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천재들의 굴욕
“이봐, 아테나 씨.”
대문을 부술 듯이 뒤흔드는 오만한 마력의 진동 속에서, 임재희는 차분하게 허리를 숙였다. 화단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진 흙더미와 저주 인형이 터지며 남긴 검은 재를 쓸어내려던 아테나가 붉은 포니테일 머리칼을 혓바닥처럼 털어내며 재희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냐, 범인? 내 귀에도 저 무식한 대문 두드림 소리가 아주 잘 들린다만. 당장 나가서 저 문짝을 두드리는 놈의 대가리를 깨버려도 되겠느냐?”
“아뇨, 힘 조절도 못 하면서 나섰다간 대문 수리비가 더 나옵니다. 그보다 이거 먼저 받으세요.”
재희는 트레이닝팬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붉은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전날 마칠성 일당을 때려잡다가 끝부분이 미세하게 찢어졌다며 아테나가 밤새 울상을 지었던 분홍색 고무장갑이었다.
지금 그 고무장갑의 찢어진 틈새는 재희가 놋쇠 가위와 실로 한 땀 한 땀 정밀하게 기워낸 덕분에,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매끄럽게 접합되어 있었다. 심지어 기워진 선을 따라 은은한 금빛 마력 회로가 흐르고 있었다.
“오오……! 이, 이 완벽한 결구는 대체 무엇이냐!”
아테나가 수선된 고무장갑을 조심스럽게 건네받으며 경외 어린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장갑을 양손에 끼고 가볍게 쥐었다 펴자, 장갑 표면에서 청동빛 투기가 부드러운 막을 형성하며 그녀의 손을 감싸 안았다. 완력 제어 장치가 완벽하게 복구된 것이다.
[아테나 - 오만 수치: 75% -> 73%]
“내 약속은 지켰습니다. 이제 설거지할 때 그릇 깼다고 핑계 대기만 해봐요. 자, 그럼 불청객을 맞이하러 가볼까요.”
재희가 단호한 눈빛으로 앞장섰다. 미네르바는 100장의 반성문 작성을 완벽히 끝내고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재희의 뒤에 섰고, 프레이야 역시 나른한 눈빛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쿠우우웅—!
대문이 거칠게 열리며 두 명의 젊은 남자가 열반장의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선봉에 선 사내는 맞춤 제작된 화려한 명품 정장을 입고, 손가락에는 붉은색 루비가 박힌 거대한 마력 반지를 낀 수려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대한마법사협회 서울지부의 차세대 천재이자 태성그룹 회장의 손자인 송지민이었다.
그 뒤를 따르는 사내는 황금빛 액세서리로 온몸을 치장하고 오만한 미소를 지은 사내, 마법 협회장의 독자이자 C급 마법사인 서강우였다.
그들은 열반장의 낡은 시멘트 바닥과 부서진 벽돌 조각들을 보며 노골적으로 코를 쥐어짜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 참나. 이딴 허름하고 구질구질한 변두리 빌라에서 그토록 거대한 마력 정화 파동이 일어났단 말이지?”
송지민이 손가락의 루비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의 시선이 마당을 쓸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서 있던 재희와, 그 뒤에 서 있는 비현실적인 미모의 여신들에게 닿았다.
“어이, 거기 앞치마 두른 총각. 네가 이 빌라의 관리인이냐?”
서강우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재희를 가리켰다.
재희는 빗자루를 바닥에 굳건히 지탱한 채, 차분한 눈빛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심안을 가늘게 뜨자, 두 사내의 머리 위로 오만한 보랏빛 마력 기류가 출렁이는 것이 보였다. 명백한 적의와 선민사상이었다.
“그렇습니다만. 정식으로 초대를 받지 않은 외부인이 남의 집 대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지상의 법률로 주거침입죄에 해당합니다. 당장 나가시죠.”
“주거침입? 크하하하!”
서강우가 폭소를 터뜨렸다.
“이 미천한 범인 놈이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법을 논하는 거냐? 우리는 대한마법사협회 서울지부의 정식 조사관들이다. 방금 전 이 구역에서 감지된 미승인 불법 마력 정화 파동을 조사하러 왔다.”
