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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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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방공호의 차가운 습기가 뼈마디를 파고들었다. 손전등의 인공적인 백색광이 먼지 뽀얀 콘크리트 벽면을 비출 때마다, 30년의 세월이 빚어낸 음산한 실루엣이 출렁였다.


은수는 손가락을 가만히 쥐었다 폈다. 낮에 구관 뒤편 폐자재 적치장을 기어오르다 녹슨 철사에 긁힌 오른손 등의 상처가 쓰라렸다. 붉은 핏자국은 엉겨 붙어 굳어 있었지만, 욱신거리는 통통한 통증은 머릿속의 만성적인 두통과 결합해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은수는 주머니 속에서 노씨에게 받은 녹슨 철제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깊은 호흡을 내쉬었다.


이곳은 완벽한 사각지대다. 장필두 보안관의 서치라이트도, 최정만 교사의 감시망도 닿지 않는 어둠의 영토.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은수의 교복오른쪽 주머니에 들어 있던 스마트폰이 갑자기 기분 나쁜 고주파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은수는 즉시 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 화면이 기괴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경고: 비인가 외부 기기로부터의 강제 포트 접속 감지.]

[원격 패킷 탈취 시도 중... 42%... 45%...]


누군가 은수의 스마트폰 암호화 영역을 강제로 해킹하려 들고 있었다. 은수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 스마트폰에는 낮에 화장실에서 녹음한 신소희의 가혹 행위 자백 파일이 들어 있었다. 이게 털린다면 복수극은 시작되기도 전에 종막을 고할 터였다.


은수는 침착하게 대처했다. 아버지가 남겨둔 형법전 갈피 사이에 적혀 있던 보안 수칙을 떠올렸다. 그녀는 스마트폰의 물리적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수동으로 Wi-Fi와 블루투스 안테나를 차단했다. 동시에 가방에서 꺼낸 휴대용 RF 주파수 탐지기를 켰다. 주파수 탐지기의 소형 액정에 붉은색 파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2.4GHz 대역의 근거리 무선 전파 스니핑. 외부 해커가 아니야. 교내 인트라넷망을 직접 타고 들어오는 내부자의 소행이다.’


발신 주파수의 강도를 추적하던 은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신호의 근원지는 본관 4층, 컴퓨터 동아리 ‘인터페이스’의 전용 회선이었다. 은수는 머릿속의 서송고 인물 지도를 빠르게 넘겼다.


‘임도윤.’


컴퓨터 동아리의 유령 부원이자, 전교생 중 유일하게 학교의 삼엄한 방화벽을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든다는 소문이 돌던 아웃사이더. 그 소년이 은수의 전파를 낚아챈 것이 분명했다.


은수는 망설임 없이 지하실 철문을 걸어 잠그고 어둠 속을 빠져나왔다. 밤 11시 30분,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학교는 유령선처럼 고요했다. 복도의 비상구 초록색 불빛만이 은수의 단정한 교복 단추 위로 흘러내렸다. 은수는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겨 본관 4층 컴퓨터실 뒤편에 위치한 ‘인터페이스’ 동아리방 앞으로 향했다.


문틈 사이로 미세한 모니터 청색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은수는 문고리를 잡았다.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웅웅거리는 컴퓨터 본체 팬 소음 사이로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 안에는 검은색 후드티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소년이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눈으로 세 개의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임도윤이었다.


“원격 포트 스캐닝은 엄연한 정보통신망법 위반이야, 임도윤.”


차가운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리자, 도윤의 긴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뚝 멈췄다. 도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의자를 뒤로 젖혔다. 그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너... 하은수? 네가 여긴 어떻게...”


도윤은 본능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려 화면을 잠그고 교내 경보기를 가동하려는 매크로 키를 누르려 했다. 은수는 그의 손끝을 빤히 바라보며 한 걸음 다가섰다.


“그 가짜 화재 경보 스크립트, 누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포트 8080이 학교 메인 서버 단에서 차단되어 있어서 작동 안 해. 시간 낭비하지 마.”


도윤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내 신호는 완벽하게 우회되었을 텐데.”


은수는 대답 대신 낡은 백팩에서 빳빳한 A4 용지 뭉치를 꺼내 도윤의 키보드 위에 툭 던졌다. 종이 전면에는 복잡한 소스코드와 함께 날짜, 시간, 그리고 계좌 거래 내역이 빼곡히 인쇄되어 있었다.


“이게 뭔지 알겠지?”


도윤이 종이를 훑어내리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그것은 그가 다크웹의 비밀 포럼에서 우회용 무선 하드웨어와 불법 해킹 툴을 거래했던 세션 로그의 실제 오프라인 복사본이었다.


