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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망치와 칼날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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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사구의 아침은 언제나 매캐한 석탄재와 함께 찾아왔다.


며칠 전 몰아쳤던 지독한 눈보라는 멎었으나, 대장간 마당 구석에는 여전히 검게 물든 잔설이 지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화로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불꽃만이 이 삭막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온기였다.


단우현은 대장간 화덕 앞에 서서 무거운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그의 거구는 움직일 때마다 묵직한 그림자를 바닥에 길게 늘어뜨렸다. 숯검댕이가 잔뜩 묻은 거친 소가죽 앞치마 아래로, 밧줄처럼 굵은 팔뚝의 힘줄이 단단하게 솟아올랐다. 그의 오른쪽 뺨에서 귀밑까지 이어지는 깊은 도상(刀傷) 흉터가 벌겋게 달아오른 화로의 열기에 비쳐 핏빛으로 일렁였다.


“형님, 오늘이 그놈들이 말한 사흘째요.”


대장간 한편에서 벌건 무쇠 덩이를 쇠집게로 붙잡고 있던 동료 대장장이 철수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철수의 다부진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가 쥐고 있는 튼튼한 무쇠 쇠지렛대가 미세하게 떨렸다.


우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풀무 자루를 당길 뿐이었다. 훅, 훅, 하는 무거운 바람 소리가 화로의 불씨를 더욱 붉게 자극했다. 대장간의 최고급 참숯인 백탄(白炭)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필이 백탄 공급망을 차단한 탓에, 화로 구석에는 푸석푸석하고 그을음만 가득한 삼류 갈탄 조각들이 벌겋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화력은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화로의 불길이 꺼질 터였다.


안방 문틈 너머로 열두 살 된 둘째 민우의 모습이 보였다. 민우는 어깨를 단단히 편 채, 우현이 가르쳐준 대로 가부좌를 틀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고 있었다.


‘후우…… 흡…….’


아이의 단전 깊은 곳에서 미약하지만 분명한 온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우현이 대장간 일을 시키며 은밀히 주입해 준 혼원일기공(混元一氣功)의 기초 호흡법이었다. 민우는 아저씨를 도와 대장간과 누이들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뺨에 그을음을 묻힌 채 필사적으로 단전의 온기를 다잡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첫째 설아가 낡은 삼베 천을 들고 우현의 여분 가죽 앞치마를 정성스럽게 기워내고 있었다. 열네 살의 조숙한 소녀는 바느질을 하면서도, 영민한 눈동자로 우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며칠 전 셋째 윤서가 쓰러졌던 밤, 아저씨가 자신을 업고 눈보라 속을 달리던 그 초인적인 속도와 완력. 그리고 오른쪽 뺨의 깊은 칼자국. 설아의 머릿속에서는 아주 어릴 적 가문이 몰살당하던 날, 하얀 소복을 입은 아버지 임회남 대감의 목을 베기 위해 참수대 위로 걸어오던 거구의 처형인의 실루엣이 기시감처럼 겹쳐 흐르고 있었다. 설아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의심은 이미 굳건한 확신의 형태로 아이의 가슴속에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그 평온하고도 위태로운 정적은 대장간 목조 대문이 거칠게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쾅! 콰르릉!


“벙어리 놈아! 사흘 기한이 다 되었다!”


비열한 뱀의 안광을 지닌 사내, 철사방의 삼호두 조필이 가죽 채찍을 허리춤에 찬 채 대장간 마당으로 거만하게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삼류 수준의 거친 무공을 익힌 철사방 단원 대여섯 명이 예리하게 벼려진 철검과 단도를 든 채 살기를 번뜩이며 서 있었다.


조필은 마당에 부서진 목조 문짝을 가죽 장화 끝으로 짓밟으며 비죽 미소를 지었다.


“사흘 동안 방주님이 지시하신 백련강 대도 서른 자루는커녕, 쇠똥구리만 한 농기구 몇 개나 두드리고 있었군 그래. 벙어리 대장장이, 내 경고를 귓등으로 들은 모양이지?”


