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독약
카스텔 요새 지하 독방 9번 방의 차가운 돌바닥 위로 붉은 핏방울이 툭, 툭 떨어졌다.
강진혁의 오른쪽 눈은 황실 특별 심문관 바르톨로와 환술사 오벨리아의 파상적인 정신 공격을 막아낸 대가로 미세혈관이 완전히 파열되어 있었다. 눈꺼풀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는 뺨을 붉게 적시며 턱끝에서 굳어갔고,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뇌 세포 하나하나를 헤집어 놓았다. 전신을 옭아맨 마력 억제 쇠사슬의 냉기가 뼈마디를 시리게 파고들었지만, 진혁은 단 한 번의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위기 협상가의 첫 번째 규칙.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적에게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지 말 것. 설령 그것이 붕괴 직전의 육체라 할지라도.
“전, 전하…… 일러주신 대로 바르톨로 심문관이 흘리고 간 부러진 저울 바늘은 완벽히 인멸했습니다. 제, 제 비리 장부의 일련번호는 정말로 발송하지 않으신 것이 맞겠지요?”
바닥에 이마를 짓찌으며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사내. 카스텔 요새의 간수장 베른이었다. 황실의 악명 높은 고문관들이 처참하게 각혈하며 도망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는, 이제 진혁을 진짜 대공 칼릭스 이상의 초월적인 괴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불법 뇌물 수수와 가족의 안전을 단숨에 저격한 진혁의 정보력 앞에 베른의 얄팍한 잔머리는 완전히 조각난 상태였다.
진혁은 피눈물이 흐르는 오른쪽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왼쪽 눈만으로 베른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약속은 지킨다, 베른. 자네가 내 지시를 완벽히 수행하는 한, 자네의 그 더러운 은화 주머니와 하층민 구역의 가족들은 안전할 걸세.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내 눈을 속이려 든다면…….”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목숨을 바쳐 전하의 그림자가 되겠습니다!”
“좋아. 그럼 지금 즉시 독방 밖으로 나가 감시 동태를 살피게. 그리고 오늘 밤 교대 근무자가 누구인지 알아오도록.”
베른은 구원을 얻은 표정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서둘러 독방 문을 열고 나갔다. 육중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진혁은 참았던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고문용 마력 억제제의 반동과 정신 장벽 과부하의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가혹했다. 8성의 대마도사였던 칼릭스의 육체는 현재 동조율 10% 미만의 상태로 완전히 굳어 있었고, 실질적인 무력은 1성 이하의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진혁의 손끝에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닿았다.
베른이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었을 때, 요한이 베른을 통해 극비리에 전달했던 작은 가죽 주머니를 바닥 틈새로 밀어 넣어두었던 것이다. 진혁은 쇠사슬을 미세하게 움직여 가죽 주머니의 끈을 풀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정교하게 세공된 외알안경, 대공가의 유산인 ‘진실의 눈 모노클’이었다.
진혁은 모노클을 왼쪽 눈에 익숙하게 걸쳤다. 그리고 가느다란 마력을 흘려보내 렌즈를 활성화했다. 렌즈 표면에 투명한 푸른빛 마력 회로가 은밀하게 깜빡이며, 독방 내부의 왜곡된 마력 파동과 공기 중의 미세한 입자들이 시각화되어 나타났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적들이 던질 다음 패를 기다릴 시간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하 복도의 끝에서 베른의 가벼운 발소리와는 전혀 다른, 묵직하고 가학적인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쇠가죽 장화를 신은 발이 돌바닥을 거칠게 짓밟는 소리. 진혁은 ‘눈동자 프로파일러’를 가동해 다가오는 발소리의 템포와 보폭을 분석했다. 체중 100kg 이상의 거구, 걸음걸이에 서린 오만한 위압감.
바르톨로에게 매수되어 밤마다 독방을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던 악질 간수장, 휴고였다.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휴고의 거대한 체구가 독방 입구를 가로막았다. 그의 손에는 낡은 은 식기가 놓인 저녁 식사 쟁반이 들려 있었다. 평소라면 죄수용 딱딱한 빵과 썩은 물을 던지듯 내려놓았을 그가,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걸쭉한 고기 수프를 들고 있었다.
“반역자 대공 전하. 사형 집행이 유예되었다고 아주 상전 대접을 받으시는군.”
휴고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독방 바닥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그의 거친 손가락이 식기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진혁의 왼쪽 눈에 걸친 모노클에 포착되었다.
진혁은 ‘거짓의 잔영’ 스킬을 활성화했다.
[대상: 휴고]
[행동 분석: 비정상적인 손가락 떨림, 시선이 수프 표면에 고정됨 (긴장도 85%)]
[등 뒤의 마력 아지랑이: 검붉은색 점멸 (치명적인 독소 은폐 상태)]
휴고의 등 뒤로 기괴하게 뒤틀린 검붉은색 마력 아지랑이가 선명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배신과 기만의 증거였다.
