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위성의 유령 정비사
타르타로스의 하늘은 언제나 녹슨 구리빛이었다.
대기 중에 부유하는 금속 미세먼지와 중금속 재가 태양빛을 굴절시켜 만들어내는 기괴한 노을. 변방 오방성계의 폐기물 위성인 이곳에서 깨끗한 공기나 맑은 하늘 같은 것은 황실 귀족들의 사치품에 불과했다. 하층민들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산소와, 하루 열여섯 시간씩 광산을 굴착하고 남은 고철을 정비하는 가혹한 노동뿐이었다.
지하 배수로와 연결된 낡고 좁은 정비 창고 ‘하이브-04’.
한우는 기름때가 찌든 작업복 소매를 걷어붙인 채, 분해된 구식 유압 실린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21세의 마른 체구였지만, 낡은 가죽 앞치마 아래로 드러난 팔 근육은 뼈를 깎는 노역으로 단단히 다져져 있었다. 그의 왼쪽 태양혈에는 낡고 긁힌 구식 양자 포트 커넥터가 이식되어 있었다. 은색 금속 단자가 피부를 뚫고 박힌 그 자리는 미세한 신경 염증으로 늘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한우 형, 이 스크랩 배터리 전압이 자꾸 흔들려. 접지선이 삭은 걸까?”
조수이자 형제나 다름없는 열다섯 살 소년 토비가 헐렁한 정비복을 입은 채 땀을 훔치며 물었다. 토비의 얼굴은 검댕이로 가득했지만, 눈빛만큼은 한우를 향한 신뢰로 반짝이고 있었다. 한우는 말없이 펜치로 유압 밸브의 나사를 조이며 고개를 저었다.
“접지선 문제가 아니야. 노심 내부의 전하 흐름 자체가 꼬인 거지.”
한우가 왼손 손가락을 배터리 외벽의 구리 전도판에 가볍게 대었다.
지잉.
그가 태양혈 포트를 활성화하자,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기계 노이즈가 울렸다. 머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이명과 함께 그의 검은 눈동자가 순간 깊고 차가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기계와 뇌신경을 직접 연결해 내부의 전자기 흐름을 시각화하는 ‘양자 인지 기법’이었다.
하급 정비사 3급에 불과한 신분이었지만, 한우의 뇌는 기계의 미세한 전류 흐름을 양자 수준에서 감지하는 ‘양자 인지 1성’의 재능을 품고 있었다. 그의 뇌 속 스크린에 배터리 내부의 복잡한 회로선들이 반투명한 푸른색 격자로 그려졌다. 3번 셀과 4번 셀 사이의 절연막이 미세하게 파열되어 전하가 불규칙하게 도약하고 있었다.
“3번 셀 우회로를 차단하고 4번에 직접 접지해. 그럼 전압이 안정될 거야.”
“와, 진짜네! 형은 기계를 만지기만 해도 어디가 고장 났는지 바로 아는구나.”
토비가 감탄하며 스패너를 움직였다. 한우는 쓸쓸하게 웃으며 태양혈 포트에서 전선을 분리했다. 머리를 짓누르는 두통이 밀려왔다. 힘의 대가는 정직했다. 양자 인지를 가동할 때마다 뇌신경 세포는 서서히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변방의 쓰레기 위성에서 이 기술마저 없었다면 한우와 토비는 진작에 광산의 고철더미 아래 묻혔을 터였다.
그의 아버지는 제국의 함선 설계총감이었던 강태성이었다.
은하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아름다운 군함들을 설계했던 천재 아키텍트.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황실을 전복하려 했다는 반역죄의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다. 가문은 몰락했고, 서자였던 한우는 이 가혹한 타르타로스 위성으로 유배당했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가문의 오명과, 아버지가 처형 직전 비밀리에 인편으로 보내온 낡은 ‘양자 크로노미터’ 하나뿐이었다.
쿵, 쿵!
하이브-04의 철제 해치가 부서질 듯 흔들리며 거친 발소리가 창고 안을 가득 채웠다. 한우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다목적 양자 공구 ‘옴니-렌치’를 꽉 쥐었다.
“어이, 쥐새끼들. 아직도 노닥거리고 있냐?”
문이 열리며 거구의 사내가 들어섰다. 제8광구의 악랄한 현장 감독관 바스였다. 가죽 작업복 위로 드러난 그의 오른팔은 투박한 기계식 의수로 대체되어 있었고, 왼손에는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술 채찍이 쥐어져 있었다. 그의 뒤로는 광산 연합의 로고가 박힌 은색 정비복을 입은 청년이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한우의 기술 경쟁자이자 광산 연합의 수석 정비사인 이반이었다.
“바스 감독관님.”
한우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달 할당된 정비 물량은 어제부로 모두 제출했습니다.”
“할당량? 그딴 건 내가 언제든 늘릴 수 있는 거야.”
바스가 전술 채찍을 바닥에 내리쳤다. 파지직하는 고압 스파크가 하이브-04의 철판 바닥을 훑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토비가 겁에 질려 한우의 뒤로 몸을 숨겼다.
