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격납고, 보이드 생추어리
물비린내와 썩은 기름 냄새가 뒤섞인 어둠이 허파를 찔렀다. 하이브-04의 배전반을 폭파하고 수동 해치 아래로 몸을 던진 지 고작 수 분. 축축하고 미끄러운 배관 벽을 타고 굴러떨어진 한우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태양혈에 이식된 구식 양자 포트가 미친 듯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피가 목덜미를 적셨다.
“하아, 하아... 형! 괜찮아?”
옆에서 흙바닥을 구른 토비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우의 팔을 붙잡았다. 소년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한우는 이가 부러질 정도로 악물며 머릿속의 이명을 가라앉혔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그의 이성은 얼음처럼 차갑게 주변을 분석했다.
“일어날 수 있어. 토비, 배낭 단단히 매.”
이곳은 타르타로스 위성의 가장 깊고 버려진 핏줄, ‘지하 수로 제12 터널’이었다. 사방은 이끼와 광산 폐수로 뒤덮여 있었고, 천장에서는 정체불명의 오수가 끊임없이 뚝뚝 떨어졌다. 위성의 노후화된 배수 체계 탓에 산소 농도는 희박했고, 전자기 노이즈가 가득해 일반적인 통신기나 센서는 먹통이 되는 천혜의 도주로였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금단의 영역이기도 했다.
철벅, 철벅!
저 멀리 수로 위쪽에서 무겁고 규칙적인 금속성 발소리가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단순한 인간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중장갑 파워 슈트 ‘타이탄’의 관성 제어 장치가 작동할 때 발생하는 특유의 고주파 진동음이었다.
“바스의 기동대다.”
한우가 낮게 읊조렸다. 이반의 드론 신호가 끊기자마자 남작의 사설 기동대장 세르게이가 이끄는 정예 대원들이 지하 수로로 진입한 것이 분명했다. 세르게이는 타르타로스에서 가장 잔인하고 정교한 백병전 전술을 구사하는 사냥개였다.
“형, 이쪽이야! 루터 아저씨가 말한 고대 격납고로 가는 수동 밸브 해치가 전방에 있어!”
토비가 낡은 전자기 나사 조절기를 쥔 채 앞장섰다. 이윽고 그들의 눈앞에 거대하고 녹슨 청동색 수밀 해치가 나타났다. 수백 년 동안 열린 적이 없는 듯, 해치 주변의 톱니바퀴들은 굳어버린 오수와 녹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비켜봐, 내가 열어볼게!”
토비가 해치의 수동 밸브 레버를 잡고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하지만 레버는 끼익하는 비명만 지를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소년의 마른 팔에 핏대가 섰지만 수백 년의 녹은 인간의 완력 따위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켜봐, 토비.”
한우가 옴니 렌치를 꺼내 들었다. 배터리 잔량은 고작 30%. 한우는 왼손을 해치의 구동 모터 외벽에 대고 태양혈의 양자 포트를 다시 활성화했다. 뇌 속에서 신경 회로가 푸른 빛을 발하며 해치 내부의 구조가 3차원 격자선으로 그려졌다.
‘모터 기어의 두 번째 톱니가 어긋나 있어. 전류를 역방향으로 인가하면...’
그가 옴니 렌치의 방전 트리거를 당기려는 찰나였다.
핏, 팟!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강렬한 백색 섬광이 지하 수로의 어둠을 찢어발겼다. 세르게이의 기동대가 전방 통로로 발사한 군용 섬광탄이었다.
“아악!”
토비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리고 쓰러졌다. 한우 역시 안구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과 함께 시야가 완벽한 백색 암전 속으로 빠져들었다. 뇌파 링크가 흔들리며 양자 인지망이 산산조각이 났다. 귀를 찢는 이명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거기까지다, 광산의 쥐새끼들.”
어둠 속에서 증폭된 세르게이의 차가운 기계음이 울렸다. 중장갑 슈트의 육중한 발소리가 턱밑까지 다가왔다. 시야가 회복되려면 최소한 수십 초가 필요했다. 그 시간이면 세르게이의 플라즈마 캐논이 그들의 몸을 융해시키고도 남을 터였다.
‘생각해, 강한우. 이 수로의 구조를 이용해야 해.’
한우는 눈이 먼 상태에서 뇌신경을 억지로 쥐어짜 냈다. 그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인공 지각 붕괴 분석 모델’ 알고리즘이 가동되었다. 비록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귀로 들리는 중장갑 슈트의 진동 주파수와 수로 벽면을 흐르는 미세한 유압 마찰음이 그의 뇌 속에서 물리적 상수로 치환되었다.
물리적 눈이 아닌, 기계의 흐름을 읽는 ‘양자 인지’의 시야가 다시 한번 흐릿하게 열렸다. 수로 천장의 거대한 암반 구조가 보였다. 수백 년 동안 광산 연합이 무분별하게 굴착한 탓에, 천장의 특정 아치형 지지대에 엄청난 물리적 응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균열선들이 붉은색 열지도가 되어 한우의 뇌리에서 번뜩였다.
‘저 지지대만 무너뜨리면 천장 전체가 무너진다.’
한우는 시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낡은 강철 지지대를 향해 옴니 렌치를 치켜들었다. 렌치의 방전 출력을 100%로 오버클럭했다.
“이게 마지막 전력이다!”
