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도의 지옥견 길들이기
지 지하실 폐쇄 창고 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른 검붉은 진동은 열반장 301호의 낡은 식탁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웠다. 방금 전 마동필 사장에게서 공수한 특제 흑돼지 전지로 만든 주물럭을 남김없이 비워낸 여신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식이…… 시작되었어.”
미네르바가 은빛 안경테를 손끝으로 밀어 올리며 창백해진 얼굴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 너머로 지하실 황동 제단에서 흘러나오는 사악한 마력 주파수의 궤적이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있었다.
“송순이 할머니와 시장 상인들의 생명력이 제단의 동력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속도라면 길어야 두 시간…… 그 안에 제단을 파괴하지 못하면 그들의 영혼은 영구히 소멸할 겁니다.”
“가자, 집사! 내 청동빛 투기가 온몸에서 끓어 넘치는구나! 그 광신도 놈들의 대가리를 모조리 깨부숴 주마!”
아테나가 불끈 쥔 주먹에서 은은한 청동빛 안광이 흘러나왔다. 돼지 주물럭을 통해 일시적으로 복원된 ‘반신 봉인 해제 (D급)’의 무력이 그녀의 전신에 강력한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하지만 임재희는 차분하게 숨을 고르며 품안에서 고진태에게 받은 ‘망원동 하수도 비밀 통로 지도’를 꺼내 들었다. 그의 가슴 중앙, 과거 사교단의 저주가 남긴 저독(詛毒)의 흉터가 타들어 가듯 욱신거렸고, 자물쇠를 자르느라 과부하가 걸린 오른손 끝은 여전히 차갑게 마비되어 움직임이 둔했다. 그러나 가장으로서 식구들과 이웃들을 구하겠다는 그의 눈빛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지상에는 천벌교 놈들이 쳐놓은 타락 결계가 굳건합니다. 정면 돌파는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지도를 따라, 아버지가 남겨두신 하수도 비밀 통로를 통해 놈들의 허점을 찌를 겁니다.”
재희는 싱크대 아래에 숨겨진 비밀 지하실 통로를 열었다. 어둡고 음습한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오랫동안 방치되어 매캐한 먼지와 구정물 냄새가 뒤섞인 좁은 지하 하수관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망원동 하수도 비밀 통로.
사교단 주술사들이 열반장의 지상 은닉 장막을 우회하기 위해 불법으로 굴착해 둔 음습한 지하 침투로였다. 바닥에는 탁한 하수가 발목까지 차올랐고, 사방의 벽면에는 이끼와 곰팡이가 가득했다. 여신들은 지상의 오염 물질이 옷자락에 묻자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지만, 재희의 단호한 뒷모습을 보며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쯧, 냄새가 지독하군. 천계의 가장 하층부에 있는 쓰레기 처리장보다도 음습하다.”
아테나가 투덜거리며 재희의 옆을 지켰다. 그녀의 한 손에는 부러진 청동 방패 조각이 쥐어져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수선된 분홍색 고무장갑이 단단히 끼워져 있었다.
재희는 심안을 개안하여 하수도 내부의 미세한 마력 흐름을 읽어 내려갔다. 놋쇠 실 자원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였기에, 만약 이 좁은 공간에서 대규모 함정이나 습격을 맞닥뜨린다면 지상에서 결계를 즉시 보수할 방도가 없었다. 극도로 신중해야 했다.
그때였다.
하수도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관로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벽면에 서려 있던 이끼들이 열기에 타들어 가며 매캐한 연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타오르는 붉은 안광 세 쌍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르…….
바닥의 하수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기화했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존재들은 온몸이 검은 불꽃으로 뒤덮인 거대한 마수들이었다. 붉은 안광을 뿜으며 침을 흘릴 때마다 바닥의 물이 증발하며 쉭쉭 소리를 냈다. 천벌교 주술사들이 열반장에 방화를 저지르고 하수도를 지키기 위해 소환한 지옥의 화염견, 헬하운드 무리였다.
“지옥의 똥개 놈들이 감히 내 앞길을 가로막는구나!”
아테나가 청동 방패 조각을 치켜들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헬하운드 세 마리가 동시에 주둥이를 벌리며 검붉은 지옥의 화염을 전방으로 사정없이 내뿜었다.
콰아아아아아—!
“아테나 씨, 뒤로 물러서세요!”
재희의 경고와 동시에 아테나가 방패 조각으로 화염을 막아섰다. 웅장한 청동빛 장막이 형성되며 화염의 직격을 차단했지만, 하수도라는 극도로 좁은 밀폐 공간이 문제였다. 화염이 방패에 부딪혀 사방으로 굴절되자 관로 내부의 산소가 순식간에 고갈되었고, 숨이 막힐 듯한 고열이 여신들의 마력을 급격하게 갉아먹기 시작했다.
“으윽……! 공간이 너무 좁아!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는다!”
아테나가 이빨을 악물며 버텼지만, 방패 표면이 검붉게 달아오르며 그녀의 손등에 가벼운 화상 통증이 전해졌다.
“내가 저 놈들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날려버리겠다!”
“안 됩니다!”
재희가 마비된 오른손으로 아테나의 어깨를 강하게 잡아끌며 만류했다.
“이 좁은 하수도 천장은 낡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아테나 씨의 D급 무력을 함부로 방사했다간, 하수도 자체가 붕괴하여 우리 모두 매몰됩니다. 상인들을 구하기도 전에 지하에 묻히고 싶습니까?”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서서 구워질 수는 없지 않느냐!”
