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에아, 시동
“치이이익! 콰아아앙—!”
지하 격납고의 두꺼운 외부 강철 해치가 찢어지는 비명이 보이드 생추어리의 심연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바스가 이끄는 사설 기동대의 플라즈마 절단기가 기어코 차폐막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거대한 주황빛 불꽃을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쇠붙이가 녹아내리는 매캐한 냄새가 차가운 공기 속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토비, 서둘러!”
한우는 어깨에서 붉은 피를 흘리는 토비의 손을 움켜쥐고 아스트라에아의 하부 승강구 계단을 향해 질주했다. 늙은 격납고 지기 요셉이 구부정한 체구로 그들의 뒤를 바짝 따르며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도련님! 함장실로 가십시오! 중앙 제어 장치에 크로노미터를 연결해야 저 괴물이 완전히 깨어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승강구를 통해 들어선 아스트라에아의 내부는 제국의 투박한 군함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차갑고 각진 철판 대신, 마치 거대한 심해 생명체의 몸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유기 금속 벽면이 펼쳐져 있었다. 벽면 내부에는 푸른빛을 띤 가느다란 생체 섬유질이 혈관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동력이 들어오지 않아 그 흐름은 완전히 멈춰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과 침묵만이 가득한 함선 내부에서 그들의 발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렸다.
한우는 벽면의 기계적 흐름을 감지하려 태양혈의 양자 포트를 자극했다. 찌르르하는 미세한 전류와 함께 머릿속에 함선의 내부 지도가 흐릿한 격자선으로 그려졌다.
‘이쪽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아스트라에아 함장실이자 중앙 브릿지로 통하는 통로를 찾아 달렸다. 마침내 브릿지 중앙에 도달하자, 사방이 투명한 양자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조종석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조종석 천장에는 거대한 기계 촉수처럼 늘어진 기이한 장비가 매달려 있었다.
고대 선구자식 신경 인터페이스, ‘뉴럴 헬름(Neural Helm)’이었다.
“형... 저게 조종 장치야? 꼭 살아있는 기계 괴물 같아...”
토비가 겁에 질린 채 상처 입은 어깨를 감싸 쥐며 중얼거렸다. 뉴럴 헬름의 안쪽에는 척추를 직접 관통하도록 설계된 무수한 미세 침들이 차가운 은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일반적인 기계 정비와는 차원이 다른, 생체 공학적 융합을 요구하는 기괴한 형태였다.
“바스의 대원들이 격납고 내벽을 완전히 파쇄했습니다! 3분, 아니 2분도 버티지 못합니다!”
요셉이 브릿지 모니터의 붉은 경고등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격납고 입구 너머에서 세르게이가 이끄는 중장갑 슈트 부대의 무거운 발소리가 벽을 타고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플라즈마 화기의 충전 소리가 가늘게 브릿지 내부까지 스며들었다. 물러설 곳은 없었다.
“토비, 요셉 할아버지. 조종석 뒤쪽의 보조 제어 콘솔 뒤에 숨으세요.”
한우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그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지만, 이성은 오히려 얼음처럼 맑아졌다. 그는 벨트에서 유일한 유산이자 함선의 마스터 열쇠인 ‘양자 크로노미터’를 꺼냈다. 그리고 조종석 중앙 콘솔의 홈에 주저 없이 밀어 넣었다.
딸깍.
크로노미터가 맞물리는 순간, 침묵하던 조종석 주위로 푸른 전하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솟구쳤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뉴럴 헬름이 마치 먹이를 찾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강하했다. 한우는 조종석에 깊숙이 걸터앉아 머리 위로 내려오는 헬멧을 받아 썼다.
“으아아아악!”
헬멧이 머리에 밀착됨과 동시에, 목덜미와 척추를 따라 수십 개의 미세 침들이 사정없이 피부를 뚫고 파고들었다. 척수 신경망을 직접 자극하는 물리적인 고통에 한우의 전신이 격렬하게 뒤틀렸다. 태양혈에 이식된 구식 양자 포트 커넥터가 과열되며 타들어 가는 듯한 극열이 뇌를 직격했다.
[경고: 미승인 유전자 코드 접근 감지. 고대 양자 방화벽 작동.]
[경고: 외부 신경 신호 강제 배제 프로토콜을 가동합니다.]
뇌 속에서 차갑고 기계적인 경고음이 고주파 이명과 함께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아스트라에아의 고대 방화벽이 한우의 뇌파를 적대적인 침입자로 규정하고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신경망을 타고 역류하는 거대한 거부 반응의 파동이 한우의 심장 박동을 교란했다.
‘커흑...!’
숨이 턱 막혔다. 한우는 이 거부 반응을 억누르기 위해 억지로 자신의 뇌파를 억제하고 기계를 굴복시키려 시도했다. 하지만 기계와 인간의 연산 주파수가 톱니바퀴처럼 어긋나며 심장에 극심한 과부하가 걸렸다. 심장이 맥동을 멈추고 온몸의 피가 식어가는 심정지 위기가 찾아왔다. 시야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니야... 억누르는 게 아니야. 아버지는 나에게 지배하라고 이 배를 남기신 게 아니다.’
