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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그을음 속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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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애애액—!


북방 국경지대의 삭막한 바람이 울부짖을 때마다, 철사구(鐵沙區)의 하늘은 검은 석탄가루로 뒤덮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을 긁는 텁텁한 매연과 사방에서 날리는 석탄재. 이곳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관청의 묵인 하에 사파 방파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황량한 무법천지였다.


그 무법지대의 가장 깊숙한 골목 끝자락, 낡고 허름한 우현 대장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화르륵! 화르르륵!


화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불길이 거구의 사내를 비추었다. 단우현. 서른다섯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풍파와 가혹한 도상(刀傷)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오른쪽 뺨에서 귀밑까지 이어지는 검붉은 흉터는 그의 무뚝뚝한 인상을 한층 더 위압적으로 만들었다.


그는 숯검댕이가 잔뜩 묻은 ‘낡은 가죽 앞치마’를 걸친 채, 아무런 말도 없이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푸우, 훅. 푸우, 훅.


일정한 호흡에 맞춰 풀무가 움직일 때마다 화로의 온도가 치솟았다. 우현은 내력을 쓰지 않았다. 그의 단전에는 황실의 금기 심법인 ‘천근봉(千斤封)’이 걸려 있어 기경팔맥의 기 흐름이 완벽히 봉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그는 겉보기에는 그저 힘 좀 쓰는 외팔이 대장장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단단한 육체, ‘강체(剛體)’는 내력 없이도 삼류 무사들의 도검 따위는 가볍게 튕겨낼 만큼 견고하게 단련되어 있었다.


깡! 깡! 깡!


우현의 손에서 투박한 ‘묵철 쇠망치’가 떨어질 때마다 저품질의 사철 원석인 ‘사강석(沙鋼石)’이 농기구의 형태로 다듬어졌다. 일부러 조잡하게 만든 철기들. 그것은 자신이 천하제일의 야철술과 도법을 지녔음을 숨기기 위한 위장이었다.


“아저씨! 만두 먹고 해요!”


그때, 대장간 문틈으로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덟 살 된 셋째 윤서였다. 태생적으로 기맥이 약해 늘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었지만, 윤서는 단우현이 직접 깎아준 벽사목 팽이를 손에 쥔 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윤서의 뒤편에는 열두 살 된 둘째 민우가 뺨에 그을음을 묻힌 채 씩씩하게 걸어 들어왔고, 그 뒤로 열네 살 된 첫째 설아가 묵묵히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만두 그릇을 들고 서 있었다.


“서씨 아줌마가 아침에 갓 찐 거래요. 아저씨 주려고 특별히 고기를 꽉 채웠대요.”


민우가 침을 삼키며 만두를 가리켰다. 대장간 바로 옆에서 ‘서씨 만둣집’을 운영하는 과부 서씨 부인이 아이들의 손에 들려 보낸 소박한 정이었다.


우현은 망치질을 멈추고 묵묵히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찌릿한 통증과 함께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감히 이 아이들을 키워도 되는가.’


이 아이들은 과거 우현이 황실의 수석 처형인 시절, 역모의 누명을 쓰고 참수대 위에서 목을 베었던 충신 임회남의 고아들이었다. 임회남은 죽기 직전, 우현의 눈빛에 서린 슬픔과 무학적 고결함을 읽어내고 제 자식들을 살려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우현은 그 고결한 부탁을 저버리지 못하고 처형인의 붉은 도포를 벗어던진 채 아이들을 데리고 이 변방으로 도망쳐 왔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긴 채, 그저 투박하고 무뚝뚝한 ‘우현 아저씨’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우현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가혹한 속죄이자, 아이들 앞에서는 결코 피를 흘리지 않겠다는 ‘불살의 망치질 규칙’의 시작이었다.


“식기 전에 드세요.”


첫째 설아가 나직하게 한마디를 건넸다. 설아의 영민하고 차분한 눈빛이 우현의 거친 손과 묵묵한 태도를 가만히 응시했다. 열네 살의 조숙한 소녀는 우현의 무거운 침묵 뒤에 무언가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본능적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우현은 설아의 시선을 피하듯 만두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하고 따뜻한 온기가 입안 가득 퍼졌지만, 그의 가슴은 여전히 납덩이를 얹은 듯 무거웠다.


그때였다.


쿠콰쾅!


