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숯길, 이글거리는 가마
새벽의 삭풍은 철사구(鐵沙區)의 하늘을 여전히 검은 석탄가루로 짓누르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 깊숙한 곳을 긁어내리는 매캐한 매연 속에서도, 우현 대장간의 가마는 이글거리는 붉은 빛을 토해내며 간신히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 식기 전에 어서들 들어요.”
대장간 안마당의 투박한 목조 탁자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김이 차가운 공기를 부드럽게 녹여냈다. 대장간 바로 옆에서 만두 가게를 운영하는 과부 서씨 부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건넨 대접에는, 갓 쪄내어 윤기가 흐르는 고기만두가 가득 담겨 있었다.
여덟 살 된 셋째 윤서는 하얀 만두를 조심스레 베어 물며 배시시 웃었다. 창백하던 뺨에 오래간만에 붉은 생기가 도는 모습을 보며, 단우현은 말없이 화로의 불길을 조절했다. 그의 곁에서 열두 살 된 둘째 민우는 입가에 고기 기름을 묻혀가며 씩씩하게 만두를 삼키고 있었다.
“서씨 아줌마 만두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아저씨도 어서 드세요!”
민우가 만두 하나를 집어 우현의 코앞으로 내밀었다. 우현은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투박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행세를 하고 있었기에, 그저 민우의 머리를 거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하지만 대장간 한구석에 서 있던 첫째 설아의 시선은 달랐다. 열네 살의 조숙한 소녀는 만두를 입에 대지 않은 채, 우현의 일거수일투족을 날카롭게 응시하고 있었다. 어제 관청의 세금징수원 장명을 단 한 손으로, 내공의 기척도 없이 백 근의 무쇠 달구지를 들어 올려 쫓아내던 아저씨의 괴력. 그것은 결코 평범한 대장장이의 힘이 아니었다. 설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의심의 싹은 차가운 새벽바람 속에서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
우현은 설아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묵묵히 숯검댕이가 묻은 가죽 앞치마를 고쳐 입었다. 가슴속에서 찌릿하게 울려 퍼지는 죄책감이 만두의 온기마저 차갑게 식히는 것 같았다. 이 아이들의 아버지를 참수한 망나니가 바로 자신이라는 진실을, 설아의 저 영민한 눈빛이 언젠가 꿰뚫어 보게 될까 두렵고 두려웠다.
그 평온하고 위태로운 아침의 정적을 깨뜨린 것은, 대장간 입구로 거칠게 내던져진 묵직한 가마니 소리였다.
털썩! 콰르릉!
검은 석탄재가 사방으로 튀며 대장간 마당의 흙바닥을 더럽혔다. 갓 쪄낸 만두의 하얀 김 사이로 검붉은 먼지가 내려앉았다. 윤서가 깜짝 놀라 설아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민우는 벌떡 일어서며 대장간 입구를 노려보았다.
“이봐, 벙어리 대장장이. 얼굴 좀 보자고.”
비열한 뱀의 안광을 지닌 사내가 허리춤에 가죽 채찍을 찬 채 거만하게 걸어 들어왔다. 철사구 일대의 광산 이권과 상권을 독점한 사파 조직, 철사방(鐵沙방)의 삼호두 조필이었다. 그의 뒤에는 삼류 수준의 거친 무공을 익힌 철사방 단원 서너 명이 몽둥이와 단도를 든 채 거드름을 피우며 서 있었다.
조필은 마당에 내던져진 가마니를 가죽 장화 끝으로 툭툭 찼다. 가마니의 터진 틈새로 흘러나온 것은 조잡하고 푸석푸석한 일반 갈탄 조각들이었다.
우현은 묵묵히 조필을 바라보았다. 대장간의 가마 온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무기를 제련하기 위해서는 참나무로 만든 최고급 참숯, 즉 백탄(白炭)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조필이 가져온 것은 열기가 오래가지 않고 그을음만 가득한 삼류 탄덩어리였다.
조필이 비죽 미소를 지으며 우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부로 이 철사구에서 네 놈 대장간으로 들어오는 백탄 공급은 완전히 끊겼다. 우리 철사방의 허락 없이는, 이 마을 그 어떤 숯쟁이도 네 놈에게 백탄 한 조각 건네지 못할 거다.”
민우가 참지 못하고 한 걸음 나섰다.
“말도 안 돼요! 우리는 매달 정당한 값을 치르고 백탄을 사 왔단 말이에요! 갑자기 공급을 끊으면 우리 대장간은 어떻게 일을 하라뇨!”
“이 꼬맹이 녀석이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어디서 주둥이를 놀려?”