송지민이 차가운 눈빛으로 재희의 몸을 훑어보았다. 재희의 오른손 끝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놋쇠 가위의 잔류 마력과 가사 정화 기운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과연…… 마력을 정화하는 변칙 법술을 쓰는 삼류 술사였군. 하지만 주파수가 너무 조잡해. 고작 마당을 쓸고 이불을 터는 ‘잡일 마법’ 따위로 연명하는 한심한 수준이잖아? 이런 구질구질한 가사 마법으로 협회의 허가도 없이 마력을 방사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잡일 마법이라뇨.”
재희의 목소리가 낮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서늘한 기운에 송지민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가사 노동은 이 세상을 지탱하는 가장 숭고하고 정직한 노동입니다. 당신들이 입고 있는 그 번지르르한 옷과 깨끗한 구두도 누군가의 가사 노동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텐데요. 배움이 짧아 그런 기본적인 도리도 모르는 겁니까?”
“이 자식이 감히 마법사 가문의 적자에게 훈계를 해?!”
서강우가 격분하며 한 걸음 나섰다. 그의 팔뚝에 치장된 황금 팔찌들이 짤랑이며 마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지민아, 말로 할 필요 없다. 이딴 잡일 마법이나 쓰는 범인 놈들은 힘으로 짓밟아 무릎을 꿇려야 정신을 차리지. 저 뒤에 서 있는 외국인 여자들도 수상해. 불법 음지 마법 생명체일지 모르니 압수해서 가문의 실험실로 보내야겠다.”
송지민이 차갑게 미소 지으며 루비 반지를 가볍게 튕겼다.
화아아악—!
순식간에 열반장의 앞마당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화염 원소 장벽이 솟구쳐 올랐다. 매서운 열기가 마당의 공기를 순식간에 정화된 수분마저 말려버릴 기세로 태워댔다. 아테나가 공들여 쓸어두었던 깨끗한 마당 바닥이 불길에 그을리기 시작했다.
“내 마당에…… 불장난을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재희는 타오르는 화염 장벽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뜩이나 가계 적자라 수도 요금도 아껴야 하는데, 저 무식한 놈들이 마당을 태우면 물을 뿌려 청소해야 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재희는 고개를 돌려 빗자루를 든 채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아테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마에 핏대가 솟아 있었다. 자신이 수선해 준 핑크색 고무장갑을 낀 채, 마당 청소를 방해받은 것에 극도로 분노한 상태였다.
“아테나 씨.”
“말해라, 재희야! 저 무례한 벌레 놈들의 주둥이를 이 빗자루 대가리로 찢어발겨도 된다고 허락해 다오!”
“아뇨, 폭력은 금지입니다. 하지만 청소를 방해하는 ‘쓰레기’를 치우는 건 가사 노동의 일환이죠. 마당 한구석으로 가볍게 치워주세요.”
재희의 평온한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서강우가 코웃음을 치며 돌격했다.
“고작 빗자루나 든 년이 뭘 하겠다고! 내 강화 마법 주먹 맛이나 봐라!”
서강우가 자신의 가죽 장갑에 강력한 C급 마력을 주입했다. 그의 주먹 주변으로 두꺼운 황금빛 마력 방어막과 파괴적인 물리 충격파가 소용돌이치며 아테나의 얼굴을 향해 매섭게 꽂혀 들어갔.
쿠우우웅—!
바람을 찢는 파괴적인 소음과 함께 서강우의 주먹이 아테나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송지민은 이미 승리했다는 듯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C급 마법사의 전력 타격은 일반 콘크리트 벽면도 종잇장처럼 관통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테나는 눈동자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녀는 왼손으로 빗자루 대를 꼿꼿이 잡은 채, 오른손의 손가락을 가볍게 구부렸다. 핑크색 수선 고무장갑이 씌워진 그녀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가볍게 튕겨 나갔다.
이른바, 딱밤(꿀밤) 한 대였다.
딱—!
맑고 청아한, 그러나 고막을 관통하는 둔탁한 파열음이 마당 전체를 울렸다.
서강우의 주먹을 감싸고 있던 두꺼운 황금빛 마력 방어막이 아테나의 검지 손가락 끝에 닿는 순간—
쩌적! 쩍! 콰아아앙—!
마치 유리창에 해머를 내리친 것처럼, 서강우가 자랑하던 C급 마력 장벽이 사방으로 산산조각이 나며 화려한 마력 파편이 되어 비참하게 휘날렸다. 아테나의 손가락 끝에 깃든 전쟁 여신의 원시적인 신체 압도력이 서강우의 마법 공식을 뿌리째 분쇄해 버린 것이다.
“어……? 읍?!”
서강우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흰자위를 드러내며 위로 뒤집혔.