“너... 이걸 어떻게 해킹한 거야? 내 서버는 암호화 프로토콜이...”


“해킹한 게 아니야.”


은수가 도윤의 모니터 옆에 바짝 다가서며 차갑게 속삭였다.


“네가 거래할 때 사용한 VPN 노드가 안산 외곽의 내 외삼촌 카센터 IP 대역과 겹쳤어. 넌 디지털 세상에서는 천재일지 몰라도, 오프라인의 물리적 흔적을 지우는 데는 서툴더군. 네가 그 대포 유심을 개통한 대리점 사장, 우리 삼촌 친구야.”


도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천재 해커라 불리던 소년이 오프라인의 아날로그적인 연결고리 앞에서 완벽하게 무장 해제당하는 순간이었다. 은수는 도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 거래 내역과 네가 교내 인트라넷에 침입한 로그 파일이 교육청 사이버 수사대에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강제 전학은 약과겠지. 소년원 송치와 정보보안 업계에서의 영구 퇴출. 네 인생이 통째로 포맷되는 거야.”


도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원하는 게 뭐야? 돈? 아니면 다른 애들 성적이라도 조작해 달라는 건가?”


“그런 유치한 짓 안 해.”


은수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암호화 스마트폰을 꺼내 신소희의 자백 오디오 파일을 재생했다.


- “너 같은 흙수저 년이 한별이 눈에 거슬린 것 자체가 죄야... 네 남동생 산소호흡기 줄이 어떻게 될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신소희의 악랄한 육성에 도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은수는 오디오를 끄고 조용히 말했다.


“내 동생 하태수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박한별 패거리, 그리고 그걸 덮은 학교 이사회. 법은 기득권의 개가 되어 그들을 지켰지만, 나는 그들을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매장할 거야. 오직 법률과 확실한 증거, 그리고 여론의 힘으로만.”


은수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망설임도 없었다. 도윤은 은수의 눈빛 속에서 타오르는 차갑고 단단한 복수심을 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철저하게 통제되고 계산된, 어둠의 재판관의 눈빛이었다.


도윤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시니컬하던 그의 얼굴에 묘한 흥분과 경외감이 깃들었다.


“미쳤네... 진짜로 서송고 기득권 전체를 무너뜨리겠다는 거야?”


“도와, 임도윤. 내겐 네 기술과 보안 인프라가 필요해. 넌 이 위선적인 학교에 분노하고 있잖아. 컴퓨터실 구성원들이 네 재능을 갈취할 때 묵인하던 교사들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았어?”


도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우스를 쥐고 있던 손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패배했네. 오프라인 협박에, 심리전까지 완벽해. 좋아, 동맹을 수락하지. 대신 내 신변 보장과 다크웹 보안 프로토콜의 공동 관리를 약속해.”


“약속하지.”


도윤은 은수의 스마트폰을 가져가 숙련된 솜씨로 하드웨어 메인보드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서랍에서 초소형 암호화 칩을 꺼내 이식하고, 특수 커스텀 보안 펌웨어를 설치했다.


“이제 이 폰은 전 세계 어떤 사이버 수사대도 추적할 수 없는 완벽한 사령탑이 될 거야.”


도윤은 장비들을 챙겨 은수를 따라 구 체육관 지하실 폐창고로 내려갔다. 먼지 서린 어둠의 공간을 본 도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곳이 학교 지하에 숨겨져 있었다니... 완벽한 오프라인 사각지대군.”


도윤은 지하실 구석에 조립식 책상을 펼치고, 자신이 컴퓨터실에서 몰래 반출했던 고성능 부품들을 결합해 ‘도윤의 커스텀 마스터 서버’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의 긴 손가락이 기계적으로 납땜을 하고 전선을 연결할 때마다, 지하실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붉고 푸른 LED 불빛이 깜빡이며 살아났다.


마침내 모든 케이블이 연결되자, 도윤은 은수의 스마트폰과 마스터 서버를 동기화했다.


“준비 끝났어, 재판장님.”


도윤이 콘솔 키보드의 엔터 키를 둔탁하게 내리쳤다.


그 순간, 지하실 먼지 쌓인 콘크리트 벽면에 거대한 청색 빔프로젝터 화면이 투사되었다. 화면 중앙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저울 문양과 함께 사설 재판소의 공식 로고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Private Court: System Active.]


서송고등학교의 어둠을 심판할 사설 재판소의 메인 서버 모니터가 차가운 지하실 벽면을 가득 채우며 가동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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