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조된 마녀
수요일 밤 23시. 서울의 변두리, 낡은 연립주택의 작은 방에는 서늘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하은수는 책상 위에 놓인 아버지가 남긴 가죽 장정 형법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병실에서 한상우 교사의 피 묻은 손을 마주했던 기억이 아직도 가슴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적인 분노는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덫이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제 그녀가 쥘 무기는 칼이 아닌, 철저하고 차가운 법과 증거뿐이었다.
같은 시각,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 안. 어두운 방안을 밝히는 것은 오직 태블릿 PC의 청색광뿐이었다. 박한별의 지능적 책사이자 여론 조작의 대가인 강다혜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안경 너머로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기괴한 흥분감이 서려 있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기계적으로, 그리고 잔인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은수, 감히 우리를 건드려? 네가 어떤 지옥에서 왔는지 전교생에게 똑똑히 보여줄게.’
다혜는 다중 익명 계정과 IP 우회용 VPN 프로그램을 활성화했다. 서송고등학교 학생들이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익명 커뮤니티와 교내 대나무숲에 하나의 글이 업로드되었다. 제목은 자극적이었다. [서송고 전학생 하은수의 추악한 이중생활: 살인자 아비와 학폭의 피].
글의 내용은 정교하게 날조되어 있었다. 은수가 이전 학교에서 악랄하게 약자들을 괴롭히다 강제 전학을 당했다는 가짜 학폭위 처분 문서의 이미지 파일이 첨부되었고, 그녀의 아버지가 과거 대형 건설 사기 행각을 벌이다 뇌물 수수 혐의가 폭로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파렴치한 범죄자라는 자극적인 찌라시가 사실인 양 서술되어 있었다. 한 번 퍼지기 시작한 거짓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겉잡을 수 없이 증식하기 시작했다.
***
새벽 01시. 임도윤의 옥탑방 기지에서는 모니터의 경고음이 날카롭게 울리고 있었다. 컴퓨터실 내부 트래픽이 폭증하며 서송고 인트라넷이 요동치는 것을 감지한 도윤은 즉시 발송 IP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우회 경로가 필터링을 거치며 좁혀졌다. 도윤은 폰을 들어 은수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누나, 지금 학교 익명 게시판이랑 대나무숲에 누나 저격 글이 퍼지고 있어. 완전히 날조된 가짜 뉴스야. 지울까? 내가 지금 당장 서버 해킹해서 글 내릴 수 있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은수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아니, 도윤아. 그냥 둬.”
“뭐? 그냥 두라고? 지금 전교에 누나가 학폭 주동자에 사기꾼 딸이라고 소문이 다 나고 있어! 이대로 두면 내일 학교에서 누나는 완전히 매장당해!”
“지우면 가다혜는 다른 계정으로 또 올릴 거야.” 은수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 “가다혜가 가진 모든 다중 계정을 스스로 다 쓰게 만들어야 해. 그래야 그 계정들의 로그인 로그와 기기 고유 맥 주소(MAC Address)를 한 번에 따낼 수 있어. 꼬리를 완벽히 잡을 때까지, 폭풍이 지나가게 내버려 둬.”
도윤은 은수의 냉정함에 소름이 돋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강다혜의 태블릿 PC 보안망을 해킹하기 위한 백도어 스크립트를 조용히 심기 시작했다.
***
목요일 아침 07시 40분. 은수의 등굣길은 평소보다 훨씬 추웠다.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사방에서 들이치는 시선이 피부를 찔렀다. 서송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스마트폰 화면과 은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노골적으로 수군거렸다.
“야, 쟤 맞지? 인터넷에 올라온 살인자 딸년.”
“이전 학교에서도 일진 대가리였다며? 겉으로는 얌전한 척하더니 진짜 소름 돋는다.”
은수는 낡은 백팩의 형법전 펜던트를 꽉 쥔 채 앞만 바라보았다. 오른손 등의 찰과상 흉터가 미세하게 아려왔지만,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자, 사이버 불링 가담자인 조아라의 유튜브 채널 ‘아라TV’의 실시간 라이브 스트리밍 알림이 떠 있었다. [충격 폭로! 서송고 전학생의 가면을 벗겨드립니다]라는 타이틀 아래, 은수의 과거 전학 기록을 악의적으로 짜깁기한 영상이 실시간으로 조회수를 올리고 있었다. 디지털 공간의 오염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학교 정문을 지나 교실로 향하는 복도는 거대한 가시밭길 같았다. 학생들이 은수가 지나갈 때마다 홍해 갈라지듯 양옆으로 물러서며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은수는 묵묵히 걸어 2학년 3반 교실 문을 열었다.