손가락 끝에서 발생한 무지막지한 물리적 충격파가 그의 이마를 강타했고, 그의 거구는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채 그대로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쉬이이이익— 쾅!
서강우는 마당 구석의 낡은 시멘트 벽면을 들이받고 바닥으로 처참하게 굴러떨어졌다. 그의 이마 중앙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붉은 혹이 솟아올라 있었고, 전신을 부르르 떨며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그의 주먹에 끼워져 있던 마력 장갑은 과부하로 인해 연기를 뿜으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일격. 아니, 손가락 튕기기 단 한 방에 대한마법사협회의 유망주가 완벽하게 침묵했다.
“……!!”
송지민의 입이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그가 유지하고 있던 화염 원소 장벽이 그의 극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흔들리더니, 이내 연기처럼 허무하게 꺼져 버렸다.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기절한 서강우와, 여전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 손으로 빗자루를 잡고 서 있는 아테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테나는 핑크색 고무장갑을 낀 손가락을 가볍게 불며 콧방귀를 꼈다.
“흥, 지상의 벌레 놈이라 그런지 대가리가 참으로 딱딱하구나. 내 소중한 고무장갑이 또 찢어질 뻔했다.”
[아테나 - 오만 수치: 73% -> 70%]
재희는 부러진 마당 구석의 플라스틱 빗자루 대를 보며 혀를 찼다.
“아테나 씨, 힘 조절을 조금만 더 부드럽게 하라고 했잖아요. 빗자루 대가 또 금이 갔잖아요. 이거 새로 사려면 가계부에 또 적자가 난단 말입니다.”
“내, 내 잘못이 아니다! 저 벌레 놈이 멋대로 내 손가락으로 대가리를 들이민 것이다!”
아테나가 볼을 붉히며 변명하듯 외쳤다. 오만 수치가 내려가 파란빛으로 안정된 그녀의 머리 위 게이지가 그녀의 부끄러움을 대변하고 있었다.
재희는 한숨을 내쉬며, 완전히 얼어붙어 있는 송지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 서 계신 마법사 후계자님. 친구분 데리고 당장 나가세요. 영업 방해와 기물 파손으로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그리고 대한마법사협회 서울지부에도 전해두세요. 한 번만 더 남의 집 보금자리에 무단 침입해서 깽판을 치면, 그땐 손가락 한 방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요.”
“이, 이 괴물 같은 년들이……!”
송지민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 그는 기절하여 거품을 물고 있는 서강우를 다급하게 들쳐업었다. 명품 정장이 흙먼지로 엉망이 되는 것도 신경 쓰지 못한 채, 그는 열반장의 대문 밖으로 비틀거리며 도망치듯 빠져나갔.
요란한 구두 굽 소리가 골목길 저편으로 멀어지자, 마당에는 다시 평화로운 정적이 찾아왔다.
재희는 빗자루를 고쳐 잡으며 아테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칭찬을 기대하는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 듯한 눈빛으로 재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청소를 방해하는 불청객들을 멋지게 치워줬으니 상을 줘야겠네요. 아테나 씨, 오늘 저녁은 약속대로 마동필 사장님 가게에서 사 온 최고급 흑돼지로 만든 매콤하고 달콤한 돼지 주물럭입니다. 아주 산더미처럼 쌓아 줄게요.”
“오오……! 돼지 주물럭! 고기 만찬이구나!”
아테나의 청동빛 안광이 기쁨으로 번뜩였고, 그녀의 침샘이 폭발하듯 침이 고였다. 미네르바와 프레이야 역시 저녁 고기 만찬 소식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재희가 빗자루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려던 바로 그 순간.
그의 심안(오만 수치 감지 심안)이 대문 밖, 송지민 일행이 도망치며 남긴 발자국 근처를 포착했다.
그곳에는 공기 중에 미세하게 일렁이는, 아주 옅고 음습한 회색빛 마력(회색 마력)의 잔재가 실타래처럼 꼬여 있었다. 그것은 사채업자 마칠성의 몸에서 흘러나왔던 사마엘의 탁한 기운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주파수였다.
재희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대한마법사협회의 후계자 놈들에게 사마엘의 마력이 묻어있다고……?’
단순한 마법사들의 무단 침입이 아니었다. 열반장을 노리는 천계의 집행관 사마엘의 그림자가, 이미 지상의 기득권 마법 세력 깊숙한 곳까지 뻗어 나와 있음을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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