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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전야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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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사구의 겨울바람은 뼈를 깎아내는 숫돌과 같다. 매서운 모래바람이 대장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댈 때, 우현 대장간의 허름한 목조 문이 무겁게 열렸다.


털썩.


거구의 사내가 문턱을 넘어서며 바닥으로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단우현이었다. 그의 전신은 음풍곡의 혹독한 서리와 독사 소굴의 쇳독으로 인해 검붉게 그을려 있었고, 뺨에 새겨진 깊은 도상(刀傷) 흉터는 한독(寒毒)의 영향으로 푸르스름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가에서 하얀 서리김이 뿜어져 나왔다.


“아, 아저씨……!”


대장간 안쪽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서씨 부인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그녀의 뒤편에서 첫째 설아가 맑은 물이 담긴 대야를 든 채 굳어 버렸다. 설아의 눈동자는 우현의 오른손목에 가죽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는 묵철 쇠망치와, 그의 품속에서 흘러나오는 피비린내를 향해 있었다.


우현은 밀려오는 전신의 마비감을 억누르며, 떨리는 왼손으로 품속을 더듬었다. 그리고 사마소의 얼어붙은 시체에서 빼앗아 온 청동 해독 병과, 비단 주머니에 소중히 감싸둔 극음의 희귀 약초 한극초(寒極草)를 꺼내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전부였다. 목소리를 잃은 척 연기하는 벙어리였기에, 그는 그저 턱 끝으로 누워 있는 셋째 윤서를 가리키며 무언의 재촉을 보낼 뿐이었다.


“이, 이게 해독 약이군요! 설아야, 당장 화로에 물을 올려라! 어서!”


서씨 부인이 다급하게 약재를 받아들고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설아는 바닥에 떨어진 우현의 검붉은 핏방울들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이내 입술을 꽉 깨물고 서씨 부인의 뒤를 따랐다.


대장간 안방에는 쌉싸름하고 매운 약초 타는 냄새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백 노인이 가르쳐준 비방대로 한극초를 짓이기고 청동 병의 해독액을 섞어 달여낸 탕약이 윤서의 마른 입술 사이로 흘러들어 갔다.


반 시진이 지났을까.


“음…… 으응.”


윤서의 굳어 있던 작은 이마에서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더니, 이내 얼음장처럼 차갑던 숨결이 따뜻한 온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뺨에 발그레한 핏기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서씨 부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흘렸다. 둘째 민우 역시 동생의 손을 꼭 쥔 채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대장간 안마당에 홀로 앉아 있는 우현의 주위에는 오직 차가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우현은 화로 옆에 털썩 주저앉아 전신의 기혈을 정화하려 애썼다. 한독빙화의 가혹한 반동으로 인해 단전은 텅 비어 있었고, 경맥 곳곳이 미세하게 파열되어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일어났다. 기경팔맥을 묶어둔 천근봉의 봉인이 요동치며 체내의 한기가 뼛속을 파고들었지만, 그는 묵묵히 참아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늦은 밤이 되자, 윤서의 미열이 완전히 내린 것을 확인한 서씨 부인은 자신의 딸 유나가 기다리는 옆집 만둣집으로 돌아갔다. 민우 역시 며칠간의 피로와 긴장이 풀렸는지 윤서의 침상 머리맡에 이마를 기댄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사방이 어둠에 잠긴 깊은 새벽.


대장간 화로의 붉은 불씨만이 어둠 속에서 가늘게 숨 쉬고 있을 때, 우현은 홀로 작업대 앞에 앉아 부러진 고철 조각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거구의 그림자가 흙벽 위로 쓸쓸하게 늘어졌다.


스윽.


인기척이 들렸다. 우현은 고개를 들지 않고도 그것이 첫째 설아의 발걸음임을 알아챘다. 열네 살 소녀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겁고 떨리고 있었다.


설아는 우현의 등 뒤에 서서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대장간 내부에는 타오르는 숯의 미세한 파지직 소리만이 흐를 뿐, 얼어붙은 듯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저씨.”


설아의 나직한 목소리가 새벽의 공기를 갈랐다. 평소의 차분함은 온데간데없고, 억누를 수 없는 슬픔과 원망이 서린 목소리였다.


우현은 묵묵히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의 거친 얼굴과 오른쪽 뺨의 도상 흉터가 희미한 화로 불빛에 비쳤다.


설아는 품속에서 붉은 비단 천에 꽁꽁 감싸인 묵직한 물건을 꺼내어 우현의 발밑으로 던졌다.


쿵.


무거운 쇳덩이가 흙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파열음을 냈다. 붉은 비단 천이 스르륵 풀리며 내부의 음산한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붉은 도신과 손잡이에 새겨진 기괴한 귀신 머리 장식. 수많은 대역죄인들의 목을 베어 피를 마셨던 전설의 참수도, 귀두도(鬼頭刀)였다.