조필이 눈을 부라리며 허리춤의 가죽 채찍을 슬쩍 만졌다. 그는 우현을 향해 턱짓을 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벙어리 대장장이, 네 놈이 만드는 농기구의 철질(鐵質)이 제법 단단하다는 소문이 우리 방주님 귀에까지 들어갔거든. 오늘부터 사흘이다. 사흘 안에 우리 철사방 단원들이 사용할 백련강 대도 서른 자루를 만들어 바쳐라. 아주 싼 가격에 말이지. 기한을 맞추지 못하거나 거절한다면... 백탄이 끊기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다. 이 대장간을 통째로 불태우고, 저기 있는 조그만 계집애들을 광산 노역장에 팔아넘겨서라도 대가를 받아낼 테니까.”
조필의 시선이 설아와 윤서에게 머물렀다.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눈빛에 우현의 심장 밑바닥에서 억눌러 두었던 가혹한 살기가 꿈틀거렸다. 천근봉으로 묶어둔 단전이 요동치며 가슴팍에 뜨거운 열기가 치솟았다. 당장이라도 저 비열한 사내의 목뼈를 움켜쥐고 단숨에 부러뜨리고 싶은 처형인의 본능이 그를 흔들었다.
‘아이들 앞에서 살생을 하지 않는다.’
우현은 가죽 앞치마를 쥔 왼손을 꽉 쥐며 스스로의 계율을 되새겼다. 피를 흘리는 순간, 이 평화는 영원히 종식될 터였다.
그때, 분노를 참지 못한 민우가 작업대 위에 놓여 있던 낡은 무쇠 단검을 쥐고 조필을 향해 돌격했다.
“우리 아저씨 괴롭히지 마! 이 나쁜 놈들아!”
“민우야, 안 돼!”
설아가 경악하며 소리쳤지만, 혈기왕성한 열두 살 소년의 몸은 이미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민우는 단검을 쥐고 조필의 옆구리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조필은 비록 삼류 무사일지언정, 뒷골목에서 수많은 칼부림을 겪으며 잔뼈가 굵은 자였다. 그는 코방귀를 끼며 가볍게 신형을 비틀어 민우의 단검을 피했다.
탁!
조필의 빠른 손놀림이 민우의 손목을 강타했다.
“앗!”
민우가 비명을 지르며 단검을 놓쳤고, 단검은 마당 구석으로 힘없이 튕겨 나갔다. 조필은 멈추지 않고 민우의 가슴팍을 향해 가죽 장화 발길질을 날렸다. 그대로 맞으면 아이의 갈비뼈가 부러질 수도 있는 궤적이었다.
스윽.
바람 소리조차 나지 않는 기이하고도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우현의 거대한 몸이 어느새 민우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팍!
조필의 강력한 발길질이 우현의 허벅지에 정통으로 부딪쳤다. 둔탁한 마찰음이 울려 퍼졌으나, 우현은 태산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동으로 인해 조필의 발목이 뒤틀리며 그가 비틀거렸다. 우현은 민우를 가만히 등 뒤로 숨기며, 조필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조필은 발목에 전해지는 찌릿한 통증에 인상을 쓰며 물러섰다. 그는 자신의 체면이 구겨진 것에 분노하여, 우현의 앞으로 다가와 검지손가락으로 우현의 넓은 가슴팍을 쿡쿡 찔러댔다.
“이 벙어리 새끼가 덩치만 믿고 까부는구나. 어제 장명을 쫓아냈다더니 기고만장해졌어? 그래봤자 일개 대장장이 놈이 관청과 우리 철사방을 상대로 무사할 줄 아느냐? 사흘이다. 사흘 안에 대도를 바치지 않으면 네 놈의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 화로에 던져 넣어 주마!”
조필의 손가락이 우현의 가슴을 세차게 압박할 때마다, 우현의 눈빛은 더욱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우현은 말없이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거칠고 단단한 가죽 장갑을 낀 손이 조필의 가슴팍을 향해 다가갔다. 조필은 칼을 뽑으려 했으나, 우현의 손이 더 빨랐다. 우현은 조필의 뺨이나 목을 치는 대신, 그의 가슴을 밀쳐내는 척하며 조필의 손가락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으드득.
조필의 손가락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며 뒤틀리는 기괴한 마찰음이 대장간의 침묵을 깼다. 내력은 단 한 터럭도 실리지 않은 순수한 악력이었으나, 화경의 경지에 달했던 우현의 골격 제어술과 무진강체공의 완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으, 으아아악! 내 손가락! 손가락이...!”
조필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갔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가혹한 통증에 그의 무릎이 저절로 꺾였다. 우현의 눈빛은 살기 없이 평온했으나, 그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이지 않는 태산 같은 위압감이 조필의 숨통을 완벽하게 조여왔다. 조필은 마치 거대한 바위 괴수에게 손을 붙잡힌 듯한 공포를 느꼈다.
우현은 조필이 완전히 무릎을 꿇기 직전, 손을 툭 놓아주며 그를 가볍게 밀쳐냈다.
“쿠당탕!”
