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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음풍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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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의 화로가 마침내 붉은 숨을 토해냈다.


흑석산에서 목숨을 걸고 가져온 흑철석과 석탄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 녹아내리며, 웅웅거리는 진동이 낡은 대장간 바닥을 흔들었다. 화로의 열기가 대장간 안마당의 차가운 냉기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지만, 안방 문틈 너머에서 들려오는 가녀린 신음까지 녹이지는 못했다.


우현은 화로 앞을 떠나 흙벽돌 안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그의 거구에서 뿜어지는 묵직한 그림자가 짚자리 위에 누워 있는 셋째 윤서의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여덟 살 된 아이의 이마는 가마터의 용광로보다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고, 창백하게 질린 입술 사이로는 서리처럼 차가운 숨결이 가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현은 묵묵히 윤서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투박하고 굳은살 박인 손이 아이의 이마에 닿았다. 불덩이 같은 열기 뒤로, 기맥 깊숙한 곳에서 요동치는 음산한 냉기가 우현의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고열이 아니었다. 기맥이 완전히 뒤틀리며 체내의 진기를 얼려버리는 가혹한 기맥 질환의 징후였다.


방 구석에서는 첫째 설아가 무릎을 안은 채 단우현을 싸늘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설아의 품에는 붉은 비단에 싸인 전설의 참수도, ‘귀두도’가 굳게 안겨 있었다. 아저씨가 자신들의 아버지를 직접 처형한 원수라는 진실을 알아챈 소녀의 눈빛에는 깊은 원망과 거대한 두려움이 뒤엉켜 있었다. 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내뿜는 차가운 침묵은 대장간을 가득 채운 검은 그을음보다도 우현의 가슴을 아프게 찔러왔다.


그때, 방문이 조용히 열리며 대나무 지팡이를 짚은 백 노인이 들어섰다. 눈먼 약초꾼이자 과거 의선이라 불렸던 노인은 초점 없는 눈으로 윤서가 누워 있는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지팡이를 내려놓고 윤서의 가느다란 손목 맥박을 짚었다. 침묵 속에서 맥을 짚던 백 노인의 눈썹이 깊게 찌푸려졌다.


“열병이 뼛속까지 파고들었군. 기맥의 흐름이 완전히 동결되어 가고 있어. 이대로 사흘을 넘기면 아이의 심장이 얼어붙어 멈출 걸세.”


우현은 대답 대신 백 노인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목소리를 잃은 척하는 처지였기에, 그의 손끝에 실린 다급한 힘만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백 노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의 은침술로 기맥의 급한 불은 껐으나, 근본적인 음독을 정화하려면 약재가 필요하네. 사시사철 서늘한 독무가 끼어 있는 음풍곡(陰風谷) 절벽 틈새에서만 자라는 극음의 희귀 약초, 한극초(寒極草)가 절실하네. 하지만 그곳은 사파 방파인 철사방의 독술사 사마소(사마소)가 독사 소굴을 깔아두고 장악한 금지의 땅일세. 내공을 쓰지 못하는 자네가 가기엔 너무도 위험해.”


우현은 백 노인의 경고를 들으며 조용히 주먹을 꽉 쥐었다. 단전 깊은 곳에 박힌 ‘천근봉’의 봉인 때문에 내력을 조금이라도 운용하면 체내의 한독이 폭주해 즉사할 터였다. 하지만 윤서를 살릴 수만 있다면 지옥이라도 걸어 들어가야 했다.


우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죽 앞치마를 고쳐 입고, 작업대 옆에 놓인 거대한 ‘묵철 쇠망치’를 가죽 끈으로 오른손목에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삿갓을 깊게 눌러쓴 채 방을 나섰다. 등 뒤로 설아의 싸늘한 시선이 박혀왔지만, 우현은 뒤돌아보지 않고 대장간 문을 열고 안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음풍곡은 북방 국경지대의 가장 음습한 바위 계곡이었다.


계곡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뼛속까지 시려오는 차가운 독풍이 우현의 뺨을 때렸다. 사방에는 푸르스름하고 끈적한 독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어 십 보 앞의 시야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다. 썩은 이끼 냄새와 쇳독 냄새가 뒤섞인 음산한 공기가 허공을 떠돌았다.


바스락.


우현이 젖은 흙바닥을 디딜 때마다 차가운 기운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내력을 쓰지 못하고 오직 순수한 외공의 힘인 ‘무진강체공’만으로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우현에게, 음풍곡의 냉기는 가혹한 시련이었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억눌러둔 한독의 기운이 미세하게 요동치며 각혈을 유도하려 했으나, 우현은 이빨을 악물며 정심주의 호흡법으로 심맥을 굳건히 통제했다.


“흐흐흐, 벙어리 대장장이 놈이 결국 제 발로 사지로 기어 들어왔구나.”


푸르스름한 안개 속에서 기괴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안개가 갈라지며 기괴한 녹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가락 끝이 검게 변해 있고 눈빛이 뱀처럼 번뜩이는 사내, 철사방의 악명 높은 독술사 사마소였다. 그의 허리춤에는 기이한 독액이 담긴 병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그의 발밑 축축한 진흙 속에서는 수십 마리의 붉은 사독 뱀들이 혀를 낼름거리며 도사리고 있었다.


