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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역전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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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롬의 플라즈마 도끼가 엔진실의 유압 제어 밸브를 내리찍기 직전, 한우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색 중력 제어 신호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스트라에아…… 내 목소리를 들어라!”


한우는 콘솔을 붙잡은 오른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왼쪽 팔과 어깨는 이미 감각을 잃은 채 차가운 납덩어리처럼 늘어져 있었고, 왼쪽 다리 비복근마저 마비가 심화되어 조종석에 간신히 상체를 기대고 있는 비참한 몰골이었다. 그러나 그의 태양혈 양자 포트 커넥터는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열을 내뿜으며 푸른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척추를 관통한 뉴럴 헬름의 미세 침들이 그의 신경망을 사정없이 유린했다. 뇌세포가 나노 단위로 재구성되는 가혹한 고통 속에서, 한우의 시야 전반에 아스트라에아 내부의 중력 제어 흐름이 입체적인 3D 홀로그램 회로로 투영되었다.


[경보: 동조율 15% 임계치 도달. 뇌파 오버클럭 상태 감지. 신경망 파괴 확률 급증.]


아테나의 차가운 경고음이 머릿속을 때렸지만 한우는 멈추지 않았다. 엔진실의 밸브가 파괴되어 냉각수가 누출되면 10분 내에 노심 융해로 모든 것이 끝장난다. 산소 농도는 겨우 9%. 숨을 쉴 때마다 허파가 찢어지는 듯한 질식의 고통 속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선내 중력 제어 역전(Gravity Inversion) 가동! 대상 구역, 중앙 엔진룸 진입 복도!”


한우의 처절한 외침과 함께, 콘솔 중앙의 양자 크로노미터가 격렬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그 순간, 엔진룸 복도에서 유압 밸브를 내려치려던 돌격대장 그롬의 시야가 기괴하게 뒤틀렸다. 바닥을 딛고 있던 중량감이 순식간에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지구력의 역방향으로 작용하는 거대한 인력이 온몸을 덮쳤다.


쿠구구궁—!


“무, 무슨……!”


그롬의 거구와 그를 따르던 정예 돌격 대원들의 몸이 허공으로 붕괴하듯 떠올랐다. 그들이 착용한 붉은색 근위대 슈트의 육중한 장갑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질량이 무거울수록 역전된 중력의 인력은 더 강하게 작용했다.


쾅! 콰쾅!


“으아악!”


대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천장으로 처박혔다. 복도 바닥에 놓여 있던 무거운 정비 공구 상자들과 금속 파이프 잔해들 역시 일제히 천장으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천장은 순식간에 거꾸로 뒤집힌 아수라장, 즉 중력의 감옥으로 변모했다. 그롬이 내리찍으려던 플라즈마 토마호크 ‘디스트로이어’는 밸브에서 수십 센티미터 비껴간 채 천장의 금속 프레임을 깊숙이 찍어 누르며 거대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지금이다, 엘레나!”


한우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흐르는 순간, 복도 모퉁이에 쓰러져 있던 부함장 엘레나가 매서운 눈빛을 번뜩였다. 그녀의 왼쪽 어깨 제복은 그롬의 플라즈마 백드래프트로 인해 살점이 벌겋게 익어 들어가는 끔찍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극심한 화상 통증이 전신을 옥죄었지만, 그녀는 이빨을 악물고 자신의 군화 밑창에 장착된 전자기 슈즈를 가동했다.


징—!


고주파 구동음과 함께 전자기 슈즈가 천장의 철제 골조에 단단히 밀착되었다. 중력이 역전되어 천장이 새로운 바닥이 된 격실에서, 엘레나는 천장 위를 비행하듯 매끄럽게 기동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사냥개들아, 천장 밑을 기어 다녀라.”


엘레나가 두 자루의 양자 검 ‘에스텔’을 교차해 휘둘렀다. 청백색의 고열 광선이 허공에 매달린 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대던 돌격 대원들의 목덜미와 슈트 관절을 자비 없이 가르고 지나갔다.


파지직! 콰앙!


고열의 검날이 슈트의 동력선을 녹여내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천장에 등을 처박은 채 버둥거리던 근위대원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차례대로 차가운 주황색 불꽃으로 산화했다.


“이년이……!”


그롬은 천장에 박힌 플라즈마 도끼를 억지로 뽑아내며 전자기 부츠를 활성화해 천장에 발을 고정하려 했다. 그러나 한우는 이미 그의 다음 행동을 양자 인지망으로 완벽히 역연산하고 있었다.


“아테나, 복도 우현의 비상 에어락 해치를 수동 개방해라.”


“에어락 수동 개방 프로토콜 실행합니다.”


쿠구구구궁—!


그롬의 바로 등 뒤에 있던 두꺼운 외부 격벽 해치가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해치 너머는 전자기 폭풍이 휘몰아치는 사이클롭스의 진공 우주 공간이었다. 대기압의 극심한 차이로 인해 선내의 공기가 폭풍처럼 우주 밖으로 빨려 나가기 시작했다.


“어림없다!”


