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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대붕괴와 강제 이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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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구—!


보이드 생추어리의 거대한 천장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침묵을 지켜온 고대 격납고의 암반들이 잘게 갈라지며 잿빛 먼지 폭풍을 쏟아냈다. 위성 표면에서 킬고어의 명령을 받은 정찰대장 로건이 대형 굴착 드릴선 ‘그랜드 브레이커’를 폭주시키고 있음이 분명했다. 지하 깊은 곳까지 전달되는 육중한 진동은 지반의 뼈대를 사정없이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형! 돌아왔구나!”


아스트라에아의 하부 승강구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대기하던 토비가 한우를 발견하고 절규하듯 소리쳤다. 소년의 오른쪽 어깨는 급히 감아놓은 붕대 위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있었고, 얼굴은 먼지와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늙은 격납고 지기 요셉 역시 노쇠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무너져 내리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배터리를... 가져왔다. 토비, 요셉 할아버지, 당장 함선 내부로 대피하세요.”


한우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앞으로 뻗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오른쪽 다리 비복근의 미세 신경 열상 부위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칼로 난도질하는 듯한 극통을 뿜어냈다. 바지 틈새로 흘러내린 붉은 피가 장화 안을 축축하게 적셨지만, 한우는 품에 안은 배터리 수송 가방을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의 목에 걸린 은색 펜던트가 가슴팍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지만, 지워진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오직 15분이라는 매몰 유예 시간의 초읽기만이 붉은 글씨로 깜빡이고 있었다.


“이런, 도크의 유압 지지대가 무너지고 있네! 서둘러야 하네, 한우 군!”


요셉이 무너져 내리는 거대 암반을 피해 토비를 승강구 안으로 밀어 넣으며 소리쳤다. 한우 역시 피가 흐르는 다리를 질질 끌며 아스트라에아의 유기 금속 해치 안으로 몸을 던졌다. 쿵! 무거운 생체 해치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외부의 굉음이 일시적으로 차단되었다.


하지만 안도할 시간은 없었다. 한우는 곧바로 함선 내부의 어둡고 차가운 복도를 기어가듯 나아가 중앙 엔진룸으로 향했다. 허리춤의 다목적 양자 공구 ‘옴니-렌치’는 스승 맥스의 정비소에서 배전반을 조율하려다 배터리가 0%로 완전히 방전되어 차가운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오직 육체의 감각과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지직, 지지직.


엔진실에 들어서자, 붉게 점멸하는 고대 제어 콘솔이 한우를 맞이했다. 중앙 노심의 세 쌍의 연료 슬롯은 텅 빈 채 차가운 금속성 광택만을 흘리고 있었다. 한우는 수송 가방을 열어 청백색으로 빛나는 고밀도 반물질 전지 세 쌍을 꺼냈다. 전지 표면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양자 전하가 한우의 상처 입은 손끝을 자극하며 짜릿한 통증을 유발했다.


“으윽, 제발... 들어가라!”


한우는 떨리는 손으로 첫 번째 전지 쌍을 슬롯에 밀어 넣었다. 철컥!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슬롯의 고정 래치가 전지를 단단히 물었다. 이어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전지까지 엔진 노심에 물리적으로 결합하는 순간, 아스트라에아의 심장부가 길고 무거운 맥동을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그것은 수백 년 만에 깨어나는 고대 거인의 첫 호흡이었다. 엔진룸 벽면을 따라 뻗어 있는 푸른색 유기 회로망들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에너지를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반물질 노심 결합 확인. 예비 동력 점화율 12% 도달.”


공중에서 투명한 청색 입자들이 응축되더니, 아스트라에아의 메인 AI 아테나의 홀로그램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색 갑옷을 입고 차가운 눈빛을 한 그녀의 형상은 인간의 감정이 배제된 초합리적 존재 그 자체였다.


“함장님, 보이드 생추어리의 천장 장갑판 붕괴율이 89%를 초과했습니다. 로건의 드릴선 ‘그랜드 브레이커’가 상부 30m 지점까지 도달했습니다. 3분 내에 이륙하지 못할 경우, 선체 프레임이 대량의 암석 질량에 눌려 영구 매몰됩니다.”


“알고 있어! 아테나, 당장 이륙 시퀀스를 가동해!”


한우는 피 묻은 손으로 브릿지의 조종석을 향해 달렸다. 다리가 꺾일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그는 이빨을 악물고 조종석에 깊숙이 걸터앉았다. 머리 위로 천장에 매달려 있던 ‘뉴럴 헬름’이 뱀처럼 매끄럽게 하강해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푸욱!


“아아아아악!”


목덜미와 척추를 관통하는 무수한 미세 침들이 한우의 신경망을 사정없이 찔러 들어왔다. 태양혈의 양자 포트 커넥터가 미친 듯이 과열되며 뇌 세포를 태우는 듯한 극열이 전신을 강타했다. 이전에 겪었던 왼쪽 신체의 경미한 마비 증상이 순식간에 왼쪽 어깨와 팔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가혹한 부작용이었다. 눈앞이 붉게 물들며 안구 충혈과 함께 코끝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선혈이 흘러내렸다.


[경고: 뇌파 동조율 급증. 동조율 6%... 8%... 10% 돌파.]

[센서망 연동 성공. 신경망 부하 임계치 도달.]


