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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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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을 가르는 묵직한 발걸음은 태산과도 같았다.


단우현의 거구는 밤안개와 흩날리는 눈보라 속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 같았다. 철사구의 삭막한 저잣거리는 깊은 밤의 어둠에 잠겨 적막하기 그지없었으나, 우현이 디디는 발걸음마다 쌓인 눈이 짓눌리며 뽀드득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깨뜨렸다.


그의 등 뒤에는 무명천으로 꽁꽁 싸매여 봉인된 전설의 참수도, 귀두도(鬼頭刀)가 질끈 매여 있었다. 천 자락 너머로 흘러나오는 검붉은 살기가 주변의 차가운 눈바람마저 얼려버릴 듯 음산했으나, 우현은 정심주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 살기를 단전 깊숙이 억눌렀.


그의 오른손에는 평소 대장간에서 풀무질용 대못을 박거나 무쇠를 두드릴 때 사용하던 투박한 묵철 쇠망치가 들려 있었다. 내력을 쓰지 못하는 한계 속에서, 이 무거운 망치야말로 아이들 앞에서 살생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마지막 도덕적 금기이자 불살의 규칙을 대변하는 유일한 무구였다.


우현은 걷는 내내 대장간 안방에 남겨두고 온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고열에서 겨우 회복해 끙끙 앓던 막내 윤서, 자신의 나약함에 눈물 흘리던 둘째 민우. 그리고…… 가마 밑바닥에서 참수도를 발견하고 자신을 친부 임회남 대감의 원수로 확신하며 차가운 원망의 침묵을 지키던 첫째 설아의 눈빛.


‘미안하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지 못한 무언의 참회가 심장을 찔러왔다. 단전 깊은 곳에 묶인 천근봉의 제약 탓에 내력을 급격히 운용하면 체내의 한독(寒毒)이 역류해 즉사할 터였으나, 우현은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을 묵묵히 삼켜냈다. 아이들에게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들켰을지언정, 그 아이들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라면 제 손을 다시 피로 물들이는 한이 있어도 철사방의 뿌리를 뽑아야만 했다. 그것이 처형인으로서 평생을 짊어진 그의 비장한 속죄이자 부성애였다.


저 멀리 눈보라 속에서 철사구 중앙을 장악한 거대한 목조 요새, 철사방 본타의 검은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횃불들이 요새 장벽 위에서 붉은 혀를 내밀며 일렁이고 있었고, 무장한 사파 단원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우현은 망설임 없이 요새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무형의 기세가 눈밭을 타고 요새 장벽을 향해 무겁게 밀려갔다.


“누, 누구냐!”


장벽 위에서 경계를 서던 철사방 단원이 횃불을 아래로 비추며 비명을 질렀다. 눈보라를 뚫고 걸어오는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 오른쪽 뺨에서 귀밑까지 이어지는 깊은 도상 흉터가 횃불 빛에 붉게 번뜩이는 대장장이의 얼굴을 확인한 단원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 그 벙어리 괴물 놈이다! 대장장이 놈이 홀로 쳐들어왔다!”


요새 내부에 징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정문이 거칠게 열리며 단도와 철검을 쥔 사파 단원 수십 명이 마당으로 쏟아져 나왔으나, 우현이 묵묵히 묵철 쇠망치를 낮게 떨어뜨리며 다가오자 그 누구도 감히 먼저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뒤로 주춤거렸다. 행동대장 광표를 단 두 합 만에 폐인으로 만들었던 괴력의 대장장이라는 소문은 이미 그들의 뼈에 공포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 등신 같은 놈들! 고작 벙어리 대장장이 하나에 겁을 먹느냐!”


요새 이층 본루의 발코니 문이 열리며, 곰 같은 풍채의 거한이 포효하듯 걸어 나왔다. 철사구 일대의 모든 이권을 독점하고 백성들을 착취해 온 사파의 방주, 철마웅(철마웅)이었다. 그의 어깨에는 바위도 박살 낼 거대한 흑철 곤봉이 비스듬히 매여 있었으나, 그의 매서운 눈동자 깊은 곳에도 우현을 향한 일말의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


철마웅은 우현의 굳건한 태도와 등 뒤에 매인 천에 싸인 무구의 기이한 중량감을 간파하고, 비열하게 웃으며 뒤편을 향해 손짓했다.


“파도 대장! 약속한 금화는 이미 지불했으니, 저 건방진 대장장이 놈의 목을 가져오시오!”


철마웅의 외침과 동시에, 요새 안마당의 어둠 속에서 차가운 쇳소리와 함께 일군의 무리가 질서정연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돈만 주면 무엇이든 베어 넘기는 변방 최고의 정예 낭인 용병 집단, 철랑대(鐵狼隊)였다.


그들의 선두에는 회색 가죽 갑옷을 입고 얼굴에 깊은 검자국을 지닌 사나이가 서 있었다. 철랑대의 조장이자 일류 창술의 대가인 파도(파도)였다. 그의 손에는 은빛 광채를 내뿜는 정교한 강철창, 은룡창(銀龍槍)이 쥐어져 있었다.