“조필 삼호두를 패퇴시키고 웅철의 도끼를 박살 냈다기에 어떤 대단한 고수인가 했더니, 내력 한 가닥 느끼지 못하는 한낱 외공쟁이였군. 이 음풍곡의 독사 소굴이 네 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사마소가 소매를 크게 휘두르며 기공을 전개했다. 그의 기괴한 진기가 지면을 때리자, 발밑에 엎드려 있던 붉은 독사 수십 마리가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치며 우현의 발목과 목덜미를 겨냥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우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에 쥔 거대한 묵철 쇠망치를 낮게 떨어뜨렸다가, 대지를 향해 쾅! 내리쳤.


쿠우우웅!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지면이 거칠게 요동치며 거대한 진동파가 흙바닥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쇠망치 머리가 바위를 때리며 발생한 강력한 물리적 충격 진동에, 허공을 날아오르던 독사들의 전신 뼈마디가 순식간에 바스러지며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꿈틀거렸다.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오직 대지의 진동만으로 독사들의 공격력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킨 비살상의 강격이었다.


“이, 이 괴물 같은 완력이…!”


사마소의 안광이 경악으로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소매 안쪽에서 녹색의 만독 안개를 폭풍처럼 뿜어냈다.


스으으으!


순식간에 음풍곡 전체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한 녹색 독무에 휩싸였다. 우현은 숨을 참으려 했으나, 찰나의 순간 스며든 독기가 허파를 찔렀다. 체내에 잠재되어 있던 한독의 냉기가 독소에 반응하여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크윽…!’


우현의 무릎이 가볍게 꺾이며 지면을 짚었다. 목구멍으로 핏물이 울컥 치밀어 올랐고, 전신의 피부가 퍼렇게 얼어붙는 한기 발작의 전조가 시작되었다. 단전의 천근봉 봉인이 뒤틀리며 극심한 통증이 뇌리를 강타했다.


사마소가 광소하며 독단검을 뽑아 들고 안개 속에서 벼락같이 튀어나왔다.


“죽어라, 벙어리 놈아!”


예리한 독단검이 우현의 창백해진 목덜미를 향해 사정없이 찔러 들어왔다.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 우현은 정심주 구결을 마음속으로 빠르게 읊조리며 요동치는 살기를 강제로 억눌렀다. 그는 꺾였던 무릎을 굳건히 펴고 일어서며, 오른손의 묵철 쇠망치를 거세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망치가 회전하며 가공할 풍압을 만들어내더니, 이내 거대한 바람 장벽이 되어 우현의 전면을 감쌌다. 회전하는 망치의 가공할 하강 기류와 풍압에, 사방을 뒤덮고 있던 녹색의 만독 안개가 사방으로 쓸려나가며 계곡 아래로 흩어졌다.


“뭐라…!”


사공준이 경악하며 허공에서 신형을 멈추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우현은 망치를 휘두르던 회전력을 이용해, 쇠망치 자루의 단단한 밑바닥 끝부분으로 사마소의 명치 아래 단전을 정확히 겨냥해 내뻗었다.


퍽!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우현이 평생 단련한 내경 기술인 ‘이중파(二重波)’의 충격파가 사마소의 몸속으로 침투했다. 첫 번째 충격이 사마소의 겉 표면 호신강기를 가볍게 흔들어 무력화시켰고, 찰나의 시차를 두고 파고든 두 번째 충격파가 그의 단전과 기경팔맥 내부의 기류를 완벽하게 마비시켰다. 외상 하나 없이, 오직 적의 무공과 기혈만을 완벽하게 동결시켜 제압한 고도의 타격이었다.


“컥… 아, 아아…”


사마소는 전신의 진기가 뒤틀리며 단검을 떨어뜨리고 바닥에 쓰러져 부르르 떨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완벽한 불기 상태에 빠진 것이다.


우현은 쓰러진 사마소를 뒤로한 채, 음풍곡 절벽 틈새로 걸어갔다. 차가운 서리가 내린 바위 틈새에서, 푸른빛을 발하며 자라나고 있는 극음의 약초, 한극초(寒極草)가 보였다. 우현은 조심스럽게 한극초를 채취하여 품속에 소중히 안았다. 이것만 있으면 윤서의 가혹한 기맥 열병을 다스릴 수 있었다.


우현이 가죽 앞치마를 고쳐 입으며 돌아서려던 찰나, 바닥에 누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던 사마소가 피를 토하며 음산하게 웃기 시작했다.


“쿨럭… 으흐흐… 바보 같은 대장장이 놈. 한극초를 구했다고 좋아할 것 없다. 내가 네 놈이 오기 전, 이미 그 계집아이의 몸속에 우리 독문의 가장 치명적인 마비 약물인 빙정독액(氷晶毒液)을 은밀히 주입해 두었으니까! 흐흐흐… 사흘 안에 내 전용 해독제가 없다면, 그 아이의 심장은 얼음 조각처럼 산산조각 나 깨져버릴 것이다!”


사마소의 비열한 조소가 음산한 음풍곡의 독무 속으로 울려 퍼졌다.


우현의 안구가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억눌러두었던 가혹한 처형인의 살기가 폭풍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주먹을 쥔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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