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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속의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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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북풍이 대지를 찢어발길 듯 몰아치는 아침이었으나, 우현 대장간의 마당에 가득 찬 정적은 그 바람 소리마저 삼켜버릴 만큼 무겁고 싸늘했다.


광산에서 용이의 목숨을 구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려온 단우현의 두 발이 안마당의 붉은 눈밭 위에 멈춰 섰다. 불과 반 시진 전까지 따뜻한 고기만두의 김이 피어오르고, 풀무질 소리가 활기차게 울려 퍼지던 보금자리는 온데간데없었다. 허물어진 담벼락 사이로 매캐한 유독 가스와 타버린 가죽 타는 냄새가 뿜어져 나왔고,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던 야철 도구들은 사방으로 짓밟혀 흩어져 있었다.


우현의 시선이 마당 중앙으로 향했다.


“으윽…… 으으……”


거구의 마당쇠 돌쇠가 허벅지와 옆구리에서 쏟아지는 피를 움켜쥔 채 신음하고 있었다. 타고난 천생신력으로 곤봉을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버텼을 터였으나, 예리한 검기에 전신이 난자당한 상태였다. 그 옆에는 대장간의 동료이자 우현을 형님처럼 따르던 철수가 피웅덩이 속에 쓰러져 있었다. 철수의 오른쪽 어깨뼈는 광표의 잔인한 혈인도에 의해 참혹하게 찢겨 나가 뼈가 하얗게 드러나 있었다.


우현의 거대한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굳은살 박인 손끝이 가늘게 요동쳤다. 가슴 깊은 곳에서 수년 동안 억눌러두었던 어둡고 묵직한 기류가 요동치며 심장을 사정없이 쥐어짜기 시작했다.


‘살기 동조(殺氣 同調).’


과거 황실의 수석 처형인으로서 천 명에 달하는 죄인의 목을 벨 때 대지를 물들였던 가혹한 살육의 본능이, 핏빛 안개가 되어 그의 안구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우현의 시선이 설아에 의해 가마 밑바닥에서 파헤쳐져 마당 바닥에 뒹굴고 있던 검붉은 참수도, 귀두도(鬼頭刀)를 향했다. 저 칼을 잡고 철사방 놈들의 목을 모조리 베어 단두대를 만들어버려야 한다는 비정하고 잔혹한 충동이 온몸의 경맥을 타고 솟구쳤다.


“아저씨…… 우현 아저씨……!”


그때, 마당 구석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오열하던 둘째 민우가 단우현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민우는 온몸이 두들겨 맞아 멍투성이인 상태에서도, 아저씨의 붉게 변한 눈빛을 보고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면서도 애원했다.


“윤서가…… 윤서가 그 나쁜 놈들에게 끌려갔어요……! 철수 삼촌이랑 돌쇠 형이 막으려 했는데…… 마차에 태워서 저 산 쪽으로……!”


민우의 울부짖음 뒤편으로, 눈보라 속에서 가출해 방황하던 첫째 설아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설아는 대장간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듯했으나, 피투성이가 된 마당과 바닥에 뒹구는 귀두도, 그리고 아저씨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름 끼치는 피비린내를 마주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그녀의 차가운 눈빛 속에는 아저씨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는 배신감과 두려움, 그리고 동생을 잃은 슬픔이 기묘하게 뒤엉켜 있었다.


우현은 가슴을 후벼 파는 자괴감에 눈을 감았다.


‘아이들 앞에서 결코 피를 흘리며 살생하지 않겠다.’


임회남 대감이 처형대 위에서 목숨을 바치며 남겼던 마지막 약속이 뇌리를 스쳤다. 우현은 떨리는 손을 거두고, 귀두도를 향했던 시선을 돌렸다. 그는 가부좌를 틀듯 두 발을 대지에 굳건히 박고, 나직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불가 비전의 심법인 ‘정심주 호흡법(靜心呪)’이 그의 가슴속에서 운용되기 시작했다. 붉게 타오르던 안광이 서서히 가라앉고, 폭주하려던 검붉은 살기가 투명하고 차가운 내경의 기류로 정화되어 단전 깊은 곳으로 침잠했다. 천근봉의 봉인으로 인해 내력을 방출할 수는 없었으나,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는 것만큼은 화경의 경지 그대로였다.


우현은 여전히 말을 잃어버린 벙어리 연기를 유지한 채, 소리 없이 철수에게 다가갔다. 그는 품속에서 흑석산에서 채취했던 벽혈초와 지혈 가루를 꺼내 철수의 어깨 상처에 뿌리고 두꺼운 무명천으로 상처를 압박했다. 이어 돌쇠의 옆구리 상처에도 약재를 바르고 단단히 동여맸다. 내공을 주입해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었으나, 오랜 처형인 생활 동안 익힌 인체 역학적 의술로 출혈을 완벽히 막아냈다.


마침 대장간의 소란을 감지한 포수 하진과 눈먼 약초꾼 백 노인이 대장간 마당으로 급히 들어섰다.


