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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여신의 기력 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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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전당포의 낡은 나무 문틈 사이로 매캐한 곰방대 연기가 마지막으로 흘러나왔다. 임재희는 품속에 고이 접어 넣은 ‘망원동 하수도 비밀 통로 지도’를 손끝으로 지그시 눌렀다. 가슴 깊은 곳, 과거 사교단의 저주가 남긴 저독(詛毒)의 흉터가 욱신거리며 심장을 찔러왔다. 지하실의 철문을 자르느라 완전히 감각을 잃고 굳어버린 오른손 손가락들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전당포의 흐릿한 유리창 너머, 좁고 음침한 골목길 초입에는 이미 검은색 세단 석 대가 시동을 켠 채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문 앞에 비스듬히 서서 무전기를 든 채 전당포를 노려보는 사내, 대기업 태성그룹 부회장 송민우의 냉혹한 해결사 김도윤의 은빛 너클이 아침 햇살을 받아 섬뜩하게 번뜩였다.


“도련님, 정면 돌파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카운터 너머에서 눈먼 노인 고진태가 곰방대를 가볍게 털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제 전당포 뒷문은 시장통 골목의 막다른 하수구 입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도련님의 그 충직한 철물점 친구 녀석에게는 이미 제가 은밀히 전령을 보내두었지요. 그 녀석이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이, 뒷골목으로 빠져나가십시오.”


“고맙습니다, 고진태 어르신.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


재희는 깊숙이 고개를 숙인 뒤, 전당포 구석의 먼지 쌓인 가죽 커튼 뒤에 숨겨진 좁은 철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어둡고 축축한 뒷골목으로 나오자마자, 저 멀리 큰길가에서 요란한 엔진 굉음이 망원동 골목길을 흔들었다.


탈탈탈탈! 콰르릉!


“어이! 거기 검은 양복쟁이들! 길 한복판에 차를 이따위로 대놓으면 이 오철민 님의 명품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갈 수가 없잖아!”


재희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철물점 사장인 오철민의 우렁찬 목소리였다. 철민은 온갖 고철과 쇠파이프를 잔뜩 실은 특수 개조 오토바이를 몰고 검은색 세단 앞을 들이받을 듯이 밀어붙이고 있었다. 철민이 일부러 오토바이를 급정거하며 뒤쪽에 실려 있던 녹슨 철제 파이프 수십 개를 골목 바닥으로 요란하게 쏟아부었다.


쨍그랑! 콰르릉! 댕그랑!


“앗, 이런! 내 소중한 건축 자재들이! 야, 너희들 거기 서서 구경만 하지 말고 이것 좀 같이 치워라!”


갑작스러운 소란에 김도윤의 미간이 좁아졌다.


“쯧, 비켜라. 우리는 공무 중이다.”


김도윤이 부하들에게 눈짓을 보내며 철민을 밀쳐내려 했지만, 의리의 철민은 덩치 큰 조폭들의 앞덜미를 잡고 끈질기게 늘어졌다.


“뭐라구? 공무? 사채업자 똘마니같이 생긴 놈들이 무슨 공무야! 경찰 불러! 당장 변상해!”


그 소란을 틈타 재희는 하수구 벽면의 음영 속으로 몸을 완전히 숨겼다. 김도윤의 날카로운 시선이 순간 전당포 뒷골목의 어둠을 훑었으나, 이미 재희는 닉스에게 배운 그림자 보행의 요령을 미세하게 발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가슴의 저독 흉터가 타들어 가듯 아파왔지만, 재희는 이빨을 악물고 열반장을 향해 달렸다. 송순이 할머니와 시장 상인들을 구하기 위해선 단 1초도 낭비할 수 없었다.


* * *


열반장 301호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거실에서 초조하게 발을 구르고 있던 여신들이 일제히 재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집사! 무사히 돌아왔구나!”


아테나가 붉은 포니테일을 흔들며 가장 먼저 달려왔다. 그녀의 양손에는 재희가 놋쇠 가위와 실로 튼튼하게 수선해 준 분홍색 고무장갑이 보물처럼 쥐어져 있었다. 그 뒤로 미네르바가 안경테를 만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프레이야와 닉스 역시 재희의 무사 귀환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모두 모이세요.”


재희는 식탁 위에 고진태에게 받은 망원동 하수도 지도를 펼쳤다.


