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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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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밤은 늘 축축하고 무거웠다. 골목길 구석구석에 내려앉은 가로등 불빛은 노란 녹물처럼 바닥을 적셨고, 낡은 다세대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은 숨이 막힐 정도로 건조했다.


그 빌라촌의 한가운데, 임재희가 물려받은 3층짜리 낡은 빌라 ‘열반장’이 있었다.


“하아…… 이번 달도 적자네.”


열반장 301호실의 낡은 거실.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준 유일한 유산인 이 빌라를 떠맡게 된 스물네 살의 청년, 임재희는 책상 위에 펼쳐진 빨간 고지서들을 보며 마른세수를 했다.


수도 요금 연체 고지서, 가스 요금 독촉장, 그리고 한 자릿수만 남기고 비어버린 통장 잔고.


부모님은 평범한 서민 부부로 사시다 가셨다고 생각했는데, 남겨진 빌라는 여기저기 물이 새고 보일러는 사흘이 멀다 하고 고장이 났다. 쓰리잡을 뛰며 새벽 우유 배달에 편의점 야간 알바, 봉투 붙이기까지 해가며 버텼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재희는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라도 쐬려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는 그가 부모님 사후 직접 나무 판자를 조립해 만든 낡은 평상이 놓여 있었다. 밤하늘을 보며 캔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것이 그의 유일한 사치였다. 서울의 밤하늘은 매연과 불빛에 가려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빠. 빌라 관리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군대에 말뚝이나 박을 걸 그랬어요.”


재희가 평상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궁—!


갑자기 귓가를 찢는 듯한 기괴한 소음이 하늘 전체를 흔들었다. 천둥소리도 아니었고, 비행기 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유리가 깨져나가는 듯한 날카롭고 웅장한 파열음이었다.


“어, 어?”


재희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서울의 상공 한가운데가 마치 칼로 찢어발긴 것처럼 갈라지더니, 그 틈새로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한 네 줄기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들은 마치 떨어지는 유성우처럼 엄청난 속도로 지상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궤적의 종착지는 다름 아닌—


“미친, 여기잖아!”


재희는 본능적으로 평상 아래로 몸을 던졌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열반장 옥상 전체가 거세게 요동쳤다. 사방으로 붉고 푸른 불꽃 파편이 튀었고, 재희가 정성스레 조립했던 나무 평상은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날아갔다. 매캐한 연기와 먼지가 옥상을 가득 메웠다.


“콜록! 쿨럭! 아으…….”


재희는 깨진 판자 더미 속에서 간신히 머리를 치켜들었다. 온몸이 먼지투성이였다. 지붕이 무너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가 화를 내며 일어서려던 찰나, 연기 너머로 기이한 실루엣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네 명의 여인들이 연기 속에서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재희는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넋을 잃었다. 지상의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미모를 지닌 여인들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불꽃처럼 붉은 머리칼을 포니테일로 묶은 여인이었다. 찢어진 가죽 갑옷 사이로 탄탄하고 건강한 몸매가 드러나 있었고, 손에는 부러진 청동 창날을 꽉 쥐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굶주린 사자처럼 사나웠다.


그 옆에는 지적인 은빛 안경을 쓰고 단정한 푸른빛 머리칼을 늘어뜨린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주변을 분석하듯 두리번거렸지만, 옷은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안경 너머로 극심한 피로감이 묻어났다.


셋째는 눈부신 금빛 웨이브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퇴폐적인 분위기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무너진 평상 판자 위에 나른하게 누워 셔츠 깃을 매만지며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그 몸짓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매혹을 풍겼다.


마지막으로 구석진 어둠 속에 웅크린 채 검은 생머리로 얼굴을 가린 소심한 인상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낯을 가리는 듯 몸을 잘게 떨고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안광은 예사롭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재희의 시야에 기묘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녀들의 머리 위에 반투명한 인터페이스 같은 붉은색 게이지와 글씨가 실시간으로 떠오른 것이다.


[아테나 - 오만 수치: 98% / 상태: 몰락 상태 (F급)]

[미네르바 - 오만 수치: 95% / 상태: 몰락 상태 (F급)]

[프레이야 - 오만 수치: 92% / 상태: 몰락 상태 (F급)]

[닉스 - 오만 수치: 85% / 상태: 몰락 상태 (F급)]


‘이게 대체 뭐야?’


재희가 자신의 눈을 비비며 경악하는 사이, 붉은 머리칼의 여인—아테나가 부러진 청동 창날을 재희의 목덜미를 향해 겨누며 오만하게 소리쳤다.


“미개한 지상의 범인이여! 감히 천계의 고결한 전쟁의 여신, 아테나 앞에 머리를 조아려라! 찬탈자들의 습격을 피해 이곳에 도달했으니, 당장 신성한 제물과 기력을 회복할 신수를 대령해라!”


목소리에는 웅장한 위압감이 서려 있어야 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꼬르륵—.


그녀의 탄탄한 배꼽 부근에서 아주 우렁차고 정직한 배꼽시계 소리가 옥상에 울려 퍼졌다.


아테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 옆에 있던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깐깐한 목소리로 헛기침을 하며 거들었다.


“아테나, 품위를 지켜라. 비록 우리가 쿠데타로 인해 신성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몰락 상태’로 추락했다 하나, 지상의 인간에게 굴복할 수는 없다. 인간이여, 나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다. 우리의 신성을 복원할 수 있도록 거처를 제공하는 영광을 허락하겠다.”


재희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먼지를 털어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테나가 겨눈 부러진 창날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밀어냈다.


“여신이고 뭐고 간에, 남의 집 옥상에 무단 침입해서 내가 피땀 흘려 만든 평상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놨으면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 아닙니까?”


