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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암살단과 밤의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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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현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하수도의 모든 음영이 일제히 요동치며 일행의 숨통을 조여왔다.


파지직! 콰창!


하수도 천장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구식 백열등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터져 나갔다. 순식간에 망원동 하수도 비밀 통로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완전한 암흑 속으로 침잠했다. 지독한 악취와 습기 속에서, 사방의 벽면을 타고 흐르는 그림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기어 다녔다.


크르릉……!


재희의 발밑에 얌전히 복종하고 있던 세 마리의 헬하운드들이 어둠 속에서 솟구치는 불길한 마기를 감지하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녀석들의 목덜미에 깃든 미세한 지옥의 화염이 일렁였지만, 하수도를 가득 메운 음습한 그림자 장막은 그 미약한 불꽃마저도 삼켜버릴 듯이 팽창했다.


“쥐새끼들이 감히 빛을 지우고 기습을 하려 들다니!”


아테나가 어둠 속에서 분노 어린 외침과 함께 선봉으로 나섰다. 그녀의 오른손에 끼워진 분홍색 고무장갑에서 은은한 청동빛 전쟁 투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침에 먹은 특제 흑돼지 주물럭 덕분에 일시적으로 충전된 D급 반신 무력이 그녀의 전신맥을 타고 거세게 요동쳤다.


쉬이이익—!


아테나가 투기를 실어 대나무 빗자루를 허공으로 크게 휘둘렀다. 묵직한 파열음이 하수도를 갈랐지만, 허공을 가른 것은 실체가 없는 차가운 어둠뿐이었다. 오히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소리도 없이 날아든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그녀의 감각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걱!


“읏……!”


아테나가 짧은 신음을 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어깨 부근 가죽 갑옷이 찢겨 나가며 붉은 선혈이 미세하게 베어 나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흑월조 암살단원들이 시전한 그림자 칼바람에 스친 것이었다. 아무리 전쟁의 여신이라 할지라도, 완벽하게 빛이 차단된 밀폐 공간에서의 기습은 본능적인 전투 센스만으로 받아내기에 한계가 있었다.


“아테나 씨! 무리하게 진격하지 말고 뒤로 물러서세요!”


재희가 마비 증상으로 저릿한 오른손 끝을 움켜쥐며 급히 소리쳤다. 왼쪽 가슴 깊은 곳, 과거 사교단의 저주가 남겼던 영혼의 균열 흉터가 적들의 사악한 마기에 공명하듯 타는 듯한 통증을 토해냈다. 놋쇠 실 자원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 결계를 직접 보수할 수도 없었기에, 지금 이 하수도에서의 전투는 오직 여신들의 무력과 자신의 지략에만 의지해야 했다.


“제 안경 너머의 공식이…… 흐려집니다.”


미네르바가 깨진 옥빛 거울 조각을 들고 마법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어둠의 농도가 너무 짙어요. 이 그림자 주술은 단순한 마력 차단이 아니라, 지상의 음습한 원혼들의 원한을 정합하여 공간 자체의 인과율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제 지혜의 수식으로는 이 불규칙한 어둠의 공식을 해독할 수 없습니다!”


“크하하하! 지혜의 여신이라는 자가 지상의 조잡한 주술 하나 풀지 못해 쩔쩔매는 꼴이라니! 천계에서 추락하더니 머리까지 굳어버린 모양이구나!”


어둠 속에서 독고현의 조롱 섞인 음성이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어디가 진짜 위치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흑월조 암살단원들의 기척은 하수도의 물소리와 음영 속으로 완벽하게 녹아들어 가 있었다. 언제 어느 방향에서 주술 단도가 날아와 목덜미를 꿰뚫을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감이 일행의 목을 죄어왔다.


그때였다.


재희의 등 뒤에서 얼음처럼 차갑고 가냘픈 손가락이 그의 옷자락을 살며시 쥐어 왔다.


닉스였다.


낮 시간대라 평소라면 극도로 소심해져 재희의 뒤에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어야 할 그녀였다. 하지만 하수도의 조명이 완전히 차단되고 완벽한 암흑이 도래하자, 그녀를 감싸고 있던 기류가 본질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슥…….


