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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약초꾼과 얼어붙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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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밤은 자비가 없었다.


철사구(鐵沙區)의 하늘을 뒤덮은 검은 석탄재는 한밤중에 내리기 시작한 진눈깨비와 뒤엉켜 대지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살을 깎아낼 듯한 삭풍이 우현 대장간의 낡은 판자 틈새를 사정없이 후려치며 괴기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밤낮으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화로의 불길도 이 지독한 한기 앞에서는 겨우 주황색 불씨만을 남긴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단우현은 화로 옆 낡은 목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숯검댕이가 묻은 가죽 앞치마를 걸친 그의 거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른쪽 뺨에서 귀밑까지 비스듬히 이어지는 깊은 도상(刀傷)이 꺼져가는 불빛을 받아 검붉게 도드라졌다. 그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오직 호흡의 미세한 떨림만으로 대장간 주변의 정적을 읽고 있었다.


그때, 안방의 얇은 문풍지 너머로 다급하고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아저씨! 우현 아저씨! 윤서가 이상해요!”


첫째 설아의 울부짖음이었다.


우현의 감겨 있던 눈이 번개처럼 치켜뜨였다. 그의 거구가 의자에서 용수철처럼 퉁겨 나갔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선 안방에는, 열두 살 된 둘째 민우가 굳어버린 채 서 있었고, 열네 살 설아는 바닥에 쓰러진 여덟 살 계집아이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셋째 윤서였다. 아이의 작은 몸은 마치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으나, 전신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 비정상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가냘픈 목덜미의 기혈(氣穴)들이 기이하게 요동치며 피부 위로 푸르스름한 핏줄이 터질 듯 솟아올랐다. 태생적으로 약한 윤서의 기맥이 북방의 혹독한 밤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파탄을 일으킨 것이었다.


“윤서야! 눈 좀 떠봐! 아저씨, 윤서 몸이... 몸이 너무 차가워요!”


설아가 우현의 가죽 앞치마 자락을 붙잡고 매달렸다. 우현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을 잃어버린 척해야만 했다. 그는 묵묵히 무릎을 꿇고 윤서의 이마에 투박한 손을 얹었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열기는 가마터의 용광로보다 뜨거웠으나, 아이의 숨결은 얼음 계곡의 서리처럼 차가웠다.


우현의 단전 깊은 곳에 박혀 있던 천근봉(千斤封)의 봉인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순수한 불가 진기를 운용하여 아이의 기맥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단전의 기운을 끌어올리려 찰나, 폐부 깊은 곳에서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극심한 통증이 치솟았다. 과거 처형인 시절 마셨던 수많은 원혼의 원한과 기이한 극독이 뒤엉켜 만들어진 고질적인 한독(寒毒)이 그의 내력을 막아서며 목구멍으로 핏물이 울컥 치밀었다.


‘크윽...!’


우현은 억지로 피를 삼키며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내력을 쓰면 아이를 살리기도 전에 자신의 경맥이 먼저 파괴되어 동사할 터였다.


시간이 없었다. 우현은 신속하게 이불을 끌어당겨 윤서의 작은 몸을 겹겹이 감싸 안았다. 그리고 아이를 자신의 넓은 등에 업고 질끈 가죽 끈으로 묶었다. 그는 설아와 민우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무언의 명령이었다. 설아는 아저씨의 붉게 충혈된 눈빛에 담긴 비장함을 읽고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간 문이 열리자마자 맹렬한 눈보라가 우현의 뺨을 때렸다.


우현은 눈보라 속으로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보통의 절정 고수라면 가벼운 경공(輕功)으로 지붕을 타고 날아갔겠지만, 내공이 봉인된 우현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사치였다. 그는 오직 평생 땀 흘려 단련한 순수한 육체의 힘, 묵철강체공(墨鐵剛體功)의 완력만으로 눈더미를 헤쳐나갔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을 디딜 때마다 허벅지의 근육이 터질 듯 팽창했고, 뼈마디가 삐걱거리는 물리적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다.


그의 등 뒤에서 윤서의 가쁜 호흡이 점차 가늘어지고 있었다. 아이의 차가운 뺨이 우현의 목덜미에 닿을 때마다, 그의 심장은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요동쳤다.


‘조금만 버텨다오. 윤서야. 이 못난 아저씨가 어떻게든 너를 살릴 것이다.’


우현은 이를 악물고 철사구 저잣거리 구석에 위치한 허름한 흙벽돌 집을 향해 달렸다. 눈먼 약초꾼 백 노인의 약초방이었다. 눈보라를 뚫고 마침내 도착한 약방의 거친 목조 문을 우현은 투박한 주먹으로 세차게 두드렸다.


쾅! 쾅! 쾅!


“백 노인! 문을 열어주시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기에, 우현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렸다. 이윽고 안쪽에서 가벼운 지팡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흐릿하고 초점 없는 눈동자를 지닌 백발의 노인, 백 노인이 대나무 지팡이를 짚은 채 서 있었다. 백 노인은 눈이 멀었으나, 문이 열리자마자 전해지는 무거운 체구의 기세와 아이의 가느다란 숨소리를 단번에 읽어냈다.