대장간의 낡은 목조 정문이 거친 발길질에 의해 뜯겨 나가듯 열렸다. 매캐한 석탄재와 함께 들이닥친 불청객들의 기세는 음산하고 포악했다.


“이봐, 벙어리 대장장이! 세금 낼 시간이다!”


가죽 옷을 대충 걸치고 허리춤에 가죽 채찍을 찬 사내가 침을 뱉으며 걸어 들어왔다. 철사구 관청의 악덕 세금징수원이자 삼류 무사인 장명이었다. 그의 뒤에는 무장한 포졸 서너 명이 험악한 인상을 쓰며 대장간 내부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장명은 가죽 채찍을 가볍게 휘두르며 대장간 마당에 진열되어 있던 사강석 농기구들을 발로 차서 망가뜨렸다.


철그렁! 챙강!


“이따위 조잡한 쇳덩이나 만들면서 자릿세를 밀려? 이번 달 세금은 평소의 세 배다. 당장 은전을 내놓지 않으면 이 대장간을 통째로 압수하겠다!”


장명의 뻔뻔한 공갈 협박에 민우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민우는 주먹을 꽉 쥔 채 낡은 쇠단검의 자루를 잡고 앞으로 나섰다.


“말도 안 돼요! 지난주에도 세금을 가져갔잖아요! 이건 억지에요!”


“이 조그만 쥐새끼가 어디서 감히 관청의 명에 토를 달아?”


장명이 눈을 부라리며 채찍을 들어 민우를 향해 휘둘렀다. 쫙! 하는 파공음과 함께 채찍끝이 민우의 어깨를 겨냥했다. 민우는 겁에 질려 몸을 움츠렸으나, 삼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몸으로는 피할 길이 없었다.


스윽.


어느샌가 우현의 거대한 신형이 소리 소문 없이 민우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퍽!


장명의 가죽 채찍이 우현의 넓은 가슴팍, 정확히는 ‘낡은 가죽 앞치마’의 전면에 정통으로 부딪쳤다. 앞치마 내부에 덧대어 고정된 얇은 강철판과 우현의 단단한 강체공의 방어력 덕분에, 채찍은 둔탁한 소리만 낼 뿐 우현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우현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민우를 가만히 등 뒤로 숨겼다.


“어라? 이 외팔이 벙어리 놈이 제법 몸뚱이는 단단하구나.”


장명은 채찍을 회수하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한 걸음 더 다가와, 쇠못이 박힌 채찍 끝을 우현의 뺨에 새겨진 깊은 도상 흉터에 슬슬 들이댔다. 차가운 쇠붙이의 감각이 우현의 피부를 자극했다.


“단우현이라고 했지? 네 놈이 말을 못 하니 귀도 먹은 줄 아나 본데, 당장 은전 다섯 냥을 내놓아라. 만약 돈이 없다면... 저기 뒤에 있는 계집애들이라도 관청의 노역장에 팔아넘겨 세금을 충당하는 수밖에 없겠지.”


장명의 시선이 설아와 윤서에게 머물렀다. 윤서는 두려움에 떨며 설아의 치맛자락을 붙잡았고, 설아는 이를 악문 채 장명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우현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 천근봉으로 억눌러 두었던 가혹한 살기와 ‘귀두도살기’의 한 조각이 꿈틀거리며 솟구치려 했다.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삼류 무사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뼈를 바스러뜨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사부 형천이 남겼던 비정한 처형인의 가르침이 뇌리를 스쳤다.


‘망나니의 칼에는 정을 담지 말라. 장애물은 오직 참수로써 단죄할 뿐이다.’


하지만 우현은 주먹을 쥐어짜며 살기를 강제로 억눌렀다.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소중한 생명들 앞에서 다시 피를 흘리며 살인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맹세했던 ‘불살의 망치질 규칙’을 되새겼다.


우현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전신의 근육과 가죽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내력을 단 한 터럭도 쓰지 않고, 오직 대장장이로서 매일 밤 두드렸던 순수한 물리적 완력과 강체의 힘만을 사용하기로 결단했다.


우현은 말없이 몸을 돌려, 대장간 한구석에 놓여 있던 거대하고 무거운 ‘무쇠 달구지’를 향해 걸어갔다. 달구지 위에는 가공되지 않은 단단한 사강석 원석들과 고철 더미가 가득 실려 있어, 그 무게가 족히 백 근(약 60kg)을 훌쩍 넘는 중량물이었다.