“가문에서 전하의 건강을 염려해 특별히 보낸 영양 수프라네. 차갑게 식기 전에 어서 드시지. 뼈만 남은 몰골로 처형대에 오르면 제국의 위신이 서지 않으니까.”
휴고가 쟁반을 진혁의 발밑으로 툭 밀어 넣으며 다그치듯 말했다.
진혁은 모노클의 정밀 분석 기능을 작동시켜 수프 표면을 응시했다. 모노클의 렌즈가 수프의 열기 속에서 꿈틀거리는 기묘한 보랏빛 미세 입자들을 확대해 보여주었다. 그것은 마력을 뒤틀어 영혼을 오염시키고 전신 신경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약재, ‘공허의 늪 독초’의 성분이었다.
‘공허의 늪 독초라…….’
진혁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이 독초는 일반 시장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금기된 물질이었다. 마력이 기괴하게 일그러진 북부 영지 남동쪽의 금역에서만 자라는 약초. 그리고 이것을 다룰 수 있는 자들은 가문 내부에서 반역을 도모하는 숙부 프란츠 세력과 그의 오만한 아들 레이먼드 브리안뿐이었다.
사촌 레이먼드가 간수 휴고를 매수해 자신을 소리 소문 없이 독살하려 음모를 꾸민 것이 확실했다. 그들은 기억을 잃은 칼릭스가 감옥 안에서 의문의 급사로 사망한다면, 황실의 의심을 사지 않고 대공가의 가주 자리를 합법적으로 찬탈할 수 있을 거라 계산했을 터였다.
진혁은 ‘눈동자 프로파일러’로 휴고의 시선 방향을 추적했다. 휴고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독방 철문 틈새 너머, 어두운 복도 구석을 향해 가끔씩 흔들리고 있었다.
‘거기 숨어 있군, 레이먼드.’
진혁은 확신했다. 사촌 레이먼드가 자신이 독약을 먹고 처참하게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복도 끝 어둠 속에 숨어 숨을 죽이고 관망하고 있다는 것을.
협상가의 뇌가 가장 완벽한 역공의 판을 짜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독약의 존재를 폭로하고 휴고를 다그치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었다. 휴고는 그저 꼬리에 불과했고, 증거를 들이밀어 봤자 식기를 엎어버리며 발뺌하면 그만이었다. 배후에 숨은 레이먼드를 단숨에 얽어매고 가문 내부의 배신 세력을 뿌리째 뽑아내기 위해서는, 사냥개가 아닌 그 사냥개를 부리는 주인이 스스로 덫 속으로 걸어 들어오게 만들어야 했다.
즉, 독살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적들을 기만해야 한다.
진혁은 쇠사슬을 짤랑이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고문 약물로 마비된 팔을 억지로 들어 올려, 식기 옆에 놓인 청동 스푼을 쥐었다. 손끝이 바르르 떨렸지만, 그것은 연기가 아닌 실제 신체적 한계였다. 하지만 진혁의 얼굴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포커페이스가 유지되고 있었다.
스푼이 걸쭉한 고기 수프 속으로 깊숙이 잠겼다.
수프 표면에서 미세한 보랏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해 기묘한 오한을 풍겼다. 미세하게 유출된 독초의 가스가 진혁의 코끝을 스치자, 손등에 새겨진 ‘공허의 표식’이 일시적으로 가렵게 반응하며 맥박이 요동쳤다. 전신 신경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지만, 진혁은 스푼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휴고의 동공이 탐욕스럽게 확장되었다. 그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고요한 독방 안에 크게 울렸다. 복도 끝 어둠 속에서도 기척이 숨 가쁘게 좁혀지는 것이 느껴졌다.
진혁은 독이 가득 든 수프를 스푼 가득 떠서 천천히 자신의 입가로 가져갔다.
스푼 끝이 창백한 입술에 닿기 직전, 찰나의 침묵이 독방 전체를 지배했다. 당장이라도 독약을 삼키고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운 순간.
하지만 진혁은 스푼을 입술 바로 앞에서 딱 멈추었다.
그리고 스푼을 든 채, 멀리서 철문 틈새로 눈을 떼지 못하고 훔쳐보던 간수 휴고를 향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피눈물로 붉게 물든 기괴한 오른쪽 눈과, 모노클 너머로 모든 진실을 꿰뚫어 보는 차가운 왼쪽 눈이 휴고의 시선과 허공에서 정확히 마주쳤다.
진혁의 창백한 입술 끝이 비틀려 올라가며, 어둠 속에서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휴고 간수장. 이 수프, 냄새가 아주…… 기가 막히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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