닉스의 검은 생머리가 허공으로 은은하게 흩날렸다. 그녀의 가슴팍 깊은 곳, 봉인되어 있던 밤의 신성 조각이 하수도의 짙은 음영과 격렬하게 공명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 너머로 숨겨져 있던 흑색 안광이 서서히 타오르더니, 이내 찬란하고도 차가운 보랏빛 서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재희…….”


닉스의 목소리가 하수도의 습한 공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평소의 말더듬이와 소심함은 찾아볼 수 없는, 극도로 오만하고도 고결한 밤의 지배자로서의 음성이었다.


“이 조잡한 자들이…… 감히 내 영역에서 어둠을 논하고 있어. 불쾌해.”


재희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현실적인 위압감을 느끼며 심안을 개안했다. 닉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반투명한 게이지가 푸른빛으로 요동치며 안정되어 있었다.


[닉스 - 오만 수치: 73% -> 50%]

[상태: 밤의 영역 동화, 신성 공명 극대화]


재희는 미소를 지었다. 굳이 억지로 불을 밝히거나 좁은 공간에서 아테나의 파괴적인 힘을 무리하게 쓸 필요가 없었다. 어둠 속의 암살자들을 상대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 어둠 그 자체의 주인을 풀어놓는 것이었다.


“닉스 씨. 이 어둠을, 당신에게 완벽하게 일임하겠습니다.”


재희의 단호한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닉스가 천천히 재희의 뒤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가 하수도 바닥의 구정물 위를 가볍게 디딜 때마다, 발끝에서부터 짙은 보랏빛 안개가 파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밤의 장막을…… 선포할게.”


닉스의 나지막한 선포와 함께, 그녀의 고유 권능인 [밤안개 야간 경비막]이 전개되었다.


스아아아아아—!


하수도 전체를 뒤덮고 있던 독고현의 검붉은 그림자 마력이, 닉스가 방출한 순수한 보랏빛 밤안개 속으로 무력하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하급의 탁류가 거대한 밤의 심연 속으로 흡수되어 흔적도 없이 정화되는 형국이었다. 독고현이 시전한 그림자 구속 촉수들이 밤안개에 닿는 순간, 소리도 없이 스러지며 오히려 닉스의 밤의 신성을 채워주는 동력원으로 치환되어 버렸다.


“이, 이게 무슨……! 내 그림자 주술이 왜 통제력을 잃는 거지?! 어둠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독고현의 당혹감 서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가 지배하고 있다고 믿었던 하수도의 음영들이, 이제는 역으로 그와 흑월조 암살단원들의 사지를 옭아매는 사슬이 되어 그들의 움직임을 강제로 구속하고 있었다.


“바보 같은 지상인들.”


닉스의 보랏빛 안광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번뜩였다.


“너희가 숨어든 어둠은…… 태초에 내가 다스리던 밤의 한 조각에 불과해. 내 앞에서 어둠을 무기로 쓰려 하다니,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닉스의 신형이 공간의 음영 속으로 소리도 없이 스며들었다. [그림자 은신 및 이동술]이었다.


서걱! 콰당!


“크아악!”


완벽한 침묵 속에서, 흑월조 암살단원 중 한 명의 목덜미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오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가 쥐고 있던 주술 단도는 형체도 없이 부러져 하수구 구정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어디냐! 어디서 나타나는 거냐!”


나머지 암살단원들이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단도를 휘둘렀지만, 그들의 오감은 이미 닉스의 밤안개 장막에 의해 완벽하게 차단된 상태였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으며, 심지어 자신들이 디디고 서 있는 감각조차 왜곡된 절대적인 고독의 공포.


스윽.


또다시 어둠 속에서 보랏빛 안광이 명멸했다. 닉스는 마치 밤하늘을 거니는 유령처럼 침입자들의 배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소리 없이 그들의 무기를 해제하고 힘줄을 끊어 제압해 나갔다. 하수도의 차가운 시멘트 벽면이 흑월조 암살단원들이 흘린 붉은 피로 빠르게 물들어 갔다. 오만한 사교단의 정예 전사들이, 밤의 여신의 손끝 아래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가는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사냥이었다.