“송순이 할머니와 상인들이 천벌교 놈들의 지하 대성전에 갇혀 있습니다. 지상에는 강력한 타락 결계가 쳐져 있어 진입할 수 없지만, 아버지가 남기신 이 하수도 비밀 통로를 통하면 놈들의 허점을 찌를 수 있습니다.”


“당장 출발하자, 집사! 내 청동 방패로 그 광신도 놈들의 대가리를 모조리 깨부숴 주마!”


아테나가 투지를 불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재희는 단호하게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안 됩니다. 지금 당신들의 마력은 천벌교의 정예 장로들과 싸우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붉은 장막을 막아내느라 기력이 고갈된 상태로 진입했다간 개죽음을 당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지체하다간 상인들의 영혼이 먼저 소멸할 것입니다.”


미네르바가 이성적인 우려를 표하자, 재희는 품속에서 지하실 서고 깊은 곳에서 찾아낸 또 하나의 비책을 꺼냈다. 누렇게 바래고 먼지가 가득 쌓인 책, 외조모 서정은이 남긴 ‘지하실의 먼지 쌓인 가계 비책’이었다.


“그래서 준비한 게 있습니다.”


재희는 철민의 오토바이 뒤편에 실려 있던 아이스박스에서 묵직한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봉지를 열자, 붉고 신선한 선홍빛 기운이 서린 거대한 돼지고기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성정육점 마동필 사장이 정성을 다해 엄선해 준 ‘마동필의 특제 흑돼지 전지’였다.


지리산 방목지의 영기를 머금고 자란 최상급의 흑돼지 앞다리살. 고기 표면에서는 지상의 미세한 영적 단백질이 은은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재희가 자신의 마지막 비상금과 가계 잔고를 몽땅 털어 공수해 온 비장의 카드였다.


“미네르바 씨, 비책의 47페이지를 펼치세요.”


미네르바가 재빨리 비책을 해독하며 소리쳤다.


“이건…… ‘신성 공명 가정식 조리법’ 중에서도 전쟁의 투기를 극대화하는 약선 돼지 주물럭 레시피입니다! 흑돼지의 동물성 영기와 지상의 영초들을 정밀하게 배합하여 섭취하면, 소실된 전쟁 여신의 무력을 일시적으로 폭발시킬 수 있다고 적혀 있어요!”


“맞습니다. 아테나 씨의 기력을 단숨에 충전해 지하 성전을 뚫어낼 선봉장으로 만들 겁니다.”


재희는 곧바로 부엌으로 향해 앞치마를 질끈 묶었다. 그리고 아테나의 머리 위에 얹혀 있던 작은 미니 드래곤, 아그니를 손가락으로 콕 짚었다.


“아그니. 오늘 요리의 화력은 네가 담당한다.”


“큐웅?!”


아그니가 조그만 날개를 파닥이며 귀찮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녀석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재희의 코앞을 향해 붉은 불꽃을 크게 내뿜으려 입을 벌렸다. 거실 벽지가 타버릴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탁!


재희는 가차 없이 나무 국자로 아그니의 머리를 가볍게 꿀밤 때리듯 쳤다.


“아그니. 열반장 가사 규칙 제1조를 잊었나? ‘집안에서 신력을 이용한 파괴 행위를 금하며, 이를 어길 시 당일 저녁 식사에서 제외된다.’ 너 오늘 소고기 육포 안 먹고 싶어?”


“큐우우웅…….”


재희의 칼 같은 훈육과 단호한 눈빛 앞에, 지옥의 화염 신수라는 거창한 혈통을 지닌 미니 드래곤은 순식간에 꼬리를 내리고 납작 엎드렸다. 녀석은 훌쩍거리며 무쇠 불판 아래로 기어가 아주 온순하고 일정한 온도의 불꽃을 뿜기 시작했다. 가스 요금을 획기적으로 아끼게 해주는 친환경 고효율 열에너지, ‘아그니의 미세 화염 정수’가 불판을 은은하게 달구었다.


치이이이익—!


달구어진 불판 위에 마동필의 특제 흑돼지 전지가 올라가자, 귀를 자극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고소하고 묵직한 고기 냄새가 주방 가득 퍼져나갔다.


