, 그리고 배터리가 전환되며 발생하는 에테르 진동의 감쇄 상수를 대입하면 결계의 대칭성이 완벽하게 붕괴하는 ‘영점(Zero Point)’이 도출된다. 이 4분 12초 동안은 보관소 외곽의 마력 탐지망과 자동 방어 화포들이 완벽하게 무력화된다. 물리적인 전원 재부팅 시간이지. 이 시간 동안 우리는 보관소 내부로 침투해 고농축 에테르 연료를 탈취하고 빠져나와야 한다.”
4분 12초.
그것은 철옹성 같던 교단의 요새에 존재하는 유일한 기하학적 균열이자,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적 틈새였다.
소냐는 칼리의 이 차갑고 정교한 연산력에 다시 한번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기연이나 신비로운 마법의 힘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물리적 수치와 역학적 공식을 대입해 교단의 무적 같은 방어 체계를 해체해 버리는 지적 초월성이었다.
“믿을 수 없어…….”
소냐가 나지막이 감탄을 터뜨렸다.
“교단의 고위 사제들도 이 방어막의 재부팅 시간 결함을 알지 못할 거야. 그들은 그저 마법의 신비함 뒤에 숨어 있을 뿐이니까. 칼리, 네 계산이 맞다면 이건 완벽한 기회야. 내가 그 4분 12초 동안 경비병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묶어둘 특제 무소음 마비 가스 폭탄을 만들 수 있어.”
소냐는 즉시 창고 구석의 작업대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가죽 가방을 열고 정밀 태엽 기어들과 화학 약병들을 꺼내 놓았다.
“마비 가스의 확산 속도는 초속 1.2미터. 보관소 내부 환기구의 중력 흐름을 이용하면 18초 내에 내부 경비병들을 소리 없이 잠재울 수 있어. 칼리가 도출해 준 4분 12초의 타이머 기어에 맞춰 폭탄의 태엽을 조율할게.”
소냐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렌치와 청동 드라이버가 맞물려 돌아가며 규칙적이고 정교한 기계음이 창고 내부에 울려 퍼졌다.
칼리는 가만히 벽에 기대어 섰다. 머릿속의 복잡한 기하학적 연산을 유지하느라 관자놀이에 극심한 두통이 몰려왔다. 게다가 오른팔 전체를 타고 흐르는 차가운 오한은 그의 뼛속 세포들이 서서히 황동 결정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였다. 칼리는 이빨을 악물고 통증을 영혼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아직 쓰러질 때가 아니었다.
“로이.”
칼리가 어둠 속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관소 깊은 곳, 이중 벽 안쪽에 바스카 지부장의 개인 비밀 금고가 존재할 거다. 바르톨로가 준 지도에 표시된 위치와 정확히 일치하지. 연료를 챙기는 동안, 너는 그 금고를 열어 바스카의 비자금 장부를 확보해라.”
“비자금 장부요? 그건 왜…….”
“바스카가 가난한 민중들에게 공급해야 할 저가 에테르 연료를 밀수 조합에 빼돌려 부를 축적했다는 물리적 증거가 필요하다. 그 장부는 향후 교단의 종교적 도덕성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포구의 민중들을 우리의 강력한 우군으로 만들 유일한 정치적 무기가 될 거다.”
로이는 칼리의 원대한 설계에 완전히 압도당한 채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강도질이 아니었다. 연료를 얻는 동시에 교단의 심장부에 치명적인 독을 주입하려는 완벽한 복수극의 설계였다.
작전의 모든 퍼즐이 기하학적으로 맞물려 완성되어 가던 바로 그 순간.
탁, 탁-탁, 탁.
지하 창고의 무거운 나무 해치 너머로 은밀하고 규칙적인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신호였다.
창고 안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팽팽하게 얼어붙었다. 바르톨로는 즉시 묵직한 청동 국자를 곤봉처럼 쥐고 문 앞으로 다가갔고, 마크는 쇠사슬 석궁의 조준선을 해치를 향해 고정했다. 로이는 비명을 지르려던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오크통 뒤로 숨었다. 소냐 역시 조율 중이던 마비 폭탄의 기어를 멈춘 채 칼리의 뒤로 물러섰다.
칼리는 안대 아래 감긴 눈을 미세하게 가늘게 떴다. 중력 투시안의 그리드 지도 위로, 해치 너머에 서 있는 인물의 질량 밀도와 체내 마력 파동이 선명하게 투사되었다. 익숙한 파동이었다. 값비싼 타르 담배 향과 바닷바람의 짠내가 섞인 냄새가 해치 틈새로 미세하게 스며들었다.
“경계를 풀어라. 아군이다.”
칼리의 차가운 지시와 함께 바르톨로가 조심스럽게 해치의 빗장을 풀었다.
해치가 거칠게 열리며, 짙은 밤안개와 함께 비에 젖은 가죽 코트를 걸친 사내가 헐떡거리며 창고 내부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그레이 고스트 해역의 영리한 정보상이자 밀수업자, 잭이었다. 그의 한쪽 안대 아래 드러난 얼굴은 땀과 빗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칼리…… 제길, 작전을 당장 중단해야 해!”
잭이 숨을 몰아쉬며 칼리의 코트 깃을 붙잡으려 했다. 마크가 석궁 끝을 그의 목덜미에 겨누자, 잭은 두 손을 번쩍 들면서도 다급하게 소리쳤다.
“바스카 지부장이 눈치를 챘어! 오늘 밤부터 에테르 보관소의 경비 병력을 두 배로 늘리고, 결계의 마력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고! 지금 그곳으로 들어가는 건 완벽한 자살 행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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