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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항구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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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이 대기를 찢는 비명 소리가 안개 낀 바다를 가르며 조타실 창문으로 들이쳤다.


붉은색 에테르 안광을 뿜어내며 날아오는 포탄은 총 일곱 발. 레이몬드의 기함과 교단 감시선이 뿜어낸 2차 일제 사격이었다. 좌현 돛대가 부러져 우현으로 심하게 기운 스타라이트 호의 물리적 기동력으로는 저 죽음의 궤적에서 벗어날 확률이 0%에 수렴했다.


“선장님! 포탄이 옵니다! 피할 수가 없어요!”


토비가 조타 키를 움켜쥔 채 절망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돛대가 쓰러진 탓에 키를 돌려도 배는 무겁게 물살에 끌려갈 뿐이었다.


하지만 칼리의 심박수는 여전히 분당 50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안대를 벗어던진 그의 양안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중력의 법칙을 관장하는 푸른 은하의 광륜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눈먼 소년 칼리의 시야는 암흑이었으나, 현대 한국의 천문지도학자 한준우의 영혼이 각성시킨 중력 투시안(重力透視眼)의 뇌내 지도 위에서는 날아오는 포탄들의 물리적 데이터가 소수점 단위까지 실시간으로 연산되고 있었다.


‘포탄 질량 각 45킬로그램. 전진 속도 초속 85미터. 대기 마찰 계수 0.12. 탄도 궤적, 조타실 중심부로 집중.’


피할 수 없다면, 궤적 자체를 비튼다.


칼리는 오른손에 쥔 고대 황동 중력 망원경의 경통을 마비된 손가락으로 굳게 쥐었다. 손가락 세 개가 황동 결정으로 변해 감각이 없었지만, 영혼의 밀도를 망원경의 렌즈와 동기화시키는 감각만큼은 오히려 선명했다.


“탄도 왜곡(彈道歪曲).”


칼리의 양안에서 푸른 안광이 폭발적으로 방출되었다. 스타라이트 호 전방 15미터 허공의 공간 밀도가 기괴하게 압축되며, 가상의 중력 경사면이 기하학적 곡선을 그리며 형성되었다.


키이이이이잉-!


공기가 찌그러지는 듯한 기괴한 고음이 바다를 울렸다.


그 순간, 조타실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오던 일곱 발의 에테르 포탄들이 가상의 중력 경사면과 충돌했다. 물리적 관성의 법칙에 따라 직진해야 할 포탄들이, 칼리가 설계한 공간의 인력 곡선을 따라 사선으로 미끄러지듯 궤적을 급격히 꺾었다.


쉬이이이익-!


포탄들은 스타라이트 호의 조타실 바로 옆 스치듯 지나쳐, 좌현 안개 속에서 고속으로 추격해 오던 레이몬드의 기함을 향해 역으로 돌진했다.


“뭐, 뭐야?! 포탄이 휘어지잖아?!”


레이몬드의 기함 갑판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궤도가 뒤틀린 일곱 발의 포탄 중 세 발이 레이몬드 기함의 화약고와 우현 흘수선을 정확히 타격했다.


쾅! 콰콰콰콰쾅-!


거대한 불꽃이 안개 장막을 붉게 찢어발기며 솟구쳤다. 자신의 포탄에 스스로 꿰뚫린 레이몬드의 기함은 처참한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반파되어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교단의 감시선들 역시 예상치 못한 아군의 전멸과 중력 왜곡 현상에 경악하여 일시적으로 포격을 멈추고 거리를 벌렸다.


“지금이다. 토비, 우현 12도로 물길을 잡아라. 유령선 무음 기동으로 포구 외곽의 비밀 암초 지대로 진입한다.”


칼리는 차갑게 식어가는 오른손을 옷자락에 숨기며 바닥에 떨어진 은빛 중력 안대를 주워 다시 착용했다. 쓸모없는 빛 노이즈가 차단되자 뇌 세포의 과부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스타라이트 호는 부러진 돛대를 끌며, 교단 감시선들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포구 외곽의 험난한 암초 지대인 ‘맹인의 바위’ 그늘 속으로 유령처럼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적들이 감히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하는 천혜의 요새였다.


***


깊은 밤, 오크헤이븐 포구의 변두리 슬럼가.


칼리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 기함의 경비병 마크와 함께 소리 없이 부두의 음영 지대로 발을 디뎠다. 배는 안전하게 숨겼으나, 교단의 손길이 양어머니 마리아와 여동생 리나에게 닿기 전에 그들을 빼내야 했다.


포구의 밤은 숨이 막힐 정도로 어둡고 매캐했다.


가난한 하류층 민중들은 교단이 독점하는 값비싼 인공 에테르 연료를 살 돈이 없었다. 그들이 어둠을 밝히기 위해 태우는 것은 연안에서 사냥된 하급 괴수들의 비계에서 짠 ‘해수 괴수의 기름’이었다.