재희는 외조모의 비책에 적힌 대로 고추장 양념에 지상의 미세한 영초 가루를 정밀하게 배합했다. 그리고 양념을 고기에 버무리는 순간, 오른손 끝의 마비 증상을 억누르며 자신의 단전에 깃든 조율자의 온기를 손끝으로 흘려보냈다. 재희의 몸속에 흐르는 ‘정화의 피’ 기운이 양념의 입자 하나하나에 스며들며, 고기와 양념의 신성 공명도를 극대화했다.


붉은 양념 옷을 입은 흑돼지 고기가 아그니의 정밀한 화력 제어 속에서 익어갈수록, 단순한 음식을 초월한 황금빛 마력 입자들이 주방 천장으로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매콤하면서도 달콤하고, 고기 특유의 묵직한 감칠맛이 뒤섞인 비현실적인 향취가 열반장 전체를 가득 메웠다.


“으으…… 집사……. 이 냄새는 대체 무엇이냐? 내 침샘이…… 내 이성이 무너질 것 같다…….”


아테나가 싱크대 옆에 서서 침을 꼴깍 삼키며 붉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불판 위의 익지 않은 고기를 향해 고무장갑을 낀 손을 뻗으려 했다.


탁!


재희는 숟가락으로 아테나의 고무장갑 등 부분을 가볍게 때렸다.


“안 됩니다, 아테나 씨. 덜 익은 고기를 먹으면 배탈이 날 뿐만 아니라, 신성 공명 주파수가 깨져서 기력이 충전되지 않습니다. 의젓하게 기다리세요.”


“으윽……! 전쟁의 여신인 내가 이 미개한 범인 놈에게 숟가락으로 맞다니……!”


아테나는 볼을 잔뜩 부풀리며 투덜거렸지만, 이미 오만 수치가 62%까지 떨어진 그녀는 재희의 엄격한 가사 잔소리에 본능적으로 순종하며 얌전히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는 귀여운 소녀의 모습이었다.


드디어 고기가 완벽하게 익고, 황금빛 윤기가 흐르는 특제 약선 돼지 주물럭이 식탁 중앙에 놓였다.


“드세요.”


재희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테나는 젓가락을 들고 고기 한 점을 듬뿍 집어 입안으로 골인시켰다.


우우웅—!


고기가 혀끝에 닿는 순간, 아테나의 전신이 일시적으로 굳어졌다.


매콤하고 칼칼한 양념이 흑돼지의 묵직한 육즙과 어우러져 그녀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소실되었던 전쟁의 신성 회로가 미친 듯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재희의 정화의 피 기운과 아그니의 정밀한 화력이 융합된 요리는 지상의 인과율 제약을 완벽하게 우회하여,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전쟁의 투기를 급속도로 깨워 흔들었다.


“오오오오……!”


아테나의 전신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청동빛 전쟁 투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불꽃 같은 붉은 포니테일이 허공을 향해 거칠게 휘날렸고, 찢어진 가죽 갑옷 틈새로 고대 전쟁의 전장을 호령하던 위엄 서린 문양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단순한 미세 공명을 넘어, 지상에서의 한계 경지인 ‘반신 봉인 해제 (D급)’ 상태의 무력이 일시적으로 급속 충전된 것이다. 비록 한시적이지만, 과거의 강력한 전쟁 여신으로서의 위엄이 그녀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힘이…… 힘이 넘쳐나는구나! 집사! 이 흑돼지 주물럭 한 접시로 내 투기가 무려 30% 수준까지 충전되었다!”


아테나가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하듯 외쳤다. 그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동빛 폭풍 기류가 거실의 먼지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진정한 전쟁의 여신다운 압도적인 비장미가 거실을 가득 메운 바로 그 순간.


쿠우우우웅—!


열반장 건물 전체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롭고 무거운 진동이 지하실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단순한 물리적 지진이 아니었다. 재희의 가슴 중앙에 새겨진 조율자 낙인이 타들어 가듯 뜨겁게 반응했고, 지하실 폐쇄 창고 방향에서 검붉은 마력의 폭풍이 거실 바닥을 뚫고 올라왔다. 수백 명의 원혼들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불길하고 사악한 마력 맥동이었다.


“이, 이 기운은……!”


미네르바가 안경테를 붙잡으며 경악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지하실 폐쇄 창고 안의 황동 제단과 연결된 차원 주파수야! 사교단 놈들이…… 지하 대성전에서 상인들을 제물로 바쳐 영혼 추출 의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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