철수가 무쇠 쇠지렛대를 치켜들며 조필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봐요, 조필 삼호두! 백탄 공급을 완전히 끊어놓고 어떻게 사흘 만에 백련강 대도를 서른 자루나 만듭니까! 이건 처음부터 우리 대장간을 빼앗으려는 억지 부려먹기 아니오!”


“어디서 이 삼류 대장장이 놈이 주둥이를 놀려?”


조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허리춤의 가죽 채찍 대신, 등 뒤에 매고 있던 예리한 철검의 자루를 움켜쥐었다. 이류(二流)의 경지에 도달한 그의 단전에서 미약한 진기가 흘러나와 검날에 스며들자, 검끝에서 희미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우리 철사방의 명을 거역한 대가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마.”


스윽. 조필이 신형을 날려 철수를 향해 검을 내뻗었다. 철수가 비장한 각오로 쇠지렛대를 휘두르며 저항하려 했으나, 이류 고수의 정교한 검초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조필의 철검이 유려한 궤적을 그리며 쇠지렛대의 측면을 미끄러지듯 타고 내려가 철수의 오른쪽 어깨 관절을 강타했다.


콰드득!


“크아악!”


어깨뼈가 어긋나는 참혹한 파열음과 함께 철수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와 검게 물든 잔설 위를 적셨다. 조필은 쓰러진 철수의 가슴을 장화로 짓밟으며 잔인하게 웃었다.


“다음은 저 방 안에 숨어 있는 조그만 계집애들을 광산 노역장에 팔아넘길 차례다.”


안방 문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민우가 비명을 지르며 낡은 무쇠 단검을 쥐고 뛰어나가려 했다.


“이쁜이 삼촌! 아저씨!”


설아가 필사적으로 민우의 허리를 붙잡아 뒤로 끌어당겼다. 설아의 전신은 공포와 분노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으나, 그녀의 눈동자만큼은 대장간 중앙에 우뚝 서 있는 단우현의 등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아저씨…….’


단우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 평생을 억눌러왔던 가혹한 처형인의 살기가 요동쳤다. 단전에 박힌 천근봉(千斤封)의 봉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목구멍으로 비릿한 피 냄새가 치밀었다. 당장이라도 대장간 가마터 깊은 지하 바닥에 묻혀 있는 검붉은 참수도, 귀두도(鬼頭刀)를 뽑아 들어 저 비열한 무리들의 목을 단숨에 베어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귀에 임회남 대감의 마지막 유언이 쟁쟁하게 울려 퍼졌다.


‘아이들에게는 자네가 내 목을 베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주게. 피 묻은 손으로 아이들을 물들이지 말아다오.’


우현은 감아쥐려던 주먹을 천천히 폈다. 그리고 화로 옆 작업대 위에 놓인, 자신이 직접 주조한 거대하고 투박한 ‘묵철 쇠망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력을 쓰지 않는 순수한 육체의 힘, 강체(剛體)의 파괴력만으로 이 불청객들을 징벌하겠다는 무언의 결의였다.


우현이 묵철 쇠망치를 움켜쥐고 천천히 조필 일당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의 거구가 움직일 때마다 대장간 바닥의 쇳가루들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아무런 말도 없었고, 내력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그가 풍기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철사방 단원들이 움츠러들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뭐냐, 그 벙어리 눈빛은? 쇠망치 따위로 내 검을 막겠다는 거냐?”


조필이 코웃음을 치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저 벙어리 놈의 사지를 잘라버려라!”


조필의 명령과 함께, 삼류 무사 수준의 철사방 단원 한 명이 기합을 지르며 철검을 휘둘러 우현의 어깨를 베어 왔다. 검날이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파공음을 냈다.


우현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전신의 근육과 가죽을 순간적으로 수축시키는 무진강체공(無盡剛體功)의 힘으로 몸을 고정했다. 동시에 가슴팍의 두꺼운 소가죽 앞치마 내부의 강철판으로 검날을 교묘하게 받아내어 흘려보냈다.