그롬이 플라즈마 도끼를 복도 프레임에 깊숙이 박아 넣으며 버텼다. 중장갑 슈트의 스러스터가 백색 불꽃을 뿜어내며 흡입력에 저항했다. 그러나 그의 전면에 서 있던 엘레나는 이미 전자기 슈즈를 천장에 고정한 채, 두 자루의 양자 검을 교차해 그롬의 슈트 어깨 관절을 정밀하게 겨누고 있었다.


“네 임무는 여기까지다, 그롬.”


서늘한 선언과 함께 엘레나의 검날이 그롬의 슈트 스러스터 노즐을 정확히 꿰뚫었다.


펑!


노즐이 폭발하며 그롬의 추진력이 완전히 상실되었다. 그와 동시에 에어락의 무자비한 인력이 그의 거구를 휩쓸었다.


“으아아아악! 엘레나! 강한우! 너희들은 제국의 손아귀에서 결코—”


그롬의 비명은 진공의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그의 붉은색 슈트가 사이클롭스 전자기 폭풍의 번개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확인한 한우는 즉각 콘솔을 조작했다.


“해치 차단! 중력 정상화!”


철컥! 쾅!


에어락 해치가 단단히 잠기고, 선내 중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적들의 시신과 고철 파편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복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투는 끝났다.


“하아…… 하아……”


한우는 조종석 콘솔을 붙잡은 채 피가 흐르는 태양혈을 짓눌렀다. 뇌파 오버클럭의 여파로 왼쪽 팔의 마비는 이제 손가락 끝의 미세한 움직임마저 완전히 차단해 버렸고, 왼쪽 다리는 마치 감각이 없는 무거운 목재를 매달아 놓은 듯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복도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 있는 하부 갑판의 젊은 정비사 피터의 모습이 보였다. 장은 그의 곁에서 피 묻은 가죽 장갑을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토비는 어깨의 붕대를 움켜쥔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과 무거운 슬픔이 밀려왔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이 무고한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가혹한 현실이 그의 가슴을 후벼팠다.


“함장님.”


엘레나가 어깨의 화상 상처를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브릿지로 들어섰다. 그녀의 군청색 제복은 그을음과 피로 얼룩져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슬퍼할 시간이 없습니다. 적들의 강습함 잔해를 수색해야 합니다. 그롬은 단순한 해적이 아니었습니다. 황실 근위대 특임대의 보안 프로토콜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한우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감정을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혔다.


“토비, 장…… 피터의 시신을 예비 격실로 수습해라. 엘레나, 나와 함께 해적들의 도킹 포드로 간다.”


그들은 파괴된 하부 해치와 연결된 무자비한 잭의 강습함 조종석 잔해로 향했다. 사방에 타버린 전선과 찢겨 나간 장갑판이 널려 있었다. 한우는 마비된 다리를 억지로 이끌며 조종석의 중앙 콘솔로 다가갔다. 그의 오른손 끝에 잔류 전류의 미세한 흐름이 양자 인지로 감지되었다.


‘여기에 무언가 있어.’


한우가 오른손을 뻗어 콘솔의 깨진 모니터 하부를 뜯어내자, 붉은색 군용 암호 메모리 칩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8순찰대의 군관들이 사용하는 극비 보안 패스코드 카드, 즉 ‘제8순찰대 군관 보안 통과 암호 키’였다.


“이것은…… 제국 정규군의 마스터 암호 키로군요.”


엘레나가 그것을 알아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 키가 있다면 제국군의 감시망을 기만해 그들의 군사 초소 내부로 진입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해적 놈들이 왜 이런 정규 군용 키를 소지하고 있었을까요?”


“남작과 제8순찰대 사령관 바그너 사이에 더러운 거래가 있었다는 증거겠지.”


한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암호 키를 챙겼다.


브릿지로 돌아온 한우는 암호 키를 아스트라에아의 메인 콘솔에 연결했다. 칩 내부의 기밀 데이터가 해독되며 성계 외곽의 군사 주파수망이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펼쳐졌다. 레오가 빠르게 자판을 두드리며 데이터의 신호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한우야, 이 암호 키 내부에서 이상한 생체 추적 주파수가 활성화되어 있어. 제국 제8군사 초소 내부의 특정 격실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 신호 패턴, 아주 익숙해.”


레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한우는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붉은색 격자망 너머로, 타르타로스 위성 외곽의 차가운 궤도 상공에 떠 있는 제국 제8군사 초소의 내부 설계도가 그려졌다. 그리고 그 지하 심문실 구역에서 아주 미세하고 불규칙하게 맥동하는 생체 신호 하나가 포착되었다.


그것은 한우에게 기계 공학을 가르쳐 준 스승이자, 자신들을 탈출시키고 대신 체포되었던 외팔이 정비사 맥스의 고유 뇌파 신호였다.


“스승님…….”


한우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화면 속 맥스의 생체 신호는 제국의 악독한 심문 장치에 의해 고통받고 있음을 증명하듯 극도로 불안정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탈취한 암호 카드가 가리키는 진실, 그리고 사지로 끌려간 스승의 생존 확인.


한우는 떨리는 오른손으로 콘솔을 꽉 움켜쥐며, 저 멀리 궤도 상공에서 차갑게 빛나는 제국의 요새 초소를 향해 기수를 돌릴 결의를 다졌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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