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거짓말 탐지기
본관 2층 구석 화장실의 낡은 유리문 너머로 비친 김우진의 서늘한 실루엣은 공기를 단숨에 얼려버렸다. 노란색 플라스틱으로 된 ‘청소 중’ 표지판이 문고리에 걸리는 둔탁한 마찰음이 울리자, 은수의 멱살을 잡고 있던 신소희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문밖을 가로막은 우진의 거대한 그림자는 불투명 유리창을 가득 채운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늑대들이 갇힌 우리 바깥에 더 거대한 포식자가 도사리고 있는 듯한 숨 막히는 긴장감이 화장실 안을 짓눌렀다.
“...쳇, 재수 없게.”
신소희는 은수의 교복 깃을 거칠게 뿌리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녀는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은수의 스마트폰을 바닥 타일 위로 툭 던졌다. 액정 화면에 미세한 흠집이 생기는 소리가 화장실의 고요를 깨뜨렸다.
“오늘 야자 직후다, 전학생. 구 체육관 뒤편 공터로 50만 원 안 가져오면 네 동생 산소호흡기 진짜로 떼버릴 줄 알아. 가자.”
신소희는 똘마니들을 거느리고 화장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문밖에서 후드티를 깊게 눌러쓴 채 벽에 기대어 있던 김우진은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인 채 살기 어린 눈빛만을 뿜어냈다. 일진 패거리가 복도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은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은 도윤이 걸어둔 암호화 락 덕분에 아무런 손상 없이 잠겨 있었다.
은수는 교복 재킷의 위에서 두 번째 단추를 가볍게 매만졌다. 신소희가 멱살을 잡고 흔드는 과정에서 실이 미세하게 풀려 헐거워져 있었다. 하지만 단추 내부에 숨겨진 초소형 지향성 마이크는 여전히 미세한 진동을 유지하며 지하실 서버로 주파수를 송출하고 있었다. 은수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의 측면 버튼을 눌러 수음 종료 신호를 보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김우진이 은수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두꺼운 주먹이 분노로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과거 학폭 피해의 트라우마가 신소희의 폭언을 듣는 내내 그의 이성을 자극했을 터였다. 은수는 차분한 눈빛으로 우진을 응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우진아, 제1조 철칙을 잊지 마. 물리적 폭력은 절대 안 돼. 우리가 가해자들과 똑같은 괴물이 되는 순간, 이 재판소의 정당성은 사라져.”
우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은수의 단호한 목소리에 굴복하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재판장님. 순간적으로 제어가 안 돼서.”
“괜찮아. 밖을 잘 지켜줘서 고마워. 도윤이에게 연락해. 수음된 오디오 파일의 무결성 검증을 끝내라고.”
은수는 단발머리를 가볍게 정리하며 화장실을 나섰다. 어깨에 벽 충격으로 인한 경미한 타박상 통증이 욱신거렸지만, 그녀의 뇌리는 오직 다음 단계의 심리전을 설계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신소희의 자백 음성은 완벽하게 확보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자백을 가장 치명적인 칼날로 바꾸어 가해자들의 연대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는 일이었다.
***
방과 후, 서송고등학교의 교실들은 야간 자율학습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소음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2학년 3반 교실은 유독 고요했다. 담임 한상우 교사가 종례를 마치고 나간 직후, 은수는 교실 뒤편에 홀로 남아 보온병에서 따뜻한 보리차를 종이컵 두 개에 나누어 담았다. 붉은 노을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교실 바닥을 피처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은수는 소희에게 ‘50만 원의 전달 방법을 상의하자’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소희는 이 가난하고 유약한 전학생이 자신들의 협박에 굴복해 돈을 바치려 한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문이 열리고, 신소희가 혼자 교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주변에 다른 학생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오만한 걸음걸이로 은수의 책상 앞까지 다가왔다. 입에 문 껌을 짝짝 씹으며, 소희는 은수의 책상을 가볍게 걷어찼다.
“돈은 가져왔냐, 전학생? 구질구질하게 교실로 불러내고 난리야.”
은수는 대답 대신 따뜻한 보리차가 담긴 종이컵을 소희의 앞으로 가만히 밀어놓았다.
“날이 춥네. 차 한잔해, 소희야.”
“미쳤냐? 전학생 년이 장난해?”
신소희는 실소를 터뜨리며 은수가 건넨 종이컵을 거칠게 쳐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보리차가 책상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은수의 단정한 교복 스커트 자락에 몇 방울의 찻물이 튀었지만, 은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 고개를 들어 소희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순간, 은수의 시야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생전에 서재에 꽂아두었던 법정 심리학 서적들의 구절이 은수의 뇌리에서 실시간으로 인용되었다.
‘거짓을 말하는 자는 신체적 언어로 진실을 고백한다. 불안은 통제되지 않는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타고 흐른다.’
