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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밑바닥의 붉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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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 일당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 대장간 마당에는 매캐한 쇳가루 먼지와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단우현은 묵묵히 몸을 숙여 바닥에 쓰러진 동료 철수를 부축했다. 조필의 예리한 철검에 당한 철수의 오른쪽 어깨는 뼈마디가 어긋나고 가죽이 찢어져 붉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현은 말없이 품속에서 거친 삼베 천을 꺼내 철수의 어깨를 단단히 지혈했다. 벙어리 행세를 하느라 신음 한 번 내지 못하는 우현의 입술 사이로 깊은 자괴감의 침묵이 흘렀다.


‘내 가혹한 과거가 결국 이 소박한 이들을 물들이는구나.’


안방 문틈 너머로 민우가 겁에 질린 채 낡은 무쇠 단검을 꼭 쥐고 있었고, 그 옆에서 첫째 설아는 미동도 없이 우현의 등을 응시하고 있었다. 설아의 맑고 차가운 눈동자에는 방금 전 우현이 보여준 초인적인 무력에 대한 경악,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드는 거대한 의구심이 서려 있었다. 우현은 설아의 시선을 차마 마주하지 못한 채, 철수를 대장간 안쪽의 평상으로 조심스럽게 옮겼다.


그때였다.


대장간 입구 저편에서 요란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쇠창과 관도가 부딪치는 불길한 소음이 들려왔다. 조필 일당이 남기고 간 핏자국을 따라 들이닥친 자들은 철사방의 건달들이 아니었다. 관청의 붉은 도포를 걸치고 쇠사슬을 허리에 찬 포졸들이었다.


“포도청에서 나왔다! 모두 제자리에 엎드려라!”


거만한 고함과 함께 대장간 안마당으로 걸어 들어온 사내는 비대한 체구에 기름진 얼굴을 한 철사구의 악덕 포두, 팽호였다. 그의 허리춤에는 백성들을 갈취해 모은 금괴 상자의 열쇠가 찰랑거렸고, 손에는 가죽 채찍이 쥐어져 있었다. 팽호의 뒤에는 삼십여 명의 포졸들이 쇠창을 겨눈 채 대장간을 겹겹이 포위했다.


팽호는 마당에 흩어진 조필의 부러진 검 파편들과 철수가 흘린 붉은 핏자국을 가죽 장화 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비죽 웃었다.


“소문이 진짜였군 그래. 이 허름한 대장간에서 관청의 공식 허가도 없이 불법 무기를 제작하고, 사파 방파와 어울려 대규모 소란을 피웠다는 고발이 접수되었다. 벙어리 대장장이, 네 놈이 철사방의 조필 삼호두를 무참히 폭행하고 사설 병기를 주조한 죄는 대역죄에 해당한다!”


팽호는 품속에서 붉은 인장이 찍힌 압수 수색 영장을 꺼내 흔들며 포졸들에게 소리쳤다.


“당장 이 대장간 내부를 샅샅이 파헤쳐라! 불법 제련된 무기와 장부들을 압수하고, 저기 쓰러진 부상자 놈과 방 안의 년놈들을 모조리 관청으로 압송해라!”


포졸들이 험악한 기세로 대장간 내부로 난입하려 했다. 그들의 거친 발길질에 철수의 치료용 약재 상자가 밟혀 으스러졌고, 안방 문틈 너머로 민우와 윤서의 숨죽인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우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넓은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며, 전신의 근육을 수축시키는 무진강체공의 힘이 가죽 앞치마 아래로 뿜어지기 시작했다. 우현은 묵묵히 팽호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실루엣이 팽호의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자, 팽호는 본능적인 위압감에 흠칫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이 벙어리 놈이 감히 관군의 앞길을 막아서? 반역을 꾀하겠다는 거냐!”


