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완장들의 폭동
피빛 경고등이 아스트라에아의 브릿지를 차갑게 물들였다. 생체 유기 금속으로 이루어진 벽면이 함장의 불안정한 심박수에 반응하듯 잘게 꿈틀거리며 붉은빛 노이즈를 내뿜었다.
[경고: 제국 제8순찰대 소속 정찰 전술함 3기, 궤도 상공에서 주포 조준 완료.]
[타키온 포격 임계 전하 충전율 85%... 90%...]
귀를 찢는 기계음이 뉴럴 헬름을 통해 한우의 대뇌 피질을 직접 찔러왔다. 머릿속이 깨질 것처럼 아파왔다. 눈을 감았음에도 360도 전방위 양자 센서망이 뇌신경에 직접 투영해 주는 우주 공간의 지도가 너무도 선명했다. 전면 관측창 너머, 차가운 우주의 암흑 속에 떠 있는 세 대의 제국 정규군 전술함이 포신 끝에 청백색 타키온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다. 단 한 발만 스쳐도 예비 동력 12%에 불과한 아스트라에아는 우주의 먼지로 화할 터였다.
‘움직여야 해.’
한우는 조종 레버를 잡기 위해 왼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왼쪽 어깨와 팔은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동조율 10% 돌파, 아스트라에아의 고대 센서망을 연동하는 대가로 치른 육체적 등가교환의 결과였다. 완전히 마비된 왼쪽 신체는 마치 타인의 살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무겁고 감각이 없었다.
“형, 팔이... 팔이 왜 그래?”
조종석 뒤편, 보조 콘솔 아래에 웅크리고 있던 토비가 한우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절규하듯 소리쳤다. 소년의 오른쪽 어깨에 감긴 붕대 새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지금 토비의 눈에 가득 찬 것은 한우를 향한 극심한 공포와 걱정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한우는 오른손만으로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입술을 깨물자 비릿한 피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안구는 붉게 충혈되었고, 코끝에서는 끊임없이 뜨거운 선혈이 흘러내려 턱밑으로 떨어졌다. 머릿속에서는 아테나의 차가운 목소리가 이성적인 경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함장님, 현재 동력 12% 상태에서는 제국군 전술함의 일제 사격을 물리적으로 회피할 확률이 4.2%에 불과합니다. 메인 엔진의 출력을 강제로 150%까지 끌어올려야 하지만, 가용한 에너지원인 고압 액화 수소 연료봉의 매장량이 한계치입니다.”
‘방법이 없을 리가 없어.’
한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그의 뛰어난 ‘기계 직관’이 뇌 속 양자 홀로그램 지도를 빠르게 훑었다. 제국군 전술함들의 포격 궤적, 대기권 외곽의 전자기 흐름, 그리고 저 멀리 위성 표면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제국 제8군사 초소의 대공 레이더망 주파수까지. 모든 데이터가 그의 신경망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지직, 지지직—!
아스트라에아의 고대 양자 센서망에 위성 타르타로스의 지상에서 발송된 기이한 전자기 파동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정교한 군용 통신이 아니었다. 광산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구식 무전 주파수를 강제로 오버클럭하여 송출한, 거칠고 뜨거운 신호였다.
“...들리는가! 하늘로 솟구친 고대의 군함이여!”
무전기 너머로 익숙하고 억센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하 저항군 ‘레드 더스트’의 리더, 바르도였다.
“우리는 평생을 이 잿빛 흙구덩이 속에서 가축처럼 짓밟히며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 네가 제국의 사슬을 끊고 하늘로 비상하는 것을 보았다! 가문의 누명을 쓴 서자여, 너는 우리의 희망이다!”
한우의 뇌 속 3D 홀로그램 지도에 위성 타르타로스 전역의 시각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갱신되었다. 잿빛 대지 위, 수많은 광산 터널의 입구에서 붉은 완장을 찬 노동자들이 벌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무기 대신 산업용 플라즈마 절단기와 낡은 채굴 공구들이 들려 있었다.
“레드 더스트 전원, 돌격하라! 저 악마들의 대공 포병 진지와 레이더 기지를 무너뜨려라! 우리 함장님이 하늘을 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라!”
바르도의 사자후와 함께 위성 전역에서 거대한 폭동이 발발했다. 수천 명의 광산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제국 제8순찰대의 지상 통제소로 돌격했다. 붉은 완장을 찬 이들이 제국군의 초소 벽을 기어오르고, 플라즈마 절단기로 전력 공급선의 철벽을 찢어발겼다.
콰아아앙! 콰앙!