우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단전 깊은 곳에서 얼어붙은 한기가 다시 한번 솟구치는 것 같았다.


“가마 밑바닥 깊은 곳에 묻혀 있더군요.”


설아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려 뺨을 적셨다. 소녀는 제 가슴팍에 소중히 품고 있던 친모의 유품, 피 묻은 비단 손수건을 손끝이 하얘지도록 움켜쥐고 있었다.


“아주 어릴 적…… 황도 경성의 우리 집 서재에서 아버님과 대화를 나누던 거구의 사내를 기억해요. 아버님은 그 사내를 보며 슬픈 미소를 지으셨고, 그 사내는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죠. 그리고 우리 가문이 역모의 누명을 쓰고 몰살당하던 날…… 참수대 위에서 아버님의 목을 베기 위해 걸어오던 처형인의 얼굴을, 저는 똑똑히 기억해요.”


설아의 목소리가 벼랑 끝의 칼바람처럼 가늘게 떨렸다.


“오른쪽 뺨에서 귀밑까지 이어지는 그 가혹한 칼자국 흉터. 그리고 그 처형인이 쥐고 있던, 붉은 천에 감긴 검붉은 귀두도. 아저씨…… 당신은 누구죠? 정말로 말을 못 하는 평범한 변방의 대장장이가 맞나요?”


우현은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설아에게 거짓말을 하여 안심시킬 수도 있었다. 쇠망치를 가리키며 그저 우연히 얻은 칼일 뿐이라고, 자신은 그저 평범한 벙어리 대장장이일 뿐이라고 손짓으로 기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과거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도덕적 계율과, 임회남 대감의 마지막 눈빛이 그의 영혼을 옭아맸다.


우현은 묵묵히 귀두도의 칼날을 바라보았다. 그 검붉은 쇠붙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여전히 피비린내 나는 망나니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가 짊어진 죄책감의 무게가 대장간의 천장보다 무겁게 그를 짓눌렀다.


우현은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슬픈 눈빛으로 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투박하고calloused 한 손을 천천히 뻗었다. 수많은 상흔과 석탄재가 묻은 그의 거친 손끝이 설아의 단정한 머리칼에 닿으려던 찰나.


찰싹!


설아가 단우현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만지지 마세요!”


설아의 눈물 어린 울부짖음이 새벽의 정적을 산산조각 내며 울려 퍼졌다.


“진실을 말해봐요! 손짓이라도 좋으니 아니라고 해봐요! 아저씨가…… 아저씨가 우리 아버지를 죽인 그 망나니가 아니라고 말해달란 말이에요!”


소녀의 처절한 비명에 우현은 뻗었던 손을 거두고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거구의 사내가 화로 불빛 아래에서 한없이 작아진 채, 침묵으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있었다. 그의 침묵은 설아에게 가장 가혹한 확답이었다.


“아…… 아아…….”


설아는 무릎을 꿇으며 얼굴을 감싸 안고 오열했다. 자신들을 지켜주고 밥을 먹여주던 따뜻한 아저씨가, 자신들의 가문을 몰살하고 친부의 목을 직접 벤 원수였다는 진실은 열네 살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잔혹한 폭풍이었다.


설아는 원망과 공포가 뒤섞인 눈빛으로 우현을 한 번 바라본 뒤, 대장간의 문을 거칠게 열고 차가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둠 속으로 뛰쳐나갔.


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대장간에는 다시 한번 얼어붙은 정적이 찾아왔다. 우현은 쓰러진 귀두도를 바닥에 둔 채, 가슴을 움켜쥐고 고개를 숙였다. 폐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한독의 통증보다, 아이의 영혼에 새겨진 상처가 그의 심장을 더 아프게 찢어발기고 있었다.


같은 시각, 철사구의 어두운 골목 끝자락.


매캐한 담배 연기와 썩은 짚 냄새가 가득한 밀실에서, 철사방의 책사 귀삼이 쥐새끼 같은 수염을 만지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대장간 주변을 감시하던 밀정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방주님, 그 벙어리 대장장이 놈이 음풍곡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와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고 누워 있습니다. 게다가 방금 전, 대장간의 큰딸년이 울면서 혼자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귀삼은 부채를 가볍게 탁 접으며 눈빛을 번뜩였다.


“흐흐흐…… 하늘이 돕는구나. 대장장이 놈의 무력이 쇠약해진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큰딸년이 방황하는 틈을 타, 대장간에 남은 어린것들을 흔적 없이 납치해라. 그 벙어리 놈의 목줄을 완전히 쥐어 흔들어 주마.”


어둠 속에서 철사방 밀정들의 살기 어린 음모가 대장간의 허름한 지붕 위로 소리 없이 조여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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