은수의 천재적인 ‘인간 거짓말 탐지기’ 능력이 가동되었다. 교실의 화려한 노을빛이 사라지고, 은수의 시야 속에서 신소희의 얼굴만이 극단적인 흑백 대비로 부각되었다. 오직 소희의 생리적 반응과 미세한 표정 변화만이 선명한 컬러로 타올랐다.
가장 먼저 은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소희의 왼쪽 눈꼬리였다.
파르르.
아주 미세한 안검 경련(Eyelid twitching)이 0.1초 동안 발생했다가 사라졌다. 소희는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그것은 뇌가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감지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불수의적 반응이었다.
두 번째는 소희의 목덜미였다.
꿀꺽.
소희의 후두개가 가파르게 상하로 움직였다. 침을 삼키는 주기가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빠르다. 구강 건조증.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교감신경이 흥분하며 침샘을 마르게 만든 결과였다.
세 번째는 소희의 쇄골 위쪽, 경동맥이 흐르는 부위였다.
펄떡, 펄떡, 펄떡.
얇은 교복 셔츠 깃 너머로 경동맥의 박동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파르게 치솟아 있었다. 분당 맥박수 최소 110회 이상. 소희는 겉으로는 은수를 윽박지르고 있었지만, 내면은 정체불명의 공포와 불안감으로 터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다.
은수는 차분하게 쏟아진 보리차를 휴지로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50만 원은 준비되어 있어, 소희야. 하지만 그전에 너한테 보여줄 게 있어.”
“뭐? 헛소리하지 말고 돈이나 내놔.”
“한별이가 너 대신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생각인 걸 정말 모르겠어?”
은수의 차가운 음성이 교실의 정적을 찢었다.
신소희의 호흡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껌을 씹던 턱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소희의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되었다가 수축하는 현상, 이른바 ‘동공 지진’이 은수의 흑백 시야에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무슨... 개소리야, 그게.”
소희는 애써 콧방귀를 뀌며 비웃으려 했지만, 목소리의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은수는 그 찰나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고 심리적 쐐기를 더 깊숙이 박아 넣었다.
“한별이는 재단 이사의 조카야. 하지만 너는 아니지. 학교 폭력 이슈가 교육청 감사나 언론에 터졌을 때, 재단이 누구를 먼저 자를 것 같아? 한별이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선, 가장 목소리가 크고 단순한 행동대장 한 명이 필요해. 바로 너처럼.”
은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화면에는 도윤이 미리 조작해 둔 박한별과 강다혜의 가짜 카카오톡 대화방 캡처본이 띄워져 있었다.
[박한별: 어차피 일 터지면 소희 걔가 다 했다고 하면 돼. 걔는 머리가 나빠서 대충 돈 몇 푼 쥐여주고 달래면 지가 독박 쓸 걸?]
[강다혜: 맞어 ㅋㅋ 소희는 단순해서 우리가 조금만 치켜세워주면 지가 대장인 줄 알고 다 총대 메잖아. 걱정 마.]
정교하게 위조된 텍스트 이미지였다. 강다혜의 평소 말투와 박한별의 오만한 강박증적 문체를 완벽하게 모사한, 사설 재판소의 이간 전술 물증이었다.
신소희의 시선이 은수의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었다. 화면을 읽어내려가는 소희의 눈동자가 좌우로 거칠게 요동쳤다. 그녀의 얼굴에서 붉은 노을빛이 걷히고, 시체처럼 창백한 흙빛이 드리워졌다.
“이거... 이거 조작이잖아. 네년이 어디서 개수작을...”
소희는 스마트폰을 뺏으려 손을 뻗었지만, 은수는 한 발 앞서 스마트폰을 주머니로 미끄러뜨렸다. 은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소희의 앞으로 다가갔다. 은수의 단발머리가 노을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조작인지 아닌지는 네가 가장 잘 알 텐데, 소희야. 한별이가 평소에 너를 어떻게 대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겉으로는 친한 척하면서도, 중요한 모임이나 상류층 학부모 모임에는 너를 한 번이라도 데려간 적이 있어? 걔한테 너는 필요할 때 부려 먹고 버리는 사냥개일 뿐이야.”
은수의 가스라이팅은 소희가 평소 박한별에게 품고 있던 지독한 열등감과 불신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소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교실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은수는 소희에게 한 걸음 더 밀착했다. 두 사람의 거리는 불과 한 뼘 남짓이었다. 은수는 소희의 귀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별이가 너 대신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생각인 걸 정말 모르겠어? 네가 전학 처분을 당하고 소년원에 갈 때, 한별이는 명문대에 합격해 웃고 있을 거야. 그 꼴을 정말 보고만 있을래?”
소희의 내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공포와 배신감이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 폭발했다. 그녀의 두 주먹이 터질 듯이 쥐어졌다. 은수의 시야 속에서, 소희의 얼굴은 이미 분노와 광기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첫 번째 사냥감의 연대에 완벽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