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의 기술
“휴고 간수장. 이 수프, 냄새가 아주…… 기가 막히는군.”
지하 독방 9번 방의 찌푸린 공기 속에서, 강진혁의 나직한 목소리가 화강암 벽을 타고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그의 왼쪽 눈에 걸쳐진 ‘진실의 눈 모노클’은 수프 표면에서 아른거리는 보랏빛 독소, ‘공허의 늪 독초’의 미세한 마력 파동을 여전히 선명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반면, 정신 장벽을 과도하게 가동한 대가로 핏빛으로 붉게 물든 그의 오른쪽 눈은 피눈물처럼 붉은 흔적을 뺨 위로 흘려보내며 기괴한 대비를 이루었다. 무력은 1성 이하로 떨어졌고, 전신은 고문용 마력 억제제와 사슬에 묶여 마비된 상태였으나, 그의 눈빛만큼은 사냥감을 앞둔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군! 가문에서 보낸 영양 수프라고 하지 않았나! 어서 처먹기나 해!”
거구의 간수장 휴고가 침을 꿀꺽 삼키며 소리쳤다. 그의 등 뒤로 피어오르는 검붉은색 ‘거짓의 잔영’ 아지랑이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휴고의 시선은 자꾸만 독방 철문 너머, 어두운 복도 구석의 음영을 향해 흔들렸다.
진혁은 스푼을 쥔 손을 천천히 내렸다. 은 식기가 쟁반에 부딪치며 챙강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휴고. 자네는 연기자로서는 최악이군. 거짓말을 할 때 오른쪽 어깨를 미세하게 올리는 버릇이 있어. 게다가 굳이 문밖을 훔쳐볼 필요는 없다네. 어차피 그자가 직접 들어올 테니까.”
진혁의 차가운 시선이 철문 너머의 어둠을 꿰뚫었다.
“안 그런가, 레이먼드?”
침묵이 내려앉았던 복도 끝에서 나직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화려한 가죽 갑옷을 걸친 오만한 인상의 20대 청년이 어둠을 헤치고 독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눈매, 그리고 칼릭스 브리안을 향한 깊은 적개심을 숨기지 않는 사촌, 레이먼드 브리안이었다.
“역시 기억을 잃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군, 칼릭스 숙부.”
레이먼드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휴고의 어깨를 밀쳐내고 진혁의 앞에 섰다.
“기억을 잃은 미치광이 반역자가 어떻게 독초의 존재를 눈치채고 내 이름까지 부르겠어? 하지만 아쉽게 되었군. 여기서 조용히 수프를 마시고 급사했다면 가문의 명예라도 지켰을 텐데.”
진혁은 등 뒤의 벽에 몸을 기댄 채, 떨리는 숨을 고르며 레이먼드를 관찰했다. ‘눈동자 프로파일러’가 그의 전신을 훑었다.
‘레이먼드 브리안. 마력 반응 3성. 검사 계열. 겉으로는 오만방자하게 굴고 있지만, 가죽 장갑을 낀 그의 왼손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눈동자는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자꾸만 내 손등의 공허의 표식이나 쇠사슬을 향해 움직인다. 초조함, 그리고 거대한 열등감.’
진혁은 현대 경찰청 위기협상가 시절, 수없이 상대했던 범죄자들의 전형적인 심리 상태를 레이먼드의 얼굴에서 읽어냈다. 이 오만한 청년은 지금 자신의 계획이 틀어질까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레이먼드. 자네는 여전히 그릇이 작군.”
진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목소리에 아주 미세한 마력을 얹어 목소리에 기묘한 울림과 군주의 위압감을 싣는 ‘거짓의 메아리’ 기술을 은밀히 가동했다. 쇠약해진 육체 탓에 성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포커페이스는 완벽했다.
“내 기억상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자네에게 그렇게 중요한가? 아니면…… 내가 살아 돌아와 자네 아버지가 꿈꾸는 가주 자리가 영원히 날아갈까 봐 두려운 건가?”
“입 닥쳐!”
레이먼드가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며 허리의 미스릴 롱소드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차기 대공은 나다! 황실에서도 이미 나를 차기 후계자로 인정했어! 네놈처럼 가문을 반역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미치광이는 당장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 나가야 마땅하단 말이다!”
“황실이 자네를 인정했다고?”
진혁이 피 묻은 오른쪽 눈을 가늘게 뜨며 실소했다.