“우현 아저씨로군. 어서 안으로 들이게.”


우현은 지체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윤서를 조심스럽게 짚자리 위에 눕혔다. 백 노인은 지팡이를 내려놓고 손가락 끝으로 윤서의 손목 맥박을 짚었다. 그의 주름진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기맥이 완전히 꼬였군. 북방의 한독이 아이의 연약한 단전을 장악하려 하고 있어. 이대로 두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기혈이 굳어 죽을 걸세.”


백 노인은 신속하게 방구석의 낡은 침통을 열어젖혔다. 자하은침(紫霞銀針)이라 불리는 신비한 은침들이 촛불 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백 노인은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으로 윤서의 가슴과 이마, 그리고 발끝의 요혈들을 정확하게 짚어 침을 꽂아 넣기 시작했다.


침이 꽂힐 때마다 윤서의 피부 위로 피어오르던 푸른 핏줄들이 미세하게 요동치며 검붉은 독혈이 침끝을 타고 한 방울씩 흘러나왔다. 아이의 가쁜 호흡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자, 우현은 그제야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를 내렸다.


백 노인은 약탕기에 미리 준비해 둔 비방 탕약을 부어 불 위에 올렸다. 쌉싸름하고 매운 약초 향이 약방 내부에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숨을 고르던 백 노인이 뜬금없이 우현의 손목을 낚아챘다.


투박하고 거친 대장장이의 손목이었으나, 그 안에서 흐르는 맥박은 요동치는 파도처럼 기이하고 음산했다. 백 노인은 손끝으로 전해지는 맥상에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자네 몸속의 한독도 한계에 달했군. 방금 눈보라 속을 달리며 억지로 기를 쓰려 했는가? 전신 경맥에 원혼의 살기와 차가운 독기가 엉망으로 뒤엉켜 있네. 도대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를 묻혔기에 몸이 이 지경이 되도록 속죄의 굴레를 쓰고 사는가?”


방 안에는 오직 약탕기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우현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천천히 열었다. 평소의 벙어리 연기는 이 눈먼 현자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수년간 쓰지 않아 쇠가 슬그머니 쓸리는 듯 갈라지고 나직했다.


“...매일 밤 꿈을 꿉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뼛속 깊은 죄책감과 피로가 묻어 있었다.


“참수대 위에서 내가 목을 베었던 사내... 임회남 대감의 마지막 눈빛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소. 오직 제 아이들을 살려달라는 간절한 눈빛만을 남겼지. 그리고 내 사부 형천은 늘 말했소. 망나니의 칼은 하늘의 뜻을 대행하는 것이니, 정을 담는 순간 칼날이 무뎌진다고. 하지만 나는 사부의 가르침을 저버렸소. 내 손으로 목을 벤 사내의 고아들을 내가 감히 키우고 있단 말이오.”


우현은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넓은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평생 사람의 목을 베어 온 망나니의 손이, 이제는 그 자식들을 품고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순적인 삶. 그것이 우현을 갉아먹는 진짜 한독의 원천이었다.


백 노인은 묵묵히 끓어오른 탕약을 대접에 담아 우현에게 건넸다.


“자네의 심맥을 가라앉혀 줄 탕약이네. 어서 마시게.”


우현은 검붉은 약탕을 단숨에 들이켰다. 쌉싸름한 열기가 폐부를 타고 내려가 요동치던 한독의 냉기를 일시적으로 잠재웠다. 그러나 백 노인의 다음 말은 우현의 심장을 다시금 차갑게 얼려버렸다.


“침술로 급한 불은 껐으나, 이건 임시방편일 뿐이네. 아이의 약한 기맥을 완전히 다스리고 열을 내리려면, 사시사철 서늘한 독무가 끼어 있는 음풍곡(陰風谷) 절벽 틈새에서만 자라는 희귀 약초, 한극초(寒極草)가 반드시 필요하네.”


백 노인은 흐릿한 눈으로 우현의 얼굴을 지시했다.


“하지만 경고하겠네. 자네의 몸은 이미 천근봉으로 간신히 폭주를 막고 있는 시한폭탄과 같네. 만약 한극초를 구하기 위해 음풍곡의 험난한 계곡을 오르며 무리하게 내력(內力)을 단 한 터럭이라도 쓴다면... 체내에 봉인된 한독이 역류하여 자네의 심장이 먼저 얼어붙어 즉사할 걸세. 아이를 살리기도 전에 자네가 먼저 죽는다는 뜻이네.”


약방을 뒤흔드는 북방의 칼바람 소리 속에서, 백 노인의 가혹한 경고가 단우현의 뇌리를 무겁게 때렸다. 기맥이 타들어 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전설의 약초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공을 펼치는 순간 자신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치명적인 굴레.


우현은 짚자리 위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는 윤서의 창백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무의식중에 허공을 저으며 아저씨를 찾는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우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빛에는 흔들림 없는 tragic하고 결연한 광채가 서려 있었다. 사부의 칼날은 피를 불렀으나, 이제 자신의 망치는 생명을 살릴 터였다. 설령 그 대가가 자신의 파멸일지라도.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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