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송곳니의 습격
쿠구구궁—!
폭풍의 눈이라는 고요한 심연 속에서, 아스트라에아의 선체가 격렬하게 비명을 질렀다. 단순한 흔들림이 아니었다. 외부 장갑판을 타고 척수 신경망까지 직접 내리꽂히는 둔탁하고 거대한 물리적 충격이었다.
“경보! 하부 갑판 해치 구역에 격렬한 외부 압력 감지! 장갑 관통 시도가 진행 중입니다!”
아테나의 차가운 경고음이 브릿지를 찢었다.
조종석에서 급히 일어서려던 강한우의 몸이 왼쪽으로 크게 기울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무릎이 차가운 금속 바닥에 사정없이 부딪혔다. 왼쪽 다리에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사이클롭스 폭풍을 돌파하기 위해 동조율을 15%까지 무리하게 끌어올린 대가는 가혹했다. 마비는 이미 왼쪽 어깨와 팔을 완전히 죽은 납덩어리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제는 왼쪽 다리 비복근까지 쇠사슬처럼 옭아매고 있었다.
“함장! 괜찮나?”
조종간을 잡고 있던 수석 조타수 발칸이 거구의 몸을 돌려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는 저체온증으로 인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하부 해치 상황이나 보고해.”
한우는 이를 악물고 마비된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며 조종석 콘솔을 붙잡았다. 그의 오른쪽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허리춤에 채워진 다목적 양자 공구 ‘옴니-렌치’는 배터리 잔량 0%의 완전 방전 상태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전자기 스캐닝도, 물리적 방전도 불가능한 무용지물이었다. 오직 그의 머릿속에 흐르는 양자 인지 2성의 감각만이 유일한 등불이었다.
한우가 오른손을 홀로그램 콘솔에 얹자, 아스트라에아 홀로그램 작전통제실 중앙에 3차원 내부 투영 지도가 펼쳐졌다.
하부 해치 구역에 붉은색 적대적 신호가 맹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크로이츠 남작이 보낸 우주 해적선, ‘무자비한 잭’의 강습함이 아스트라에아의 하부 유기 장갑에 강철 닻을 박아 넣고 강제 도킹을 감행한 것이다.
치이이이익—!
쿠궁! 쾅!
귀를 찢는 금속 마찰음과 함께 하부 해치 격벽이 찢겨 나갔다. 해적들이 지닌 고열 플라즈마 융해기가 아스트라에아의 생체 장갑을 녹여내며 강제로 구멍을 뚫은 것이다.
“적들이 침투했다! 전원 무장을 확인하라!”
부함장 엘레나가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양자 검 ‘에스텔’을 뽑아 들었다. 차가운 청백색 광선이 좁은 브릿지 내부를 날카롭게 밝혔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제국 근위대 백부장 시절의 서늘한 살기가 감돌았다.
“레오, 브릿지 입구 차단벽을 원격으로 잠가! 토비와 장은 엔진룸으로 대피해라!”
“안 돼, 엘레나 씨!”
통신망 너머로 토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부 기계실로 통하는 수동 유압 밸브가 열려 있어! 적들이 기계실을 장악하면 반물질 엔진의 전력이 통째로 차단돼! 그럼 아스트라에아는 여기서 진짜 고철이 된다고!”
기계실 내부에서 난민 정비 크루 장과 토비가 필사적으로 기계실 입구에 무거운 부품 상자들을 쌓아 올리며 긴급 바리케이드를 구축하는 모습이 한우의 양자 인지망에 잡혔다. 산소 농도는 겨우 9%를 맴돌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한 질식의 고통 속에서, 그들은 무거운 쇳덩이를 나르고 있었다.
쿵! 쿵! 쿵!
해치 너머로 무거운 군화 소리가 복도를 타고 울려 퍼졌다. 단순한 해적들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제국 정규군의 제식 보행 장치에서 발생하는 규칙적이고 육중한 진동이었다.
선두에 선 사내는 붉은색 근위대 돌격 슈트를 입은 거구, 돌격대장 그롬이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푸른색 플라즈마 전류가 성이 난 뱀처럼 휘감겨 있는 거대한 플라즈마 토마호크 ‘디스트로이어’가 쥐어져 있었다.
“남작의 사냥개들 사이에 제국의 정예 돌격병이 섞여 있군.”
엘레나가 이를 갈며 복도 방어선으로 신속하게 몸을 날렸다.
“장! 토비! 바리케이드 뒤로 숨어라!”
그롬이 이끄는 침투 대원들이 복도 모퉁이를 돌자마자 일제히 플라즈마 소총을 사격했다.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붉은색 광선들이 어두운 복도를 어지럽게 수놓았다.
“조심해!”