“이…… 괴물 같은 년이!”


부하들이 차례로 몰살당하자 극도의 공포와 분노에 휩싸인 독고현이 광분했다. 그가 가슴팍의 붕대를 거칠게 찢어발기며 품속에서 검붉은 해골 주술 부적을 꺼내 들었다.


“내 영혼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너희 놈들을 길동무로 삼아 주마! 나와라, 지옥의 그림자 야수여!”


독고현이 자신의 생명력을 강제로 쥐어짜 내어 최후의 폭주 주술을 시전하려 했다. 그의 몸에서 검붉은 마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그림자 괴수의 형상이 하수도 천장까지 솟구치려 했다.


하지만 닉스는 그 광경을 그저 나른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 주술의 인과선…… 너무 지저분해.”


닉스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파칭—!


맑은 파열음과 함께, 독고현이 소환하려던 그림자 마력의 주파수가 닉스의 밤안개 영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닉스의 상위 대역 밤의 권능에 가로막힌 그림자 마력은 갈 곳을 잃고 요동치더니, 이내 시전자인 독고현의 육체를 향해 난폭하게 역류하기 시작했다.


“어, 억……?! 내 마력이…… 왜 역류하는……!”


독고현의 눈동자가 공포로 가득 찼다. 그의 몸속으로 강제로 밀고 들어온 그림자 마력이 주체할 수 없이 팽창하더니, 이내 그가 불러내려 했던 그림자 괴수의 형상으로 변모하여 그의 육체를 안쪽에서부터 갈기갈기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싫어! 내 그림자가…… 나를…… 먹어 치운다! 교주님! 교주니이이이읍!”


독고현의 비참한 비명 소리는 그가 스스로 소환하려 했던 그림자 괴수의 아가리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며 끊어졌다. 그의 육체는 주술의 역반동에 의해 형체도 없이 붕괴하여 어둠 속으로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행동대장의 허무하고도 비참한 자멸이었다.


스으으으…….


독고현이 소멸함과 동시에, 하수도를 가득 메우고 있던 검붉은 그림자 마력과 보랏빛 밤안개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하수도 구석의 비상용 유도등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희미한 주황빛을 다시 밝히기 시작했다.


“하아…….”


닉스가 몸을 가볍게 떨며 재희의 뒤로 다가왔다. 밤의 영역이 해제되자, 그녀의 눈동자에 서려 있던 차가운 보랏빛 안광이 사라지고 특유의 소심하고 낯가림 심한 눈빛이 돌아왔다. 그녀는 재희의 옷자락을 꼭 쥔 채,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재희…… 나, 잘했어……? 조금…… 졸려…….”


“정말 잘해 주셨습니다, 닉스 씨.”


재희는 피로감에 몸을 비틀거리는 닉스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 안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닉스의 머리 위 오만 게이지가 완전히 파란빛으로 물들며 안정을 찾았다.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구—!


독고현이 쓰러진 자리 바로 뒤편, 하수도의 막다른 길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석조 벽면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단순한 물리적 진동이 아니었다. 균열의 틈새 사이로,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기괴하고 사악한 검붉은 마기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균열 너머에서—


“아아아아악……! 살려줘……! 제발……!”


“교주님…… 제발 저희의 영혼을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수백, 수천 명의 무고한 상인들과 인질들의 원혼이 내지르는 비참하고 처절한 비명 소리가 하수도 벽면 전체를 뒤흔들며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귀를 막아도 뇌리를 직접 찌르는 고통스러운 영혼의 울부짖음이었다.


쿠웅!


이내 묵직한 파열음과 함께 석조 벽면이 좌우로 갈라지며, 그 너머에 숨겨져 있던 거대하고 음산한 고대 양식의 붉은 성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벌교의 지하 총본산이자, 피의 제단 의식이 거행되고 있는 [천벌교 지하 대성전]의 입구가 마침내 일행의 눈앞에 완전히 개방된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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