조필은 마당의 석탄재 구덩이 위로 볼품없이 굴러떨어졌다. 그의 부하들이 경악하며 조필을 부축해 일으켰다. 조필은 으스러질 듯 부어오른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움켜쥔 채, 전신을 부르르 떨며 단우현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기고만장하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그의 안광에는 본능적인 공포심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벙어리 놈이...!”
조필은 침을 뱉으며 부하들의 부축을 받아 대장간 밖으로 급히 물러섰다. 그는 골목길 모퉁이로 사라지기 직전, 뒤를 돌아보며 악에 받친 소리를 질렀다.
“사흘이다! 사흘 뒤에 백탄이 없어 식어버린 네 가마와 함께 네 놈들의 목숨을 거두어 가마! 두고 보자!”
철사방 무리들이 저잣거리 너머로 도망치듯 사라지자, 대장간 마당에는 다시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부러진 사강석 그릇 조각들과 터진 가마니에서 흘러나온 갈탄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민우는 바닥에 떨어진 무쇠 단검을 주워 올리며 분노와 무력감에 눈물을 흘렸다.
“아저씨... 죄송해요. 제가 약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저 비열한 놈들의 무기를 우리가 왜 만들어야 해요? 백탄이 없으면 우리 가마는 정말 꺼지는 건가요?”
민우의 작은 어깨가 흐느낌으로 잘게 떨렸다. 설아는 말없이 동생들의 어깨를 감싸 안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우현의 넓은 등 뒤에 멈춰 있었다. 아저씨가 방금 보여준 그 절제된 악력과 기세는 단순한 대장장이의 힘이 아니었다. 무림의 고수들이 지닌 은밀한 신체 제어술의 극치였다. 설아의 의심은 이제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우현은 말없이 민우에게 다가갔다. 그는 민우의 눈물을 투박한 가죽 장갑 낀 손가락으로 조용히 닦아주었다. 그리고 민우의 손에 쥐여져 있던 낡은 무쇠 단검을 거두어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우현은 민우의 손을 잡고 가마 앞으로 걸어갔다. 가마의 불길은 조필이 던져둔 갈탄 조각들 때문에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우현은 대장간의 가장 크고 무거운 묵철 쇠망치를 쥐어 민우의 손에 쥐여주었다.
민우는 무거운 망치의 무게에 흠칫 놀라며 우현을 올려다보았다.
우현은 민우의 뒤에 굳건히 서서, 그의 작은 손과 망치 자루를 자신의 거대하고 굳은살 박인 손으로 함께 감싸 쥐었다. 그리고 묵묵히 풀무의 손잡이를 민우의 다른 손에 쥐여주었다.
우현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호흡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민우가 그 호흡의 주기를 따라 하도록 유도했다.
‘흡(吸)—.’
우현의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오르자, 민우도 엉겁결에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우현의 손이 민우의 손을 이끌어 풀무를 힘차게 당겼다.
‘호(呼)—.’
숨을 내뱉는 순간, 우현은 민우의 손을 이끌어 달구어진 철판 위로 묵철 쇠망치를 내리찍었다.
깡————!
맑고 묵직한 쇳소리가 대장간 내부에 울려 퍼졌다. 단순한 망치질이 아니었다. 우현은 민우의 손을 통해 망치가 철판에 닿는 순간의 미세한 반동과 진동을 민우의 손목과 어깨 경맥으로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었다.
‘기를 다스리는 것은 힘을 쓰는 것이 아니다. 흐름을 따르는 것이다.’
우현은 마음속으로 사부 형천이 남겼던 구결 대신, 자신이 평생 연구해 온 불살의 내경 조절법인 혼원일기공(混元一氣功)의 기초 이치를 민우의 신체에 은밀하게 주입하고 있었다. 망치질이 대지를 때리고 반동이 어깨로 올라올 때마다, 우현은 민우의 호흡을 조율하며 전신의 기혈을 부드럽게 열어주었다.
깡! 깡! 깡!
일정한 리듬에 맞춰 망치질이 계속되자, 식어가던 가마의 불길이 풀무질의 강한 바람을 받아 다시금 붉은 불꽃을 세차게 토해내기 시작했다.
민우는 신기한 경험에 눈을 크게 떴다. 망치질을 할 때마다 몸이 피로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전(丹田) 깊은 곳에서부터 찌릿하고 따뜻한 온기가 피어올라 전신으로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깨의 통증은 사라지고, 손끝에는 알 수 없는 묵직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가마의 이글거리는 붉은 불빛이 민우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반사되어 타올랐다. 소년의 가슴속에 새로운 힘과 결의가 싹트는 순간이었다. 우현은 묵묵히 민우의 손을 잡고 망치를 두드리며, 다가올 사흘 뒤의 폭풍을 향해 가마의 불꽃을 더 뜨겁게 피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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