장명과 포졸들은 우현이 돈을 찾으러 가는 줄 알고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래, 진작에 그럴 것이지.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봤자 관청의 매질만...”


장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우현이 무쇠 달구지의 두꺼운 쇠 프레임을 오른손 한 손으로 움켜잡았다. 그의 팔뚝에 밧줄 같은 힘줄이 터질 듯 솟구쳤다. 기의 흐름도, 내력의 파동도 없었다. 오직 순수한 근육과 뼈의 마찰음만이 대장간의 정적을 깨뜨렸다.


스으으윽—!


백 근 무게의 거대한 무쇠 달구지가 우현의 한 손에 들려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마치 가벼운 나뭇가지를 들어 올리듯 완벽한 수평을 유지한 채였다.


“...!!”


장명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 뒤에 서 있던 포졸들의 턱관절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인간의 육체로, 내공의 보조도 없이 순수한 완력만으로 백 근의 철제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는 괴력은 그들의 삼류 무학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힘이었다.


우현은 차가운 안광으로 장명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들어 올린 무쇠 달구지를 장명의 발밑을 향해 가차 없이 내리찍듯 내려놓았다.


쿵—————!!!


대장간 내부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요동쳤다. 흙바닥이 사방으로 갈라지며 거대한 먼지 폭풍과 석탄재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장명의 신발 코앞 불과 반 치 거리의 지면이 움푹 내려앉으며 무쇠 달구지가 대지에 깊숙이 박혔다.


쿠르릉하는 울림과 함께 장명의 다리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만약 저 무쇠 덩어리가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면, 뼈조차 남지 않고 으스러졌을 것이라는 본능적인 공포가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우현은 먼지 안개 속에서 묵묵히 묵철 쇠망치를 고쳐 쥐고 장명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거구의 실루엣과 흉터 가득한 안색에서 풍기는 기세는 그 어떤 살수보다 위협적이었다. 물리적인 중량의 압박이 장명의 숨통을 조여왔다.


“히, 히익...!”


장명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 대장간 문밖으로 달아나며, 떨리는 손으로 가죽 채찍을 쥐려 애썼다.


“이, 이 괴물 같은 외팔이 놈...! 관청을 모욕한 죄는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팽호(팽호) 포두님께 보고하여 네 놈의 대장간을 뼈째로 으스러뜨려 주마!”


장명은 포졸들을 재촉하며 허겁지겁 저잣거리 너머로 도망쳐 사라졌다. 그들의 비겁한 도주 흔적이 석탄재 먼지 속에 길게 늘어졌다.


대장간 내부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우현은 조용히 숨을 가라앉히며, 뺨에 묻은 먼지를 가죽 앞치마 소맷자락으로 닦아냈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뒹굴고 있는 파손된 사강석 그릇 조각들에 머물렀다. 소박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무공을 숨겼으나, 결국 자신의 완력을 노출함으로써 관청의 더 큰 표적이 될 여지를 남기고 말았다. 가슴속에 묵직한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와아...! 아저씨 진짜 대단해요! 한 손으로 저 무거운 걸 들어 올리다니!”


민우가 눈을 반짝이며 우현의 곁으로 달려와 그의 단단한 팔뚝을 만져보았다. 윤서 역시 벽사목 팽이를 쥔 채 아저씨의 다리에 매달려 재롱을 피웠다.


하지만 우현은 기뻐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첫째 설아에게 닿았기 때문이다.


설아는 만두 그릇을 쥔 채 제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다. 그녀의 차분한 안광은 깊은 의심과 경계로 가득 차 있었다. 설아는 우현이 방금 보여준 가공할 완력과, 장명의 채찍을 몸으로 받아낼 때 보여준 흔들림 없는 ‘강체’의 기세가 결코 평범한 대장장이의 수준이 아님을 완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설아의 시선이 우현의 오른쪽 뺨에 새겨진 깊은 도상 흉터와, 그의 넓은 등 뒤로 길게 늘어진 검은 그림자에 머물렀다.


‘아저씨...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요?’


소녀의 무언의 질문이 대장간의 매캐한 공기 속에서 무겁게 맴돌았다. 우현은 대답 대신 묵묵히 부러진 농기구 조각들을 줍기 시작했다. 검은 그을음 속에서, 그의 침묵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뼈아프게 내려앉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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