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장벽
관자놀이를 뚫고 들어오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인 송곳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의 가장 깊숙한 밑바닥, 자아의 핵심을 향해 기어 들어오는 수천 개의 뜨거운 갈고리였다.
“아, 윽……!”
진혁은 비명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고문용 마력 억제제가 혈관을 타고 흐르며 온몸의 마도 회로를 단단히 잠가버린 상태였다. 손가락 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완전한 무력감 속에서, 오직 머릿속만이 비정상적으로 명징하게 깨어나 고통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관자놀이에 결착된 ‘진실의 저울’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마력 실선들이 뇌 신경을 타고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뇌가 통째로 끓는 기름에 튀겨지는 듯한 극심한 작열감이 밀려왔다. 저울의 청동 바늘이 좌우로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거짓’과 푸른색의 ‘진실’ 경계선 위에서 바늘이 격렬하게 회전할 때마다, 진혁의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울리는 듯했다.
[위험: 자아 균열 임계치 도달 중 (78%)]
[경고: 영혼의 부조화가 감지될 경우, 아티팩트의 판정으로 인해 뇌 세포가 영구 소멸할 수 있습니다.]
“흐음, 역시 무언가 숨기고 있군.”
바르톨로가 음산하게 웃으며 저울에 마력을 더 주입했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6성급 정신 지배 마력이 검붉은 안개가 되어 진혁의 머리를 완전히 뒤덮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신참 심문관 데미안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스승님, 이 자의 기억 장벽이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보통 2성 수준의 마력 회로를 가진 자라면 이미 첫 질문에 자아가 붕괴해 울부짖었을 텐데요.”
“칼릭스 브리안은 원래 8성의 대마도사였다. 비록 마력 회로가 망가지고 기억을 잃었다고는 하나, 영혼의 껍데기 자체는 여전히 단단하겠지. 하지만 내 저울 앞에서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데미안, 결계를 더 굳건히 해라. 누구도 이 방의 마력 파동을 감지해서는 안 된다.”
“예, 스승님.”
데미안이 독방 벽면에 검은색 마력 실선을 더 촘촘히 덧대며 차단 장막을 강화했다. 이제 이 방은 완벽한 고립지대였다. 에드하르트 총독도, 요한도, 엘리시아도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진혁의 의식 내부에서는 이미 거대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르톨로의 마법 갈고리들이 진짜 칼릭스의 기억 저장소를 무자비하게 헤집기 시작한 것이다.
얼어붙은 북부의 황량한 영지, 차가운 눈밭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의 외로움, 아내 레노어의 차가운 시신 앞에서 느꼈던 절망, 그리고 황실의 거대한 음모를 막기 위해 스스로 반역의 칼을 뽑아 들었던 전대의 기억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 파편들이 진혁의 현대인 자아와 충돌하며 영혼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으윽…… 내가…… 내가 누구지? 강진혁인가, 아니면 칼릭스 브리안인가?’
정체성의 혼란이 극에 달하며 자아 균열 임계치가 위험 수위로 치솟았다. 이대로 바르톨로의 정신 침투를 허용한다면,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빙의한 이방인 강진혁이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날 터였다. 황실에 대항할 유일한 무기인 ‘기억상실증이라는 사기극’이 깨지는 순간, 기다리는 것은 즉각적인 처형뿐이었다.
그 절망적인 어둠 속에서, 진혁의 머릿속에 한 노인의 목소리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카스텔 요새 지하 깊은 곳, 맹인 노학자 사이먼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들려주었던 가르침이었다.
‘정신을 탐독하려는 자들은 네가 아는 가장 익숙한 구조물을 파괴하며 들어온다. 보통의 마법사들은 성벽이나 강철 감옥을 머릿속에 짓지. 하지만 심문관들은 요새를 무너뜨리는 데 도가 튼 자들이다. 그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세계의 인과율을 초월한 방을 지어라. 그것이 마음의 방 구축법의 진짜 비전이다.’
이 세계의 인과율을 초월한 방.
이 세계의 마법사들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구조물.
진혁의 입꼬리가 고통 속에서도 미세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성벽? 강철 요새? 그딴 고리타분한 중세식 건축물로는 6성급 심문관을 막을 수 없어.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진혁은 현대 경찰청 위기협상가 시절, 매일같이 숨 막히는 출퇴근길에 마주했던 서울의 풍경을 떠올렸다.
그것은 수학적으로 계산된 콘크리트와 유리의 괴물이었고,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낸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지상과 지하의 미로였다.