아테나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헬하운드들은 아군의 균열을 감지한 듯, 더욱 포악하게 으르렁거리며 한층 더 거대한 화염 방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세 마리의 마수가 내뿜는 화력이 한데 모인다면, 아무리 복원된 아테나의 방패라도 녹아내릴 판국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재희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심안을 통해 헬하운드들의 오만 수치와 상태를 투시했다.
[헬하운드 무리 - 상태: 극도의 굶주림, 파괴 본능 폭주]
‘배고픔…….’
재희의 눈빛이 번뜩였다. 지옥의 마수라 할지라도 결국 생명체였고, 굶주림 앞에서는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녀석들의 코끝이 아주 미세하게 경련하는 것이 보였다. 아테나가 먹고 남은 돼지 주물럭의 매콤하고 고소한 잔향이 재희의 옷자락에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재희는 지체 없이 등 뒤의 배낭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커다란 스테인리스 보온통을 꺼냈다.
“집사? 이 위험한 순간에 그 밥통은 왜 꺼내는 것이냐?”
아테나가 황당한 듯 외쳤지만, 재희는 묵묵히 보온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하수도의 매캐한 유독가스와 유황 냄새를 단숨에 찢어발기는 기적적인 향취가 하수도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재희가 오늘 아침, 마동필 사장에게 공수한 돼지 뼈와 남은 흑돼지 전지 부위를 융합하여 외조모의 요리 비책대로 고아낸 ‘신성 돼지 고기 뼈다귀 감자탕’이었다. 푹 고아진 뼈다귀에서 우러난 진하고 구수한 육수 냄새와 칼칼한 들깨가루의 향이 뜨거운 하수도 기류를 타고 헬하운드들의 후각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크르릉…… 웅?
순간, 화염을 뿜으려던 헬하운드 세 마리의 움직임이 동시에 뚝 멈췄다. 녀석들의 입가에서 사악하게 타오르던 검은 불꽃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대신, 시뻘건 안광이 가득했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리며 재희의 손에 들린 보온통으로 고정되었다.
“후우…… 역시 통하는군요.”
재희는 보온통 안에서 푹 익어 살점이 두툼하게 붙어 있는 커다란 돼지 뼈다귀 세 개를 국자로 건져내어 하수도 바닥에 툭 던졌다.
“먹어라.”
툭, 툭, 툭.
뼈다귀가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옥의 흉포한 마수들은 자신들이 천벌교의 경비견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사방으로 흩어져 뼈다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와작! 쩝쩝! 콰작!
녀석들은 뼈다귀를 이빨로 으스러뜨리며 비현실적인 감칠맛에 완전히 매료되어 신음 소리를 흘렸다. 재희의 정화의 피 기운과 마동필의 특제 흑돼지 영기가 깃든 감자탕 뼈다귀는, 지옥의 척박한 화염만을 먹고 자란 마수들에게 난생처음 경험하는 극상의 미각적 축복이었다.
“멍! 깽!”
가장 덩치가 큰 헬하운드가 뼈다귀를 순식간에 해치우더니,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재희의 발밑으로 기어와 머리를 비벼댔다. 녀석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불꽃이 완전히 꺼지고, 은은하고 온순한 미세 불꽃으로 변모했다. 완벽한 ‘헬하운드의 화염 방사 조절’ 상태였다.
나머지 두 마리 역시 재희의 바짓가랑이에 침을 흘리며 더 달라는 듯 낑낑거렸다. 지옥의 포악한 괴수들이 순식간에 열반장의 얌전한 똥개들로 길들여진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지옥의 마수를 뼈다귀 하나로 굴복시키다니…….”
아테나가 턱을 벌린 채 경악 어린 눈으로 재희를 바라보았다. 미네르바 역시 안경을 고쳐 쓰며 혀를 내둘렀다.
“임재희 씨의 요리에 담긴 신성 공명도가 마수들의 영혼에 새겨진 광포한 살기 자체를 정화해 버린 것입니다. 정말이지…… 무서운 가사 능력이군요.”
“열반장 마당을 지킬 든든한 경비견이 필요하긴 했습니다.”
재희는 헬하운드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며 나지막이 웃었다.
“조용히 하고 있어라. 짖지 말고.”
헬하운드들은 재희의 명령에 복종하듯 얌전히 꼬리를 말아 쥐고 그의 뒤에 엎드렸다.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적의 경비 마수를 완벽하게 아군으로 포섭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평화는 찰나에 불과했다.
쿠구구구구—!
하수도 통로 저편, 사교단 지하 대성전으로 향하는 굳게 닫힌 철문 너머에서 거대한 마력 폭발음과 함께 철문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날아왔다.
쾅! 와장창!
자욱한 흙먼지와 붉은 마기가 하수도 통로를 가득 메웠고, 그 연기 속에서 음습한 검은 로브를 걸친 사내들이 떼를 지어 걸어 나왔다. 그들의 중심에는 얼굴 절반을 붕대로 감고, 안광에서 기괴한 검붉은 마기를 내뿜는 사내가 서 있었다.
천벌교 행동대장, 독고현이었다.
그의 등 뒤로는 암살과 기습에 특화된 정예 주술 전사단, 천벌교 집행단 ‘흑월조’ 대원 열두 명이 그림자 속에서 은밀하게 단도를 꺼내 들며 재희 일행을 사방으로 포위하기 시작했다.
“과연 쥐새끼처럼 하수도로 기어 들어올 줄 알았다, 임재희.”
독고현이 붕대 사이로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하수도의 모든 음영이 일제히 요동치며 일행의 숨통을 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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