한우는 죽음의 문턱에서 번뜩이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배는 도구가 아닌 생명체다. 그는 뇌파를 누르는 무모한 시도를 즉각 중단했다. 대신, 양자 크로노미터에 내장된 아버님의 마스터 보안 코드를 자신의 뇌파 신호와 동조시키는 ‘전술적 뇌파 동조’를 감행했다.
그는 가슴을 깊게 들여마시며 ‘신경 링크 부작용 완화 호흡법’을 시작했다.
들이쉬고, 내쉬며, 심장 박동수를 분당 40회 이하로 극단적으로 낮추었다. 뇌파의 진동수를 크로노미터가 방출하는 특유의 반물질 파동 위상과 완벽하게 일치시켰다. 자신의 뇌파를 크로노미터의 신호 뒤로 숨겨 방화벽을 기만하는 고도의 전자기적 도박이었다.
위잉—!
거칠게 요동치던 붉은 경고막이 일순간 푸른색의 안정적인 궤적으로 전환되었다. 방화벽이 기만당하고 한우의 유전자 코드를 정당한 계승자로 인식한 것이다.
[동조율 1% 도달. 아스트라에아 메인 연산 코어 활성화.]
“쿠구구구구궁—!”
함선의 심장부 깊은 곳에서 수백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반물질 엔진 노심이 가벼운 맥동을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브릿지 벽면의 생체 섬유질을 따라 눈부신 푸른빛의 생명 회로가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가는 잔혹했다. 동조율이 시작됨과 동시에 수백 년 치의 고대 데이터 노이즈가 한우의 뇌파 링크를 타고 폭포처럼 밀려들었다. 뇌세포가 나노 수준에서 재구성되며 타들어 가는 극심한 뇌압이 고막을 찢을 듯한 이명으로 변했다. 뇌의 연산 대역폭이 한계에 도달해 자아가 붕괴할 위기였다.
‘연산 장치가 부족해... 버퍼를 비워야 한다!’
한우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뇌 기억 영역을 함선의 초기 연산 장치로 임시 공유하는 ‘메모리 서징(Memory Surging)’ 기법을 발동했다. 뇌 속의 기억 보존 영역을 강제로 비워 함선의 연산 코어와 동기화시키는 비장한 결단이었다.
파지직!
머릿속에서 소중한 무언가가 유리 파편처럼 깨어져 나가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잿빛 타르타로스 위성의 가난하고 추운 지하 단칸방. 거친 기계 기름 냄새 속에서도 자신을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어주던 어머니 유라(Yura)의 얼굴. 그 소박했던 회색 원피스의 자락과 자상했던 목소리 잔상이 푸른 빛의 데이터 조각으로 분해되어 함선의 메인프레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 아아...”
한우의 왼쪽 눈에서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상실감에 눈물을 흘렸지만, 정작 자신이 왜 울고 있는지, 그 기억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지워져 가고 있었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흔적 자체가 뇌세포의 사멸과 함께 영구히 소멸해 버린 것이다. 차가운 기계적 평정심만이 그 자리를 메웠다.
[동조율 5% 돌파. 메인 동력원 1차 점화 성공.]
[아스트라에아 외부 도크 해치 강제 잠금 프로토콜을 실행합니다.]
“쿵! 콰르릉!”
함선 전체가 거대하게 진동하며 아스트라에아의 외부 해치들이 일제히 수밀 상태로 단단히 걸어 잠겼다.
그 순간, 격납고 해치를 완전히 찢고 브릿지 전면 창 앞까지 들이닥친 바스와 세르게이의 기동대가 플라즈마 캐논을 조준하려 했으나, 굳게 닫힌 아스트라에아의 유기 금속 장갑벽에 가로막혀 당혹감에 휩싸였다. 그들의 붉은 바이저가 창 너머에서 분노로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스우우우—.
브릿지 중앙 홀로그램 장치에서 찬란한 황금빛 입자들이 뿜어져 나와 하나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황금색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든 차갑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아스트라에아의 메인 AI, 아테나(Athena)였다.
“계승자 승인 완료. 마스터 강한우, 아스트라에아의 시동을 환영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은하계의 물리 법칙만큼이나 차갑고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첫 시동의 경이로움도 잠시, 아테나의 눈동자가 붉게 빛나며 경고 메시지를 띄웠다.
“경고. 메인 노심 점화 시 방출된 고농도 반물질 타키온 파동이 대기권을 관통했습니다. 위성 궤도 상공의 제국 제8순찰대 본부에 본 함선의 고유 신호가 정밀 포착되었습니다. 적 함대의 요격 경로 연산이 시작되었습니다.”
한우는 왼쪽 신체에 가느다랗게 새겨진 푸른 반물질 흉터의 열감을 느끼며, 전방의 칠흑 같은 우주 화면을 매서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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