“콜드 리딩 프로파일링’이 그의 머릿속에서 정교한 시나리오를 그려냈다.
“레이먼드. 자네는 정말로 황실의 그 고결한 귀족들이 방계의 기회주의자들에게 대공가의 영지를 온전히 넘겨줄 거라 믿는 건가? 자네 아버지가 황실 정보부의 트리스탄 공작과 맺은 밀약의 진짜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나?”
“뭐, 뭐라고?”
레이먼드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의 등 뒤로 붉은색 ‘거짓의 잔영’ 아지랑이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그가 가문의 방어 결계 코드를 훔쳐 황실에 유출하려 했다는 심증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바보 같은 녀석. 트리스탄 공작은 자네 아버지를 이용해 브리안 가문의 결계를 해제하고, 북부의 마력 광산을 통째로 황실의 소유로 귀속시키려는 것뿐이네. 그 계획이 끝나면 자네 아버지는 반역자의 가담자로 처형당할 것이고, 자네는 평생 황도의 감옥에서 썩게 되겠지. 자네는 그저 사냥이 끝나면 삶아 먹힐 사냥개에 불과해.”
“헛소리 마라! 아버지는 이미 황실 특별 심문소와 완벽한 합의를 마쳤다! 칼릭스 브리안, 네놈의 처형이 집행되는 즉시 가문의 결계 제어권은 우리에게 넘어오기로 계약서에 각인되어 있단 말이다!”
레이먼드가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열등감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황실의 트리스탄 공작이 직접 약속하셨다! 우리가 네놈의 목을 바치고 가문의 방어 결계 코드를 넘겨주는 대가로, 브리안가의 정통성과 영지 자치권을 우리 방계 세력에게 영구히 양도하겠다고! 그 계약은 영혼에 각인된 절대적인 약속이란 말이다!”
독방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레이먼드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자신이 뱉은 말의 무게를 뒤늦게 깨달은 듯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의 오만한 자존심과 열등감을 집요하게 자극한 진혁의 ‘거짓의 메아리’ 암시가 그의 이성적 방어벽을 완벽하게 붕괴시킨 결과였다.
진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자백 고맙군, 레이먼드. 자네 아버지가 황실과 결탁해 가문의 결계 코드를 팔아넘기려 했다는 아주 명백한 반역의 증거를 스스로 밝혀주었어.”
“이, 이 교활한 놈이……!”
레이먼드가 이를 갈며 미스릴 검을 반쯤 뽑아 들었다.
“증거? 이 독방 안에서 네놈이 지껄이는 말을 누가 믿어줄 것 같나? 여기서 네놈과 저 간수장 휴고의 목을 베고, 반역자 대공이 탈옥하려다 자결했다고 보고하면 그만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진혁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쇠사슬이 짤랑이는 소리와 함께, 독방 구석의 어두운 음영 속에서 둔중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을 헤치고 걸어 나온 사내는 뚱뚱하고 붉은 코를 가진 요새의 하급 간수, 보리스였다. 그의 손에는 은밀하게 푸른빛을 내뿜는 소형 마도 아티팩트, ‘소리 녹음 수정구’가 들려 있었다. 수정구 내부의 마력 회로가 붉게 점멸하며 레이먼드가 지른 비명 소리를 고스란히 각인하고 있었다.
“보, 보리스? 네놈이 왜 거기서 나와!”
휴고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보리스는 진혁의 앞에 깍듯하게 무릎을 꿇으며 수정구를 조심스럽게 바쳤다. 이미 진혁이 제공한 비자금과 가문의 이권 보장 계약에 완벽히 포섭된 그의 눈빛에는 주군을 향한 절대적인 복종심이 서려 있었다.
“대공 전하, 일러주신 대로 레이먼드 도련님의 목소리와 반역 공모 자백을 이 수정구에 완벽히 각인했습니다. 요새 내부의 규율 법정에 제출하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는 물증입니다.”
레이먼드의 얼굴이 한순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손에 쥔 미스릴 검이 바르르 떨리며 칼집 속으로 힘없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 이럴 수가…….”
독방 구석의 어두운 침묵 속에서, 진혁은 피눈물이 흐르는 오른쪽 눈을 쓸어내리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가문 내부의 배신 세력을 뿌리째 뽑아낼 첫 번째 단죄의 덫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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