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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등불, 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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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타로스 위성의 숨통을 죄는 밤공기는 언제나처럼 비린 기름 냄새와 차가운 유황 가스로 가득했다.


“으윽...!”


지하 수로의 썩은 점액질을 헤치고 기어 나오며, 강한우는 신음과 함께 오른쪽 다리를 움켜쥐었다. 슬레이어-01의 고주파 스파크 파편이 비복근을 찢어발긴 자리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타는 듯한 극통을 뿜어냈다. 다리 근육의 미세 신경들이 제멋대로 요동치며 마비 증상을 유도하고 있었다. 걷는 것조차 기적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한우는 품에 안은 수송 가방을 놓치지 않았다. 그 안에는 아스트라에아의 고대 엔진을 점화할 유일한 열쇠, 고밀도 반물질 전지 세 쌍이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며 들어 있었다.


왼쪽 태양혈에 이식된 구식 양자 포트가 과열되어 가늘게 맥동했다. 머릿속이 깨질 것처럼 아팠고, 코끝에서는 비릿한 선혈이 흘러내려 입술을 적셨다. 양자 인지 2성을 억지로 가동한 대가는 가혹했다. 하지만 한우는 소매로 피를 훔치며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지워진 어머니의 얼굴에 대한 공허한 슬픔이 가슴 한구석을 차갑게 짓눌렀지만, 지금은 감정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스트라에아가 격납고 지하에서 매몰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겨우 18분 남짓이었다.


한우는 절뚝이는 다리를 이끌고 모퉁이를 돌았다. 저 멀리 잿빛 폐기물 언덕 사이에 숨겨진 익숙한 철제 격납고가 보였다. 한우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기계 공학의 배움터였던 ‘맥스의 구식 정비소’였다.


도크의 수동 개폐 장치를 향해 다가가던 한우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평소라면 희미한 주황색 작업등이 켜져 있어야 할 격납고 내부가 기이할 정도로 고요하고 어두웠다. 본능적인 한기가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양자 인지 능력을 발동해 정비소 외벽의 전력 흐름을 감지하려던 한우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전류가... 흐르지 않아. 메인 배선이 완전히 끊겼어.’


그것은 단순한 정전이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날카롭게 절단된 전선들의 단면이 뇌 속 홀로그램에 투영되었다. 내부 사정을 완벽히 아는 자가 안쪽에서 배전반을 파괴한 흔적이었다.


“켄...!”


한우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정비소 구석에서 조용히 노트를 적던 얌전한 조수 켄. 그 비열한 첩자 녀석이 결국 도주 경로와 아지트의 위치를 밀고한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정비소의 육중한 강철 해치가 고열의 플라즈마 절단 광선에 의해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치익—! 하는 비명 같은 소리와 함께 시뻘건 쇳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한우야! 안으로 들어오지 마라!”


정비소 내부에서 맥스의 거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외팔이 정비사 맥스는 투박한 산업용 의수를 쥔 채, 이미 찢겨 나간 격벽 너머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갈색 가죽 앞치마는 검은 기름때와 붉은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스승님!”


한우가 문을 박차고 도크 안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 이미 해치는 완전히 박살 나며 무너져 내렸다. 자욱한 먼지 폭풍을 뚫고 등장한 것은 크로이츠 남작의 사설 경비대장, 브론코였다. 전신을 중장갑 파워 슈트로 무장한 거구의 사내가 붉은색 바이저를 번뜩이며 거대한 기계식 방패를 바닥에 쿵 내려놓았다. 그 뒤로 검은색 전투 슈트를 입은 남작의 정예 대원들이 총구를 겨눈 채 정비소를 포위했다.


“쥐새끼들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였군.”


브론코의 슈트 스피커에서 위압적인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강한우, 그리고 늙은 정비사 놈. 남작님의 물건을 훔친 대가는 오직 죽음뿐이다. 순순히 반물질 배터리를 넘기고 무릎을 꿇어라.”


한우는 급히 허리춤의 다목적 양자 공구 ‘옴니-렌치’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정비소의 비상 전자기 방어막 제어반을 향해 양자 신호를 쏘아 보냈다. 방어막만 가동할 수 있다면 이 중장갑 부대를 잠시라도 가둘 수 있었다. 하지만 옴니-렌치의 끝부분에서 파란색 스파크만 무력하게 튈 뿐, 방어막은 작동하지 않았다.


“소용없다, 한우야!”


맥스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그 비열한 조수 놈이 내부 전력 분배기를 물리적으로 단선시켜 놓았다! 제어 계통이 완전히 죽었어!”


실패였다. 기계 직관으로 제어반 내부를 들여다보니, 켄이 정밀하게 구리 도선들을 끊어놓은 상태였다. 옴니-렌치에 남아 있는 15%의 전력으로는 이 거대한 단선을 즉석에서 복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물리적인 한계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사격 개시! 배터리만 온전히 보존하고 놈들의 사지를 꺾어라!”


브론코의 명령과 함께 정예 대원들의 플라즈마 소총이 불을 뿜었다. 파지직! 청백색의 고열 광선들이 정비소 내부의 선반과 기계 부품들을 사정없이 관통하며 사방으로 불꽃을 튀겼.