진혁은 자신의 의식 깊은 곳에서 명상을 시작했다. 뇌리에 현대 서울의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한 노선도가 아니었다. 신도림역, 강남역, 을지로3가역의 그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환승 통로 전체를 실체화했다. 끝없이 뻗어 나간 회색빛 콘크리트 벽면,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이는 형광등, 수백 개의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강남의 고층 빌딩 숲과 유리창들이 진혁의 정신세계 속에서 거대한 철골 장벽이 되어 솟아올랐다.
정신적 요새(Mental Fortress) 패시브가 가동되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구!
진혁의 의식 내부에서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바르톨로의 마법 갈고리들이 진짜 칼릭스의 기억을 끄집어내려던 찰나, 주변의 풍경이 순식간에 차가운 회색빛 지하철 환승 통로로 뒤바뀌었다.
“……이, 이게 무슨 기괴한 환영이냐?”
진혁의 정신세계에 침투해 있던 바르톨로의 의식이 경악 어린 목소리를 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자신이 평생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기하학적 미로였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정체불명의 회색 석재(콘크리트)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천장에는 마력 파동이 느껴지지 않는 인공적인 빛줄기(형광등)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사방 벽면에는 알 수 없는 기호와 문자(‘2호선 신도림역 갈아타는 곳’)가 새겨져 있었다.
바르톨로의 정신 갈고리들이 주인공의 진짜 자아를 찾아 미로 속으로 돌격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방향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왼쪽으로 꺾으면 지하 3층 환승 통로가 나왔고,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지상의 거대한 유리 빌딩 숲으로 연결되었다.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을 가로막은 거대한 철골 구조물들이 기하학적인 격자무늬를 그리며 빛나고 있었다. 중세의 공성 전술이나 마법적 인과율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다차원 미로였다.
“말도 안 된다! 이 자의 머릿속에 왜 이런 기괴한 세상이 존재한단 말이냐! 이건 인간의 기억이 아니다! 환각인가? 아니면 공허의 왜곡인가!”
바르톨로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정신 마력이 미로 속에서 갈가리 찢기기 시작했다. 지하철 환승로의 벽면과 유리 빌딩의 반사광들이 바르톨로의 마법 갈고리들을 사방에서 반사하며 굴절시켰다. 방향을 잃은 마력 실선들이 서로 엉키고설키며 급격한 과부하를 일으켰다.
진혁은 정신세계의 중심에서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 광경을 관조했다.
‘현대의 도시 설계는 수만 명의 동선을 수학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극도의 논리적 결정체다. 중세의 마법 따위가 이 정교한 미로를 뚫고 내 본질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나?’
콰아아앙!
진혁의 정신세계 속에서 현대 서울의 지하철 2호선 환승로가 거대한 인지 부조화의 폭발을 일으켰다. 바르톨로가 주입했던 검붉은 마력 갈고리들이 복잡한 콘크리트 미로에 가로막혀 방향을 완전히 잃고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그 순간, 현실 세계의 독방 안에서 격렬한 변화가 일어났다.
“끄아아악!”
바르톨로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서너 걸음 비틀거렸다. 그의 손에 쥐여져 있던 ‘진실의 저울’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격렬하게 진동했다. 저울의 청동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다가, 이내 인과율의 역류 현상을 견디지 못하고 툭 부러져 버렸다.
푸학!
바르톨로의 코와 입에서 검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의 눈동자가 극심한 충격으로 허옇게 뒤집혔다. 정신 지배 마법이 역류하여 시전자 본인의 뇌 신경을 직격한 것이다.
“스, 스승님!”
데미안이 기겁하며 바르톨로를 부축했다. 바르톨로는 머리를 감싸 쥔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뺨에 새겨진 마력 흉터가 핏빛으로 붉게 물들며 타들어 갔다.
“이…… 이 자의 머릿속에…… 대체 무엇이 들어있는 거냐…….”
바르톨로가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진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방금 전의 오만함 대신, 미지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경악이 가득 차 있었다.
진혁은 여전히 사슬에 묶인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정신 장벽을 극한으로 유지하기 위해 뇌 세포를 과도하게 활성화한 대가는 혹독했다. 그의 오른쪽 눈 안구 미세혈관들이 일제히 터져버려, 우안(右眼)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극심한 두통이 머리를 깨부수는 것 같았지만, 진혁은 결코 포커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그는 핏빛으로 물든 오른쪽 눈을 가늘게 뜨고, 바르톨로를 향해 차갑고 오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실의 사냥개라기에 제법 기대를 했습니다만…… 겨우 이 정도입니까, 심문관?”
진혁의 나직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차단 장막이 쳐진 독방 안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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