장의 외침과 함께 바리케이드 너머로 플라즈마 탄환 한 발이 비껴 들어갔다. 장의 뒤에서 용접 도구를 나르던 하부 갑판의 젊은 난민 정비사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탄환은 그의 가슴을 그대로 관통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살점이 타들어 가는 지독한 냄새가 좁은 통로를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청년은 단 한 마디의 신음도 남기지 못한 채 즉사했다.
“피터—!”
토비가 비명을 지르며 청년의 시신 위로 쓰러지려 하자, 장이 그의 덜덜 떨리는 어깨를 움켜쥐고 강제로 바리케이드 뒤로 끌어내렸다.
“바보 녀석, 정신 차려! 머리 숙여!”
장의 눈에서도 핏발이 섰다. 지상의 동료들이 목숨을 바쳐 열어준 하늘길이었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슈우우웅—!
그때 엘레나가 공중을 가르며 적들의 선두로 돌격했다. 그녀의 양자 검 에스텔이 나선형의 궤적을 그리며 그롬의 호위병 두 명의 목을 단숨에 베어 넘겼다. 고열의 검날이 슈트의 목 관절을 녹여내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반역자의 사냥개 녀석들, 감히 누구 앞이라고 총질이냐!”
엘레나의 검술은 정교하고 무자비했다. 하지만 그롬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거대한 플라즈마 도끼를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엄청난 중량감이 실린 일격이었다. 엘레나는 본능적으로 두 자루의 검을 교차해 막아섰고, 그녀의 어깨 장치에서 개인용 전자기 역장 실드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그롬의 도끼 끝에서 방출된 초고압 플라즈마 에너지는 실드의 허용 한계를 순식간에 초과해 버렸다.
파지직! 콰앙!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엘레나의 역장 실드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 여파로 발생한 고온의 플라즈마 backdraft가 그녀의 왼쪽 어깨를 사정없이 덮쳤다.
“으윽……!”
엘레나가 신음을 삼키며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군청색 제복의 왼쪽 어깨 부분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며 살점이 벌겋게 익어 들어갔다. 끔찍한 화상 통증이 그녀의 전신을 덮쳤지만, 그녀는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롬은 도끼를 고쳐 잡으며 엘레나의 뜯겨나간 견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색 바이저 너머로 낮고 음산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역시 실각한 백부장, 엘레나로군. 황실의 비밀을 엿본 대가는 여기서 치르게 될 것이다. 남작의 명령은 함선 나포지만, 내 개인적인 임무는 네년의 목을 가져가는 것이니까.”
그롬의 흘려진 한 마디가 통신망을 타고 브릿지의 한우에게 전달되었다.
‘단순한 해적이 아니야. 엘레나를 노리고 황실 근위대에서 직접 파견한 위장 처단조다.’
한우의 머릿속이 차갑게 회전했다. 이 좁은 통로에서 적들의 중장갑과 압도적인 물리적 화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게다가 아군은 산소 결핍과 저체온증으로 기동력마저 바닥난 상태였다.
“레오! 통로의 자동 방어 터렛을 가동해! 적들을 분산시켜야 한다!”
한우가 소리쳤다.
“안 돼, 한우야! 켄 녀석이 도망치기 전에 방어 터렛의 양자 인지 센서를 물리적으로 긁어놓았어! 게다가 사이클롭스 폭풍의 EMP 간섭 잔여물이 회로에 남아서 터렛들이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 못하고 먹통이 됐어!”
레오의 다급한 목소리가 절망을 더했다.
그사이, 그롬은 엘레나의 필사적인 검술 방어선을 힘으로 밀어붙이며 중앙 엔진룸의 입구 격벽까지 도달했다. 그의 목표는 명확했다. 함선의 심장부를 마비시키는 것.
그롬이 거대한 플라즈마 도끼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의 도끼날이 조준하고 있는 곳은 엔진실 외벽에 노출된 가장 취약한 부위인 ‘보조 유압 제어 밸브’였다.
저 밸브가 파괴되어 반물질 엔진의 냉각수가 누출되면, 아스트라에아의 고대 엔진은 단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노심 융해를 일으켜 폭발할 터였다. 위성 전체를 날려버릴 대폭발의 위기가 턱밑까지 다가온 순간이었다.
“멈춰라……!”
아스트라에아 홀로그램 작전통제실에서, 한우는 피가 흐르는 왼쪽 태양혈을 움켜쥔 채 홀로그램 콘솔을 오른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마비된 다리 때문에 서 있을 수조차 없어 상체를 콘솔에 완전히 의지한 비참한 자세였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물리적인 화력으로 막을 수 없다면, 함선 자체의 권능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한우는 자신의 뇌세포가 추가로 파괴되어 어떤 소중한 기억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억누르며, 아스트라에아의 내장 중력 장치를 강제로 폭주시킬 준비를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아테나의 자가 수복용 유기 회로들이 미친 듯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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