맥스가 거구의 몸을 날려 한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오른팔에 장착된 전술 기계 의수가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전압 충격 장벽을 형성했다. 대인용 플라즈마 탄환들이 맥스의 의수 장벽에 부딪혀 사방으로 편향되었지만, 쏟아지는 화력의 양이 압도적이었다. 의수의 차폐막이 과열되며 맥스의 노쇠한 육체에 극심한 반동 충격이 가해졌다. 맥스의 입가에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스승님, 피하십시오! 같이 가야 합니다!”


한우가 절뚝이는 다리로 맥스를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맥스는 한우의 어깨를 강하게 밀쳐냈다. 그의 투박한 기계 손이 한우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그 눈빛에는 슬픔 대신,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단단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바보 같은 소리 마라! 네 다리로는 내 속도를 맞출 수 없어. 둘 다 남으면 여기서 개죽음뿐이다!”


맥스는 한우의 품에 안긴 배터리 가방을 툭 쳤다.


“그 배터리를 가지고 지하 수로 제12 터널로 가라. 거기서 보이드 생추어리로 바로 연결되는 수동 해치가 있어. 가서... 네 아버지가 남긴 군함을 깨워라. 아스트라에아를 반드시 이 위성 밖으로 쏘아 올려!”


“하지만 스승님을 두고 갈 수는—”


“가라!”


맥스가 포효했다. 그의 얼굴 절반을 뒤덮은 거친 화상 흉터가 붉은 비상등 불빛 아래에서 숭고하게 일렁였다.


브론코의 중장갑 슈트가 방패를 앞세워 거리를 좁혀왔다. 슈트의 어깨 부분에서 미사일 발사관이 열리며 붉은색 록온 신호가 맥스의 가슴을 겨냥했다.


맥스는 마지막 수단을 쓰기로 결심한 듯, 자신의 전술 기계 의수 내부의 안전장치를 수동으로 뜯어냈다. 파지직! 의수 관절 사이로 청백색의 아크 방전이 폭주하듯 흘러나왔다. 그것은 의수의 전력 노심을 강제로 과부하 가동시키는, 돌이킬 수 없는 자멸의 프로토콜이었다.


“제국의 사냥개 놈들아! 전직 제1기 설계총국의 기술력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맥스는 포효하며 자신의 폭주하는 기계 의수를 정비소 중앙의 메인 전력 코어 터미널에 그대로 박아 넣었다.


쿠구구구둥—!


정비소 바닥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맥스의 의수를 매개체로 삼아 정비소의 전력 코어가 흡수한 모든 전하가 일시에 역류하기 시작했다. 브론코의 슈트 센서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날카로운 경고음을 내질렀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이 미친 노인네가 대체 무슨 짓을—!”


브론코의 경악 섞인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맥스의 기계 의수가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전자기 섬광과 함께 대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단순한 화약 폭발이 아니었다. 초고전압의 양자 서지가 사방으로 방출되며 거대한 전자기 장막(EMP)을 형성했다. 정비소 내부를 가득 채운 푸른색의 전자기 안개가 브론코 부대의 중장갑 슈트 센서와 열감지 스캐너를 완벽하게 마비시켰다. 대원들의 슈트가 일시적으로 무력화되며 붉은 안광들이 일시에 꺼졌다. 사방이 짙은 푸른색 스파크 안개로 뒤덮여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지금이다! 가라, 한우야!”


뿌연 안개 속에서 맥스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렸다.


한우는 눈물을 머금고 바닥의 비밀 해치를 열었다. 차가운 지하 수로의 냄새가 올라왔다. 그는 배터리 수송 가방을 메고 해치 아래로 몸을 던졌다. 쿵! 수동 해치 핸들을 끝까지 돌려 잠그는 순간, 지상에서 브론코 부대의 거친 욕설과 함께 맥스가 물리적으로 제압당해 바닥에 쓰러지는 묵직한 타격음이 해치 철판을 타고 미세하게 전해졌다.


“스승님... 맥스 할아버지...”


어두운 수로 바닥에 주저앉은 한우의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른쪽 다리의 비복근 열상 부위가 욱신거리며 피를 뿜어냈지만, 육체의 고통보다 가슴을 찢는 죄책감이 더 컸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평생을 변방에서 숨어 살던 스승이 스스로를 제물로 바쳤다.


한우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어두운 제12 터널의 수로를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찢어진 바지 틈새로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비장한 어둠 속에서, 한우의 손목에 차고 있던 구식 수신기가 지직거리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팟, 팟, 팟.


수신기의 홀로그램 액정 위로 푸른색 신호가 깜빡였다. 맥스가 제국군에 체포되어 압송당하기 직전, 자신의 기계 의수 내부에 심어두었던 무선 보안 코드가 자동 송신된 것이었다. 둥근 궤적을 그리며 깜빡이는 무선 보안 코드는 마치 꺼지지 않는 스승의 등불처럼 한우의 어두운 시야를 비추고 있었다.


한우는 수신기를 꽉 쥐었다. 어머니의 기억을 잃어버린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지만, 지금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분노와 복수심만큼은 그 어떤 양자 인지보다도 선명하고 뜨거웠.


‘반드시 살아남겠다. 살아남아서... 제국 놈들과 우리 가문을 배신한 자들을 내 손으로 직접 파멸시키겠다.’


한우는 비장한 결의를 품고 어둠 속을 향해 걸어갔다. 터널의 끝, 보이드 생추어리의 고대 격납고 문이 멀리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스트라에아가 잠든 그 심연을 향해, 가문의 마지막 복수자가 피 묻은 발자국을 남기며 전진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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