그 고통의 대가는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무력으로 치환되었다.


파앗!


한우의 시야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육체의 눈은 감겼지만, 아스트라에아 전역에 설치된 고대 양자 센서망이 그의 뇌와 직접 연동되었다. 함선 외곽 360도 전방위 공간이 한우의 머릿속에 투명한 푸른빛의 3D 홀로그램 지도가 되어 실시간으로 영사되었다. 무너져 내리는 암석의 궤적, 흩날리는 전자기 안개의 밀도, 그리고 머리 위에서 거대한 강철 회전날개를 돌리며 지하를 파헤치는 로건의 드릴선 구조까지 양자 수준에서 완벽하게 인지되었다.


‘보인다. 모든 것이 보여.’


“아테나, 자동 이륙 시퀀스로 전환해!”


“불가능합니다. 이륙 제어 장치의 60%가 장기 휴면으로 인해 노후화되었습니다. 수동으로 에너지 흐름을 조율하지 않으면 이륙 추진력이 분산됩니다.”


“젠장, 결국 직접 하라는 소리군!”


한우는 왼쪽 팔의 감각이 사라진 상태에서 오른손만으로 조종 콘솔의 양자 레버를 움켜쥐었다. 뇌파를 조율해 아테나의 에너지 제어 장치와 동기화했다. 엔진 노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반물질 전하를 보조 추진기(스러스터) 방향으로 강제로 유도했다.


그 순간, 콰아아앙—!


보이드 생추어리의 천장이 완전히 파열되며 로건의 대형 드릴선 ‘그랜드 브레이커’의 거대한 드릴 헤드가 아스트라에아의 우현 장갑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했다. 드릴 날이 회전하며 발생하는 초고주파 소음이 함선 외벽을 타고 들어와 한우의 뇌파 링크를 격렬하게 뒤흔들었다.


[위험: 우현 장갑 충돌 확률 98.4%. 충돌 시 선체 프레임 대파 예고.]


‘피해야 해!’


한우는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이명을 견디며 오른손으로 조종간을 꺾었다. 그리고 아직 안정되지 않은 보조 스러스터의 역분사 밸브를 수동으로 강제 개방했다.


쿠우우웅—!


아스트라에아의 하부 스러스터가 푸른색 불꽃을 폭발적으로 토해내며 선체를 뒤로 급격히 밀어냈다. 관성을 완전히 무시한 변칙 기동이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익—!


로건의 대형 드릴 헤드가 간발의 차이로 아스트라에아의 정면을 비껴갔다. 하지만 드릴의 외곽 회전 날이 아스트라에아의 우현 날개 장갑판을 거칠게 긁고 지나갔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며 발생하는 거대한 불꽃이 3D 홀로그램 시야를 가득 채웠고, 우현의 ‘티타늄 생체 합금 판넬’ 일부가 찌그러지며 깊은 긁힘 피해를 입었다.


[우현 보조 장갑 내구도 15% 감소. 생체 금속 동조 정비법 가동을 권장합니다.]


“아직 이륙하지 못했어! 장갑을 재생시킨다!”


한우는 신음하며 자신의 양자 포트를 통해 체내의 생체 전기에너지를 역방향으로 아스트라에아의 신경망에 주입했다. 극심한 탈진감과 함께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지만,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푸른색 스파크가 우현 장갑판 내부로 스며들었다.


스으으으으—.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찌그러지고 긁혀 나갔던 티타늄 생체 합금 판넬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피부처럼 꿈틀거리며 자가 수복되기 시작했다. 나노 입자들이 실시간으로 재배열되며 상처 입은 외벽이 순식간에 매끄러운 군청색 빛깔을 되찾았다.


“자가 수복 완료. 추진 노심 전력 분배 안정화.”


아테나의 보고와 동시에 한우는 조종간을 끝까지 앞으로 밀어붙였다.


“올라간다!”


우우우우웅— 쾅!


아스트라에아의 주 엔진이 마침내 완전한 점화에 성공했다. 반물질 노심이 맥동하며 방출한 압도적인 열기와 추진력이 보이드 생추어리의 바닥을 통째로 증발시켰다. 함선은 무너져 내리는 마그마와 암석의 대홍수를 뚫고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


타르타로스 지각 대붕괴선이 뿜어내는 붉은 화염을 날개로 가르며, 고대의 군함은 대지를 파괴하고 하늘을 향해 비상했다. 로건의 드릴선과 무너지는 격납고의 잔해들이 발밑의 심연 속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파아아아앗—!


마침내 아스트라에아는 잿빛 먼지로 가득 찬 타르타로스 위성의 대기권을 뚫고 솟구쳤다. 칠흑 같은 우주의 검은 침묵이 전면 관측창 너머로 웅장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탈출의 기쁨은 찰나에 불과했다.


삐이이이이—!


브릿지 내부의 경고등이 피빛 붉은색으로 일제히 전환되며 날카로운 경보음이 고막을 찢었다.


[경고: 다수의 군용 록온 신호 감지.]

[제국 제8순찰대 소속 정찰 전술함 3기, 궤도 상공에서 주포 조준 완료.]


관측창 너머, 아스트라에아의 이륙 신호를 감지하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제국 정규군 전술함들의 거대한 포신들이 청백색의 에너지를 충전하며 일제히 아스트라에아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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