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 고리의 사냥꾼들
우주 공간에는 소리가 없다. 그러나 한우의 뇌신경과 직결된 뉴럴 헬름은 다가오는 죽음의 궤적을 찢어지는 듯한 경고음으로 변환하여 그의 두개골 내부를 두드려 대고 있었다.
카밀라가 몰고 온 고속 정찰기 ‘실프’의 하부 발사관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 광선. 그것은 소행성 파편들의 불규칙한 틈새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가로지르며, 아스트라에아의 우측 보조 추진기를 향해 짓쳐 들었다. 초정밀 광학 저격 탄두였다.
“우현 스러스터 낙하 궤적 조준 감지!”
한우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동조율 15%의 대가로 얼어붙은 그의 왼쪽 어깨와 팔은 무거운 납덩이처럼 조종석 시트에 처박혀 있었다. 감각이 거세된 왼손 대신, 그는 핏발이 선 오른손으로 콘솔의 접지 포트를 꽉 움켜쥐었다. 뇌파 가속 연산이 그의 전신을 타고 흘렀다. 머릿속의 3D 격자선 지도 위에 실프가 쏜 저격탄의 광학 궤적이 푸른색 가이드라인으로 그려졌다.
한우는 그 연산 데이터를 조타수 발칸의 보조 콘솔로 강제 바이패스했다.
“발칸! 우현 스러스터 차단하고 좌현 3번 노즐을 0.2초간 역분사해! 우측 보조 날개를 축으로 회전해야 해!”
“미친 소리 하지 마라, 함장! 연료가 1%도 안 남았는데 역분사를 하라고? 하지만…… 그 궤적이라면 먹히겠군!”
발칸이 거칠게 포효하며 조종간을 낚아챘다. 그의 전술 장갑이 레버를 밀어붙이자, 아스트라에아의 좌측 후미에서 백색 수소 가스가 폭발적으로 뿜어 나왔다.
쿠우우웅!
선체가 격렬하게 진동하며 오른쪽으로 축을 비틀었다. 찰나의 순간, 카밀라가 쏜 은빛 저격탄이 아스트라에아의 우측 보조 날개 끝자락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파지직!
직격은 피했으나 스쳐 지나간 탄두의 고열 에너지만으로도 우측 보조 날개의 티타늄 생체 합금 판넬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찢겨 나갔다. 브릿지 내부의 경고등이 일제히 피처럼 붉은 빛을 내뿜으며 요동쳤다.
[경고: 우현 보조 날개 장갑판 파손율 24% 돌파. 기동 제어력 저하.]
[보조 추진 연료 잔량: 0.82%.]
“젠장,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인데 이 정찰기 년은 보통내기가 아니군!”
발칸이 침을 뱉으며 이빨을 갈았다.
그때였다. 아스트라에아의 양자 센서망에 또 다른 고속 열원이 감지되었다. 남작이 고용한 에이스 용병 알렉스의 전투기 ‘섀도우 팽’이었다. 섀도우 팽은 소행성의 그림자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며 아스트라에아의 후미를 완벽히 포착했다.
피이이잉—! 피이이잉—!
섀도우 팽의 양 날개에서 붉은빛의 열추적 미사일 네 발이 연속으로 발사되었다. 미사일들은 아스트라에아의 파손된 보조 추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수소 열원을 감지하고 뱀처럼 유연한 궤적을 그리며 짓쳐 들었다.
“미사일 락온! 실드 발전기를 가동해라, 함장!”
발칸이 소리쳤지만, 한우의 뇌 속 연산 프레임은 이미 최악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실드는 안 돼……!”
한우가 피가 섞인 침을 삼키며 간신히 중얼거렸다.
“남은 전력은 1% 미만이야. 보조 전자기 역장 실드를 켜는 순간 발전기가 과열로 타버리고 우리는 영구히 표류하게 돼. 실드는 포기한다.”
“그럼 저 미사일들을 맨몸으로 맞겠다는 거냐? 이 생체 합금 장갑도 저 군용 플라즈마 탄두 네 발을 동시에 맞으면 엔진룸까지 통째로 날아간다고!”
발칸의 다급한 외침이 브릿지를 울렸다. 콘솔 뒤에 웅크리고 있던 토비는 상처 입은 오른쪽 어깨를 움켜쥔 채 사색이 되어 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우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태양혈의 양자 포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그의 뇌세포를 나노 단위로 태우고 있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또 하나의 유년 시절 기억 조각이 부서져 내리는 감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가문의 정원에서 아버님과 함께 설계도를 그리며 웃었던 기억이었다. 소중한 기억이 지워지는 끔찍한 공허함이 가슴을 후벼팠지만, 한우는 그 고통을 억누르며 차가운 이성을 유지했다.
‘기계 직관’이 폭주하듯 가동되었다. 다가오는 미사일들의 유도 전파 주파수가 한우의 양자 인지망에 잡혔다.
“레오! 내 뇌파 신호를 받아서 송신기 대역폭을 4.2기가헤르츠로 오버클럭해! 미끼 미사일 전파 역위상 전송(Decoy Missile Phase Inversion Transmission)을 가동한다!”
“알았어! 대역폭 강제 개방!”
브릿지 하부에서 레오의 다급한 자판 타격음이 들려왔다. 한우는 뉴럴 헬름의 미세 침들이 자극하는 뇌신경 전류를 아스트라에아의 타키온 송신 필터로 직접 인가했다.