팽호는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허리춤에서 예리한 관도(官刀)를 뽑아 들었다. 차가운 쇠날이 우현의 목덜미를 정면으로 겨누며 가죽 앞치마 깃을 눌렀다. 조금만 힘을 주면 우현의 목덜미를 벨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우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 아귀힘이 작업대 위의 묵철 쇠망치를 향해 서서히 뻗어 나갔다. 마음만 먹는다면 찰나의 순간에 팽호의 관도를 맨손으로 부러뜨리고 그의 목뼈를 분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방 문틈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설아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아이들의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살생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부과한 불살의 규칙과 가혹한 죄책감이 그의 손끝을 옭아맸다. 우현은 단전의 기운을 억누르며 묵묵히 대치했다. 대장간 안마당에는 숨 막히는 긴장감만이 팽팽하게 흐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포졸들의 대형 뒤편에서 묵직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팽 포두, 칼을 거두시오.”


포졸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단정한 관복을 입은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서른 후반의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청렴한 관군, 장포두였다. 장포두는 피로에 찌든 안색이었으나 허리에 찬 관도의 자루를 쥔 손끝에는 흐트러짐 없는 기개가 실려 있었다.


팽호는 인상을 쓰며 장포두를 노려보았다.


“장 포두? 자네가 왜 여기에 개입하는가? 나는 지금 사설 무기 주조와 반역 혐의를 수사하는 중이네.”


장포두는 팽호가 흔들고 있는 압수 수색 영장을 나직하게 바라보더니, 냉정하게 지적했다.


“율법에 따르면, 변방의 민가를 수색하고 사유 재산을 압수하기 위해서는 현감 대감의 공식 서명과 관인이 찍힌 수색령이 필수적이오. 하지만 팽 포두가 들고 있는 영장에는 현감 대감의 직인이 빠져 있군 그래. 공식 서명이 없는 무단 수색은 명백한 관청의 율법 위반이오.”


“이, 이것은 긴급한 상황이라……!”


“절차를 무시한 압수는 불법이오. 만약 이대로 강행한다면, 내가 직접 현감 대감께 팽 포두의 독단적인 행동과 철사방과의 유착 의혹을 공식 보고하겠소.”


장포두의 묵직하고 이성적인 반박에 팽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장포두는 관청 내부에서 유일하게 청렴함을 유지하려는 자였기에, 팽호로서도 그의 법적 지적을 무작정 무시할 수 없었다. 포졸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쇠창을 슬그머니 내렸다.


팽호는 이가 갈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관도를 칼집에 거칠게 쑤셔 넣었다.


“조좋소. 오늘은 장 포두의 체면을 봐서 물러가지. 하지만 벙어리 대장장이, 네 놈의 죄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내 조만간 정식 영장을 들고 다시 찾아올 테니, 목을 깨끗이 씻고 기다려라!”


팽호는 가죽 채찍을 휘두르며 부하들을 이끌고 대장간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대장간에는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일시적인 평온이 찾아왔다.


장포두는 가만히 우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매서운 눈빛에는 무언가 말하지 못할 깊은 의구심과 경고가 담겨 있었다. 우현은 품속에 숨겨둔 임안부의 서신을 살짝 만지며, 장포두를 향해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숙여 눈빛으로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장포두 역시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묵묵히 대장간을 떠났다.


관군들이 모두 떠난 대장간 마당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부서진 목조 대문의 잔해와 바닥에 비산된 조필의 부러진 검 파편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우현은 한독의 기운이 가슴을 찌르는 통증을 느끼며,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 마당의 잔해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민우는 평상에 누운 철수의 상처를 돌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 시각, 첫째 설아는 홀로 어두컴컴한 대장간 내부 가마터로 향했다.


가마는 백탄이 바닥나 푸석푸석한 갈탄 조각들만이 희미한 잿빛 연기를 내뿜으며 식어가고 있었다. 평소라면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을 가마 내부가 차갑게 식어 있는 모습은 기이할 정도로 음산했다.


설아는 대장간 바닥에 흩어진 그을음과 석탄재를 빗자루로 쓸어내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정체에 대한 의심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방금 전 팽호의 관도가 아저씨의 목을 겨누었을 때, 아저씨가 뿜어냈던 그 기이한 위압감은 결코 평범한 대장장이의 것이 아니었다.