“무, 무엇이라?! 감히 신의 명령에 토를 달다니!”


아테나가 분노하여 재희의 멱살을 잡고 힘으로 찍어누르려 했다. 비록 신력을 잃어 마법이나 투기는 쓰지 못하지만, 신의 육체 자체의 완력은 일반인보다 훨씬 강했다. 그녀가 바닥을 딛고 힘차게 도약하려던 바로 그 순간—


아앗!


“아, 아으으윽……!”


갑자기 아테나가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무너진 판자 더미 위로 보기 좋게 엉덩방아를 찧은 그녀는 다리를 부르르 떨며 고통스러워했다.


[아테나 - 오만 수치: 98% -> 95%]

[알림: 극심한 영양실조 및 굶주림으로 인해 다리에 쥐가 발생했습니다.]


“아테나!”


미네르바가 경악하며 그녀를 부축하려 했으나, 미네르바 역시 한 걸음 떼자마자 무릎이 꺾이며 비틀거렸다. 그녀들 모두 신성을 잃고 지상으로 추락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영적 과부하와 굶주림에 허덕이는 비참한 처지였던 것이다.


프레이야는 평상 조각 위에 누운 채 나른한 눈빛으로 재희를 유혹하듯 바라보며 콧소리를 냈다.


“후후, 귀여운 인간 총각…….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고, 우리에게 따뜻한 침대와 먹을 것을 주면 안 될까? 내가 아주 특별한 축복을 내려줄 수도 있는데…… 웅?”


그녀가 매혹적인 마력을 뿜어내려 했으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미세한 분홍색 연기 한 모금뿐이었다. 그마저도 밤바람에 허무하게 흩어졌다. 프레이야는 이내 배를 움켜쥐며 침을 삼켰다.


“아, 배고파서 유혹도 못 하겠네…….”


구석에 있던 닉스는 아예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웅얼거렸다.


“배, 배고파요……. 어둡고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어…….”


재희는 기가 막혔다. 이 예쁘고 오만방자한 여자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신들이라니. 그것도 신력을 다 잃고 굶어 죽기 직전인 몰락한 신들.


그는 주머니에서 낡은 가죽 가계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옥상에 널브러진 잔해들을 가리켰다.


“이 평상 만드는데 자재비만 15만 원 들었습니다. 거기다 옥상 방수 페인트 까진 거 복구비, 정신적 피해 보상비까지 합치면 최소 50만 원이에요. 내 통장 잔고가 지금 딱 3만 원인데, 당신들 때문에 적자가 배로 늘어났단 말입니다.”


미네르바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논리적으로 반박하려 했다.


“지상의 화폐 따위, 우리가 천계의 성물을 복원하면 얼마든지 연금술로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러니 우선 신용 대출이라 생각하고 우리에게 식사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신도 돈 없으면 국물도 없습니다.”


재희는 단호했다. 그는 가계부를 탁 닫으며 여신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낡은 빌라를 사수하기 위해 쓰리잡을 뛰며 다져진, 억척스럽고 현실적인 생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먹고 싶습니까?”


네 명의 여신들이 본능적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마저도 자존심을 굽히고 재희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럼 내 제안을 따르세요. 갈 곳도 없고 돈도 없는 당신들을 내가 거두어 주겠습니다. 열반장 301호실에 방 한 칸을 내어주죠.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매일 청소, 설거지, 빨래 같은 가사 노동을 성실히 수행해서 그 노동력으로 방값과 밥값을 갚으세요. 싫으면 당장 이 옥상에서 나가시든가.”


“무, 무례하다! 신에게 청소와 설거지를 시키다니!”


아테나가 반발하며 일어서려 했지만, 재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301호 문을 열었다.


“싫으면 나가세요. 망원동 길바닥에서 노숙하시든가.”


문틈 사이로 301호 부엌에서 풍겨 나오는 구수한 냄새가 옥상의 차가운 밤바람을 타고 여신들의 코끝을 자극했다. 비록 낮에 먹다 남은 찌개 냄새였지만, 굶주린 여신들에게는 천상의 진미보다 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여신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침묵했다. 배고픔과 힘의 결핍은 그 어떤 신성한 자존심보다 강렬했다.


미네르바가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우선, 그 제안을 수용하겠다. 단, 성물이 복원되는 즉시 이 계약은 파기하는 조건이다.”


“좋습니다. 계약 성립이군요.”


재희의 머릿속에 기이한 알림음이 울렸다.


[알림: ‘가사 조율자 초급 (1단계)’ 권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네 명의 몰락한 여신님들과의 기묘한 가사 동거 계약이 시작됩니다.]


재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비록 생활비 적자는 늘어나겠지만, 이 오만한 여신들의 콧대를 가사 노동으로 완전히 꺾어놓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평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 법이었다.


301호실 내부로 진입한 여신들은 거실의 소박한 가구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특히 아테나는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부엌으로 들이닥쳤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당장 먹을 것을 내놓지 않으면 이 철제 배관이라도 뜯어 먹겠다!”


아테나가 눈이 뒤집힌 채 부엌 싱크대의 구리 배관을 강력한 완력으로 움켜잡고 통째로 뜯어내려 했다. 싱크대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대로 두면 부엌 전체가 물바다가 될 판이었다.


재희는 한숨을 쉬며 가문 대대로 내려온 가죽 가계부를 펼쳐 들고, 부엌 벽면에 붙은 가사 규칙을 가리키며 차가운 목소리로 선포했다.


“내 집에서 깽판 치면 오늘 저녁은 물론이고 평생 굶을 줄 알아라. 아테나, 당장 그 손 떼지 못해?”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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