윙—!
아스트라에아의 선체 외부 안테나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고주파 전파가 사방으로 살포되었다. 다가오던 열추적 미사일들의 유도 센서가 아스트라에아가 방출한 역위상 전파와 충돌했다. 미사일들의 내부 연산 장치는 순간적으로 목표물의 물리적 위치를 상실하고, 주변에 널려 있는 거대 소행성들의 중력 전하를 아스트라에아의 엔진 열원으로 오인했다.
콰아아앙! 콰앙!
네 발의 미사일들이 아스트라에아의 선두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가며, 좌우에 버티고 있던 거대 소행성 표면에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우주 공간을 가르는 청색 플라즈마 폭발이 소행성들을 산산조각 내며 엄청난 고철 잔해와 먼지 구름을 만들어냈다.
“성공이다! 미사일 자폭 완료!”
토비가 환호성을 질렀지만, 한우는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먼지 구름 너머로 카밀라의 실프와 알렉스의 섀도우 팽이 아스트라에아의 파손된 보조 날개에서 나오는 잔류 열을 감지하고 다시 한번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료 잔량 0.41%. 이제 더 이상의 기동 비행은 불가능해.”
한우가 차갑게 말했다. 그의 왼쪽 다리마저 서서히 감각이 무뎌지며 마비의 전조가 시작되고 있었다.
“발칸, 조종간을 놓고 내 뇌파 흐름에 키를 맡겨. 지금부터 ‘스텔스 매복 기동 사이런트 하이브’를 전개한다.”
“사이런트 하이브? 미쳤군, 이 거대한 군함의 엔진을 완전히 끄겠다는 소리냐? 이 좁은 소행성대 한복판에서 관성 비행만으로 표류하겠다고?”
“그것뿐이야. 사냥꾼들의 눈을 속이려면 우리 스스로가 완전한 고철 시체가 되어야 해.”
한우는 뉴럴 헬름의 제어 프로토콜을 통해 아스트라에아의 메인 반물질 노심의 가동을 강제로 일시 정지시켰다.
우우우웅…… 툭.
수백 년 만에 깨어났던 고대 거인의 심장이 다시 차갑게 멈추어 섰다. 선체 외벽을 흐르던 푸른색 유기 회로의 빛이 일제히 꺼지며, 아스트라에아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동시에 한우는 ‘스텔스 매복 냉각 제어법(Stealth Ambush Cooling Control)’을 가동했다. 함선의 모든 열 방출구를 강제로 밀봉하고, 선체 내부의 잔여 열을 우주 공간의 절대영도 수준으로 강제 강하하기 시작했다.
“추진 전원 오프. 생명 유지 장치 최소 가동 모드로 전환.”
아테나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순식간에 브릿지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곤두박질쳤다. 한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숨결이 하얀 김으로 변하더니, 이내 서리가 되어 조종석 콘솔 표면에 하얗게 내려앉았다. 토비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가죽 외투를 단단히 여몄고, 요셉은 chattering하는 이빨을 악물며 어둠 속을 응시했다.
아스트라에아는 아무런 동력 없이, 오직 이전에 얻은 미세한 관성력에만 의존한 채 소행성대의 고철 쓰레기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것은 완벽한 유령선의 모습이었다. 함선은 과거 성계 전쟁의 잔해들이 밀집된 ‘침묵의 군함 묘지’ 구역 깊숙한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거대한 제국 폐군함의 찌그러진 장갑판 틈새로 아스트라에아의 검은 선체가 물리적으로 완전히 밀착되었다.
“모두 숨을 죽여라.”
한우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조차 극심한 추위로 인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브릿지 내부의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폐를 조여오는 가혹한 압박감과 저체온증이 크루들의 의식을 흐리게 만들었다. 한우는 양자 인지 2성의 감각만을 켠 채, 선체 외부 100미터 반경의 전자기 흐름을 온몸의 피부 감각으로 읽어 내려갔.
서서히, 붉은색 외피의 정찰기 ‘실프’가 소행성 파편 사이를 헤치며 다가왔다.
실프의 전면 광학 서치라이트가 차가운 백색 광선을 뿜으며 침묵의 군함 묘지를 샅샅이 훑었다. 광선이 아스트라에아가 밀착해 있는 폐군함의 장갑판을 통과할 때마다, 브릿지 내부의 성에 낀 관측창 위로 하얀 빛줄기가 어른거렸다.
두근. 두근.
한우는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조차 외부로 새어 나갈까 두려웠다. 그의 옆에 앉은 발칸은 조종간을 쥔 손을 굳게 멈춘 채 숨을 완전히 멈추고 있었다. 토비는 요셉의 품에 안겨 신음 소리를 삼켰다.
실프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아스트라에아의 선체 바로 위로 접근했다.
거리 150미터.
120미터.
그리고 마침내, 단 100미터 상공.
카밀라의 정찰기가 아스트라에아의 얼어붙은 외벽 장갑 바로 위를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정찰기의 하부 센서가 내뿜는 미세한 타키온 주파수가 아스트라에아의 선체 표면을 긁고 지나가는 전자기적 진동이 한우의 태양혈 포트를 타고 그의 뇌신경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전율과 함께, 한우는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카밀라의 붉은 정찰기 하부를 올려다보았다. 단 한 번의 미세한 전력 누출이나 숨소리만으로도 모든 것이 끝장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침묵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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