“이반의 말로는 네놈이 야적장에서 광산 연합의 군용 폐기 부품들을 무단으로 훔쳐 가고 있다더군. 황실법에 따르면 고대 기술이나 군용 장비를 무단 발굴하는 것은 즉각 사형이다.”
이반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오며 얇은 입술을 올렸다. 그의 한쪽 눈에 장착된 기계식 확대 렌즈가 한우의 태양혈 포트를 조롱하듯 훑었다.
“강한우, 네까짓 하급 정비사가 감히 광산 연합의 폐기 부품으로 뭘 꾸미고 있는지 모를 줄 알았나? 네놈의 그 더러운 반역자 피가 어디 가겠어. 감독관님, 이놈의 정비창을 샅샅이 수색하면 분명 불법 개조품들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이반은 한우의 천재적인 기계 직관력에 늘 깊은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든 한우를 밀고해 제거하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는 수작이었다.
한우는 옴니-렌치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실제로 하이브-04 지하 배수로 깊은 곳에는 야적장에서 수집한 고대 함선의 회로 조각들이 숨겨져 있었다. 만약 수색이 시작된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여기서 정면으로 맞붙는 건 자살행위다.’
바스의 기계식 의수와 중장갑 전투 슈트는 하급 정비사의 공구 따위로 뚫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한우는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그의 머릿속 양자 인지 기법이 가동되며 창고 내부의 전력 배선망이 투명한 푸른 회로선으로 펼쳐졌다. 하이브-04의 메인 배전반이 바스의 머리 위 격벽 내부를 지나고 있었다. 배전반의 과부하 차단기는 노후화되어 미세한 전류 역류에도 쉽게 터질 수 있는 상태였다.
“수색을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한우가 슬그머니 옴니-렌치의 다이얼을 돌려 초고주파 방전 모드로 전환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창고의 전압부터 확인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지금 배전반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치고 있거든요.”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바스가 채찍을 치켜드는 순간, 한우는 옴니-렌치를 바닥의 접지 핀에 찔러 넣었다.
찌이이잉!
렌치 끝에서 방출된 강력한 고주파 전류가 바닥의 접지선을 타고 벽면을 경유해 머리 위의 메인 배전반으로 역류했다. 양자 인지로 정확히 과부하 임계점을 저격한 일격이었다.
퍼엉!
날카로운 폭음과 함께 배전반이 터지며 하이브-04의 모든 조명이 일시에 꺼졌다. 암흑이 창고를 지배했고, 터진 배전반에서 뿜어져 나온 유독 가스와 스파크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쿨럭! 이, 이 새끼가 무슨 짓을!”
바스가 눈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고, 이반의 기계식 확대 렌즈는 갑작스러운 광학 과부하로 인해 지익 소리를 내며 셧다운되었다.
“토비, 가방 챙겨! 뛰어!”
한우는 미리 준비해 둔 낡은 공구 가방을 어깨에 메고 토비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들은 배전반 폭발의 혼란을 틈타 창고 구석의 지하 배수로 수동 해치를 열고 안으로 몸을 던졌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 수로로 떨어지는 순간, 위쪽에서 바스의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
***
타르타로스 위성의 외곽에 위치한 ‘제3 폐기물 야적장’.
이곳은 제국 전역에서 버려진 군함의 잔해와 기계 쓰레기들이 산처럼 쌓여 거대한 금속 분지를 이루고 있는 죽음의 땅이었다. 어둠이 내린 야적장은 칼바람이 불 때마다 녹슨 철판들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잔류 방사능 수치가 높아 일반인들은 방호복 없이 10분도 버티지 못하는 곳이었지만, 한우와 토비에게는 제국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은신처였다.
“하아, 하아... 형, 이제 어쩌지? 하이브-04가 날아갔으니 우린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
토비가 낡은 방독면 필터를 만지작거리며 울먹였다. 한우는 어깨에 멘 공구 가방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는 평범한 회색빛의 금속 덩어리처럼 보이는, 하지만 표면에 기하학적인 은색 회로가 흐르고 있는 ‘양자 크로노미터’가 들어 있었다.
“돌아가지 않아.”
한우가 크로노미터를 움켜쥐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슬픔 대신 차가운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왜 반역자가 되어 처형당했는지, 왜 나를 이 쓰레기 위성으로 보냈는지... 이제 그 해답을 찾을 때가 됐어. 이 크로노미터가 가리키는 좌표가 바로 이 야적장 지하 깊은 곳에 있어.”
“야적장 지하에 뭐가 있는데?”
“보이드 생추어리. 과거 제국 제1기 설계총국이 비밀리에 건설했던 격납고야.”
한우가 왼쪽 태양혈의 양자 포트에 크로노미터의 연결선을 조심스럽게 삽입했다.