사각, 사각.


빗자루가 차가운 흙바닥을 쓰는 소리만이 가마터에 울려 퍼졌다.


가마 밑바닥 깊숙한 안쪽을 쓸어내던 설아의 손끝이 멈칫했다. 가마의 꺼진 화로 바로 밑, 흙바닥과 벽돌의 경계선 틈새에서 기이할 정도로 차갑고 서늘한 한기(寒氣)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용광로의 불길이 닿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공기는 뼛속을 찌르는 얼음 계곡의 서리 같았다.


동시에, 아주 희미하지만 코끝을 자극하는 비릿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석탄재의 매캐한 냄새 뒤에 숨겨진, 아주 오래되고 묵은 피비린내(血腥)였다.


설아의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쓸어내던 빗자루를 내려놓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검은 숯검댕이가 그녀의 고운 손과 무릎을 더럽혔으나 개의치 않았다. 설아는 가마 밑바닥의 헐거운 벽돌들을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 나갔다.


철컥.


벽돌 하나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설아는 손톱이 깨지는 고통을 참으며 그 헐거운 벽돌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 아래에는 흙으로 교묘하게 덮여 있는 평평한 화강암 flagstone이 숨겨져 있었다. flagstone의 모서리 틈새를 따라 차가운 검은 서리가 얇게 서려 있었다.


설아는 침을 삼키며 flagstone을 힘껏 밀어젖혔다.


어두운 지하 틈새가 드러났다. 그 좁고 깊은 어둠 속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설아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 안에 묻혀 있는 길쭉한 물체를 끌어당겼다.


무겁고 차가웠다.


그것은 먼지와 그을음이 찌들어 검붉게 변한 두꺼운 비단 천에 겹겹이 싸여 있었다. 비단 천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낼 때마다, 가마터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설아의 입에서 하얀 서리 김이 뿜어져 나왔다. 마침내 마지막 비단 자락이 벗겨지자,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무구의 정체에 설아는 숨을 멈추었다.


그것은 거대하고 묵직한 한 자루의 대도(大刀)였다.


칼날은 평범한 도검보다 훨씬 두껍고 넓었으며, 전체적으로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마치 수천 명의 대역죄인들이 흘린 핏물이 쇠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굳어버린 듯한 음산한 색채였다. 코등이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도깨비의 머리(鬼頭) 형상을 하고 있었고, 손잡이는 검은 가죽 가죽끈으로 단단히 감겨 있었다.


전설의 참수도, 귀두도(鬼頭刀)였다.


설아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귀두도의 먼지 묻은 손잡이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 순간, 뇌리 속에서 굳게 닫혀 있던 끔찍한 기억의 빗장이 요란하게 풀려나갔다.


일곱 살의 눈보라 치던 겨울날.


가문이 몰살당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친부 임회남 대감이 차가운 참수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던 그 gray 하늘.


그녀의 아버지 뒤에 우뚝 서서, 얼굴의 반을 삿갓 그림자로 가린 채 묵묵히 서 있던 거구의 사내가 있었다. 그의 오른쪽 뺨에는 귀밑까지 이어지는 Jagged 깊은 도상 흉터가 붉게 일렁이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지금 설아가 만지고 있는 것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검붉은 도깨비 머리의 참수도가 쥐어져 있었다.


그 처형인이 뿜어내던 피비린내 나는 가혹한 한기.


그리고 아버지가 목이 잘리기 직전, 그 처형인의 등 뒤에서 흐느끼던 자신을 향해 보여주었던 그 처절하고 슬픈 눈빛.


설아의 전신이 돌처럼 얼어붙었다. 심장이 멎을 듯한 공포와 배신감, 그리고 거대한 파국의 예감이 그녀의 영혼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아…… 아저씨가…….”


설아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검붉은 참수도의 도신에 비친 자신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장간 가마 밑바닥의 붉은 그림자가, 마침내 아이들의 순수한 세상을 피로 물들일 진실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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