치이익, 타오르는 삼류 등잔불마다 지독한 악취와 함께 검은 독성 그을음이 뿜어져 나왔다.


칼리는 안대 너머 중력 투시안으로 부두 주변을 걷고 있는 하역 노동자들의 실태를 관찰했다. 그들의 안구는 기름 연기에 장기간 노출되어 허옇게 흐려져 있었고, 폐와 관절 부위의 질량 밀도가 기괴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교단이 공급하는 인공 에테르의 독성과 괴수 기름의 부작용이 그들을 서서히 눈먼 송장으로 만들고 있는 비참한 현실이었다.


“이봐, 거기 눈먼 장님이 왜 돌아다니는 거야? 통행증을 내놔!”


저 멀리서 교단 문장이 새겨진 은빛 판금 갑옷을 입은 경비병들의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마크가 소리 없이 석궁의 시위를 당기려 하자, 칼리가 그의 어깨를 짚어 제지했다.


그때, 음영 속에서 낡은 사제복을 입은 온화한 인상의 노신사가 나타나 칼리의 팔을 끌어당겼다. 온건파 사제, 바스케스 신부였다.


“이쪽으로 오게, 칼리. 경비대장 해리스가 자네의 가족을 미끼로 삼으려 군대를 움직이고 있네. 시간이 없네.”


바스케스 신부는 그들을 성당 지하의 비밀 통로로 안내했다. 곰팡이 냄새가 자욱한 석조 통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자, 마침내 낡은 목조 문 너머로 촛불이 아른거리는 성당 지하 기도실이 나타났다.


“엄마……! 오빠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문이 열리자마자 깡마른 체구의 어린 소녀가 비틀거리며 달려와 칼리의 허리를 꼭 안았다. 여동생 리나였다. 그 뒤로 생선 염장독에 절어 부르튼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마리아가 눈물을 흘리며 다가왔.


“칼리…… 내 아들아, 정말 살아 있었구나! 장님이 된 너를 바다에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이 어미의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마리아는 칼리의 얼굴을 거친 손으로 쓸어내리며 오열했다. 칼리는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비록 빙의된 영혼이었지만, 육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는 한준우의 차가운 이성을 부드럽게 녹여내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이제 제가 구하러 왔습니다.”


칼리는 리나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나 리나가 오빠의 손을 잡는 순간, 깜짝 놀라며 손을 멈췄다.


“오빠…… 손이 왜 이렇게 딱딱해? 차가운 쇠 같아……”


리나의 작은 손가락이 황동 결정으로 변해버린 칼리의 세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리나의 손끝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은빛 성광 마력이 흘러나와 칼리의 손가락으로 스며들었다. 망원경을 과도하게 가동하여 어깨뼈까지 타오르던 극심한 결정화 작열통과 전신 마비의 오한이, 거짓말처럼 하얗게 씻겨 내려가며 감각이 일시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건…… 성광 순응 체질(星光順應體質)?’


칼리는 내면에서 전율했다. 리나의 신체에 잠재된 마력은 고대 성좌의 에너지를 아무런 거부 반응 없이 수용하고 정화할 수 있는 극히 희귀한 체질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찰나에 불과했다.


리나의 몸에서 방출된 순수한 성광 마력의 파동이 성당 벽면에 은밀히 설치되어 있던 교단의 에테르 정밀 탐지 마법진에 닿는 순간.


위이이이이이잉-!


성당 전체를 뒤흔드는 날카로운 경보음과 함께, 벽면의 마법진들이 일제히 불길한 붉은빛을 뿜어내며 광폭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위치가 탄로 난 것이다.


“제길, 함정이었나!”


마크가 급히 석궁을 장전하며 외쳤고, 바스케스 신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쿵-! 쾅!


성당 상부의 육중한 참나무 정문이 거대한 충격파에 의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자욱한 먼지 폭풍을 헤치고, 교단의 문장이 새겨진 은빛 판금 갑옷을 입은 거구의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한 손에는 에테르 전류가 흐르는 가죽 채찍을 쥐고, 허리춤에는 뇌물로 가득 찬 무거운 주머니를 찬 사내.


바스카 지부장의 현상금을 노리고 마리아와 리나를 인질로 잡아 칼리를 유인하려 했던 오크헤이븐의 부패한 경비대장, 해리스였다.


그의 뒤로 은빛 갑옷을 입은 정예 경비병 20명이 장창을 겨눈 채 지하 기도실을 겹겹이 포위하며 침입했다. 해리스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채찍 끝을 마리아의 목덜미에 슬그머니 겨누었다.


“결국 쥐새끼처럼 기어 들어왔구나, 이단자 칼리 델라크루아. 순순히 그 황동 망원경을 넘기고 투항해라. 그렇지 않으면 네 눈앞에서 이 천한 모녀의 목을 가차 없이 쳐버릴 테니까.”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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