지이이잉.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력한 전류가 그의 뇌신경을 관통했다. 뇌가 통째로 끓어오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코끝에서 붉은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려 잿빛 바닥을 적셨다. 한우는 신음소리를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시야가 완전히 푸른빛의 양자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야적장 사방에 쌓여 있는 수십만 톤의 고철 잔해들이 반투명하게 투과되며, 그 지하 깊은 곳을 관통하는 거대한 양자 파동의 맥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잠들어 있는 거대한 괴물의 심장 박동과도 같았다.
“찾았다.”
한우가 푸른 눈동자를 번뜩이며 야적장 중앙의 거대한 군함 잔해를 가리켰다. 과거 제국군의 퇴역 순양함이었던 ‘아틀라스 8호’의 찌그러진 선체였다. 그 거대한 고철 더미 아래로 보이지 않는 에너지 통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공중에서 날카로운 전자기 이음이 발생했다.
위잉.
한우의 양자 인지망에 이질적인 주파수가 포착되었다. 하늘을 올려다본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두운 구름 사이로 붉은색 렌즈를 깜빡이는 구형 정찰 드론 한 대가 소리 없이 하강하고 있었다. 광산 연합의 수석 정비사 이반이 보낸 정밀 감시 드론이었다.
“치사한 새끼, 벌써 추격대를 보낸 건가.”
드론의 하부에서 타키온 저주파 스캐너가 푸른빛을 발산하며 한우와 토비의 신체를 훑기 시작했다. 이대로 드론의 스캔이 완료되면 그들의 위치 좌표가 이반과 바스의 기동대에 실시간으로 전송될 터였다.
“형! 드론이 우릴 찾았어!”
토비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한우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드론의 양자 방화벽을 정면으로 해킹하려 했으나, 제국 보안국의 기본 방화벽 프로토콜이 걸려 있어 하급 정비사의 구식 데크로는 해독하는 데만 수십 분이 걸릴 터였다. 시간은 단 몇 초밖에 없었다.
‘방화벽을 뚫을 수 없다면, 하드웨어 자체를 과부하시킨다.’
그는 옴니-렌치를 꺼내 방전 다이얼을 극대화했다. 그리고 야적장 바닥에 널려 있는 고전압 전력 케이블의 피복을 단숨에 찢어발겼다.
“토비, 내 뒤로 숨어!”
한우는 옴니-렌치의 전도성 촉을 노출된 고압 전선에 접촉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태양혈 포트를 통해 드론의 수신 주파수 대역을 정밀 조율했다. 양자 인지 기법으로 드론의 광학 렌즈 센서가 수신하는 빛의 파장 주파수를 정확히 포착한 것이다.
“먹어라.”
한우가 옴니-렌치의 트리거를 당겼다.
파지직! 콰르릉!
전력 케이블에서 끌어올린 강력한 전류가 옴니-렌치를 매개로 하여 눈부신 청백색 스파크 광선이 되어 공중의 정찰 드론을 향해 뻗어나갔다. 단순한 전류 방출이 아니었다. 드론의 광학 수신 렌즈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 주파수로 변조된 정밀한 전하 역류 공격이었다.
키이이이잉!
드론의 붉은색 렌즈 내부에서 청백색 스파크가 거꾸로 터져 나왔다. 광학 센서가 순식간에 과부하로 타들어 가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고, 드론은 중심을 잃고 허공에서 몇 바퀴 돌더니 이내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고철 더미 위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났다.
“하아... 하아...”
한우는 무릎을 꿇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태양혈 포트 주변의 피부가 뜨겁게 달아올라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 끝을 타고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한우 형! 괜찮아?”
토비가 울먹이며 한우의 어깨를 부축했다. 한우는 소매로 피를 쓱 닦아내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 드론의 신호가 끊겼으니, 이반 놈이 곧 경비 대원들을 이끌고 이리로 올 거야. 서둘러야 해.”
두 사람은 추락한 아틀라스 8호의 선체 잔해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잔해 내부의 어둡고 좁은 격벽 틈새를 지나자, 바닥에 거대한 원형 강철 해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년 동안 먼지와 고철 아래 감춰져 있던 고대 격납고 ‘보이드 생추어리’의 진짜 입구였다.
해치 중앙에는 기하학적인 홈이 파여 있었다. 한우가 품고 있던 양자 크로노미터의 형상과 완벽히 일치하는 홈이었다.
한우는 떨리는 손으로 크로노미터를 그 홈에 밀어 넣었다.
철컥.
완벽하게 맞물리는 기계음과 함께, 크로노미터 표면의 은색 회로가 눈부신 푸른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해치 표면을 타고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며 수백 년간 잠들어 있던 고대의 봉인 시스템을 하나씩 깨우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대지의 울림이 시작되었다. 야적장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고, 무수한 고철 더미들이 비명을 지르며 흘러내렸다.
수백 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고대 격납고의 강철 아가리가 마침내 열리고 있었다. 그 틈새 너머, 빛 한 점 닿지 않던 심연의 공간 속에서 차갑고 거대한 존재의 푸른 눈동자가 번뜩이는 것을 한우는 똑똑히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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