지이이이잉—! 툭.
옴니 렌치의 배터리가 완벽히 방전되며 불꽃을 튀겼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렌치 끝에서 방출된 고주파 고열 전하가 천장의 낡은 강철 지지대 접합부를 정확히 타격했다. 지지대를 구성하는 분자 배열이 순간적으로 붕괴하며 균열이 발생했다.
쿠구구구구!
“무슨 짓을... 대피하라! 천장이 무너진다!”
세르게이의 당황한 목소리가 기계음 너머로 터져 나왔다.
천장을 받치고 있던 거대한 암반 파편들이 도미노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수십 톤의 바위와 고철 쓰레기들이 세르게이의 기동대와 한우 일행 사이의 통로를 완벽히 가로막으며 무너져 내렸다. 우르릉쾅쾅하는 대지의 비명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수로를 가득 채웠다.
“아윽!”
쏟아지는 낙석 파편 중 하나가 토비의 오른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소년이 짧은 신음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한우는 간신히 시야가 돌아오기 시작한 눈으로 토비를 바라보았다. 소년의 어깨 정비복이 찢어지고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토비! 괜찮아?”
“으, 응... 뼈는 안 다친 것 같아. 그냥 좀 긁혔어.”
토비가 이를 악물며 수동 나사 조절기를 고쳐 잡았다. 한우는 토비의 상처를 보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책임감을 느꼈다. 이 아이를 반드시 이 지옥에서 탈출시켜야 했다. 그것이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쥔 자의 책무였다.
무너진 낙석 더미 너머에서 세르게이의 대원들이 잔해를 치우기 위해 드릴을 가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없었다. 한우는 방전되어 차갑게 식은 옴니 렌치를 벨트에 차고, 토비의 손을 잡아끌었다.
“뛰어!”
그들은 수로의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다. 그 순간, 눈앞의 어둠이 걷히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물리적 공간이 펼쳐졌다.
“...와아.”
토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우 역시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보이드 생추어리’였다.
위성 타르타로스의 지하 심연에 숨겨진, 과거 제국 제1기 설계총국의 비밀 격납고. 돔형의 천장은 수백 미터 상공에 솟아 있었고, 사방의 벽면은 거대한 생체 금속 장갑판들로 촘촘히 둘러싸여 있었다. 격납고 외곽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대기를 미세하게 비틀고 있는 투명한 푸른빛의 전자기 차폐막이 상시 휘몰아치며 외부의 모든 탐지 신호를 원천 차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도크의 중앙.
수백 년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는 한 척의 거함이 있었다.
고대 생체 군함 ‘아스트라에아’.
그것은 제국의 일반적인 군함처럼 각지고 투박한 철판으로 용접된 기계 덩어리가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심해 생명체의 외피를 연상시키는 유려하고 매끄러운 군청색 유기 금속 장갑, 날렵하게 뻗은 날개 형상의 현측 추진기, 그리고 함교 중앙에 위치한 생명체의 눈동자를 닮은 거대한 양자 센서 코어. 함선 자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거인처럼 웅장한 위용을 풍기며 허공에 정박해 있었다.
“정말... 정말로 존재했어. 아버지가 설계한 마지막 군함이...”
한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태양혈 포트가 함선의 존재를 감지한 듯 기이한 공명 주파수를 내뿜으며 파랗게 깜빡였다.
“태성 님의 아들이로군.”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낮고 구부정한 그림자 하나가 걸어나왔다. 얼굴 절반이 화상 흉터로 뒤덮여 있고, 낡은 제국 제1기 설계총국의 작업모를 깊게 눌러쓴 노인이었다. 그의 한쪽 손에는 격납고의 수동 개폐 장치 크랭크가 쥐어져 있었다. 늙은 격납고 지기, 요셉이었다.
“요셉 할아버지...?”
한우가 노인을 알아보았다. 아버지가 처형당하기 전, 이 격납고의 비밀을 묵묵히 보존하며 수백 년의 침묵을 지켜온 충직한 파수꾼이었다.
“오랜 시간 기다렸다, 한우 도련님. 태성 님께서 남기신 유산이 드디어 주인을 찾았구나. 하지만 감회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다.”
요셉이 크랭크를 쥔 손으로 격납고 입구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모니터 화면에는 붉은색 경고등이 요동치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격납고 전체를 뒤흔드는 날카로운 고주파 소음이 고막을 찔렀다. 외곽 전자기 차폐막 너머, 격납고의 두꺼운 강철 해치 표면에 눈부신 주황색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바스의 기동대가 벌써 격납고 외곽 해치까지 도달했다. 플라즈마 절단기로 해치를 강제 개방하려 장비를 가동 중이야. 차폐막이 뚫리는 건 시간문제다.”
요셉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서렸다.
한우는 고개를 들어 격납고 중앙에 잠든 아스트라에아를 바라보았다. 함선의 거대한 푸른 눈동자는 아직 빛을 잃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저 거인을 깨워야만 이 지옥 같은 위성을 탈출할 수 있었다. 뒤쪽에서는 플라즈마 절단기가 강철을 찢어발기는 불꽃이 점점 더 거세게 타올랐다.
“토비, 요셉 할아버지. 함선으로 달립니다!”
한우가 소리치며 아스트라에아의 열려 있는 하부 승강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강철 해치가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격납고의 심연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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