순간, 교실 안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어졌다.
은수는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다 멈춰 섰다. 참혹한 교실 풍경이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은수의 책상과 의자는 온통 끈적하고 붉은색 래커 칠로 뒤덮여 있었다. 래커는 아직 마르지 않아 바닥으로 피처럼 붉은 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책상 전면에는 삐뚤빼뚤하고 폭력적인 필체로 욕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살인자의 딸], [일진 쓰레기], [당장 전학 가라].
교실 안의 공기는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박한별은 자신의 자리에서 딸기 우유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이 더러운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한 가식적인 방관의 태도였다. 그 옆에서 강다혜는 태블릿 PC를 두드리며 은수를 향해 비열한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짝꿍 정아름이 울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이건 너무하잖아…… 아무리 소문이 그래도 어떻게 교실에서 이런 짓을……”
그러나 아름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교 1등 서지혜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정아름, 너도 저 살인자 딸년이랑 한패야? 입 조심해. 같이 쓰레기 취급당하고 매장당하기 싫으면 얌전히 앉아 있어.”
지혜의 서슬 퍼런 협박에 아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름은 은수를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결국 주위의 차가운 시선에 굴복해 고개를 숙인 채 책상에 엎드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교실 안에서 은수의 편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완벽한 고립이었다.
그때, 교실 뒷문이 거칠게 열리며 선도부 완장을 찬 선도부장 임수아가 부원들을 대동하고 걸어 들어왔다. 수아의 얼굴에는 원칙주의자다운 단호함과 동시에, 이사장의 외압에 밀려 움직여야 하는 미세한 고뇌가 서려 있었다.
“하은수.” 임수아가 은수의 앞에 서며 차갑게 말했다. “현재 인터넷과 학내에 네 과거 폭력 이력 및 교내 안전을 위협하는 물품을 소지하고 있다는 심각한 제보가 접수되었다. 교칙 제12조에 의거해 즉시 네 사물함과 가방을 무단 수색하겠다. 열어라.”
은수는 붉은 래커가 뚝뚝 떨어지는 책상 앞에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임수아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은수의 목소리는 교실 안의 정적을 깨뜨리며 맑고 차갑게 울려 퍼졌다.
“선도부장님. 대한민국 초중등교육법 제20조의4 및 서송고 학정 규정 제15조에 따르면, 학생의 명백한 범죄 혐의가 법적으로 입증되거나 타인의 신체에 즉각적인 위해를 가할 우려가 없는 한, 교직원이나 학생회 임원이 단독으로 학생의 개인 사물함과 소지품을 무단 수색하는 것은 영장 없는 불법 수색이자 심각한 사생활 침해입니다. 지금 진행하시려는 강제 수색이 학생회장 강민우의 독단입니까, 아니면 이사회의 공식 행정 명령입니까?”
임수아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열일곱 살의 여고생이 이 삼엄한 마녀사냥의 한복판에서 교육법 조항을 완벽히 인용하며 자신을 논리적으로 압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탓이다. 수아가 들고 있던 클립보드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건 학내 안전을 위한 정당한 선도 조치다.” 수아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절차를 무시한 조치는 선도가 아니라 권력 남용입니다.” 은수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만약 합법적인 절차와 교사의 동석 없이 제 사물함을 강제로 뜯으신다면, 저는 즉시 이 현장을 녹취하여 교육청과 경찰에 직권남용 및 불법 수색으로 정식 고발하겠습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교실 안의 공기가 비명이라도 지를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박한별의 얼굴에서 가식적인 미소가 미세하게 굳어졌다.
그 순간, 교실 벽면에 설치된 스피커가 칙 하는 소음과 함께 켜졌다. 교감 김성진의 기름지고 무거운 목소리가 전교에 울려 퍼졌다.
[알린다. 2학년 3반 하은수 학생은 즉시 교무실로 내려오도록. 아울러, 하은수 학생의 교내 소란 및 과거 폭력 이력에 따른 강제 전학 처분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 선도위원회를 내일 오전 개최하겠다.]
스피커가 꺼지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은수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십 개의 잔인한 시선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가해자들이 파놓은 살벌한 덫이 마침내 그녀의 목을 움켜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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