파도는 우현의 투박한 가죽 앞치마와 숯검댕이가 묻은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변방의 외팔이 대장장이 같았으나, 파도의 예리한 안광은 우현의 넓은 어깨와 대지에 뿌리박은 듯 굳건한 하체,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 미세하게 뒤틀리는 공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이 자는…… 보통의 대장장이가 아니다. 뼈와 가죽이 무쇠처럼 단련된 외공의 절대 강자다.’


파도의 눈빛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은룡창을 치켜들며 부하 용병들에게 단호하게 구령을 내렸다.


“철랑방진(鐵狼防陣)을 전개하라! 대상을 사각지대 없이 포위한다!”


파도의 명령에 따라 철랑대의 정예 창객 수십 명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수십 장의 두꺼운 철제 방패를 서로 맞대어 빈틈없는 원형의 방어 장벽을 형성했다. 방패 틈새 사이로 예리하게 벼려진 강철 창날 수십 자루가 숲을 이루듯 뻗어 나와 우현의 전신 요혈을 정면으로 겨누었다. 군부의 전장 진법을 연상시키는 치밀하고 조직적인 포위망이었다.


우현은 좁혀오는 방패 벽을 보며 가볍게 신형을 움직여 측면 샛길로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사방을 겹겹이 가로막은 철제 방패들과 창날의 빽빽한 장벽은 내력이 봉인되어 신법의 속도를 내지 못하는 그에게 정면 돌파를 강제했다. 적들은 빈틈이 없었고,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선 이 포위망을 단숨에 부수어야만 했다.


“돌격! 사지를 관통하라!”


파도의 벼락같은 구령과 함께, 열 명의 정예 창객들이 동시에 단우현의 어깨와 허벅지, 심장을 향해 파진창(破陣槍)을 내질렀다. 가혹한 파공음과 함께 수십 자루의 창날이 눈보라를 찢으며 쇄도했다.


우현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전신의 근육과 뼈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외공 심법, 무진강체공(無盡剛體功)을 가동했다. 그의 피부 위로 어두운 무쇠의 광채가 흘렀다.


동시에 우현은 오른손에 쥔 묵철 쇠망치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가, 그대로 얼어붙은 요새 대지를 향해 전력으로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뇌성 같은 굉음과 함께 대지가 요동쳤다. 얼어붙어 있던 흙더미와 쌓인 눈, 그리고 사방에 쌓여 있던 석탄재가 폭풍처럼 사방으로 뿜어져 나와 자욱한 먼지 장벽을 형성했다. 순식간에 철랑대 창객들의 시야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눈과 귀를 의지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던 용병들의 진형이 일시적인 혼란에 빠졌다.


우현은 그 자욱한 먼지 장벽 속에서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내력은 쓸 수 없었으나,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 특유의 감각으로 창날이 공기를 가르는 미세한 울림을 눈과 귀로 완전히 간파해 냈다.


스윽.


우현은 창날의 공격 궤적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들이닥친 창객들의 창 자루 측면을 향해 묵철 쇠망치를 가볍게 휘둘렀다. 상대방 무기의 결함과 결의 흐름을 순간적으로 간파해 파괴하는 블랙스미스 무학, 병기파쇄술(兵器破碎術)이었다.


깡! 깡! 깡!


맑고 날카로운 금속 파열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우현의 망치 평면이 창 자루의 가장 취약한 목재 연결 부위를 정확히 타격하자, 가공할 진동 충격파가 무기를 타고 흘러갔다. 정예 창객 세 명의 철창이 버티지 못하고 동시에 동강 부러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비산했다. 손바닥 가죽이 찢어진 창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철벽 같던 철랑방진의 원형 대형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철랑대의 정예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부러진 방패 벽 사이로 날카로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아아악!


먼지 장벽을 찢으며, 은빛의 날카로운 창기가 폭풍처럼 단우현의 가슴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철랑대의 대장 파도가 직접 움직인 것이었다. 그의 은룡창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Jilpung-pajinchang(질풍파진창)의 강격은 대리석 바닥마저 가볍게 쪼갤 기세로 들이닥쳤.


우현은 궤짝의 무게와 내력 봉인의 한계 탓에 완벽하게 피하지 못하고, 가슴을 방어하기 위해 두꺼운 낡은 가죽 앞치마를 끌어당겨 막아섰다.


지지직! 콰직!


소름 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은룡창의 날카로운 창끝이 우현의 가죽 앞치마 전면을 찢어발겼다. 앞치마 내부에 덧대어진 강철판이 일차적으로 충격을 흡수하고 무진강체공의 단단한 피부가 창기를 튕겨냈으나, 예리한 창날 끝이 우현의 옆구리를 스치며 붉은 선혈이 눈밭 위로 뚝뚝 떨어졌다. 경미한 찰과상이었으나, 일류 창객의 기세는 매서웠다.


파도는 단우현의 가슴팍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와, 자신의 창격을 맨몸으로 받아내고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의 괴물 같은 강체 방어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파도는 공중으로 도약하여 은룡창을 화려하게 회전시키며 대지 위에 착지했다. 그의 전신에서 차가운 일류 무인의 기세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과연 소문대로 괴물이군. 하지만 돈을 받았으니 네 뼈를 부수겠다.”


파도가 창끝을 낮게 겨누며 살기를 번뜩였고, 단우현은 대답 없이 묵철 쇠망치를 낮게 내리며 묵묵히 대치했다. 요새 마당 위로 차가운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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