깡!


맑은 쇳소리와 함께 철검이 우현의 앞치마에 부딪쳐 미끄러졌다. 단원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우현은 그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왼손을 가볍게 내뻗어 단원의 검날 측면을 쳐냈다. 단순한 손짓이었으나 수백 근의 완력이 실린 일격에 철검이 단원의 손귀를 찢으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 괴물 같은 놈이!”


조필이 기습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핏빛 대도가 이류의 예리한 검기를 머금은 채 우현의 옆구리를 향해 번개같이 찔러 들어왔. 검끝이 공기를 찢으며 붉은 아지랑이를 남겼다.


우현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굳어졌다. 그는 오른손에 쥔 묵철 쇠망치를 가볍게 회전시켰다. 대장장이 특유의 감각으로 철의 결함과 결의 흐름을 순간적으로 읽어내는 병기파쇄술(兵器破碎術)이 발동되었다.


우현은 조필의 검날이 자신의 옆구리에 닿기 직전, 쇠망치의 평면으로 검날의 가장 취약한 중앙 부위를 정확하게 맞부딪쳤.


쾅!


대장간 내부가 찢어지는 듯한 거대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망치 머리가 검날에 닿는 순간, 우현은 손목의 미세한 스냅을 이용해 내부의 진동을 관통시키는 진천경(震天勁)을 주입했다.


조필의 철검이 공명하며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불꽃을 사방으로 비산시키며 세 조각으로 산산조각 나 부러졌다. 부러진 쇠파편들이 대장간 바닥과 흙벽에 박히며 기이한 소리를 냈다.


“내, 내 검이……!”


조필은 부러진 검자루만을 쥔 채, 으스러질 듯한 손목의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그의 양손 손가락 뼈마디가 망치질의 진동 여파로 완전히 저려와 제어력을 잃고 있었다.


놀란 남은 단원 서너 명이 동시에 고함을 지르며 우현을 향해 덤벼들었다. 우현은 귀두도를 쓸 필요조차 없었다. 그는 묵철 쇠망치의 단단한 참나무 자루를 길게 쥐고, 유려하고도 묵직한 궤적을 그리며 적들의 한복판을 쓸어버렸다.


팍! 팍! 콰직!


우현이 가볍게 내뻗은 망치 자루가 단원들의 손목 요혈과 무릎뼈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살을 베는 피비린내 대신, 관절이 어긋나는 둔탁한 타격음만이 대장간을 채웠. 단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떨어뜨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뒹굴었다.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오직 쇠망치질의 물리적 궤적만으로 삼류와 이류의 사파 고수들을 완벽하게 제압한 압도적인 무장 해제였다.


대장간 마당은 순식간에 신음과 비명으로 가득 찼다.


우현은 부러진 검자루를 쥔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조필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형의 압도적인 기세가 조필의 전신을 짓눌렀다. 우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의 차가운 눈빛은 ‘당장 내 대장간에서 사라져라’는 명확한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이, 이 벙어리 괴물 놈……! 두고 보자! 감히 철사방의 앞길을 막아서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조필은 부러진 검자루를 내던지며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고는, 쓰러진 부하들을 이끌고 대장간 밖으로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철사구 시장 길목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대장간 마당에는 다시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현은 묵철 쇠망치를 작업대 옆에 내려놓고, 신음하는 철수를 부축하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의 등 뒤, 대장간 한구석 낡은 목조 기둥 뒤편에서 이 모든 광경을 숨죽여 지켜보던 첫째 설아의 눈동자가 깊게 흔들리고 있었다.


설아는 아저씨의 저 묵직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움직임, 그리고 무기를 산산조각 내는 가공할 힘이 단순한 대장장이의 완력이 아님을 완전히 확신했다. 아저씨의 넓은 등 뒤에 덧대어진 가죽 앞치마 뒤편으로, 설아의 매서운 의심과 두려움이 서린 시선이 꽂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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