“이게 무슨 아수라장이란 말인가!”


백 노인이 흐릿한 눈으로 피 냄새를 맡으며 경악했고, 하진은 활을 치켜들며 주변을 경계했다. 우현은 묵묵히 백 노인의 손을 잡아 철수의 손목 위에 얹어주었다. 그리고 하진을 향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철수와 돌쇠를 의원에 맡기고 대장간을 지켜달라는 무언의 부탁이었다. 하진은 우현의 비장한 눈빛을 보고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이들은 제가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우현은 몸을 돌려 난장판이 된 마당 바닥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적들은 완벽하게 흔적을 지우고 달아났다고 믿었겠지만, 우현의 초감각 탐지술 앞에서는 모든 행적이 백일하에 노출되어 있었다.


우현은 바닥에 주저앉아 흙먼지 속에 남은 발자국 깊이와 보법의 궤적을 ‘병기감별안’으로 분석했다. 날카롭고 깊게 파인 발자국, 그리고 철수의 어깨 상처에 남은 거칠고 불규칙한 참격의 흔적. 그것은 철사방의 행동대장 광표가 사용하는 혈인도의 궤적이었다.


이어 우현은 코끝을 찡그리며 마당 구석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자극적이면서도 은은하게 달콤한 향취가 뇌리를 스쳤다. 일반적인 사철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사방의 책사 귀삼이 애용하는 특수 마비 약물인 ‘만향산’의 독특한 약초 냄새였다. 귀삼이 윤서를 납치할 때 약물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공기 중에 미세한 가루가 남은 것이 분명했다.


우현은 양 귀의 청각 경맥에 고도로 기운을 집중시키는 ‘이청득심(以聽得心)’을 발동했다. 사방에서 울부짖는 눈보라 소리와 민우의 흐느낌을 마음속 장막으로 차단하자, 백 보 밖, 아니 수리 밖의 미세한 울림들이 그의 고막에 선명하게 잡히기 시작했다.


스스스슥…… 덜컹.


험준한 흑석산 산길 초입 방향으로, 무거운 화물을 실은 마차 바퀴가 불규칙하게 흔들리며 자갈을 짓밟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바람결에 섞여 들려왔다. 마차의 기동 방향과 거리가 머릿속에 정교한 지도로 그려졌다. 윤서가 갇힌 곳은 철사방의 본타가 아니라, 과거 폐쇄되었던 검은 돌산의 금지 구역, ‘흑석굴’이 분명했다.


우현은 작업대 옆에 쓰러져 있던 거대하고 투박한 ‘묵철 쇠망치’를 주워들었다. 그는 가죽 끈을 이용해 망치 자루를 자신의 오른손목에 단단히 묶었다. 아직은 귀두도를 뽑아 들 때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피비린내 나는 처형인의 실체를 완전히 보여줄 수는 없었기에, 불살의 망치질 규칙을 지키며 적들의 뼈를 바수겠다는 마지막 이성의 끈이었다.


우현은 민우의 머리를 거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준 뒤, 설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설아는 원망과 공포가 가득한 눈빛으로 우현을 외면했지만, 그녀의 가냘픈 어깨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우현은 대답 대신 묵묵히 삿갓을 깊게 눌러쓰고, 홀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대장간 정문을 나섰다.


* * *


바람은 흑석산 초입에 다다를수록 더욱 사납게 울부짖었다. 가늘게 내리던 눈발은 어느새 거대한 폭설이 되어 우현의 거구를 집어삼킬 듯 들이쳤다. 내력이 봉인된 우현의 몸 구석구석에서 고질적인 한독의 냉기가 역류해 심장을 찔러왔지만, 그는 묵철강체공의 외공 힘만으로 눈더미를 헤쳐나갔.


바위산 초입의 좁은 협곡 입구에 다다랐을 때, 우현의 날카로운 안광이 눈밭 한구석을 포착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묵묵히 허리를 숙였다. 하얗게 쌓인 눈더미 틈새로, 검붉은 빛깔의 작은 나무 조각이 반쯤 묻혀 있었다.


우현은 투박한 손가락으로 그것을 조심스럽게 파내어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것은 윤서의 한독 완화를 위해 그가 대장간 화로 옆에서 깎아주었던 따뜻한 성질의 벽사목 팽이였다. 팽이의 둥근 몸체에는 윤서의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묻어난 것으로 보이는, 차갑게 얼어붙은 붉은 핏방울이 선명하게 얼룩져 있었다. 아이가 납치당하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아저씨가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떨어뜨린 유일한 표식이었다.


우현은 피에 젖은 벽사목 팽이를 거대한 손바닥 안으로 꽉 움켜쥐었다. 팽이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지만, 그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의 움켜쥔 주먹 사이로 쇳소리 같은 묵직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고, 그의 안구는 다시 한번 비정하고 붉은 처형인의 눈빛으로 무섭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추적의 발걸음이 검은 바위산의 어둠 속으로 거침없이 빨려 들어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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