지상에서 거대한 불꽃이 치솟는 광경이 아스트라에아의 센서망에 고스란히 포착되었다. 바르도가 이끄는 특공대가 지상 제어국의 메인 전력 배선망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순간, 위성 상공의 대공 포탑과 궤도 전술함들을 연결하던 양자 동기화 신호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지직, 파지직!
[보고: 제국군 대공 포탑 및 전술함 조준 시스템 전력 저하 감지.]
[조준 제어 장치 일시 오작동. 타키온 포격 조준 궤적이 순간적으로 15도 편향되었습니다.]
‘지금이다!’
한우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제국군 전술함들의 포신 끝에서 빛나던 청백색 광선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찰나의 순간을 그의 양자 인지가 결코 놓치지 않았다. 한우는 오른손으로 수동 조종 레버를 움켜쥐고 뇌파로 아테나에게 명령했다.
“아테나! 보조 추진기실의 ‘고압 액화 수소 연료봉’ 전원 연소! 최대 가속 단행!”
“연료봉 연소 시 잔여 보조 연료가 3% 미만으로 급감합니다. 대기권 탈출 직후 기동력이 마비될 수 있습니다.”
“지금 죽으면 다음은 없어! 연소해!”
화아아아악—!
아스트라에아의 하부 스러스터가 고압 액화 수소 연료봉을 한꺼번에 삼켜버리며 백색의 가스 불꽃을 폭발적으로 토해냈다. 함선이 비명을 지르듯 요동치며 궤도 상공을 향해 급가속했다. 엄청난 중력 가속도가 브릿지 내부를 짓눌렀다. 조종석 뒤편에서 요셉이 거친 신음을 내뱉으며 콘솔 바닥에 몸을 밀착시켰고, 토비는 이빨을 악물고 버텼다.
그 순간, 제국 전술함들의 포신에서 마침내 타키온 빔이 발사되었다.
콰아아아아앙—!
빛의 속도에 달하는 청백색 광선 세 줄기가 우주 공간을 찢으며 아스트라에아가 방금 전까지 머물던 좌표를 관통했다. 비록 바르도의 폭동으로 조준선이 15도 흔들렸지만, 광선이 대기를 찢으며 발생시킨 초고주파 충격파가 아스트라에아의 후미 장갑판을 덮쳤다.
쿠구구구구!
선체가 격렬하게 흔들리며 우현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경고음이 브릿지를 가득 채웠다.
[위험: 후미 장갑판 열화 마찰 한계 도달. 충격파 에너지 유입 중.]
“중력 벡터 편향(Gravity Vector Deflection), 가동!”
한우는 오른손 손가락들을 제어 콘솔의 양자 포트에 거칠게 접지했다. 찌릿한 고전압 스파크가 그의 손끝을 타고 뇌신경으로 역류했다. 머릿속에서 퓨즈가 끊어지는 듯한 극통이 일었지만, 그는 정신을 집중해 아스트라에아 내부의 소형 중력 코어를 역방향으로 순간 폭주 시켰다.
파지직! 웅—!
아스트라에아의 선체 후미 주변의 시공간이 둥글게 휘어졌다. 날아오던 타키온 빔의 폭발 충격파가 뒤틀린 중력장에 닿는 순간, 마치 물 흐르듯 선체 바깥쪽으로 미끄러지며 사방으로 분산되었다. 함선은 장갑의 큰 손상 없이 가속력을 유지한 채 제국군의 대공 포격망을 완벽히 무력화했다.
“대기권 돌파 성공. 외곽 궤도 진입 완료.”
아테나의 차가운 보고와 함께, 함선 내부를 짓누르던 엄청난 압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관측창 너머로 잿빛의 타르타로스 위성이 저 멀리 아래로 내려다보였다. 지상에서는 아직도 광산 노동자들이 일으킨 붉은 불꽃들이 점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해냈다. 밑바닥 쓰레기라 불리던 광산 노동자들의 희생과 연대가, 고대의 군함을 하늘로 쏘아 올린 것이다.
하지만 승리의 감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고: 보조 추진 연료 고갈 직전. 잔여 수소 연료 1.8%.]
[전방 궤도 영역에서 비정상적인 초중력파 반응 감지.]
한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충혈된 눈으로 전면 관측창을 응시했다.
우주의 어둠을 찢으며, 정면의 공간이 기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차원 왜곡 장막을 걷어내며 거대한 군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처럼 어두운 선체에 크로이츠 가문의 붉은 가시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진 함선.
타르타로스의 영주, 크로이츠 남작의 사설 함대 기함인 ‘블랙 팽(Black Fang)’이었다.
블랙 팽의 하부 발사관이 열리며, 푸른색 에너지를 발산하는 거대한 중력 그물망 탄두들이 아스트라에아를 향해 소리 없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